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 큐티
마태복음 26:14 ~ 19
예수님을 얼마에 팔지 흥정하는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들, 그리고 예수님의 유월절 준비
관찰 :
1)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는 가룟 유다
- 14절.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마리아만이 바르게 인식하고 그 장례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회개를 맡은 리더 그룹의 한 인물인 가룟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들에게 파는 배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자 하는 그들의 의도는 자신들의 계획과 의도와는 다르게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예수님은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셨습니다.
- 15절.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팔 때 얼마를 줄 것인지를 묻습니다. 자신의 스승을 팔아넘기는 상황에서 그는 대제사장들과 흥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그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는 그렇게 사탄에 의해 점령당했고, 대제사장들은 그렇게 놀아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향후에 그렇게 후회하는 이유가 됩니다.
- 16절.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랐던 이유를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다음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유력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던가 참 안타깝고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을 위한 섭리라고 하기보다는 가룟 유다 자신의 그릇됨이 맞습니다.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 그의 행태를 볼 때, 돈이 가룟 유다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던 이유였을 것으로 추정하게 됩니다.
=> 대제사장들은 유다의 흥정에 은 삼십으로 반응했습니다. 은 삼십은 당시에 성인 노예에 대한 정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한 노예로 취급하여, 그 가치를 폄훼하겠다는 의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과 메시지들을 모두 노예의 것으로 치부하고자 했습니다. 사탄의 계략입니다. 자신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간 자신의 노예들인 인간들을 풀어주지 않으려는 사탄의 악한 궤계가 이렇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 가룟 유다는 이 후로부터 호시탐탐 예수님을 팔아먹기 위해 기회를 찾고,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러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더불어 올라가셨을 때, 슬그머니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그들의 관원들을 몰고 오게 됩니다. 정말 안타깝고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5) 예수님이 달리시는 무교절의 첫날
- 17절.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18절.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 19절.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 무교절의 첫날, 이날은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날입니다. 이 날 유월절을 위하여 누룩을 넣지 않은 전병을 먹는 예식을 어디서 할지를 묻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예비하심 가운데 마가의 다락방으로 결정하여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향후의 오순절 성령강림까지를 염두에 두시면서 철저하게 십자가와 인류 구원의 사역을 그렇듯이 준비하신 것입니다.
=> 제자들은 순종을 하여 예수님이 시키신 대로 유월절을 예비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렇듯 예수님이 시키시는 대로 일하게 하는 방식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가르침 :
1) 예수 그리스도를 노예의 삯으로 팔아서 십자가에 달아버리면, 그의 사역과 가르침이 뭉개질 것을 기대한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들의 궤계는 성공했는가? 이 모든 아이디어의 시작인 사탄의 이 궤계는 성공했는가? 모두 실패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향해 올곧게 나아가셨습니다. 이들의 행위와 예수님의 의연하심은 그 궤적을 달리하며 대조를 극명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이것을 마리아의 향유 옥합을 깨는 행위와 대비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사탄은 이렇게 몰아붙임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면 자신이 이기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로 몰아버리는 사탄의 악한 궤계는 오히려 자신의 모략인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두 망해버리고 완전한 패배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자신의 지혜가 하나님의 모략을 이긴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야말로 망하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유월절의 양을 잡는 절기를 위하여 자신을 잡는 심정으로 마가의 다락방으로 제자들을 인도하십니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흘리는 일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통한 궁극적 연합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4) 자신의 커다란 다락방을 제공한 마가는 향후 베드로의 제자가 되고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되며, 오순절 성령강림의 큰 은혜를 자신의 집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놀라우신 지혜와 안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적용 :
1) 결국 참된 지혜는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지혜 있는 줄로 여기지만 결국 자신의 무덤을 파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참된 지혜되시는 예수님과 그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세상을 이기는 이김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지혜를 자신의 몸을 죽이심으로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찐입니다. 머리로만, 말로만, 전략으로만, 남을 통해서만 하는 것은 참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나도 ‘말씀을 읽읍시다’라고 외친다면 내가 읽어야 하는 것이고, 기도하자고 하면 나도 기도해야 하는 것이고, 성경을 암송합시다 하면 나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내가 그렇게 살고 있기에 그런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다른 이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사랑하는 목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 예수님의 일을 이루는 것만이 이 땅에서의 가장 고귀하고 의미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에 대해서 지금의 시간 속에서 저 자시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새롭게 정비하게 되길 소원합니다.
3) 가룟 유다가 사탄에 속아 넘어간 그 실패가 가룟 유다의 약점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나의 약점이 사탄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성령님의 은혜가 나와 함께 하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능동이 아닌 수동으로 끌려가는 것임이 나를 안심하게 합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여전히 죄인이고 완악한 존재이지만 주님이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끌고 가심이 참된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