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 만현 큰스님이 출가한 이야기
나는 20대 초반에 조계종으로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승려가 된지 54년쯤 된 것 같습니다.
승려가 되기 전 학창시절에는 순진하게도 공부만 했습니다. 공부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생(生)에 대해 의문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내가 출가하기 전 한 5년 동안은 불교나 기독교, 동서양 철학이나 현대물리학 등을
굉장히 공부했습니다. 어렴풋이나마 의문을 풀어보려고 했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선택을 했습니다.
“나는 한평생 스님이 되어서 깨끗이 살다가 간다. 깨끗이 살 것이다” 하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지난번 고성 약사전 법문 석상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불쌍한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출타를 해서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중에 내렸지요.
기차 정거장에 내리면서 “어머니! 저는 볼 일이 좀 있어서 일을 보고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어머님을 먼저 가시라 하고 나는 그 길로 부산으로 가서 스님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고향에서 명사였습니다. 이름 있는 분이어요.
우리 집안이 부유했습니다.
그래서 부친이 나를 찾으려고... 내가 전에 한번 출가 시도를 했거든요.
스님이 되려고 어느 절에 갔어요. 전라도 어느 절입니다.
산 속의 작고 좋은 절입니다. 사람을 풀어가지고 나를 찾아내었어요.
그래서 이제 방법을 달리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멀리 부산으로 출가를 했습니다.
그렇게 스님이 되었지요. 스님이 된 후 2년 동안은 아무 소식을 안 주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그렇게 독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날 때면 고향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특히 우리 어머니가 너무도 안스럽고 죄송스럽고 보고 싶었습니다.
그때 20대 초반이니까요. 뒷산에 올라가서 제법 울기도 울었지요.
울면서 스스로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저 세상은 있습니다. 내가 볼 때 저 세상은 있습니다.
내가 공부를 이루면, 아버지 어머니! 꼭 천도를 해드릴 것입니다.
못 다한 효도를 할 것입니다. 이거 약속드립니다.”
울면서 무수히 독백을 했습니다.
승려가 되어가지고 그렇게 10년을 공부했지요.
그 당시에는 가장 공부를 많이 했다는 도인스님 밑에서 있었습니다.
통도사 산 속 극락암의 도인 노스님이지요.
여러분 아실런지 모르겠네? 말하면 아실까? 모르시죠?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은 많이 잊혀졌지요.
그 당시는 종단에서 첫째가는 선지식이였습니다.
경봉스님. 아시죠? 그분으로부터 많이 사랑을 받았습니다. 죽어라고 공부했지요.
물론 스님이 되었으니까 나 자신의 제도를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지요.
두 번째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한테 약속한 것을 내가 실천해야 되니까
열심히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러면서 틈이 나면 그런 큰스님을 찾아가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서...
나중에 10년쯤 되어가지고 내가 크게 공부가 되었습니다.
득력(得力-힘을 얻음, 견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번뇌를 조복 받을 수 있는
선정삼매의 힘을 얻었음을 말한다.
큰스님께서 당신의 견성 체험을 종종 ‘득력했다’로 표현한다)을 했습니다.
그래서 큰스님들을 찾아가서 나하고 합작해가지고 천도재를 하면
어머니 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천도되겠지 하고 생각했지요.
참, 두 분이 언제 돌아갔느냐는 말씀이 빠졌네요.
우리 어머니는 그 때 10년쯤 되어서 가셨어요. 아버지가 먼저 가셨고요,
어머니는 1년 뒤 꼭 그날 가셨습니다. 제삿날이 같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가 고향을 가고 싶더라고요. 한번 가고 싶더라고요.
고향에 간 그날이 어머니가 임종하는 날이었습니다. 내 손을 딱~ 잡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산으로 돌아와서 큰스님을 찾아다니면서 많이도 천도재를 해드렸습니다.
많이도 천도재를 해드렸지요.
그리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내가 공부가 좀 되었다고 자신감이 생기니까 불법을 펴야 되겠다.
해가지고 중앙으로 올라왔어요. 총무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종정스님이 청담스님이었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토론도 하고 해서 인정을 받아가지고 전국에서 2명 뽑는
상임포교사에 합격했지요. 상임포교사로 법상에 올라갔습니다.
주장자 짚고 올라가서 법문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2~3년 하다가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햐!~ 나는 완전히 제도된 것이 아니다. 제도된 것이 아니다.
이 참선 가지고는 어렵구나. 참선은 아니다.”
이 깨달음은 나에게 공부의 전환을 가져온 중대한 사건이었어요.
부처님은 계신다는 것을 나는 믿었어요. 부처님은 계신다.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선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이 아니어요.
사실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것은 방편이어요. 나는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부처는 아니다. 상식으로 생각해도, 내가 증험한 바로도 이것은 분명히 아니다.
《법화경》이나《화엄경》을 볼 때 이건 분명히 아니다. 참선 불교 가지고는 안 된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용감하게 염불로 바꿔버렸습니다.
출처:2013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