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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체험,은사,입신,예언,방언 등의 신비주의&은사주의 목사무당을 경계하라>
이 글은 제가 여러 목사님들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제 나름의 많은 영적 경험을 통하여서 성경에 의거하여 내린 정리된 생각이오니 부디 참고하시어 영적으로 날마다 승리하시고 등과 기름이 준비되어 휴거의 축복을 누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긴 글이지만, 부디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제가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구어체로 편하게 쓰는 과정에서 저의 부족한 어휘력으로 몇몇 단어들이 잘못씌여졌을 수도 있다고 인정합니다만, 전체적인 글의 흐름과 맥락과 글의 취지와 요지를 파악하시어 적절치 못한 단어사용이 혹여 있더라도 양해바랍니다 그런 지엽적인 부분으로 논쟁할 시간이 아까운 까닭입니다 ]
오늘날 교회가 설교는 매우 열심히 하지만 실제로 성경은 거의 가르치지 않고 있다.만약 목사가 성경을 몰라서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는 참으로 큰 일이다. 반대로 알고도 가르치지 않은다면 이는 더욱더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금의 한국 교회에서는 인간이 구원받고 ⇒은혜받고 ⇒축복받고 ⇒ 치료받고 ⇒ 능력과 은사받고 ⇒ 받고, 받고 외엔 없다. 성경 66권을 읽어보면, 인간이 은사 받고 인간이 능력 받는 이런 인본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66권 성경 [구약 39권 929장 23,026절/ 신약 27권 260장 7,967절 / 66권 1189장 31,093절] 으로 올바른 성경적 교육과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워야 한다.
설교하는 분들과 교육하는 분들은 반드시 창세기 1장부터 요한 계시록 22장까지 온전히 가르쳐서 지키게 해야 한다. 바르게 가르쳐도 실천을 하는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는데 가르치는 사람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우리는 66권 중에 단 한 권도 제대로 배운 것이 없습니다 !"라고 한다면 목사는 분명히 책임을 져야한다.
창세기~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가 중요한데 그게 헷갈리면 결국 그 믿음은 광신이요, 미신적인 믿음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온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이 아니면 일생도 불행하지만 영생도 보장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66권 성경을 제대로 알고 믿어야지, 성경 가지고도 우상을 만들어서 자기가 생각하는, 믿고 싶어 하는 하나님을 만든 것도 우상이라는 것이다. 내 손으로 조각하지 않고도 내 머리로 생각하는, 상상하는, 만들어놓은!!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과 다르다. 그러므로 개인 마다 자기 머릿 속마다 디자인한 하나님이 성경에 있는 그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이 우상숭배이다.
오늘날 일반 학교에서 교과목을 맡은 교사가담당 교과서를 제 1과부터 마지막과 까지 학기 내에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교사가 자기 취향대로 여기 저기로 왔다 갔다 하면서 학기가 지나고 1년이 가고 2 년이 가고 3 년이 가고 10년이 가도 교과서를 차례대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면 과연 우리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을까 ?
오늘날 성경을 배우고 있는 성도들의 학부형이 하나님이요 예수님이다.선생된 목사들과 신학대학 교수님들은 성도들의 학부형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공정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이단들과 사이비들은 성경을 매우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아주 고급 인력을 확보하여 환상적으로 그림들을 그리면서 성경을 가르치는데 단순하고 실천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기성교회의 성도들이 삶을 볼 때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불 수가 없다. 먹고 마시는 것과 입는 것과 공부하는 것, 사업하는 것과 세금포탈하는 것과 교통 법규 위반하는 것과 뇌물 주고 받는 것,어느 것 하나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없다. 오늘날 기성교회 교육은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1000만의 성도들에 의하여 3,500 만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아니면 세상이 교회를 세속화 시키고 있는지 냉정하게 반성을 해 보자고 하면 하나같이 후자라고 고백을 한다.
성경은 언약을 맺은 사람들에 대한 삶을 기록한 것으로 언약을 지켰는지 안지켰는지에 대한 역사이다. 그러니깐, 레위기를 알아야 한다. 레위기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인데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그 계명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서, 구약이 써진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 다르고 신약의 하나님 다르다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성경의 언약을 지키면 복을 받고 안 지키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성경 속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했는데 대체로 말씀=계명을 안 지켜서 언약을 위반했으니 뉘우치고 돌아서라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부흥강사에게 복 받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는데 그것이 단지, 목사님 잘 섬겨라, 교회 봉사 많이 해라, 헌금을 정성껏 해야 복 받는다 였다. 성경대로 어떻게 해야 복 받는지에 대해서 즉,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계명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작금의 한국교회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신비주의, 미신적 광신주의 기독교가 괜히 생겨나게 된 것이 아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복 장사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신명기 28장을 봐라 축복은 1~14절까지이고 저주는 15~68절까지 축복량의 4배가 기록돼 있다. 이스라엘민족이 예언자들이 와서 책망하니 듣기 싫어서 예언자들을 때려 죽이자 하나님은 또 보내고, 그러니깐 백성은 또 때려죽이고, 하나님은 또 보내고 계속해서 반복하였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자,
마침내 아들을 보내면 안 때리고 안 죽이겠지 했는데,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에 의해 죽임당하셨다.
모세이후 말라기 선지자까지 1000년 동안 하나님은 사람들을 보내고,또 보냈지만 안 되고 안 되고, 하나님의 소원대로 백성들이 안 움직여 줬기에 잘 안 되어졌다. 사사기 때를 봐라.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가면 애굽을 나왔으니깐, 하나님이 직접 그의 백성을 다스리신다고 했으니, 잘 되어야 하는데, 사사시대 때 백성은 여전히 여호와를 알지 못하여 다른 신을 음란하게 따랐고 그 결과 360년간의 암흑 시기를 보냈다고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고 복을 받았던 사람들이 욥기,시편,잠언,전도서, 아가 서를 통해서 여호와를 찬양한다며 시가서를 썼던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택하시고 그 후 셈을, 그리고 아브라함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그 중에서 레위지파, 그 중에서 아론의 자손 그러고도 안되니깐 [민3:3~4절], 각 지파의 사사들, 그래도 안 되니깐, 나실인[삿13:5]을 택하셨다. 그러고도 안 되어 결국엔 왕을 보내었고, 왕도 안되니깐, 선지자를 보냈는데 선지자들도 다 죽임당하고 마지막에 예수님을 보냈는데, 그 분마저도 죽여서 결국, 다 죽었기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성경 66권 마저도 안 믿으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것 이다. 이렇게 성경을 전체적으로 개관해 봤지만, “잘 된다, 복준다” 라는 말이 성경에 대부분인 것 같은가? 예언자가 와서 잘 된다 복준다는 말을 한 것이 많이 있었던가? 전부 예언자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안지키면 하나님이 심판한다고 예언하고 경고한 것이 성경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니깐, 복 준다는 말이 있어도 성경 전체의 20분의 1도 안된다. 성경의 역사가 언약을 지키지 않은 결과로 예언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의 연속이었고, 예수님이 누가복음 20장 9~16절을 통해 구약에 대한 해석을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아야 할 성경역사 의식인 것이다. 누가복음 20장 9~16절은 예수께서 본문에 비유하신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 즉 교회(사5:7)요, 포도원을 만든 한 사람은 하나님이시며 상속자인 아들은 예수이다. 종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들=예언자들이며 농부들은 성도를 양육하는 목사들이고 포도원 소출은 포도 곧 성도이다. 포도원을 만들었다는 말은 교회를 창조했다는 뜻이요 그것을 세로 주었다는 말은 처음 익은 열매인 성도를(약1:18) 받으려고 교회의 목사들에게 맡겼다는 의미다. 실과 때는 추수 때를 말하고 그 농부들을 진멸한다는 말은 불순종한 목사들을 마지막 날 심판하여 끝낸다는 뜻이다. 성경은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내린 징계로 아픔과 고통의 연속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그저, 잘된다, 복준다는 말을 해야 사람들이 몰려오니깐,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설교를 해야, 헌금도 나오고 교회건물도 유지할 수 있으니깐, 구약은 외면당하여 결국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제외되어왔던 것이다. [서구 신학이 옳았다면, 서구 교회가 바로 서 있었어야 맞는 말이지만, 지금 다 문닫았다!! ] 그렇게 영적으로 편식하여 66권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르치지 않은 결과 기독교가 기복교가 되어 [미신 충만, 오해 충만]으로 말세지말인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사실이 이렇다라면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교회가 문을 닫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 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나오는 설교를 들어 보면 거의가 다 "잘 된다는 설교" 복받는다는 설교, 능력 받고 은사 받고구원받고 또 무엇을 받고 죄사함 받고 지옥가지 않고 천당가고이땅에 머리가 되고 출세하고 ...... 대부분이 그러한 말씀들이다. 물론 성경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복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계의 말씀, 경고의 말씀, 질책의 말씀, 진노의 말씀이 더 많이 있다.많은 설교자들이 그러한 말씀,즉 성도들이 찔림을 받을 만한 말씀은 거의 하지 않는다. 자칫하다가는 성도들이 세상적이고 육신적이며 현세적인 욕구에 부하는 설교를 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설교자는 성도들이 들어야 할 말씀을 들려 주는 것이 아니라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게 된다. 이렇게 되다가는 거짓 선지자가 될 위험이 있다. 진정한 사역자는 성도들이 듣기 좋아하는 달콤한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권도 빼먹지 말고 성실히 가르쳐서 지키게 해야 한다."사람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사람을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사람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설교자가 어떤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누락시키는 것을 보면성도들은 그 책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가보다 하고 착각을 하게 만든다.
