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런저런 얘기 후~~)
이 교회 담당하시던 목사님이 3월말 또는 4월 초에 끝이나요.
그리고 중국계 미국 목사님이 오실것 같은데,
(형제자매들;오~~~)
다음달부터 take over하시는데,
S의 교회도 엑티비티가 뭐가 많듯이 이 교회도 뭐가 많은지
일단 기존의 시간과 룸도 그대로 하고,
나중에 새로운 분이 와서 변경하더라도 일단은 그대로 하는 걸로 되어 있어요.
룸렌트비만 올랐고.
그리고 3월18일나 이 교회 오픈하우스를 하면서
현재 목사님과 새로오실 목사님이 함께 만나는 시간을 갖는데,
참석하실 분은 오셔도 되어요. 5시반부터 6시까지~
(죠엔;온전한은혜 자매님이 저녁을 안드시고 오셨다고 해서 과자랑 이것저것 먹을걸 챙겨드렸어요~)
치매걸린 사람의 말을 믿으면 안돼요.
먹고나서 잊어버리면 안먹었다고 하니까~
이번주에 제가 놀란게, 와이프가 거짓말을 해요~
나는 다 알고 있는데 핑계를 대는거지~~~~~
잊어버렸는지 시침이 뚝때고 있어요~~
거짓말 귀신이 안나가고 치매와 상관없이 일하는지~~ 사단은 치매가 안생기는지~~
만약 사역을 받으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생겼어요~
치매가 걸리면 다른건 다 잊어버리는데 거짓말하는건 안잊어버리나봐...
우리 와이프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예요~
죽기전에 암이 안걸리면 치매가 걸리는데,
여러분이 치매가 걸리면 여러분 남편이 세끼를 다 챙겨주고 하실수 있어요?
아침에 빵 굽는것을 와이프가 하도록 미션을 주었는데,
몇개를 구워야하는지는 잊어버려서 계속 물어요~
먹을때도 이것먹고 저것먹고 다 챙겨야 하고~~
약도 챙겨줘야 하고~~
설겆이하고 좀 쉬려고 하면 또 점심을 챙겨야 하고~~~~~
(형제자매들;ㅎㅎ~~맞아요~~~)
그래서 세끼를 챙기다보면 하루에 2시간 정도만 있어도 많이 있는거예요.
게다가 산책도 시켜줘야지~~~
그래서 옛날에 시골에서 불때서 밥할때는 정말 하루종일 삼시세끼를 해야지~~~
(포에버;새참도 내가야지~~)
새참도 해야지~~~
하루종일 밥하고 반찬만들고 설겆이 하고 또 밥하고 나물반찬하고 또 설겆이하고~~
그렇게 저녁에 설겆이 끝나고 나면 지쳐서 잠들어버리는거지~~~
(죠엔;중간중간에 애도 봐야지~~~)
애도 봐야지~~~~
이햐~~~
우리집에 뒷마당에 수영장 덮개만드는 기간이 올래걸렸던 이유가 있었어요.
실제로 작업한 시간은 얼마안돼요~~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억지로 억지로 하지~~
게다가 한국서 전화오지 여기서도 전화오지~~~
와이프가 심심하다고 하면 드라이브라도 나갔다 와야하지~~~
화요기도모임에 데리고 가야지~~~
이것저것 정신이 없어~~~ㅎ
그리고 쭈희가 시집을 가면 내가 마음이 좀 부담이 적어질텐데~~
(죠엔;빨리가라~~)
있을때 빨리 가뻐려~~~
(형제자매들;ㅎ~~~)
“걱정하지말고 가자~~”라고 해~~~^^
죠엔자매님이 지난주에 호다에 못 온 이유가,
첫남편이 하도 때려서 비오고 날이 흐리면 몸이 쑤셔서 못온대요~
얼마나 못된짓을 했으면 얻어맞어~~~~~
얼마나 잘못했으면 뼈가 쑤실정도로 얻어맞았어~
운동하던 남편이라 날라다니면서 때렸대~
(형제자매들;ㅎ~~~)
그런 남편도 있어요.
그걸 가만히 내버려뒀어??
(죠엔;그래서 10년만에 이혼했어요.)
얻어맞고 이혼했구나.
에구 억울해서 어떻게 살아~~~~~~~
(죠엔; 더 안맞을려고 10년만에 이혼한 거예요.)
