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99년 전인 오늘(1925년 10월 15일)은 서울 남산 중턱에
43만㎡ㆍ15개 건물로 ‘조선신궁’이 완공된 날인데
신궁은 신사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것입니다.
일제는 10월 13일 경성역에서 조선신궁에 놓을 신체(身體)를
일본으로부터 받아오는 열차가 도착하는 행사를 여는 등
조선신궁 완공에 맞춰 경성의 가장 큰 행사로 화려하게 기획하였기까지 하였지요.
조선신궁은 일 왕가의 시조신인 아마테라스와
1912년에 죽은 명치왕을 모신다는 명목으로 세웠습니다.
▲ 일제가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조선총독부 자료사진)
기존에 남산 마루에 있던 국사당(나라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김과 동시에 개인 사당으로 격하시켜 버렸고,
고종이 만든 조선 첫 국립묘지 격인 장충단(1900년)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일제는 남산을 둘러싸고 공원을 만들어서 조선인들에게 사랑받던 남산을
일본 시조를 받드는 신궁과 일본인들의 집단 거류지로 만들어 버렸지요.
조선신궁 말고도 일제는 남산 주변에 노기신사(1934), 경성호국신사(1943) 등을 세워
조선인에게 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신사(神社)는 일본 신민화정책의 하나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온 나라에 신사를 세워 1945년 8월 광복 당시 조선에는 신궁(神宮) 2곳,
신사(神社) 77곳, 면 단위에 세워진 작은 규모의 신사 1,062곳 등 무려 1,141개에 달했습니다.
99년 전 오늘 일제는 한양의 신성한 목멱산에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위한 조선신궁이 세워졌던 날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