어떤 설교자는 오바댜서 나훔서, 스바냐서 같은 책은 평생에 한번도 설교하지 않고 일생 사역을 마친다.. 우리가 다시 한번 명심할 사실은 하나님께로부터우리가 위탁받은 교과서가 66권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항상 말씀을 듣고,보고,믿고,지켜 행하고,전하고 가르치는 순서를 강조하고 있다. 이 순서대로 되려면, 인내로써 입에 재갈을 물려 경건의 훈련을 받아야 믿음이 자라나게 된다고 말한다. [야고보서]
사람을 사람되게 하기위해서는 규범과 모범으로 교육해야한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는 어떤 종교행위도 하나님이 배격하신다.
성경이 없었을 때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의 시대에는 그 들의 삶으로써 하나님을 영광을 드러내면서 증거하고 살았다.그러나 모세 이후에는 성경이 기록되어서 이를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제는 온전한 말씀을 가르치고 배워서 성도들의 삶의 거룩하고 착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지도해야 한다.
1. 모세의 유언!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敬畏)하며 이 율법(律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行)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居)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子女)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敬畏)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신31:9~13) 2. 예수님의 유언“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權勢)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族屬)으로 제자(弟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聖靈)의 이름으로 세례(洗禮)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吩咐)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世上)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恒常)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8~20) 3. 바울의 유언 (고전 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경 속 여러 인물들을 살펴보자.>
01. 여호수아 :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성경을 가르치지 않아서 그의 후 시대 360년이 구약 시대 종교 암흑기가 되었다. 02. 사무엘 :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역시 국민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하지 못했고 아들들이 잘못되었으며 사울에게 권력이 넘어갔다. 03. 다윗 : 훌륭한 왕이었지만 성경을 가르치지 못했다. 04. 솔로몬 :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성경을 배우지도 않았고 가르치지도 않았으며 결론이 좋지 않았다. 05. 엘리야, 엘리사도 훌륭한 선지자였으나 성경을 가르치지 않았다. 06.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요엘, 나훔, 오바댜, 하박국, 스바냐,나단, 아히야, 오뎃, 잇도, 갓,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 수많은 예언자들이 있었고 다 훌륭한 사람들이었지만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은 없었다. 07. 에스라가 처음으로 율법을 가르치기로 결심을 했다. 이러한 결심은 모세가 유언을 남긴 후 10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스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스 7:25)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예수님의 유언은 오늘날 교회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제자를 삼아서 가르치라고 하셨으나 요절 몇 절 밖에는 가르치는 것이 없다. 교회를 30년이나 50년을 다녀도 66권 중에 단 한권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없다.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지도 바르게 아는 것도 없이 믿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라 미신적(迷信的)인 신앙이 되고 말 것이다.
어느 곳에 있는 무슨 나라 어떤 민족에게나 기독교가 어렵게 선교하고 나서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두면 300년도 도지 않아서 교회는 없어지거나 변질(變質)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아서 지금 교회는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으며 변질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도 전국에 많은 교회들이 있고 또 훌륭하고 착하고 성실해 보이는 목사님들이 있지만 문제는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목사님 스스로도 성경을 바르게 배워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약 시대에 처음 5권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즉 율법서를 가르쳤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5경이 아니라 66권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이다. 가르쳐야 할 일이 얼마나 많으며 배워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1. 창세기부터 가르쳐라.2. 계시록까지 가르쳐라. 3. 율법서의 의미를 가르쳐라 4. 역사서를 바르게 가르쳐라 5. 시가서의 바르게 가르쳐라 6. 예언서를 온전히 가르쳐라 7. 신구 약 중간사도 가르쳐라 8. 복음서를 온전히 바르게 가르쳐라 9. 사도행전과 서신서를 가르쳐라 10. 새것과 옛 것을 가르쳐라.(마13:52) 11. 지극히 작은 것까지 가르쳐라.(마5:19) 12. 서로 용서하게 가르쳐라.(마마6:14~15) 13. 서로 사랑하게 가르쳐라. 14. 제자를 삼아서 가르쳐라. 15. 온유하고 겸손하게 가르쳐라. 16. 착한 사람들이 되게 가르쳐라. 17. 산상 보훈을 그대로 가르쳐라. 18. 화평하고 거룩하게 가르쳐라. 19. 순전하고 정직하게 가르쳐라. 20. 신뢰와 소망과 사랑을 가르쳐라. 21. 가감하지 않고 가르쳐라. 22. 진실하고 성실하게 가르쳐라. 23. 지혜롭게 순결하게 가르쳐라. 24.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라. 25.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가르쳐라. 26. 기록된 원래 목적대로 가르쳐라. 27. 범죄하지 않게 가르쳐라. 28. 맹세하지 않게 가르쳐라. 29. 온전한 사람이 되게 가르쳐라.(마5:48) 30. 바른 기도를 가르쳐라.(마6:5~13) 31.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라. 32. 구하고 찾도록 가르쳐라. 33. 냉철하게 분별하도록 가르쳐라. 34. 십자가의 도를 가르쳐라. 35. 부활과 영생을 가르쳐라. 36. 최후의 심판을 가르쳐라. 37. 영적인 세계를 가르쳐라. 38. 창조원리를 가르쳐라. 39. 인애와 긍휼을 가르쳐라. 40. 창조주 하나님을 가르쳐라. 41. 구세주 하나님을 가르쳐라. 42. 보혜사 하나님을 가르쳐라. 43. 심판주 하나님을 가르쳐라. 44. 구제와 나눔을 가르쳐라. 45. 인내하는 사람으로 가르쳐라. 46. 하나님을 경외하게 가르쳐라. 47. 하나님을 사랑하게 가르쳐라. 48. 하나님을 증거하게 가르쳐라. 49. 순종하게 가르쳐라. 50. 섬기는 자세를 가르쳐라. 51. 강하고 담대하게 가르쳐라. 52. 역사와 예언을 가르쳐라. 53. 율법의 정신을 가르쳐라. 54. 생명을 사랑하게 가르쳐라. 55. 선한 사람으로 가르쳐라. 56. 마귀를 대적하게 가르쳐라. 57. 세상을 이기도록 가르쳐라. 58. 성경의 윤리와 보편적 윤리를 가르쳐라. 59. 하나님을 사랑하게 가르쳐라. 60. 이웃을 사랑하게 가르쳐라. 61. 원수를 사랑하게 가르쳐라. 62. 착하고 충성된 사람으로 가르쳐라. 63. 시대를 분별하게 가르쳐라. 64. 변질되지 않게 가르쳐라. 65. 하나님의 일을 가르쳐라. 66. 주권자를 알도록 가르쳐라. 67. 일등시민이 되게 가르쳐라. 68. 모이기를 힘쓰도록 가르쳐라. 69. 가정을 소중하게 가르쳐라. 70. 계명의 정신을 가르쳐라. 71. 근검절약의 정신을 가르쳐라. 72. 부모를 공경하게 가르쳐라. 73. 탐심과 욕심을 버리게 가르쳐라. 74. 보물을 하늘에 쌓도록 가르쳐라. 75. 천국에 일군들이 되게 가르쳐라. 76. 성도들이 헌신하게 가르쳐라. 77. 서로 종노릇하게 가르쳐라. 78. 하나님의 심정을 알도록 가르쳐라. 79. 사명을 깨닫도록 가르쳐라. 80. 범사에 덕을 세우도록 가르쳐라. 81. 사람의 내면을 성결하게 가르쳐라. 82. 미혹에 넘어가지 않게 가르쳐라. 83. 