그래도 용서해야지 어떡해..
(죠엔;용서했어요.)
그럼 됐어~!
***창세기에 보면,
‘빛이 있으라 해서 빛이 있고,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라고 했잖아요.(창1;5)
그리고 계속해서 그렇게 나와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8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13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00째날이라~라고 했는데 이게 말이 되어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게 아니예요~~
(죠엔;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했대요~)
그래서 안식일을 지킬때 어떻게 해요?
(디모데;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전까지~)
네. 그래서 고대에는 저녁부터 하루가 시작되는걸로 보았대요.
우리는 아침에 시작해서 해가 지고 밤이 되면 하루가 끝나는걸로 보는데,
창세기에는 반대로 나와 있지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게 영적으로 보면 어떻다고 했어요~?
밤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
밤은 다들 자는 거예요~~~
껌껌해요~~~
그러다가 아침이 되니 밝아져요.
태초에 어땠어요? 왜 빛이 있으라 라고 했어요?
…………
흑암 즉, 껌껌하니까 빛이 있으라 한 거예요.
또 공허하고 혼돈하니까 하나님이 위아래로 나누며 질서정연하게 만드셨어요.
그 전에는 혼돈했어요~~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둠과 빛이 뭔지를 너무 잘알아요~
그런데 맨 처음에 어둠이 알게 뭐예요~~~
빛이 뭔줄 알겠냐구요~~
그렇게 태초처럼 여러분이 혼돈 된 상태에 있을때,
하나님이 궁창아래와 위로 나누시고 물과 땅을 가르시고,
이렇듯 혼돈된 여러분도 나누고 가르셨어요.
우리의 심령이 갈바를 알지못하고 혼돈되고 흑암의 상태였을때~~
귀신들때문에 정신이 없었을때~~~
그러다가 예수님의 빛이 들어오니까 어떻게 되었어요?
오~~~~인생이 이런거네~~~~
하나님이란 분이 진짜로 계시네~~~
뭐가 나뉘고 정리가 되어져요~~~
그래서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어둠이 있는 곳에 ‘빛’만 들어가면 밝아져요.
하나님의 근본적인것은 사랑이라고 하지만, ‘빛’이기도 해요.
우리가 어두웠을때~~~죽겠다고 했을때~~~미워하고 너죽고 나죽자할때~~
그때가 밤인 거예요.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그게 ‘아침’이 되는 거고요.
그런데 우리에게 밤은 쉬게 하시고, 그 다음에 일을 하게 하세요.
하나님은 6일동안 일하시고 그 다음에 쉬셨잖아요~
그 덕분에 우리는 밤이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무엇을 줘요?
사랑하는 자에게 아침을 주는게 아니라 잠을 주세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일하도록 하시고요.
전도한다고 선교하러 가는곳이 어두운곳으로 가는 거잖아요.
하나님은 빛이기 때문에 어둔곳에 가면 그 빛이 비취는 거예요.
우리도 혼돈하고 흑암일때 ‘하나님 빛’이 들어와서 밝아졌어요.
그렇게 밝은 아침이 되니까 그래 이제 일해야지~~하며 일을 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일을 하고 밤이 되니 다시 안식의 잠을 주시는 거고요.
‘밤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 분이 글을 재밌게 쓰셨는데,
여러분이 친구들과 얘기할때 얘기꺼리를 만들어 드리려고 이 사설을 읽어드리는 거예요~
중앙일보에 나온 글인데,,,
이제는 ‘못’을 뺄때, ‘못’을 뺄때래요.
[이제는 ‘못’을 뺼때 by 이 창민 목사 시온연합감리교회; 2월23일2026년 중앙일보]
교회 예배당 뒷벽에 에배 인도자들이 볼 수 있또록 커다란 TV를 달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화면이 작았던 모양이다.
“화면이 너무 작다.” “글씨는 보이는데 악보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아쉬운 소리가 들려 왔다.
교인들이 토요일 아침부터 건설 현장에서나 쓸 법한 비계를 세우고,
사다리를 이리저리 옮기는 큰 수고를 해서 단 TV였지만,
‘잘못 달았다’라는 판정을 받았으니 떼어낼 수 밖에 없었다.
TV를 떼어내면서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던지 구두덜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잘 보이는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예배를 돕는 이들의 눈에는 작게 보인다니 말이다.
