서해상의 낙조
이태극
어허 저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탄다.
둥근 원구가
검붉은 불덩이다.
수평선 한 지점 위로
머문 듯이 접어든다.
큰 바퀴 피로 물들며
반 나마 잠기었다.
먼 뒷섬들이
다시 환히 얼리더니
아차차 채운만 남고
정녕 없어졌구나.
구름 빛도 가라앉고
섬들도 그림 진다.
끓던 물도 검푸르게
잔잔히 숨더니만,
어디서 살진 반달이
함(艦)을 따라 웃는고.
-<꽃과 여인>(1957)-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감각적, 서정적, 관조적
◆ 특성
① 현대시조, 연시조, 구별배행시조
②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추보식 구성)
③ 일몰과 월출의 광경을 감각적 표현을 통해 인상적으로 표현함.
④ 낙조(사라짐)와 월출(생겨남)을 바라본 화자의 감회를 감탄사를 통해 적절히 표현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어허 저거 → 황홀감의 표현
* 둥근 원구가 / 검붉은 불덩이다. → 낙조 장면의 묘사
* 아차차 → 아쉬움을 드러냄.
* 채운 → 여러 빛깔로 아롱진 고운 구름
* 어디서 살진 반달이 / 함을 따라 웃는고. → 달의 웃음 = 새로운 희망
◆ 제재 : 낙조와 월출
◆ 주제 : 서해상 낙조의 아름다움과 그 감동
[시상의 흐름(짜임)]
◆ 제1수 : 일몰 직전의 감상
◆ 제2수 : 일몰의 아쉬움
◆ 제3수 : 월출의 상황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1957년에 창작된 작품으로 해군 함정을 타고 제주도에 갔을 때 본 낙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조이다. 이태극의 시조에는 수평선 위로 해가 떨어지는 광경에 대한 감탄과 일몰 후의 허전함, 허전함 뒤에 오는 또 다른 풍경의 묘미가 형상화되어 있다.
사라짐을 연상하게 하는 낙조를 새로 돋아나는 월출로 연결함으로써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향과 상향의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 시조의 개념
시조의 정의를 이태극은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보통 시조라면 단시조(평시조)를 말하는데, 그 단시조라는 것은 신라의 향가나 고려의 별곡 등의 영향에 힘입어 고려 중 · 말엽에 그 형태가 확립된 우리나라 고유 시가의 하나이다. 그 형식은 3장 6구요, 한 구의 구성 자수는 7자 내외가 되고, 4율박(律拍)씩의 등시율(等時律)을 갖춘 정형시요, 자수율 44자(보통 42자에서 46자로 된 것이 대부분임) 중심으로 된 조선조 시가의 대표가 되는 단형시로서 오늘에도 그 형식의 시조가 창작되고 있다."고 하여 '단시조형인 평시조가 향가나 속요의 영향을 받아 고려 말경에 그 형식이 정립된 우리나라 고유시'임을 밝혔다. 시조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언술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특별하게 그 근원적인 차이는 없이 유사하게 내려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전통적 단형 서정시의 부활
1960년대에 한국 문단에서 주목해야 할 사건은 시조의 부활이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조는 현상 문예의 태동, 시조 전문지 창간, 본격적인 시조 문학 연구 등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한다. 1955년 "현대문학"이 창간 이후 시조가 활자화될 수 있었고, 특히 "동아일보" 현상 문예(시조)가 부활되면서 다시 신진 시조 시인이 배출되기 시작하였다. "문장"지의 폐간과 함께 추천 제도가 사라져 새로운 시조 시인의 등장이 어려웠었는데, 1960년을 전후하여 각 신문의 신문 문예 현상 모집에 시조가 부활되면서 시조 시인의 관문도 다시 열리고 발표 지면도 늘게 되었다. 특히 1960년 박병순의 "시조", 이태극의 "시조 문학" 등 시조 전문지의 창간은 발표 지면을 확보해 주었으며 1960년대 시조 중흥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어 이병기 회장의 한국시조작가협회(한국시조시인협회 전신)가 창립(1964)되어 기관지 "정형시"를 발행하는 등 본격적인 시조 문학 운동을 펼쳐 나갔다.
이 같은 시조 부활의 배경에는 1950년대 후반에 조윤제, 이태극, 이병기, 구본혁, 장시훈 등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디딤돌이 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한 시조 문학의 연구로 주목되는 것은 사설시조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고 운율에 대한 정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등장한 시조 시인들은 사설시조와 같은 서민들의 정서를 반영하면서 현실과의 대응에서 새로운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군의 시인들에 의해 시조의 전례적 작시법에 대한 반성과 현대시론적 접근 방법의 모색잉ㅆ다. 이 시기에 활동한 주요 시조 시인으로는 이병기, 정완영, 이호우, 조운, 김상옥, 장순하, 이상범, 김제현, 서별, 이근배, 윤금초 등이며 이들은 해방 후 한국 시조 문학계를 이끌어 온 주역이기도 하다. 1960년대 시조 문학계는 화려한 전통의 부활과 계승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작가소개]
이태극[ 李泰極 ]
출생~사망 :1913.07.16 ~ 2003.04.24.
시조 시인인 이태극은 강원도 화천군 출신으로, 자연과 이간의 공존을 추구하는 시조를 보여주었다. 대표 시조로는 감각적인 시어로 표현된 '三月은'과 '山딸기'가 있다. 강원도 화천군에는 이태극의 문화 세계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태극 문학관'이 있다.
강원도 화천군의 시조 시인으로 이태극이 있다. 호는 월하(月河)다. 이태극은 1913년 7월 16일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방천리에서 출생했다. 1928년 양구보통학교, 1933년 춘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34년 4월까지 강원도청 농무과에서 근무했다.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통신교육으로 와세다 대학 전문부에서 수학했다. 1934년 5월부터 1945년 10월까지 강원도 춘천, 홍천, 인제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47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편입, 1950년에 졸업했다. 동덕여자초급대학 강사, 서울대학교 강사를 거쳐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했다.
1953년 『시조연구』에 시조 「갈매기」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 시조전문지 『시조문학』 창간, 1965년 한국시조작가협회를 창립했으며 1966년 한국문인협회 산하에 시조 분과를 창설했다. 동곡문화상(1978), 외솔상(1983), 중앙시조대상(1985), 육당시조상(1986),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1990), 대한민국 문화훈장(1994)을 수상했다. 2003년 4월 24일 사망했다.
이태극의 시조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추구하거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탐색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운율 안에 현대적인 감각을 담은 이태극의 시조는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태극은 창작활동 뿐만 아니라 이론연구를 통해 시조가 서구의 시와 다르지 않음을 밝히면서 시조 형식의 유연함을 강조하고 시조의 음악성, 곧 창(昌)을 회복하여 대중성을 획득할 것을 제안하며 시조 문학의 발전과 부흥을 시도했다. 또한 시조전문지를 창간하거나 한국시조작가협회, 한국문인협회 시조 분과를 창립하는 등 시조 문학의 입지를 다지고자 다양한 방면으로 노력했다. 이태극은 『현대시조선집』(이병기 공편, 1958), 『시조개론』(1959), 『시조연구논총』(1965), 『고전문학연구논고』(1973) 등의 연구서와 『꽃과 여인』(1970), 『노고지리』(1976), 『소리‧소리‧소리』(1982), 『날빛은 저기에』(1990) 등의 시조집을 발간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서해상의 낙조」, 「삼월은」, 「산딸기」, 「갈매기」, 「교차로」, 「인간가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