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반가운 이름을 만났다.
김영철의 철파엠에 "나웅준 클래식 전문가"가 매주 출연하여 클래식을 쉽고 편하게 전파한다는 내용이다.
나웅준...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싶어서 검색창으로 확인해 보았다.
드러난 얼굴을 보니 역시 아는 인물이다.
잘 자란 흔적이 보인다.
온화한 표정이 그러하고 그에 관련된 글자락이 그러하고
클래식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낸 책 "퇴근길 클래식 수업", "이불 속 콘서트" 라는 책의 내용이 그를 대변한다.
고마운 일이다.
어쨋거나 어린 시절, 한 아파트 단지에서 서로 보듬어 주고 보살펴 주면서 네집, 내집 아이들을 가르지 아니하고
정말 잘 지냈던 시절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새삼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한 인물 "나웅준".
그는 우리 아이들의 친구이며 그로인한 기억들은 단지내 정서를 만끽하며 살았던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기억들이다.
그곳을 떠난지 한참이기도 하고 그 사이에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느라 바빠서 미처 되돌아볼 여지도 없었던 기억들.
언덕 위에 자리한 아파트여서 매일 공용버스를 타고 동선을 움직여야 했던 시절.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주민들은 전용버스를 요구하였고 결국엔 관광버스만한 버스를 주민의 이름으로 마련하였다.
그 버스로 인한 아파트 주민이라는 소속감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며 타인은 배제시키던 그런 시절.......
버스비의 행방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버스비를 내지 않고 무료로 다녔던 것 같기도 한 가물가물한 기억.
볼 일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스를 타야했던 것은 아닐 거리였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그 시절엔 그 정도의 거리가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아이들이 학용품이나 숙제를 놓고 가더라도
뛰어갈 생각은 아니하고 버스를 기다리던 학부모 엄마들의 발동동도 기억나고
시장을 가더라도 필수로 타고 다녔던 기억이 새삼스러운 그런 아파트 주민 시절.
그 시절에도 승용차를 보유했던 남편 덕분에 누구보다 쾌적함을 누리며 생활했던 뿌듯함도 간직한 채.
암튼 옹기종기 모인 엄마들은 아이들을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서는 당연히 우리집으로 향하고
일층을 고수하던 쥔장 덕분에 매일 커피를 대접하는 집이 되어버렸다가 언제부턴가는 엄마들의 사랑방이 되어
속내들을 털어놓고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다독이던 시절,
경상도 며느리의 애환은 또다른 재밋거리요 늘 그들에겐 안주발 정도의 즐거움과 눈물이 공존하던 그 시기.
외출을 하게 되면 반드시 서로 돌아가며 챙김을 해주던 그런 시절의 기억들.
와중에 넘쳐나는 책을 빌려주며 많은 주민들이 책 속에 빠져 살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결국 돌려받지 못한 책들도 부지기수...책도둑은 도득이 아니랍시라며 은근히 책도둑을 자청하던 사람들도 많았던 시절.
서로 아이들을 돌보느라 쌀타령하던 별별 사연들이 숨겨져 있던 그 시절에 88올림픽으로 나라 위상은 더욱 높아져 가고
우린 서로 시간을 쪼개가며 운전면허 취득에 목숨 걸고 단체로 운전면허 취득이라는 성과를 내던 그 즈음.
그런 아기자기한 일들로 부터 엄청난 시련의 시간에는 함께 시위하며 데모를 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진출을 마다하지 않았던, 별의별 일들이 수둑하였지만
엄청나게 재미진 시간을 공유하였던 기억들이 기분좋게 들춰진다.
사실 그 시절을 돌아보자면 행복이라는 단어와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어린 자녀들을 빌미로 네집, 내집 가리지 아니하고 혹시 볼 일이 생기면
자신들의 자녀를 마구잡이로 맡기고 다녀와도 제 친자식처럼 돌봄이 가능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
자주 왕래하던 그때의 추억들은 아파트 단지내 놀이터와 뒷산의 숲속길 탐방과
숱하게 많았던 재미진 놀이를 기반으로 한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탐구의 시절이기도 하였으며
별별 놀이감을 공유하고 나누며 아이들과 함께 하였던 신선하고도 특별하였던 많은 놀이들은
그 어디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할 멋진 추억여행의 시발점이긴 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꽁꽁 싸매어져 기억 서랍 속에 담겨진 채 밀봉되어버린 그 시절은 아득히 먼,
한번도 되새김을 해본적 없는 기억 일 뿐인지라 그 서랍을 다시 한번 열어볼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아이들의 유년 시절은 세상이 돌아가는 만큼 저만치 멀어져 가고 다시 되돌아볼 여지를 갖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랬던 기억이 "나웅준"이라는 이름 석자 앞에 불현듯 기억의 소생불을 당기기 시작한다.