결국 다른곳에 달려있던 조금 더 큰 TV를 뗴어다가 다시 달았다.
주일아침, 찬양팀이 예배준비를 위해 예배당에 들어섰다.
‘새로 단 TV를 보면서 이번에는 잘 보인다고 할까? 아니면 여전히 안보인다고 할까?’
긴장된 마음으로 반응을 지켜보는데, 이번에는 모두가 다 잘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안도의 숨이 나왔고,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
“이번에는 잘 달았구나.”
그때 권숙월 시인의 시구절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잘못 한다에서 못을 빼니 잘 한다가 되었다’라는 구절이었다.
시인은 이어서 ‘잘못 먹었다에서 못을 빼면 잘 먹었다 잘못 살았다에서 못을 빼면 잘 살았다’
가 된다면서, ‘못’을 빼면 뜻이 뒤바뀐다고 했다.
문장에서 ‘못’을 빼면 꾸중은 칭찬이 되고, 부정은 긍정이 되는 것처럼,
삶에 박힌 ‘못’을 빼면 인생이 달리 해석된다는 말이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TV도 ‘잘못 달았다’에서 ‘못’하나남 빼면
‘잘 달았다’라는 말이 되는데, 우리는 그 ‘못’하나 빼는데 무척 인색하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잘해 보겠다고 결심한 것들이 여럿 있었다.
운동도 잘하고, 음식도 잘 먹고, 인간관계도 잘 맺고, 일도 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겨우 두 달쯤 지났을 뿐인데 잘한것보다는 잘못한 것이 더 또렷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두 달 사이에도 이토록 잘못한 일이 많은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못했다고 여겨온 일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삶이 어려울 때마다 이민을 잘못 왔다고 생각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사람을 잘못 만났고, 때를 잘못 탔다고 투덜거리다 보니
그 ‘못’들은 후회와 상처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인생에 깊숙이 박혀 버렸다.
녹슬고 구부러져 이제는 쉽게 빠지지도 않는 ‘못’들이 자책과 비교의 잣대가 되어
우리의 인생을 ‘잘못 살았다’라고 단정 짓게 했다.
그렇다고 그 ‘못’들을 우리가 일부러 박은 것이 아니다.
낯선 땅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눈치 보며 버티다 보니 어쩔수 없이 생격난 흔적들이다.
잘살아 보겠다고 선택한 이민자의 삶이 ‘못’하나 때문에
잘못 살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한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이제는 그 ‘못’을 뺼때다.
‘잘못 선택했다’가 아니라 ‘그때는 잘한 선택이었다’로,
‘잘못 살아왔다’가 아니라, ‘힘들었지만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로,
아직도 우리 삶에는 ‘못’을 빼고 나면 남게 될 ‘잘’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
여러분한테 ‘못’뺄게 많이 있어요?
(몇몇; 네~, 몇몇; 아니요~~)
아직도 ‘못’뺄게 많이 있어요?
……………
(형제자매들;아니요~~~~)
이미 예수님, 성령님이 오셔서 다 뽑아버리셨어요.
(몇몇;그럼요~~)
과거 옛날에 잘못했지~~
그런데 죠엔 자매님은 남편을 잘못만났잖아~~~어떻게 두들겨패는 남편을 만나가지고~~~
(죠엔;그래서 잘했잖아요~)
응 지금은 잘햇찌~~~
(형제자매들;ㅎㅎ~~)
ㅎㅎ
우리에게 ‘못’은 각종 종류의 귀신들이에요.
그리고 그 ‘못’은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귀신이었어요.
여러분이 ‘용서’만 하면 웬만하면 다 풀려버린다니까요~~~~
제가 이걸 읽으면서 참 다행이다 싶었던게, 그래도 나는 45살에 성령이 임했었잖아요.
그래서 지금 내가 누군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나 하고 보면 없어요~~~~
섭섭한 사람들?
저 사람들 왜 그랬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이 모르고 그랬지~~
교회에서 윗 사람한테 손가락질 받아보세요,
여러분 같으면 굉장히 섭섭할 거라고~
옛날에 제가 교회에서 기도하고 다닐때 저보고 기도하지말라고 했을때,
제가 하나님께 뭐라고 했다고 했어요?
