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 회갑 선물
이 대감은 딸 하나 아들 셋이 있다.
맏딸은 유 대감 댁으로 시집가 조신한 신부로 잘 살고 있고, 맏아들은 천석 꾼 집안 살림을 꾸려가고,
둘째 아들은 급제하여 부사로 봉직하고 있는데, 늦게 본 열여섯 살 막내아들이 이 대감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막내아들 항곤은 어릴 때부터 낮이면 서당을 빼먹고, 못된 친구들과 저자 거리를 배회하고, 밤이면 닭 서리를
도맡아 했다. 머리가 조금 굵어지더니 색주 집에 출입하며 곳간의 곡식도 퍼가고, 제 어미 농 속의 주머니도
뒤지고, 끝내는 이 대감 방에 있는 다락 속의 전대에도 손을 댔다.
봉노 방에서 노름으로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어떤 날은 무슨 시비에 휘말렸는지 멍이 든 눈에 다리를 절면서
들어오기도 했다.
항곤 때문에 이 대감 집은 바람 잘 날이 없다. 꼭두새벽에 왈패들이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노름 판 외상값을 받으러
왔다고 고래 고래 고함 치다가 하인들과 안마당에서 육탄전을 벌이기도 했다. 점잖은 이 대감이 사랑방에서 유림의
문객들과 시를 짓고 있을 때도 색주 집 주모가 찾아와 안마당에서 행패를 부려 이 대감이 얼굴을 못 든 때도 있었다.
이 대감은 회초리로 항곤의 종아리를 때리다가 이제는 몽둥이를 들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가을 밤에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항곤이 대문을 박차고 나가더니 그 후로 행방이 묘연했다.
사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항곤은 돌아오지 않았다. 항곤 어미가 사람을 풀어 백 방으로 찾아봤지만 바람처럼
사라진 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는데도 항곤을 봤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항곤은 어미가 죽었을 때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촛불 아래서 글을 읽던 이 대감은 부인 생각에, 그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막내아들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이 대감의 회갑 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맏아들은 이 대감의 회갑 선물로 여섯 달 전부터 드넓은 뒤뜰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한복판에 섬을 조성해 그 위에 정자를 짓고 있다. 물이 가득한 연못에 비단잉어를 넣고 연꽃도 심고,
정자엔 기와를 이으며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회갑 날 이 대감의 문우들과 유림들은 한결같이 맏아들의 효심을 칭찬하느라 입이 닳더니, 둘째 아들이 털이 반들
거리는 늘씬한 백마를 회갑 선물로 몰고 오자 이번엔 모두 둘째 아들을 치켜세웠다. 유 씨 문중에 시집간 맏딸은
금박에 노리개를 단 화려하기 그지없는 가마를 회갑 선물로 가져왔다. 모두가 입을 벌렸다.
술잔이 돌고 풍악이 울리고 소리 꾼의 창이 이어지며 회갑 연의 흥이 무르익을 때 쯤, 옥색 비단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훤칠한 젊은이 하나가 대문에 들어섰다. 그 뒤에는 곱게 차려 입은 여자 둘이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따라 들어왔다.
젊은이는 성큼 성큼 이 대감 앞으로 가더니 “아버님, 절 받으십시오” 하며 넙죽 절을 했다. 개차반 항곤이 돌아온 것이다.
5년 전 집을 나간 항곤은 한양 큰 노름 판에서 한 밑천 잡고 제물포에서 새우젓 장사로 거상(巨商)이 되었다.
항곤이 “제가 장가를 갔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를 따라온 30대 중반쯤 되는 얌전한 색시가 이 대감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 항곤이 또 다른 여인을 소개했다.
“아버님, 회갑 선물입니다.” 박수 소리가 우레처럼 터지고 그 여인은 꿇어앉아 이 대감에게 술 한잔을 따라 올렸다.
그날 밤 이 대감은 그녀를 끼고 자며 회춘을 했고, 이튿날 이 대감의 맏딸과 세 아들은 그 여인을 어머님이라 불렀다.
<옮긴 글>
첫댓글 감사합니다
종땡이 님! 효자는 결국 셋째 아들 망나니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