종말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라. 84. 주님의 재림을 가르쳐라. 85. 종말의 징조를 알도록 가르쳐라. 86. 성도들이 깨어 있게 가르쳐라. 87. 항상 준비하는 것을 가르쳐라. 88. 천국과 지옥을 가르쳐라. 89. 배운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90. 만류의 기원을 가르쳐라. 91. 하나님의 성품을 가르쳐라. 92. 건강한 삶의 원리를 가르쳐라. 93. 음식을 가려서 먹도록 가르쳐라. 94. 신령한 노래를 가르쳐라. 95. 전도자가 되도록 가르쳐라. 96. 세월을 아끼도록 가르쳐라. 97. 생각하는 사람이 되게 가르쳐라. 98.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 가르쳐라. 99. 어릴 때부터 진리를 가르쳐라. 100.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게 가르쳐라. 101.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주라. 102.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가르쳐라. 103. 작은 일이라도 충성되게 가르쳐라. 104.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가르쳐라. 105. 세례와 성찬의 의미를 가르쳐라. 106. 진리 안에 있는 자유를 가르쳐라. 107.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쳐라. 108. 계명을 지켜서 그 안에 거하게 한다. 109.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게 가르쳐라. 110. 생명의 말씀을 만민이게 전하게 가르쳐라. 111. 사랑받는 사람 되게 가르쳐라. 112.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도록 가르쳐라. 113. 칭찬받는 사람으로 가르쳐라. 114. 말씀을 가르칠 수 있게 가르쳐라. 115. 교회를 세울 수 있게 가르쳐라. 116. 공평과 정의와 절제를 가르쳐라. 117. 천국에서 상급을 받을 수 있게 가르쳐라. 118. 항상 배우는 사람 되게 가르쳐라. 119. 성경과 역사와 미래와 과학을 가르쳐라. 120. 모든 성도들을 선교동역자로 가르쳐라. 131. 세우신 곳에서 선교하게 가르쳐라. 132.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가르쳐라. 133. 자기 일에 매이지 않게 가르쳐라. 134. 성도들의 품위와 권위를 가르쳐라. 135. 선한 양심의 소리를 따르게 가르쳐라. 136. 전심전력하여 진보가 나타나게 가르쳐라. 137. 항상 위엣 것을 추구하게 가르쳐라. 138. 자신의 분수를 헤아리게 가르쳐라. 139.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도록 가르쳐라. 140. 약한 자들의 약점을 담당하게 가르쳐라. 141.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가르쳐라.(롬15:16) 142. 믿고 사랑하며 순종하게 가르쳐라(롬16:26) 143.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가르쳐라. 144. 지혜와 지식의 근본을 가르쳐라. 145. 사람들의 종이 되지 않게 가르쳐라.(고전7:23) 146. 맡은 자들에게 충성을 가르쳐라. 147. 말씀을 혼잡하지 않게 가르쳐라. 148. 성도들이 자신을 위해 살지 않게 가르쳐라. 149. 성도들이 율법이하의 삶을 살지 않게 가르쳐라. 150. 사랑으로 역사하는 신앙을 가르쳐라. 151. 성령을 좇아 행하도록 가르쳐라. 152.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가르쳐라. 153. 주님을 향한 신앙과 사랑을 가르쳐라. 154. 궤술과 간사한 유혹을 이기도록 가르쳐라. 155. 하나님과 예수님을 본받게 가르쳐라 156.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가르쳐라.(엡5:9) 157. 주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게 가르쳐라. 158.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게 가르쳐라 159. 허영과 다툼이 없이 섬기게 가르쳐라 160.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가르쳐라 161. 참되고 경건하고 정결하게 가르쳐라 162. 범사를 주께 하듯 하게 가르쳐라. 163. 하나님의 뜻을 찾아 좇으라 164. 재림 전에 이루어질 일을 가르쳐라. 165.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도록 가르쳐라. 166. 항상 착한 양심을 갖도록 가르쳐라. 167. 감독이나 장로들의 품위를 가르쳐라. 168. 집사들도 단정하도록 가르쳐라. 169. 돈을 사랑하지 않게 가르쳐라. 170.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교회가 되게 한다. 171. 경솔하게 안수를 주거나 받지 않게 가르쳐라. 172. 망령되고 허탄한 변론을 피하게 가르쳐라. 173. 교회 안에서 말다툼을 하지 않게 가르쳐라. 174. 때를 얻든 못 얻든 말씀을 전파하게 가르쳐라. 175. 이단을 조심하도록 가르쳐라. 176. 사람들로 하여금 고집대로 하지 않게 가르쳐라. 177. 어디를 가든지 유익한 사람이 되게 가르쳐라. 178. 타인의 부담을 대신 지는 삶을 가르쳐라. 179. 모이기를 힘쓰도록 가르쳐라. 180.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그리스도를 가르쳐라. 181. 더 좋은 언약의 더 좋은 중보를 가르쳐라. 182.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도록 가르쳐라. 183. 열조의 신앙 모범을 가르쳐라. 184. 형제 사랑과 손님 대접을 가르쳐라. 185. 시험과 유혹과 핍박을 이기도록 가르쳐라. 186. 인내를 온전히 이루도록 가르쳐라. 187. 진리의 도를 온유하게 받도록 가르쳐라. 188.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을 가르쳐라. 189. 사람들을 외모로 취하지 않게 가르쳐라. 190. 선생 된 자들을 더 철저하게 가르쳐라. 191. 독한 시기와 다툼을 멀리하게 가르쳐라. 192. 세상과 벗 되지 않게 가르쳐라. 193. 겸손한 자에게 은혜가 임함을 가르쳐라. 194. 두 마음을 품지 않게 가르쳐라. 195. 말세에 재물을 땅에 쌓지 않게 가르쳐라. 196. 땅에서 사치하고 방탕하지 않게 가르쳐라. 197. 서로 원망하지 않도록 가르쳐라. 198. 시련으로 단련되는 길을 가르쳐라. 199.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게 되게 가르쳐라. 200.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게 가르쳐라. 201.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가르쳐라. 202.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게 가르쳐라. 203. 선행으로 악을 이기도록 가르쳐라. 204. 애매한 고난도 기쁨으로 참도록 가르쳐라 205.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게 가르쳐라. 206. 사랑으로 허다한 죄를 가리게 가르쳐라. 207.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게 가르쳐라. 208. 장로는 주장하지 않게 가르쳐라. 209. 양 무리의 본이 되도록 가르쳐라. 210.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도록 가르쳐라. 211.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게 가르쳐라. 212. 우리를 부르신 주님을 알게 가르쳐라. 213.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게 가르쳐라. 214. 성경을 억지로 풀지 않게 가르쳐라. 215. 성도의 바른 교제를 가르쳐라. 216. 옛 계명과 새 계명도 사랑임을 가르쳐라. 217.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분별하게 가르쳐라. 218.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게 가르쳐라. 219. 영들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하게 가르쳐라. 220.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가르쳐라. 221.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자. 222. 성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가르쳐라. 223. 기록된 말씀을 넘어가지 않게 가르쳐라. 224. 항상 진리 안에서 행하게 가르쳐라. 225. 진리를 위해 함께 수고하게 가르쳐라. 226. 항상 선한 것을 본받게 가르쳐라. 227. 신앙의 도를 위하여 싸우게 가르쳐라. 228. 가만히 교회에 들어오는 이단을 경계하자. 229. 사도들이 남긴 말씀을 철저하게 가르쳐라. 230. 요한 계시록을 온전히 이해하게 가르쳐라. 231. 박해시대 당시의 일을 가르쳐라. 232. 보편적인 교훈을 바르게 가르쳐라. 233. 장차 될 일들을 정확하게 가르쳐라. 234. 재림이 임박한 때의 3대 징조를 가르쳐라. 235. 각 사람이 일한대로 상 주실 것을 가르쳐라. 236. 생명나무 실과에 참여하는 길을 가르쳐라. 237. 사람의 사후 세계를 가르쳐라 238. 술수에 휘둘리지 않게 진리를 가르쳐라 239. 이 책의 예언을 말씀을 지키게 가르쳐라 240. 예언의 말씀에 가감하지 못하게 가르쳐라!