‘나보고 기도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됐어요~~~이햐~~~~’
기도라곤 생전 못하던 내가,
오히려 내가 기도하고 있음을 꺼구로 확인시켜 주는 셈이 된거잖아요~~~
그래서 성령이 임하고 ‘못’이 다 빠져버렸어요~~~!
***옛날에 여러분한테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으로 알고 계셨지요~?
잘하면 상주시고 잘못하면 벌주시는 하나님~
지금도 하나님이 그렇게 보여요?
(케켁~~~~~~~~~커컥~~ 목에 사래가 걸리심)
(쭈희를 보시며~)
얘~~ 네가 결혼을 안하고 있으니까 내가 사래가 걸렷따~~켁켁~~
(형제자매들; ㅋㅋ~~~~)
켘켘~~~
(목캔디를 드시고 조금 진정 되신 후...)
여러분이 저 처음 봤을때 무섭지 않았어요?
(몇몇;네~~)
제 친구들도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그때는 왜 그렇게 무서웠냐고~~
그런데 사귀고 나니까 사람이 좋지~~~
내가 많이 손해를 봣어~~ㅎ
지금도 무서워요?
(형제자매들;아니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열씸히 했어요.
그런데 멤매를 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하실래요?
누가 간증을 했었나? 얼마전에 봤는데,,
“아, 하나님~~~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고 사역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런 질병이 걸리게 합니까~~~~어떻게 그럴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분이 상처가 너무 커서 교회를 떠날까 생각중이래요~
하나님이 안계시는것 같고,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냐는거죠~~~
자기는 열씸히 했는데 암3,4기에 걸려 살날이 몇달 안남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 사람의 친구라면, 뭐라고 얘기하실래요?
어떤 마음이 들어요?
(죠엔;감사하라~)
그 사람한테 가서 “감사하라~!”그럴거예요?
(죠엔; 아니, 속으로..)
우리 주위에 그런 경우를 자주 보는데, 여러분은 가서 뭐라고 하실 거예요?
저는 어떤 마음이 드냐면,,,
이 집사님이 사역은 열심히는 했는데, 하나님과의 인티머시가 없어요~!
쉽게 말해서 인티머시는 여러분과 나의 관계처럼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아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인티머시도 그래요.
내가 하나님과 너무 잘 아는 사이인데 이런일이 벌어졌어요?
‘이게 뭐지? 무슨뜻이지? 회개할게 있나?’라고 하지,
‘아니, 하나님 나한테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욧!!!’라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예를들어 보이프렌드가 걸프렌드한테 이상한 소리 한다고 소문이 났다면,
소문의 그 사람과 내가 인티머시가 있다면 이렇게 얘기했겠죠~
“아니야~~그럴리 없어~ 그 사람이 그럴리 없어~~
그 사람이 그런게 아니야~~~그럴리가 없어~~~무슨 이유가 있을거야~
너희가 잘못 들었어~~”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것과 너무 다르거든요.
나와 그 사람의 인티머시가 있다면,
“그래서 아니야~~너희들이 얘기하는 그런게 아니야~~~
그 사람의 중심은 그게 아니야.”
나와 하나님과의 인티머시가 있다면,
“아냐, 하나님은 그러실분이 아니야! 무슨 뜻이 있어서겠지~”
가쉽에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사람들은 가쉽에 넘어가기 쉬운데,
가쉽에 나온 사람과 인티머시가 있다면 ‘아니야!’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겉으로는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 안의 본심은 그게 아니라는걸 아는거죠
왜그렇게 얘기할 수 있냐면, 나는 그 사람을 너무 잘 알거든요~~~
나는 하나님을 너무 잘 알거든요~~~~
나는 성령님을 너무 잘알아요~~~
평소에 그런 인티머시가 있었기 때문에 ‘아니야!’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인티머시가 있으면, 어떤일이 닥쳐도
“혹시 내가 뭘 잘못한게 있나~?? 혹시 회개하라는건가~?? 무슨뜻일까??”라고 하지,
“아니~~어떻게 나한테 그러실 수가 있어욧~~!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열씸히 했는데~!!”
라고 하진 않는다는 거죠.
그것은 성령과의 인티머시가 없이 그냥 자기의 의로 열씸히 한 것뿐이에요.
제가 뭐라고 해서 상처받고 한순간 등을 돌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나랑 인티머시가 있었다면, 나의 본심이 어떤줄 충분히 알았을 거예요.
