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대상 9배로 급증, 과세기준은 23년째 그대로… “개편 시급”
집값 등 자산규모 커지며 세액도 ↑
서울 15억 아파트 상속세 2억 넘어
“집 한채 뿐인 중산층 항의 빗발”
유산취득세 도입-최고세율 인하 등… 개편논의도 ‘부자 감세’ 논란에 답보
지난해 부동산 등을 상속한 사람 중 상속세를 낸 이들의 비율이 5%에 육박하면서 23년째 그대로인 상속세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국회에 출석해 “상속세 체제를 한 번 건드릴 때가 됐다”고 말했던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국회 안에 정부가 안을 만들어서 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여당도 “상속세 개편 논의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그러나 해외에선 1, 2%만 부담하는 상속세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중산층도 낼 수 있는 세금이 된 만큼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15억 아파트 물려줘도 2억 부담
14일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 과세 인원은 1만5760명으로 2002년(1661명)보다 9배 이상으로 늘었다. 전체 피상속인 중 상속세를 낸 이들의 비율은 4.53%였다. 2002년 이 비율은 0.69%로 1%도 되지 않았다. ‘초부자’들만 내던 상속세가 20년 새 중산층도 낼 수 있는 세금이 된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상속세 납부 대상과 세액이 모두 늘어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세무업계에선 중산층의 상속세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세무업계 관계자는 “서울 강남 아파트의 경우 상속세가 수억 원에 이르기 때문에 ‘집 한 채 가진 것뿐인데 왜 상속세까지 내야 하냐’란 문의와 항의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배우자가 없는 피상속인이 15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물려준다고 할 때 상속인들이 내야 하는 상속세는 약 2억3135만 원이다.
현행 상속세법은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인 과세표준을 1억 원 이하부터 30억 원 초과까지 5단계로 설정하고 10∼50%의 세율을 적용한다. 여기에 대기업 최대주주 등이 보유한 주식은 20%가 할증돼 최고세율은 60%다.
상속세는 2000년 최고세율을 5%포인트 높인 뒤로는 큰 변화가 없었다. 가업상속공제를 수차례 확대하고 2015년 인적공제액을 소폭 상향하는 데 그쳤다. 양인준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상속세는 민감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손을 못 대면서 23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며 “해외에선 국민 1∼2% 정도에 매기는 세금이라는 점 등을 감안한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부자 감세’ 논란이 걸림돌
정부는 지난해부터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현재 상속세는 고인이 남긴 전체 재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방식이다. 이를 상속인별로 상속받은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세금을 매기는 기준 자체가 줄어들면서 상속세 부담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정부는 올 7월 내년 세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그 같은 내용의 상속세 개편 방안은 담지 않았다. 상속세 이슈의 폭발력과 야당이 다수석을 차지한 국회 상황을 감안했을 때 통과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적인 이유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
32만5000파운드(약 5억3000만 원)를 초과하는 유산에 40%의 세율을 적용해 온 영국에서는 최근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논의가 본격화했다. 해외에선 상속세가 중산층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과 더불어 자본 유출 우려로 상속세를 완화 혹은 폐지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14개국에서 상속세를 폐지했고, 나머지 24개국도 최고세율이 평균 25% 수준이다. 한국의 최고세율은 60%로 24개국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소득과 자산이 23년 전보다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유산취득세 도입은 물론이고 세율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부자 감세’ 논란은 상속세 개편의 최대 걸림돌로 꼽힌다. 정부도 부의 대물림에 대한 국민 정서적 저항이 크다고 보고 있다. 추 부총리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연말에 상속세 개편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는 이르다”며 “국회나 우리 사회가 준비가 덜 돼 있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상속세 완화 논의가 힘든 것은 부자들이 가진 부의 정당성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유럽을 중심으로 상속세를 완화하는 최근 흐름을 감안하면서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도형 기자, 세종=조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