하여 갑자기 생각난 이름들이 혹시 핸폰으로 저장된 기록이 있나 살펴보았다.
몇 몇 이름이 존재하긴 한다....그 아이들의 엄마 이름이다.
와중에 오래 전에 통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잔존하는 전번을 보고 반가움에 일단 전화를 해보았다.
여전히 서로 왕래를 하며 기억나눔을 하는 엄마는 건너뛴 채 잊혀진 듯, 잊혀지지 못한 이름에 전화를 걸었다.
*** 엄마?
나 ***엄마예요.
어머나 세상에, 여전히 잘 있었네요.......그렇게 시작된 통화는 끝을 모르고 온갖 기억회로를 작동시키다가
이런 저런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안부를 묻다가 결국엔 우린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다.
하여
딸내미 찬스를 활용하여 인스타그램을 뒤지기 시작했더니만 아, 정말이지 다들 잘 자랐다.
그리고 그 어린이였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가장이 되어있거나
아니면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고 있는 청춘으로 남겨져 있거나
현재의 소용돌이에 부침을 하던,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만의 길을 가던
다들 제 밥그릇은 잘 챙기고 있더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어쩌면 그리도 반갑고 울컥 인 마음이 드는지...
세월값을 이렇게 교환하는가 싶었다.
그 어린 시절의 떡잎들은 역시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음악을 하였던 친구들은 음악의 길로 그림을 하였던 친구들은 여전히 그 길 끝자락에서 제 앞길을 밝히고
그저 공부가 최고였던 친구들은 공부와 맞바꾼 세월만큼의 단단한 직장 생활을 하며 제 입지를 단단히 하고
개구쟁이였던 친구들은 그만큼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던 만큼이나 자유롭게 제 세상을 충전중인 채로 살고 있더라 고 보자면
어린 시절의 환경이나 상황은 여전히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겠다.
그 시절에 우리 아이들이 누리고 향유할 수 있었던 기분좋은 환경과 상황은
결국 제 앞가림과 제 인생을 펼쳐나가는 기본을 충분하게 하였으며
그 여건은 확실한 발 디딤돌이 되어 제 삶자락을 단단하게 하였음을 알고도 남음이었으니
부모나 가정이 주는 안정감은 무시할 수 없는 삶의 길잡이가 됨은 분명하겠다.
문득 "나웅준"이라는 이름의 등장이 새삼스럽게 추억을 향유하는 순간이 되었지만
아주 오래전에 그 아이가 "한예종"에 입학을 하였다는 그 아이 엄마가 들려준 소식에
너무나 좋아하며 반가워 했던 기억도 스멀스멀 등장을 하고 또다시 나웅준 엄마의 소식도 궁금해졌다.
자신의 결혼이야기를 들려주며 마구잡이로 웃던 그녀는 지금쯤 무엇을 하며 어디쯤에 살고 있는지가 궁금한 오늘.
함께 살았던 아파트 단지 내의 주민?들이 그립다.
부녀회 간부 일도 열심히 하였던 쥔장의 입장으로 보아서는 부녀회 소속 그녀들의 행방도 궁금하긴 하다.
어쨋거나 어느 날 갑자기...라는 단어가 어쩌면 그리도 반가운 건지 싶은 오늘 아침.
내내 그들과 어떻게 기억을 되살려 소통할까를 고민하다 그냥 글 한자락 투척해본다.
누군가가 이름 석자에 끌려오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그냥 무한대로 기다려보는 심정.
그렇지만 그 시절의 소중했던 기억과 혼재된 엄청나게 많았던 사건들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건의 중심이 되었던 그들의 향방도 긍금하고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변모되었을지도 긍금한 오늘.
되는대로 전화를 해보고 안부를 물어보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첫댓글 나웅준~! 이름이 참 독특해서도 눈에, 기억이 잘 날듯하네~! 행복했던 시절로의 회귀는 언제나 환영이지요. 때문에 그 기억과 이웃들 소식을 접하고 행복했을듯~!
ㅎㅎㅎㅎ 맞아요.
덕분에 추억 소환 하였다는.
전화 통화도 하고....이름 석자가 주는 힘이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