그런데 나와의 인티머시가 없으면, 그냥 혼자 상처받고 혼자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부부관계도 그렇잖아요~
막 소리지르고 어쩌고 해도 그 본심을 알기에 금방 풀어져요.
부부의 인티머시가 있는 거예요.
제 삼자가 보기에 어이구 저렇게 어떻게 사냐~싶지만 부부만의 인티머시가 있어서 괜찮아요.
하나님과의 인티머시도 그래요.
하나님은 나 하나 때문에 정신없어요~~~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니까요~~
평소에 그런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인티머시가 있었다면, 그리고 갑자기 어떤 일이 일어났다면,
“엇, 사단이 했나?”라고 하지
“아~~하나님이 어떻게 나한테 그러실수 있어~~~~!”라고 하지를 않는다니까요~~
요즘 한국에 교회들이 텅텅빈다고 하잖아요~
특히 코비드 팬데믹 이후에 교회가 텅텅빈대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목사님한테 가서 설교를 들어야 배울수 있었어요.
그런데 내 삶을 변화시켜 주는 말씀이 그리 많지가 않아요~
그리 잘 변해지지가 않는다는거죠.
반면 우리 호다에서는 축사사역하고 영의 세계가 열리고 후속 양육하며 어떤 변화가 있어요~
어떤분은 축사사역 끝나고 깨어나서 ‘오~~여기가 어디지~~~’라고 하기도 했었잖아요.
그런 변화~!
그런데 요즘 교회는 그런것을 제시해 주지를 못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 예수님을 떠난게 아니라,
인터넷이 교회를 대신해 버렸어요~.
자기 마음을 변화시키고 채워줄 목사님의 설교를 찾아 듣게 되었다는 거죠.
그러니 교회가 빌 수 밖에~~~
목사님들이 성도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를 못했거든~
그러니까 교회를 떠나지...
옛날에는 교회밖에는 갈때가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해 세계적으로 좋은 말씀들과 간증들을 많이 들을수 있잖아요.
교회에서 간증을 일년에 몇번이나 듣겠어요~ 전도집회에서나 듣지..
오히려 차 타고 다닐때 복음방송에서 나오는 간증들을 더 많이 듣게 되는 세대가 돼버렸지..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이 엄마 아빠가 교회간다고 같이 가질 않아요.
부모님이 집사고 장로라서 내가 교회에 가서 앉아 있어줌으로 해서 권위를 세워드리고~~
저희세대는 그랬어요.
물론 그러면서 중간중간에 은혜도 받았겠지만..
교회는 다녔지만 하나님하고 인티머시가 없었던 거예요.
인티머시가 없다는 것은 성령을 못받았다는 것이고.
성령을 받으면 교회에 가지말라고 해도 교회를 간다니까요~~~
그래서 인티머시는 성령이 내 안에 임하셔야 해요.
그 영이 내 안에 들어와야 하는 거라고요.
남편하고 와이프가 싸워도 칼로 물베기라고 하듯이,
우리 와이프는 싸우다가도 여행가자고 하면 싸움 끝.
김밥부터 싸기 시작하는 거예요~~~ㅎ
내가 우리 와이프를 잘 아니까 싸웠다 싶으면 바로 여행가자는 소리부터 하는거지~
그런게 인티머시예요.
성렁님하고의 인티머시도 그래요~
내 안에 성령님이 들어오시면 그런 인티머시가 생긴다니까요~~~
(형제자매들;네~~~맞아요~~~~)
.
.
.
자, 오늘 간증할 사람이 누구죠?
오, 기도하는자.
기도하는자
(자매님이 직접 써주셔서 약간의 편집 후 올립니다~)
저는 고 권사님의 소개로 호다에 오게 되었습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1부 찬양대에 있었는데,
고 권사님 옆에 앉게 되었고, 그때 권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한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배워서,
결혼을 하면서, 남편이 다니는 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S교회에 주일 예배에는 참석을 못했지만,
집회, 성경 공부, 특새 등에 계속 참석은 했었습니다.
저는 제가 Sunday Christian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기는 했지만 제 삶에는 변화가 없었읍니다.