작금의 은사주의 목회자들이 위에 나온 대로 살아왔고, 성도들을 가르쳐왔다면,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무당을 조심하라
대부분의 기도원이나 일부 교회에서 진행되는 은사집회에서 소위 ‘예언’이라는 이름으로 신도들의 집안 대소사 등에 대해 점을 쳐주는 듯한 무속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몇몇 기독교 언론에 무분별하게 소개되거나 전단지 광고를 통해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어 각 교회마다 이에 대한 예방 교육이 시급한 실정이다. “귀하의 문제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확실히 풀어드립니다”, “예언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방향을 제시”, “모든 얽매인 결박이 끊어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축복성회” .최근 교계 언론과 일부 지역에 배포되는 예언 집회 전단지에 쓰인 문구다. 집회에 한 번만이라도 가면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신문 기자가 이들 3인을 찾아가 예언이란 것을 받아보기로 했다. 방식은 똑같다. 어디를 가든 헌금봉투에 돈을 넣고 예언 받기 원하는 내용을 적어서 내기만 하면 예언이란 것을 들을 수 있다. 여동생이 없지만 기자는 ‘여동생 결혼 문제에 대해 예언받기 원한다’며 신청했다. “여동생이 아직 준비가 덜 됐어! 때가 아니야. 여동생이 축복권이 아직 없어. 그것을 누리려면 다음 주 월요일부터 여기 와서 40일 작정 기도해 봐. 결혼상대자인 남자는 괜찮은데…. 그리고 당신 이름은 너무 갑갑해.” B교회의 J 목사가 8월 9일 오전 집회 시간에 신문 기자의 헌금봉투를 들여다보며 해 준 말이다. 여동생이 없으니 성립될 수도 없는 허황된 말이다. 이런 식의 자의적이고, 황당한 예언은 다른 곳에서도 계속됐다. 신문기자는 같은 날 저녁 최근 모 기독교 신문에 ‘신유, 예언, 신앙상담’을 한다며 광고를 낸 P기도원을 찾았다. 밤 10시 집회 시간에 앞서 가진 상담 시간. C 원장은 신문기자가 건넨 헌금 봉투를 보며 예언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외로움이 많아. 그래서 남자를 의지하고 싶어하니 막지 않아도 되겠어.” “여동생을 보지 않고도 어떻게 그렇게 아시죠?” “아, 무당들도 귀신의 영을 받아서 하는데 성령 받은 사람이 그 정도 못해서 되겠어? 결혼은 걱정말고 진행해.” 신문기자는 곧바로 S교회를 향했다. 담임인 J 목사는 기자와 맞대면한 자리에서 돈 봉투를 받고는 예언기도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와리켈레 세이 코레 와라켈레.” J 씨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외친 후 “하나님께서 가타부타 응답이 없다”며 “여동생과 남자의 결혼은 그들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3인이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언을 한다면서도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황당한 말을 각양각색으로 쏟아 낸 것이다.이런 일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기자는 지난 1999년 12월 S·L 씨, 2000년 8월과 9월 사이 ‘사명자 능력 대성회’(L 목사), ‘치유 축복 대성회’ (P 목사)에서도 동일한 기도제목을 내 놓고 소위 예언이라는 것을 받아 보았다. 당시 L (서울 집회)씨는 ‘결혼 찬성’, S 씨 내외와 P 씨는 ‘결혼 반대’라는 상반된 견해를 내놓았다. ‘예언’이 전혀 맞지 않는 허황되고 제멋대로 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현재도 소위 ‘예언 집회’를 한다며 일간지 등에 광고를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예언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에게도 있다. 한 은사집회에서 만난 Y 씨는 “000 목사를 만나면 가정 문제, 학교 붙는 것, 장래 일, 사명이 있는지의 여부 등 모두 정확하게 맞춘다”며 신문기자에게 “찾아가 보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B교회 신도들은 자기네 목회자가 예언을 잘한다며 “다른 곳을 다 다녀 봤지만 이곳 만큼 예언을 잘하는 곳은 없다”고 선전했다. 이렇듯 ‘예언 집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수요’가 계속되는 한 현재 교계에서 일고 있는 예언 행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여기에 나오는 신문사 기자와 같이 한번 해 보시면 아시게 될 것이다.모두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 (신 18:10)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신 18:14)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러한 사람들의 정체는 목사무당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기복 신앙의 천재꾼들인 한국교회가 산상수훈을 복을 만들어내는 복채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번영 신학' 추종자들은 그들의 습관대로 산상수훈도 거꾸로 대입하기 시작했다. 천국을 소유하는 축복을 받으려면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 위로의 축복을 받으려면 애통해야 한다. 땅을 기업으로 받으려면 온유해야 한다. 배부르게 잘 먹고 살려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긍휼히 여김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으려면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천국을 소유하려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야 한다. 결국 복 받기 위해 울어도 보고, 온유한 척하기도 하고, 복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 몇 푼 던져주기도 하고, 복 받기 위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척해보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복 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들이 생각하는 복이란 철저히 이 땅에서 받는 부귀영화를 말한다. 과연 산상수훈이 이런 뜻이었던가? 놀랍게도 이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은혜로 바꾸어놓으신 진정한 축복의 법칙을 다시 율법으로 되돌려놓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산상수훈은 하나님나라 윤리이다. 선행과 노력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은혜의 법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상수훈을 율법으로 되돌려놓고 말았다. 그럼 산상수훈이 가르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애통하는 것 그 자체가 복이며, 슬퍼 눈물 흘리며 평생 가슴앓이를 해도 그것이 하나님나라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그 자체가 복이라는 것이다. 자기 연민이나 억울함, 또는 서러움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지만 하나님나라를 위해 흘러내리는 고통의 눈물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복되다는 것이다. 시대적인 사명 선언문을 목 놓아 선포해도 도리어 사람들로부터 놀림과 핍박만 받아야 했던 선지자들. 그러기에 그토록 눈물만 흘려야 했던 예레미야. 하나님의 마음을 눈물로 대신한 그는 정녕 복 받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울었다고 그가 나중에 참 선지자로 인정받고 물질적 보상까지 받았단 말인가? 산상수훈은 복 받을 조건을 말한 것도 아니고, 복 받을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을 가르친 것도 아니다. 산상수훈은 천국 백성의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것이다. 즉, 천국 백성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난하게 살았더니 드디어 천국을 선물로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그 자체가 천국이요 천국의 삶이라는 말이다. 천국 백성은 온유한 사람들이다. 온유한 사람이 되면 땅을 기업으로 선물로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온유한 사람이 사는 곳은 그 어느 곳이나 하늘의 땅의 기업이다. 천국 백성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 보면 배부르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배가 고파도 목이 말라도 배부른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천국 백성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다.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 천국을 보상으로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천국의 사람이 핍박받는 이유가 천국에 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난, 고통, 애통, 핍박, 주림과 목마름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나타난다면 그것이 바로 가치 있고 복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나라의 복은 패러독스이고 미스테리이다. 이렇게 복된 산상수훈을 번영 복음으로, 긍정의 복음을 장애 복음으로 만들어놓았다. 우리에게 주신 고통과 장애를 믿음으로 극복하면 반드시 건강과 물질적 축복이 따라온다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복음을 훼손한 장애 복음이다. 복을 끌어내기 위해 억지 애통과 가난의 흉내, 위선적 의로움을 실습하는 바리새인처럼 살지 말라고 역설하신 산상수훈이 오늘날 더 심한 신바리새인을 양산해내고 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주님의 은혜요 이익이 되지 않으면 억울한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건 산상수훈의 삶이 아니다. 산상수훈은 소외된 자-배고픈 자, 고통당하는 자, 눈물 흘리는 자, 핍박을 당하는 자-의 이미지를 통해 하늘 나라를 가르치는 비밀인 것을 …… 진위, 선악, 미추, 성속, 경중, 허실, 공사를 분별하지 못하고 따르는 것은 순종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득세하는 것은 분별없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분별없이 맹종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성을 주신 목적은 맹종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분별하라고 주신 것이다. 진위, 선악, 미추, 성속, 경중, 허실, 공사를 분별도 못하고 따르게 되면 악한 사람들을 돕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셨다. 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게 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고 말씀을 하셨다......! (레 10:10)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레 11:47)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왕상 3:9)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 3:11)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욥 34:3)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 가 말을 분별하나니 (겔 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말 3: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 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마 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 14:7)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빌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저는 모든 은사가 중지 되었다는 은사 폐기론자가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현대 방언과 예언에 관해서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읽으시는 중에 감정이 상하실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그러나 끝까지 읽어 보시고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기 체험말고 성경에 의거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01. 언어의 체계가 없는 소리는 방언(方言)이 아닙니다. 02. 문법이 없고 같은 소리가 반복되는 것은 방언이 아닙니다. 03. 참 방언(方言)을 받은 사람이라면 통역(通譯)하기를 기도해 보아야 합니다. 04.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다섯 마디 말로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05.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방언으로 말하면 누가 보아도 미쳤다 할 것입니다. 06. 참 방언이 있다면 반드시 통역도 세우실 것입니다. 07. 통역이 되지 않는 소리는 방언이 아니라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08. 통역이 없는데서 계속하는 방언은 귀신의 방언일 수 있습니다. 09. 몇 시간씩 방언하는 경우는 귀신들의 장난일 수 있다. 10. 참 방언이라도 통역이 있을 때만 해야 합니다. 11. 참 방언이라도 두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서 해야 한다. 12. 통역이 없는 경우나 통역이 안되는 방언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13. 주는 자와 받은 자 외에 알 수 없는 방언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14. 방언으로 메시지가 내려왔다는 말은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15.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방언으로 말을 해야 합니다. 덕을 세우기 위함이기 때문에 16.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속임수입니다. 17. 방언이란 말은 다른 지방, 다른 민족의 언어라는 뜻입니다. 18. 거짓 방언도 있고 귀신의 방언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9. 알 수도 없는 영에게 자신의 영혼을 내어 맡기는 것은 위험합니다.
