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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안 붙잡혀.”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럼 붙잡힌다는 근거는 있어?”
“육교에 사람이 매달리잖아. 그럼 누군가가 보고 경찰에 신고하겠지.”
“괜찮아, 괜찮대도. 헬멧을 쓰고 있으면 작업하는 사람인 줄 안다고.” 이라부는 남의 이야기하듯 손사랫짓을 했다. “그럼, 페인트와 로프는 우리 병원에 있는 걸 가져갈 테니까, 오늘 밤 열 시에 ‘곤노신사앞’에서 만나.”
“야, 네 맘대로 정하지 마.”
“괜찮다니까 그러네.” 이라부는 다쓰로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그럼 주사 맞아야지. 어이, 마유미짱.” 하면서 간호사를 불렀다.
무뚝뚝한 간호사가 나와서 주사대에 팔을 동여맸다. 미니스커트로 된 가운으로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이 여자는 도대체 뭐지?
허벅지를 다 드러낸 여자를 보고 “아가씨, 간호사 자격증은 있겠지?” 하고 물었더니, 무서운 눈으로 내려다보면서 주삿바늘을 푹 찔러버렸다.
“아야야야!” 다쓰로는 비명을 질렀다. 그건 그렇다 치고, 도대체 나는 왜 이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이라부도 그렇고 간호사도 그렇고, 이 진료실은 마치 관람차 같다. 탔다 하면 한 바퀴 도는 동안 그 페이스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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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게도 저녁 열 시에 다쓰로는 곤노신사앞에 있었다. 청바지에 점퍼, 운동화를 신고. 게다가 눈에 띄지 않으려고 검정 점퍼까지 입었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의지가 약해서 조종을 당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내에게는 동창생의 병원에서 당직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잠시 후 이라부가 포르셰를 타고 나타났다. 위아래가 붙은 작업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유원지에서 보는 동물 인형 같았다.
“이야~, 왠지 가슴이 두근거려.” 이라부는 태평스레 웃으며 구조 헬멧을 다쓰로에게 던졌다.
“이봐, 페인트는 좀 심한 것 같아. 검은색 점착테이프로 하자. 내가 문구점에서 사 왔어.”
다쓰로가 제안했다. 테이프라면 금방 떼어낼 수도 있고 피해를 입히지도 않는다. 혹시나 경찰이 몰려온다 해도 기물손괴죄는 면할 수 있다.
“그건 싫어, 너, 처음부터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어떡하냐?” 이라부가 헬멧을 썼다. 사이즈가 너무 작다 보니 마치 커다람 혹을 붙여놓은 것 같았다. “페인트라야 재밌지. 쉽게 지울 수 없으니까 가치가 있는 거야.”
“가치는 무슨. 이봐 우리….”
“그럼, 시작한다. 로프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