집회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지만 그때뿐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성경 속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에는 익숙했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정말 살아 계신지,
또 그분이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제 속은 송장 같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늘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열심은 있었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상태였읍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믿음이 자랄수 있다고 하여, 새벽기도도 자주 나갔고,
졸음을 이기기 위해 성경을 베껴 쓰기도 했지만 마음의 허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약 3년 정도 교회를 거의 떠나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주일마다 등산을 하며 산을 보면서 이 산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데
왜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산에 오를 때마다 마음은 더 허탈해졌습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보자는 마음이 생겨
S 교회로 돌아가겠다고 남편에게 말했고, 남편도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미리 교회에 연락해 다락방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고,
주일 예배 후 순장님을 연결해 주시겠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 주일, 예배를 마치고 성전에서 나오는데
거의 15년 만에 고 권사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찬양대 시절, 함께 연습하고 찬양하며 권사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고,
권사님도 저를 무척 반가워 하셨습니다.
제가 다락방 순장님을 만나러 간다고 하자,
믿음이 자라려면 순장을 잘 만나야 한다며 함께 가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순장님을 뵙고는, 교회 뒷마당에 계신 고 집사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1999년경, 고 집사님이 1부 예배 마치고, 찬양팀 앞에 나오셔서,
차를 운전해서 가는데 성령이 임해서 고 집사님 차가 막 덜컹 덜컹 하면서 갔다고 말하셨던게 기억이 됐었읍니다.
저는 결혼 후 남편 교회로 옮겼다가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해
오랫동안 마음에 걸려 있던 질문을 고 집사님에게 드렸습니다.
그때 고 집사님은 천국은 각자 가는 것이라며, 남편과 같은 교회에 다니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한마디가 저를 오랜동안 묶고 있던 마음의 짐을 풀어 주었고,
저는 큰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S교회에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가끔 만나게 되면 사람들이 늘 제게 하는 말이 남편이랑 같이 교회에 다녀야지,
어떻게 따로 다녀 하는 말이였고,
제 자신도 배운대로 못하고 있어서 그게 많이 제 마음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주차장에서 고 권사님은 다락방보다는 호다가 제 신앙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두 시간 넘게 호다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셨고, 저는 바로 호다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호다에 처음 가던 날,
집에서 문제가 생겼지만 (화장실 바닥에서 물이 올라 오더라고요),
이상하리만큼 담담하게 대응하며 영적 방해로 느끼고 집을 나섰던 기억도 있습니다.
저는 11/09/2015에 호다에 처음 왔고, 고 집사님을 통해 네피림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가 네피림임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고,
고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에 동감이 갔읍니다.
그날 예레미야 자매님을 통해 방언을 받았고, 이후 호다에서 축사와 양육을 받으며
과거 (1999년경 기도원 금요 철야기도 중)에 받았던 방언이 귀신 방언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호다 말씀 중 “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저에게 생소했지만,
이전에 다니던 기도모임에 참석하시던 사모님과 대화를 통해
축사가 믿음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권면을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 내외분이 호다에 방문하기도 했으나 이후에는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예레미야 자매님의 권유로 01/07/2016에 새벽별을 받은자 형제님이
약 4시간에 걸쳐 축사를 해 주셨읍니다.
다음 날 제 잘못으로 큰 교통사고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어렴풋이 성전에 가서 기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밤에 성전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읍니다.
고 집사님이 기도라기보다 방언으로 발성 연습을 하라고 해서,
크게 방언으로 1시간 동안 소리 소리 지르다가 왔읍니다.
한동안 매우 큰 소리로 방언이 나왔습니다.
나중에 보니 연습을 시키려고 아마 그렇게 주신것 같았읍니다.
생명수 강가 자매님의 권유로 주일에 일찍 와서 앞자리에 앉아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2016년 1월의 호다 스케치를 읽기 시작했고,
이후2015, 2014, 2013 …순으로 거꾸로 호다 스케치를 읽어 갔고,
성전에 가서 기도하는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그 시기 1년 동안의 일상적인 기억은 거의 없고,
호다 스케치 읽었던 거와 성전에 가서 기도 했던 거만 기억이 납니다.
눈만 뜨면 호다 스케치를 읽고, 너무 좋았던 겁니다.
호다에 오기 약 1년 전, 한 집회에서 “천국 확신”과 “다 용서 하는 것”이
같은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이해되지 않았고,
어떻게 다 용서 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있었는데,
호다에서 나중에 예수님과 성령의 임재로만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축사를 받은 지 1주일 후인 01/14/2016부터 며칠간 호다 성령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서울, 캐나다, 뉴욕 호다에서도 여러분들이 오셨습니다.