지금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맹목적으로 무아지경에 빠져서 몇 시간씩 방언기도라고 하고 있는 사람들의 그 이상한 소리들은 전혀 언어도 아니고 방언도 아니고 그냥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맹목적으로 검증도 없이 성령님의 은사일 것이라는 생각은 매우 경솔하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성경에서는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방언으로 기도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던가요? 통역이 있어도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정도가 차례대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하라고 가르치지 않던가요? 오늘날 교회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줄 착각들을 하고 있지만 제가 보는 대로는 성경대로 가르치는 교회도 찾아보기 어렵고 성경대로 순종하는 사람들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어디를 가든지 3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아예 사라졌거나 이상한 모습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다메섹 교회, 안디옥 교회, 가파도기아 교회, 갈라디아 교회, 길리기아 교회, 무시아, 아시아. 비두니아, 브루기아. 이오니아. 루카오니아 교회가 다 사라졌습니다. 유럽을 가 보시게 바랍니다. 이미 문을 닫았거나 잠들어 버렸습니다. 남은 교회가 미국교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중국교회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빠르게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교회를 60년을 다녀도 66권 중에 단 한 권도 바르게 가르치는 교회가 없고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기도 중에 받은 방언이라고 하지만 안수 중에 받은 방언도 다 마친가지입니다. 자기가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는 방언은 얼마든지 가짜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분별없는 목사들이 목회성공을 목적으로 방언이든 예언이든 무슨 신비한 현상이 있어야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을 인식을 하면서 체험이 없는 신앙은 언제나 공허하고 흔들리기 쉽다고 선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얼산의 이천석 목사는 "개도 받는 방언을 집사가 되어서 방언도 못 받아! 이년아 !!" 이천석 목사 처럼 오늘 날도 목사들이 그런식으로 방언을 강조하기 때문에 수 많은 성도들은 방언을 지나칠 정도로 갈구하게 됩니다. 성경말씀 안에서 혹은 설교를 들은 것 가지고는 믿음도 자라지 않고 진리에 서지도 못하고 항상 갈급하고 공허하기 때문에 수많은 성도들이 방언이나 무슨 신비한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들만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갈구하다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면 그 성도는 하나님께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 보시고 방언의 은사를 주셨다고 생각하면서 마치 믿음이 자라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받은 방언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검증을 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지금 한국 땅에서 방언을 검증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이나 제도나 장치가 없습니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우리가 몸 담아 있는 한국교의 모습을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직통계시나 환상을 받으신 분들은 본 자와 주신 자만이 알 수 있는 제 3자가 알 길이 없습니다. 꿈에 혹은 계시로 하나님께 이러한 계시를 받았다. 그 계시로 인해 많은 교주가 탄생했습니다.
여기서 신사도 운동에 대하여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령에 대하여 오해한 사람들의 열매를 보라 !작금의 교회를 섬기는 목사들과 성도들은 성령에 대한 심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위 능력전도나 빈야드 운동 혹은 오순절 교단 사람들이 벌이는 이른바 성령운동을 보면 그들은 성령이 겨우 거짓 방언이나 훈련시키고 성도들을 넘어뜨리시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오늘날 교회에 난무하는 거짓 방언들은 이미 살펴 본대로 결코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악령들이 성령을 가장하여 교회로 침투한 것이 분명한데도 이에 대하여 목사들이나 성도들이 전혀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인도하는 내용을 지켜보면 거기서 일어나는 현상과 그 열매들이 전혀 거룩하지 않는 것들뿐이다.
01. 거짓 방언 연습방언 귀신방언을 부추긴다. 02. 거짓 통역으로 사람들을 속인다. 03. 방언찬양과 성령 춤을 추게 한다. 04. 방언을 문자로 기록한다고 방서로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 .05. 성도들의 길흉(吉凶)을 점치는 거짓 예언을 쏟아낸다. 06. 투시를 한다고 떠들며 남의 허물을 들추어낸다. 07. 성도들을 나오라 하고는 무슨 능력으로 자빠지게 한다. 08. 온 회중을 비인격적(非人格的)으로 웃게 한다. 09. 동물처럼 으르렁 거리며 울부짖게 한다. 10. 성도들을 떼굴떼굴 구르게 한다. 11. 머리나 손을 미친 듯이 뒤흔들게 한다. 12. 질병을 치유한답시고 사람들 쓰러뜨린다. 13. 사람의 목에 개 목줄을 매어서 몰고 다닌다. 14. 예배 중에 건달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15. 아말감을 금이빨로 변화시킨다고 떠들어 댄다. 16. 금가루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떠들어 댄다. 17. 황금의 기름이 내려온다고 선동하고 있다. 18. 손바닥에 예수님처럼 못 자국이 난다고 한다. 19. 자신들이 지금도 직통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20. 환상과 계시를 받았다고 떠들어 댄다. 21. 같은 곡을 변조(變調)하여 빠르게 반복시킨다. 22.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고 선동한다. 23. 귀신들을 쫓는다고 하면서 귀신들을 불러들이고 있다.24. 성경을 가르치면 성령의 불이 꺼진다고 했다.2 5. 찬송가를 하면 영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26. 요엘서를 엉터리로 해석하고 있다. 27. 자신들이 요엘의 군대이며 예수 군대라고 우긴다. 28. 자신들이 거룩한 신부라고 떠들어 댄다. 29. 종말이 임박했다고 하면서 헌금을 강조한다. 30. 영권 물권의 권세를 준다고 떠들어댄다. 31. 지금도 사도가 있고 선지가(예언자) 있다고 우긴다. 32. 릴레이 기도 연속기도 24시간 기도를 강조한다. 33. 영적 포도주에 취해야 한다고 떠들어 댄다. 34. 이스라엘 회복과 기도를 강조한다. 35. 항상 중보기도라는 말을 많이 한다. 36. 성부 성자 하나님은 관심 없고 성령님만 강조한다. 37. 이들은 아무에게나 경솔하게 안수를 한다. 38. 요란스런 CCM.과 드럼소리로 혼을 빼 놓는다. 39. 땅 밟기 기도 같은 미신적인 행위를 강조한다. 40. 에큐메니칼 운동을 지향하고 있다.
