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웬걸 하품이 자꾸만 줄을 잇는다. 시험 기간이라 밤을 지샌 것도 아니요, 꿀잼 드라마나 영화를 밤 늦게까지 본 건 더더욱 아니건만……. 이럴 때 만큼은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같이 다니는 껌딱지인 어머니도 보기가 안쓰러웠던지 한 마디 건네신다.
“지민아! 오늘 니 와 카노? 그만큼 잤으면 잘 만큼 잤는 거 아이가?”
잠은 잘수록 더 자고 싶어지는 걸까?
32년 앞서 교통 사고로 죽었을 때 2일도, 20일도 아니고 두 달(55일)이나 신생아처럼 잠만 주무신 적이 있다. 그 때 어머니가 쓴 ‘병상 일기’를 보고 한참을 울먹인다. 어머니 생신 날에 이렇게 적어놓은 걸 보니 나는 참 내 뜻과는 달리 ‘애물단지딸이었네’하고 반성한다.
“지민아 오늘은 엄마의 생일이란다. 작년에 지민이가 예쁜 덧버선과 편지를 엄마에게 주었지. 오늘은 지민이의 병실에서 오늘 ‘엄마’라고 이 두 마디만 불러주면 된단다. 그런데 지민이가 ‘엄’자는 소리내고 ‘마’는 입으로 말했지. 엄마는 또 한번 속으로 울었지? 계속 잠만 주무신다. 별 이상은 없었다.”
신생아처럼 내 잠만 주무시다가 의식이 돌아와서 글자를 알고 말을 처음 하였을 때즈음이었다.
어머니가 신호등 빨간불 파란불 글씨를 썼더니 내가 몇 번을 파란 불을 짚는 순간 어머니는 연달아 울었고 간호사들이 몇 번이고 물었지만 계속 파란불만 짚더라는 내용도 있다.
내가 좀 ‘밉상’이기는 하였나 보다. 겨우 의식을 되찾아 말도 몇 마디 못하는 상황에도 계속 엄마를 걱정하고 엄마가 울면 ‘왜 울어? 울지마’했다고 적혀 있다. 말을 하고부터는 병실에 누구든지 오기만 하면 말이 하고 싶어 하고 싶어 그 사람 민망하게 놓아주지를 않더란다. 두 달동안 하고팠던 말을 다 풀어헤치고 싶어서였을까? 양호 선생님이 병문안 오셔서 내가 선생님 성함을 한 번에 맞히는 바람에 선생님과 어머니, 주위 사람들도 감동 받아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웃김이’라는 내 둘째 별명은 그 상황에도 드러났나 보다. 내가 이야기 할 때마다 주위 사람들 배꼽을 잃어버려 배꼽 찾느라고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는 에피소드, 그리고 병문안 온 사람들에게 놓치지 않고 꼭 하는 말이 있었으니 ‘기도해 달라’고 눈물겹게 부탁을 해대더란다.
또 내 눈에서 눈물이 나던 첫 날에 ‘오늘 엄마는 또 하나를 지민이에게 발견했으니까 반갑고도 슬픈 하루였다’는 대목도 눈에 띄었다.
‘물리 치료 받으러 가는데, 내가 꾀가 늘어 운동을 게을리 하려 해 어머니와 실컷 싸우고는 돌아서서 울며 후회했다’는 구절을 읽을 때는 내 이마에 꿀밤을 연달아 날려주지만 내 가슴이 못내 먹먹하다.
내가 쓴 하루도 있어 옮겨본다.
1998년 12월 8일 금요일
나는 오늘 모든 분들을 위해서(식구, 친척) 빨리 걷고 싶어 죽겠다. 걷는 사람들만 보면 바보같이 어떻게 걷는지 이상할 정도다. 아빠가 오늘 빨리 걸을 수 있게 왼쪽 다리를 좀 주물러 주셔서 진짜로 시원했다. 아빠가 매일 해 주시기로 해서 아빠가 너무 좋았다.
두 달 동안을 잠만 줄곧 주무신 나다. 지겹도록 그렇게 주무셔 놓고도 지금도 잠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친다. 센터에 가서 자전거를 타면서도 어느새 두 눈을 감고 졸기 일쑤다. 고삼 때는 밥 먹을 때는 멀쩡하다가도 책만 들면 얼마나 잠이 쏟아지던지……. 하기야 학창 시절에 방학 때 잠을 된통 한목에 몰아서 주무신다고 학기 중에 잠이 안 오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왜그리 고놈에 눈꺼풀은 무겁던지…….
그냥 두 달 동안의 숙면은 ‘싹’ 잊고 순리대로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