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31. 큐티
마태복음 26:1 ~ 13
넘치는 예배
관찰 :
1)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게 될 것이다
- 1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 2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 3절.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 4절.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 5절.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 말세에 될 일들에 대해 소상히 예언해 주신 주님은 드디어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게 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하셨던 것이지만 이제 시한을 다 정해서 말씀하시는 것이기에 충격적인 말씀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이들은 아직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된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고 있습니다.
=>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흉계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의견에 의하면 민란이 날까 염려하면서 이번 유월절에는 하지 말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들의 결정과 다른 하나님의 카이로스에 의해 갸롯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버리는 사건이 터지고, 새벽에 급하게 헤롯과 빌라도를 통하여 예수님을 반란죄로 덮어씌워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이제 곧 일사천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그렇게 될 것을 모르는 채, 자신들이 예수님을 잡고, 죽이고 하는 모든 일에 주도권이 있다고 생각하고 회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이었고, 진짜는 그 잡히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2) 복음이 전파되는 어디서나 기억하고 이야기 해야 하는 일
- 6절.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 7절.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 8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 9절.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고쳐주신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있으신 상황에서 있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 여자”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입니다. 나사로의 누이 동생 마리아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약 삼백 데나리온, 즉 지금으로 치면 3000만원 정도 되는 큰 가치가 있는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 제자들은 지나치다고 항의했습니다. 무슨 의도냐고 되물었습니다. 이들은 이것을 통해 비싼 값에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니었겠느냐고 댕댕거렸습니다.
3) 주님의 반응
- 10절.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 11절.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 12절.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 1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 주님의 반응은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를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예수님 자신에게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서 누누이 이야기해도 알아먹지 못하고 있던 제자들과는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300 데나리온 가치의 향유를 나누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 제자들에 대해서 가난한 자들은 항상 있고, 예수님은 곧 떠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가 낭비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가치를 위한 드림이 되었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제자들도,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도, 그 누구도 예수님의 진짜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여러 번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시 언급을 하시지만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시큰둥하게 반응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차지하실 왕권과 자신들이 자치하게 될 자리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언제든지 죽일 수 있지만 이번 유월절에는 하지 말자고 이미 의견을 정해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고 자신의 가장 귀한 혼인을 위한 준비도구인 향유 옥합을 마리아가 깨뜨림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제자들이 하지 않고, 이 여인이 준비했다는 것을 제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했으나 도리어 역정을 내고, 그 300 데나리온의 가치로 인해서 흥분하고 있습니다.
2) 이 여인이 칭찬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바르게 순종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지나치다 싶은 헌신을 했습니다. 향유는 그렇게 흘러내려지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기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하여, 또 주님의 공동체를 위하여,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드려지는 헌금이나 헌물이 힘에 지나서 지나치게 되는 것이 주님께 소중하게 여겨지는 때가 있습니다. 아무 때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명심해 듣고, 주님의 일을 위하여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드려질 때입니다. 그것은 순간순간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론 평생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가 주님의 것이기에 그 날과 그 때를 알려주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성령의 감동을 입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그렇게 300 데나리온의 가치가 되는 향유를 그 옥합을 깨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흐르게 한 것입니다.
3)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이 여인이 한 행위를 말하여 기억하게 하라. 주님은 이 여인이 본을 보인 “넘치는 예배”로서의 행위를 기뻐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을 칭찬하신 것보다 더 칭찬하셨습니다. 아마 믿음의 행위로 예수님께 최고의 칭찬을 받은 것이 이 여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곧 이 여인, 즉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던 존재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말씀을 정말로 곧이곧대로 듣고, 또 믿고, 자신이 믿는 믿음을 옥합을 깨뜨려 향유 기름을 예수님의 머리로부터 흐르게 하는데 사용한 것입니다. 아까운 향유를 아깝지 않다 여겨 넘치도록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증거하게 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주님의 일에 동참하기 위하여 최선을 넘어서 넘치는 것으로 예배하는 모습을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 번 말씀을 하셨지만 십자가의 죽음으로 죽는 죽음에 대해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워 하셨을 것인데, 이 여인의 반응은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시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믿음을 오늘도 구하고 계십니다.
적용 :
1) 호주 힐송의 찬양사역자 달린 첵은 그녀의 “넘치는 예배”에서 이 본문을 깊이 묵상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집중하여 듣고, 그 깨달은 바를 실천에 옮기는 이러한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그럴 때는 좀 힘에 지나고, 도를 넘치게 하는 것도 주님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2)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것들의 전력(全力)을 다해 주님께 드리는 “넘치는 예배”로서의 기쁨을 누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언제나 소망합니다. 북경에서 미얀마로 갈 때 그러한 기대를 했었는데, 그것이 악한 자의 욕심과 좀 더 사려깊은 진행이 병행되지 못함으로 실망스러울 뿐만 아니라 개탄스러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주님께 “넘치는 예배”로서의 삶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짊어지신 십자가의 무게와 크기와 그로 인한 우리의 유익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서 우리가 무슨 짓을 한다 해도 주님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시야 말로 넘치고 넘치고 넘치고 또 넘치는 사랑으로 나를 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은혜이고, 감사의 제목입니다. 제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다고 해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3) 주님의 마음을 읽고 그렇게 헌신한 마리아와 같이 이 말세에 주님의 마음을 알아 마리아처럼 넘치는 은혜로 헌신이 가능한 신앙을 소유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