자! 이런 정도라면 특별히 영분별의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지금의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분별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만약 어떤 다른 종교에서 이러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저런 작태를 귀신들의 장난이라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른 종교에서 하면 귀신들의 장난이 되고 교회가 하면 성령운동이란 말인가? 저러한 작태는 교회가 하든지 다른 종교가 하든지 상관이 없이 다 귀신들의 장난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저런 목사들은 지금까지 성령운둥이 아니라 악령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능력으로 인격을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생각해 보자!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사람의 인격을 변화시키려고 하셨다면 그렇게 요란스런 굿을 할 것도 없이 하루아침에, 아니 일순간에 세상의 70억 인구를 다 신자로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성경과 역사를 다시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 하신 분이지만 창세 이후로 단 한 번도 어떤 사람의 인격을 기계적으로, 혹은 능력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일을 하시지 않았다. 차라리 세상 사람들이 다 지옥을 간다고 해도 그 사람들을 능력으로 변화시키는 그런 비인격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변화시킨 일은 없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모세 이후로 말라기까지 약 1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예언자를 보내셨다. 엘리야 엘리사부터 시작해서 말라기 선지자까지 많은 예언자를 보내셨지만 어떤 선지자도 능력을 가지고 사람의 인격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시는 그런 경우는 없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도 그랬고 사도들도 그랬으며 속사도 교부들과 모든 시대 모든 사역자들도 능력을 가지고 사람의 인격을 강제로 혹은 비인격적인 방법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존 윔버나 찰스 파르함이나 윌리암 세이무어 혹은 로드니 하워드브라운, 케네스 해긴이나 베니힌을 통해서는 그렇게 하신다고 볼 수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필자는 오랫동안 그들의 행하는 작태를 지켜 보아왔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다방면으로 살펴보았다. 위에서 이들의 열매를 소개한대로 결코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열매를 찾을 수가 없었다.베니힌과 같은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을 향하여 “fire! fire! fire!”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한국의 목사들은 이른 번역하여 “불로! 불로! 불로!”라고 외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운동을 사탄의 불장난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은 다른 불로 장난하는 나답과 아비후 같은 사람들이 지옥의 불장난을 하고 있는데도 분별없는 목사들과 성도들이 죽을 줄도 모르고 불을 보고 덤비는 불나비 같이 분별없이 모여드는 것을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독자들이 출석하는 교회가 이렇게 변질 되었다면 그곳은 참다운 교회라고 할 수가 없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런 곳을 떠나야 할 것이다. [ 롯의 처를 생각하라]
성령운동 운운하는 늦은 비 신학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오순절 신학의 기원은 성경을 그릇 해석한 사람들에 의하여 경솔하게 이른 바 "늦은 비" 교리를 만들어 가르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세, 즉 인류 역사의 종말에 성령의 늦은 비가 내리는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는 이 늦은 비 교리가 터무니 없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전체를 검색 해 보면 "늦은 비"라는 말이 총 7 번 정도 나오고 있지만 그 중에 어느 한 곳도 말세가 되어서 성령의 늦은 비가 내리게 될 것을 예언으로나 약속으로 기록된 경우는 없습니다. (욥 29:23) 그들이 나 바라기를 비 같이 하였으며 입을 벌리기를 ①늦은 비 기다리듯 하였으므로 (잠 16:15)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은택이 ②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 (렘 3:3) 그러므로 단 비가 그쳐졌고 ③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렘 5: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④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⑤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욜 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⑥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약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⑦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오순절 신학의 기초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위에 언급한 성경 구절 중에서 특별히 요엘서 2장 23절을 근거로 말세에 성령의 늦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가르쳐 왔고 그래서 이른 바 성령운동이라는 것을 전개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요엘서 2장 23절에 있는 말씀은 전혀 말세에 성령의 늦은 비가 온다는 예언도 아니고 약속도 아닙니다. 요엘 선지자가 한 말은 요엘이 살았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도 않고 죄악에 빠져서 악을 행할 때 여러 예언자들을 통하여 책망해 오다가 급기야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재앙들은 대게 세 가지 양상으로 임했습니다. 첫째 심한 한재 즉 가뭄이 계속되어 들에는 푸른 풀이 없었고 모든 식물들 즉 곡식과 과일이 결실하지 못하였고 들에는 푸른 풀이 다 말라 버렸습니다. 둘째, 메뚜기 팟종이 늣과 황충이 온 세상에 나머지 푸른 풀과 나무 겁대기까지 다 갉아 먹어서 나무 가지가 다 하얗게 말라가고 있었고 셋째,들에서는 들불이 나서 마른 풀과 나무까지 다 타버렸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나 짐승이 먹을 음식도 음료도 구할 수가 없고 소떼나 양떼가 풀이 없어서 새끼를 낳아도 내어 버릴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뉘우쳐 회개하고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간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엘2:18)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지금이라도 용서하실 것이라는 것과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정상화 되면 사람과 땅 즉 인간 세상과 자연이 다시 관계가 회복되어 밀과 보리씨를 뿌릴 때 내리는 이른 비와 결실기 즉 3월이나 4월에 내리는 늦은 비가 다시 회복되어 타작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포도주와 감람유가 넘쳐 흐르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전혀 인류역사 종말에 영적인 대 부흥이 있을 것을 예언한 것이 아닙니다. 요엘서를 가지고 엉터리 해석 즉 영적인 해석을 한다고하는 분들이 그런 터무니 없는 해석을 하다가 마침내 "늦은비 신학"이라는 이상한 신학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초기에 오순절 교리의 기초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말세"라는 말을 잘 못 해석하여 오해를 초래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말세라는 말씀은 두 가지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말세라는 말은 경우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오해할 수 있는 용어였습니다. 모세가 말하는 "말세"는 유대 역사의 말세를 지칭하고 있고 그 말세는 다시 몇 가지 오해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첫 째,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가는 말세를 말할 수 있고 둘 째, 말라기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셋 째,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는 주후 70년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신 31: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한편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베드로의 설교에 나오는 말세라는 말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일주일만에 성령이 강림하셨던 그 사건으로 성취되었다. (행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말세라는 말에도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말세"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육 체가 되어 세상에 오셨던 것이 말세라는 입장입니다. (고전 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말하는 말세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바울이 세상을 떠난 후부터 박해시대를 말씀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현상학적으로 보면 정말 종국사적인 종말, 즉 말세지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딤후 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末世)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야고보서가 말하는 "말세"라는 말도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약 5: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末世)에 재물을 쌓았도다 베드로가 그의 서신에서 말하는 "말세"도 주님께서 오셨던 때로부터 주님의 재림까지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벧전 1:5) 너희가 말세(末世)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末世)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그러나 베드로의 두 번째 편지에서 말하는 "말세"라는 말은 인류 역사의 종국사적 종말에 있을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벧후 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末世)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말세(The time of the end) 라는 말은 세상 종말의 때를 가리키는 말로써 성서에는 말세에 대해 많은 것이 기록되고 있고,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는데, 따라서 번역도 여러 가지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구약에서 보면 [정한 때의 끝](단 8:17,19), [마지막 때] (단 11:35,40,12:4,9), [말일](호 3:5기타)등이 보여져, 종말론적 최후의 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신약에도 여러 가지의 번역이 있는데, [말세](행2:17,딤후 3:1,약 5:3,벧후 3:3). [마지막 때] (히 1:2,I요 2:18, 유 1:18), [세상 끝](마 24:3기타), [끝](마 24:6)으로서,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승천에서 재림에 이르기까지의 한 세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마 24:11,12에도 계시되어 있는 대로, 이 세계가 점점 진보되어 황금시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는 도리어 큰 환란의 시대가 올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아울러 사도들의 종말관이었습니다 (마 24:21,29,벧후3:7,계 7:14), 특히 마 24장에서는 제자들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하고 두 가지의 것을 예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마 24:3). 