그때 저는 성령 세미나에 푹 빠져서, 추웠을 텐데 자켓도 안 입고..
자켓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도 모르고 집에 왔고,
며칠동안 자켓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나중에 자켓을 놓고 왔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다음 날에는 노트에 열심히 필기를 해 놓고는,
그 노트마저 그대로 두고 와서 며칠후에 노트를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뉴욕 호다 분들이 떠나기 전날 밤, 이 건물 2층 방에 모두 모였고,
고 집사님께서 다솜이에게 뉴욕 호다 분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성령님께서 그 곳에 매우 강하게 임재하셨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생생합니다.
당시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 이후로 며칠 동안 멍한 상태로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호다 스케치를 쭉 다 읽으면서, 바보 기도를 하면서, 1년쯤 됐을때,
01/22/2017 (2017년 1월 네째 주일) 예배 중, 찬양 시간에 성령이 강하게 임하셨읍니다.
찬양 인도 하시는 목사님이 다들 이제 일어나세요 하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읍니다.
뭔지는 모르는데 뭔가가 펑 - 하면서 저에게 일어났읍니다.
제 옆에 여호수아 형제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앞을 보면서 찬양을 하고 계셨읍니다.
일어나라고 하시니까 제가 일어났더니,
여호수아 형제님이 저한테 성령님이 인도 하시는 대로 하세요 하면서 저를 앉혀 주셨읍니다
제가 짐승처럼 울어댔읍니다
제가 우는게 아니라 제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우는 거라는 것이 알아졌읍니다
설교 동안에는 울음 소리는 안 나는데 눈물은 계속 두드둑 두두둑 떨어지고...
설교가 끝나고 찬양을 할 때는 또 그렇게 울어대고..
형제님이 예배후에 그게 성령이 임한 거라고 말씀해 주서서 저는 알게 됐읍니다
그 이후로 많은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고, 이전에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제 가슴으로 알게 해 주셨읍니다
또한 호다에 오면서 원인 불명의 위장 불편함과 팔다리 불안 증후군이 사라졌습니다.
20여년 복용하던 갑상선 약도 의사와 상의 후 중단하고 정기 검사 중입니다.
성령을 받는 방법,
그리고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호다에 와서 처음으로 들었었고,
당시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지나고 보니,
그 가르침이 제게 그때 큰 소망과 기쁨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짝짝짝~~~~)
여호수아; 자, 10분 휴식~~
|
|

첫댓글 " 하나님과의 인티머시도 그래요.
하나님은 나 하나 때문에 정신없어요~~~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니까요~~
평소에 그런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인티머시가 있었다면, 그리고 갑자기 어떤 일이 일어났다면,
“엇, 사단이 했나?” 라고 하지
“아~~하나님이 어떻게 나한테 그러실 수 있어~~~~!” 라고 하지를 않는 다니까요~~ " 아멘~~!!
Mother church 시절
하나님과의 인티머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종살이 하는 영이 있어서 감히 어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해야지~~ 했는데
그런데도 갑자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내게 어찌 이러실 수 있나요~~^^ 했지요
영적 전쟁을 모르니 사단이 한 것도 모르고
성령과의 인티머시가 없이 그냥 나의 의로 열씸히 한 것 뿐이에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만 알았기 때문이네요
성령님은 우릴 고아같이 두지 않는다 하셨는데
그저 두리뭉실 배웠어요~~^^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십자가 예수
죄사함 받는 성령만 받았으니
예수님과의 인티머시는 전혀 없었지요
그러니 힘들어 힘들어
사 61장~~ 축사로 성령받으니
삼위의 성령 하나님이 우리집에
장가 드시려고 남자 셋의 모습으로 들어오셨지요~~
사랑의 아버지
엄마같은 성령님
신랑 예수
같이 살아야 알 수 있는 사랑인데
사랑의 아버지를 그간 오해했구나???
엄마같은 성령님이 매일 인도하시며
신랑 예수를 만나고 동행하니
영이 열리어 하늘 보좌에도 올라가고
알아가는 친밀감, 살아나는 믿음
일상의 삶이 영의 세계를 열어 주시니
영 분별하면서 이전과 다른 일상이 되었으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