그것은 성전 파괴의 일과 세상 끝에 있는 재림(종말)에 관한 것이 그것인데, 예수께서 는 먼저 답으로는 성전 파괴의 일, 그리고 다음으로는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6)고 하시면서 몇 가지의 일어날 말세의 징조를 보여 주셨습니다. 1. 스스로 그리스도라 하는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5). 2. 난리(전쟁)와 난리의 소문(6,7). 3. 처처에 기근 (7). 4. 지진 (7). 5. 교회에 대한 박해 (9). 6. 교회 내에서의 배교와 타락 (10-12). 7. 전 세계에의 복음 전파 (14). 이 중에서 특히 예수께서 경고하고 계시는 것은 [거짓 그리스도] 및 [거짓 선지자]의 미혹입니다. 초대교회에도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하여 미혹하는 자가 있었습니다(살후 2:2). 근대에도,전세기에 죠셉 스미스(Joseph Smith 1805-44)라는 사람이 예언자로서 계시를 받고, [몰몬경]을 쓴 데서, 몰몬교, 즉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라는 이단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1914년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주장에서 [여호와의 증인] (Watch tower)이라는 이단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주목할 것은, 외부에서의 박해와 내부에서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복음 선교는 결코 정지되는 일 없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14)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의 증거를 듣는 때, 끝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 복음선교도 종말의 징조의 하나지만 그렇다고 종말에 무슨 큰 영적이 부흥이 일어나서 온 세상 사람이 다 주님을 믿게 되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말세야말로 [고난의 시대]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딤후 3:1) 그것은 특히 신앙이 동요되는 때, 키질되는 시련의 때로서, 이하의 19종의 악행이 행해지는 때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역사의 흐름이 전 인류의 향상 발전으로 지향해 간다는 그러나 헛된 환상을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계몽되고, 계발되어 가면, 드디어 유토피아적 세계가 실현된다는 이상주의는, 19세기적인 희망적 관측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성서는 인간의 본성을 용서없이 도려 내어, 폭로하고, [말세]에 무엇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말해줍니다. 그것은 전 인류의 배교와 타락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일람표로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자기를 사랑한다(딤후 3:2). 자기애이다. (2) 돈을 사랑한다(2). 탐욕이다. (3) 자긍한다(2). (4) 교만하다(2). (5) 훼방한다(2). (6) 부모를 거역한다(2). (7) 감사치 아니한다(2). (8) 거룩하지 아니하다(2). (9) 부정하다(3). (10) 원통함을 풀지 아니한다(3). (11) 참소한다(3). (12) 절제하지 못한다(3). (13) 사나웁다(3). (14)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한다(3). (15) 배반한다(4). (16) 판다(4). (17) 조급하다(4). (18) 자고한다(4). (19)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다. 이 악덕표, 죄표는, 바울이 다른 곳에도 쓰고 있는 것으로(롬 1:28-31과의 유사점은 크다), 이것을 낭독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에 새기게끔 해주려 한 것입니다(딤전 1:9이하, 롬 1:28이하). 말세가 되어 신앙을 잃고 진리를 거스리는 사람이 많아질 것인데, 그러므로 성서의 진리에 거해야 할 것도 말해 주고 있습니다(딤후 3:16). 이 말세의 때는 이미 시작되어 있고(딤후 3:1,히 1:2,벧전 1:20), 이 때는 고난의 때이며,신앙의 시련을 경험하는 때인데(막 13:11), 그러나 마지막 때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로 되고 있습니다(벧전 1:5,7,20, 벧후 3:10-13). 그 [마지막 날]에는 (요 12:48), 신자는 심판을 넘어, 구원의 소망을 얻는다.[말세]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신 31:29의 [아하리스 야-밈]의 역에 있어서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받을 이스라엘의 재난에 대해 모세의 노래 중에 인용되어진 것으로서 창 49:1,민 24:14에서는 후일로, 신 4:30에서는 끝 날로 번역하고 있는 말입니다. 구약에 있어서는 말세가 거의 [마지막 때]로 번역되어 있고, 신약에서는 헬라어 [하이 에스카타이 헤-메라이] (행 2:17,딤후 3:1,약 5:3,벧후 3:3), [에스카토스 호 크로노스](벧전 1:20), [텔로스](고전 10:11)가 말세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 끝에 보여지는 헬라어 [텔로스]와 마 13:39, 24:3, 28:20의 [세상 끝날]까지로 번역 된 헬라어 명사 순텔레이아 와 다른 점을 든다면, [텔로스]는 궁극적인 최후의 때를 말하는 것이고, [순텔레이아]는 어떤 시간적인 내용을 가진 기간적인 끝의 시대입니다. 성경은 인류 역사의 종국사적 종말이 되면 성령의 늦은 비가 내린다고 말씀신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불법은 성하고 사랑은 식어지고 사람들은 점점 악해지고 죄악이 관영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 기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게 될 것이며 사탄의 능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24: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 24:24)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막 13:22)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눅 6:26)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고후 11:13)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살후 2:9)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계 19:20)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계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앞으로 교회의 부흥이라는 것은 기대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계시록 6장 12절 이하에는 별이 떨어지는 큰 충격에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 천사들로부터 인을 맞게 되는 이야기가 계시록 7장으로 이어지는 데 그 때에 무슨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교회들이 물질주의 향락주의에 잠들어 갈 때 교회를 깨우시기 위하여 취해진 그 엄청난 충격에 기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가 세속에 빠져 잠들었던 영혼들이 회개하고 각성하자마자 곧 바로 이어지는 큰 환난을 인하여 온 세상이 고통과 재앙을 만나게 되는데 그 때의 환란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전무후무한 그야말로 대 환란이 될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마침내 생태계가 삼분지 일이 파괴 되고 전 인류는 거의 절반이나 사망하게 되는 가운데 거짓 선지자 즉 음녀는 온갖 이적과 표적으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가운데 할 수만 있다면 택한 백성까지 미혹하려 합니다. 적그리스도 즉 큰성 바벨론의 괴수 짐승이 땅에 있는 성도들을 혹독하게 박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때에 교회의 영적인 부흥이나 황금시대 같은 것은 호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처음 출반되었던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중동 지방의 기독교는 99 %가 이슬람교로 개종하였고 그들의 회개는 전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절반은 이미 로만 카톨릭, 즉 만국종교 혼합주의에 물들어서 회개는 커녕 오히려 지금 기독교를 변질시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필 화해와 일치를 외치면서 머저리같은 신학자들과 분별력 없는 정치 목사들을 향하여 추파를 던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국교회는 이미 잠들었거나 묻을 닫고 있으며 루터교는 이미 죽은 것이냐 다름이 없습니다. 기독교가 힘을 잃어가는 사회에서 무신론, 유물론, 공산주의, 진화론, 공산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 허무주의, 신비주의, 종교다원주의,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프리메이슨, 뉴 에이지, 다빈치 코드 같은 마귀적인 사상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교회들 중에 몇 개의 교회가 성장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해마다 기독교를 떠나서 다른 종교로 넘어가거나 아예 종교를 떠나서 무신론자로 전락하는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보세요 ! 권위도 없고 품위도 없이 경박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세속주의에 빠져버린 교회에는 경건의 능력은 고사하고 경건의 모양도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의 신학대학에서 자행되는 학설들을 오늘날 교회 성도들이 들으면 아마도 혼절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엉터리 이론이 미국이나 한국 교회를 뒤흔들고 있는데도 목회성공주의에 물들어 있는 목회자들은 분별도 없이 미국을 따라 휘둘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신비주의로 치우친 윌리엄 브래넘(William Branham)이란 사람이 시작하여 지금도 그 누룩이 온 한국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 브래넘과 늦은 비의 새 질서 1. 윌리엄 브래넘(William Branham) 늦은 비와 빈야드/토론토블레싱을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 중의 한 명이 윌리엄 브래넘입니다. 오컬틱(occultic, 신비주의) 치유사역자였던 브래넘은 천사(?)가 밤낮으로 그와 함께 하며, 천사의 도움을 받아 치유사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천사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간증입니다. 바로 그 때, 나는 누군가가 마루를 건너오는 소리를 듣고 놀랐는데, 그 곳에 있을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빛으로부터 나와서 나에게 다가오는 발을 보았는데, 사람이 다가오는 것 같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남자로 보이는 그는 몸무게가 90Kg정도 나가는 사람 같았고, 흰 겉옷을 입고, 부드러운 얼굴로, 턱수염은 없이 짙은 머리가 어깨까지 늘어졌으며, 약간 짙은 혈색의 기분 좋은 표정이었고, 그리고 더 다가오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는 "두려워 말라.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보내졌으며, 너의 이상한 삶과 이해하지 못한 길들은 하나님이 너를 치유의 은사를 받게 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네가 성실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너를 믿게 할 수 있으면, 네 기도를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암조차도"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말을 했는데 여기 모두 적을 수는 없다. 내 손 위의 진동으로부터 병을 알아내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 후로도 몇 번 그를 보았다. 그는 6개월 정도마다 한두번씩 나타나서 나와 얘기했다. 몇번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도 나타났다. 그가 누군지 나는 모른다. 다만 하나님의 메신저라는 것만 안다. 빌 랜들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브래넘의 사역을 정말 놀라웠다. 브래넘의 비디오 테입들을 봤는데 하나는 1950년 중반 순복음경영자연맹 특별집회의 것이다. 브래넘과 대중들은 이적은사집회를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아시죠? 내 주의 천사입니다. 그가 없으면 시작할 수 없습니다." 점차 그는 이런 말은 하곤 했다. "그가 이제 왔습니다" 그러고는 이적은사집회를 시작하고는 했다. 그는 조용히 개인들을 대중 속에서 불러내어 그들 마음 속에 있는 비밀과 그들 몸 속의 병, 의사의 진단, 그들의 아내가 어젯밤에 한 말을 알려주고는 침착하게 치유를 선언했다. 종종 치유가 일어났다! 기실, 브래넘에게 그의 기적들이 성령께서 하시는 것인지 물었을 때, 그는 "아니오. 나의 천사가 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렇게 천사와 함께 놀라운 치유사역을 했던 브래넘은 기실 오컬트의 속박 속에 살았으며, 그의 능력은 마술의 신비적인 힘이었습니다.그는 교리에 있어서 여러가지 이단적 주장을 했습니다. ※ 브래넘은 삼위일체 교리는 마귀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며, 삼위일체 신앙에 따라 세례받은 신자들에게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브래넘은 하나님의 말씀이 다음 세가지 형태로 주어졌다고 믿는다: 12궁도(점성술의 별자리), 이집트의 피라미드, 기록된 말씀.※ "뱀의 씨앗" 교리는 하와가 하나님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한 창세기 3장 13절의 그의 해석을 기초로 하고 있다. 브래넘은 '꾀다(beguiled)'라고 번역된 단어가 '성적으로 유혹하다(seduced sexually)'라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탄이 하와를 성적으로 유혹했고 그 결과가 가인이라고 주장했다! 그 때부터, 브래넘에 따르면, 죄는 대대로 여자를 통해 건네졌다고 한다.※ 브래넘은 또한 일곱교회의 사자들 (요한계시록 2, 3장)은 하나님이 실제로 역사를 통해서 때에 따라 미래를 위한 계시를 주어 이끄시려고 교회에 보낸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브래넘은 자신이 일곱번째,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보내어진 사자라고 가르쳤다. 이런 그의 주장은 심지어 그의 묘비에도 적혀 있다.
브래넘은 그와 함께 사역한 폴 케인, 언 백스터 등을 통해서 캔자스시티 선지자들에게 늦은 비를 계승시켰을 뿐 아니라, '늦은 비의 새 질서'라고 불리는 "임파테이션"의 원조(?)부흥이 캐나다 노스배틀포드에서 일어나는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습니다. 바로 이 노스배틀포드의 늦은 비 부흥으로부터 모든 늦은 비의 교리가 계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그와 토론토 블레싱과의 관계를 살펴 보겠습니다. 토론토 블레싱의 주역 중의 한 명인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은 남아프리카에서 이상한(?) 것을 가지고 왔으며, 또 다른 주역인 존 아놋은 그의 기름부음을 1993년 아르헨티나에서 받았습니다. 그 외에 두 명의 주역이 더 있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브래넘과 함께 사역한 '캔저스시티선지자' 폴 케인(Paul Cain)으로서 그는 윌리엄 브래넘을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나머지 한명은 빈야드 교회연합의 설립자인 존 윔버입니다. 참고로, 타드 벤틀리의 이번 플로리다 부흥을 유치한 교회 목사는 전에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의 부흥집회를 유치한 목사의 아들입니다.) 체 안(안재호)은 타드 벤틀리가 윌리엄 브래넘의 갑절의 영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스스로 '하나님의 바텐더'라고 하는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의 말입니다. " ... 부흥이 오면 다음 세가지가 만나서 나타나는 것을 볼 것이다: (1) 성령 (2) 육체(정욕) (3) 마귀.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무엇이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교회보다는 마귀와 정욕이 나타나는 교회에 있고 싶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 혹시 마귀가 나타나도 걱정하지 말라. 기뻐하라. 어쨌든 뭔가는 일어나지 않았는가!" 2. 늦은 비의 새 질서 (The New Order of the Latter Rain) (다음 내용은 "늦은 비의 유산" 2장 새 일(A New Thing)<<과 3장 선십과 반역(Sonship and Rebellion)<<의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늦은 비의 새 질서"라고 불리는 운동은 1948년 노스배틀포드의 샤론성경학교에서 일어났습니다. 윌리엄 브래넘과 프랭클린 홀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원하며 수업을 중지하고 엄청난 금식과 기도로 부흥을 기다렸습니다. 이들은 "늦은 비" 이론도 성경을 잘 못 이해한데서 비롯되었고 이들이 말하는 새로운 일도 본래는 바벨론에서 탈출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었는데 그런 상식적인 말씀도 분별하지 못하고 그들이 하는 신비주의 운동을 새로운 일이라고 떠들고 일어난 것이다.
<계속해서 부흥의 가운데에서 "정복군대"에 관한 계시가 주어집니다.>이 부흥의 가장 큰 특징이자 이 부흥이 인정받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던 것이 바로 임파테이션(分與, Impartation)입니다. 임파테이션은 토론토 블레싱과 기타 은사갱신운동을 총해서 신사도운동의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봅시다. 하나님의 선민이 된 이스라엘은 이제 “ 네 소유가 되겠고” 선언을 통해 『 제사장 나라 』가 되어 다른 민족들에게 하나님에게 충성을 다하고 사랑하는 백성이 어떠한 축복을 받는지 선한모범을 보여 본보기로 제사장 나라되어 중재자역할을 감당하여 세상 나라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깨닫고 돌아오게 하는 큰 사명을 받은 것이었다.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끔, 하기 위해서 선교,전도하라고 이스라엘 백성을 택한 것이었다. 그것이 선민의 의미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을 잘 듣는다는 의미는 끝까지 얘기를 다 들어보고 이해가 다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으며, 내가 행동으로 그 말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정도가 [말을 듣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평가하실 때, 일단 약속을 일방적으로 먼저 해 주신다. 구약,신약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이자, 인생들을 향해 주신 약속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을 해 주시고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시고 심판하신다. 아담과 하와를 봐라, 선악과 먹지말라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실하게 충성되고 정직하게 이행하는 자에게 믿음이 있기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라고 칭찬하시며 알곡이라 인정해서 천국곳간에 들이신다.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충성되고 신실한 사람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여겨주신다는 것이다. 약속을 안지키는 사람을 보고 불성실한 자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인간도 그렇게 여기듯이 하나님도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약속을 지키는 자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신다는 것이다. 개,돼지,소 등등 동물은 인격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약속같은 것을 아예 하지 않는다. 말을 듣고 지킬 수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약속을 하신다는 것을 깨달아라. 교통법규도 교통약속으로 법규를 자꾸 안지키면 벌금 물다가 나중에 법규를 자꾸 어겨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위반이 쌓이게 되면 크게 사고나서 감옥가는 것인 것처럼 하나님 약속을 번번이 어기면, 지옥행일 수 밖에 없다. 물건같은 경우는, 내가 놓은 자리에서 그것이 스스로 움직이는 법이 없으나, 인간은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 마음대로 조종되어지는 로봇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 솔직히, 한 번 얘기해 보자, [하나님, 십일조나 먹고 떨어져요!~] 이게 우리 마음 아니었던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우대하고 공경하라, 그것이 첫째계명이다. 성경을 알고 믿는다는 의미는 성경 속에 하나님의 심정과 마음을 깨달아 그분의 마음의 대변하는 것이 성경말씀을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말씀을 100독하고 줄줄줄 몇 백구절씩 외운들,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성경을 읽었고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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