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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안티오커스 3세의 삶이 주는 교훈
단 11:10-19
10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11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12 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13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14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15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16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
17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18 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19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단 11:10-19 / 그러나 그 북쪽 왕의 아들들이 대세를 장악한 뒤에는 전쟁 준비를 하여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아 군대를 조직할 것이다. 그 아들 가운데 하나가 그 군대 총사령관이 되어 군대를 거느리고 물밀듯이 남쪽 나라의 요새 성읍을 공격할 것이다. 11) 일이 이쯤 되면 남쪽 나라 왕은 화가 나서 북쪽 나라 왕을 치러 싸움터로 나갈 것이다. 북쪽 나라 군대의 힘도 막강하였지만 남쪽 나라 왕은 북쪽 나라 군인의 상당수를 포로로 잡아들일 것이다. 12) 그 남쪽 나라 왕은 그렇게 거둔 승리에 기세 등등하여 북쪽 나라 군인들을 수없이 쳐죽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지는 못할 것이다. 13) 북쪽 나라 왕은 퇴각하여 전에 남쪽 나라를 치러 갈 때 동원하였던 군대보다도 더 많은 수의 군인들을 소집하여 조직할 것이다. 틈을 엿보아 적당한 때가 되면 북쪽 나라 왕은 엄청나게 더 많을 뿐 아니라 매우 잘 훈련된 군대를 거느리고 다시 남쪽 나라를 쳐들어갈 것이다. 14) 그때에는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남쪽 나라 왕을 치러 올 것이다. 다니엘아, 네 백성들 가운데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용감하게, 이때가 바로 우리 백성이 해방될 때 아니냐고 하면서 남쪽 나라로 쳐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감행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15) 북쪽 나라 왕은 견고한 요새 성읍을 포위하여 점령할 것이다. 남쪽 나라 군대는 아무런 저항도 못할 것이다. 남쪽 나라 군대 가운데에서 가장 싸움을 잘한다는 특수부대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다. 16) 북쪽 나라 왕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제멋대로 횡포를 부릴 것이다. 이렇듯 그 왕은 약속받은 땅 그 거룩한 나라에 쳐들어와 제멋대로 들쑤셔 놓을 것이다. 17) 북쪽 나라 왕은 남쪽 나라를 완전히 자기 손안에 넣으려고 자기가 거느리고 온 군대를 동원하여 전국토를 토벌하러 나설 것이다. 또한 정략적으로 남쪽 나라 왕에게 자기 딸을 아내로 주어 동맹을 맺으려 할 것이다. 즉 정략 결혼을 하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그의 계획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18) 그후에 북쪽 나라 왕은 바다를 건너 그리스 섬들을 공략하여 여러 곳을 정복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외국 군대장군이 대항하여 그를 격퇴시킬 것이다. 이리하여 그의 등등하던 기세를 꺾고 말 것이다. 19) 북쪽 나라 왕은 기세가 꺾여 자기 나라 요새 성읍으로 퇴각할 것이지만 거기서 격퇴당할 것이다. 이것이 그의 종말이다.
본문은 안티오커스 3세(주전 223-187)의 행적과 30년 동안의 사건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10-12) 셀류쿠스 2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셀류쿠스 3세와 안티오커스 3세입니다. 형인 셀류쿠스 3세는 주전 225년 왕위에 올랐으나 소아시아 전쟁을 치르는 중 동료들에게 살해되었습니다(주전 223년). 이에 형을 대신하여 왕위를 계승한 안티오커스 3세는 즉위한 즉시 남방정책을 펼쳐 애굽의 프톨레미 4세의 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틴을 공격하여 점령하였으며(주전 219년) 더 나아가 애굽 본토를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프톨레미 4세는 전열을 가다듬고 역공을 가하여 라피아전투에서 안티오커스 3세에게 대승을 거두고 팔레스틴과 옛 영토를 되찾았습니다. 프톨레미 4세는 교만하여져서 자신을 신격화하였으며 예루살렘에서는 대제사장 외에 들어갈 수 없는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전을 더럽혔습니다.
북방 왕은... 몇 해 후에... 오리라(13-19) 안티오커스 3세는 프톨레미 4세가 죽고 그의 아들 프톨레미 5세가 7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시리아의 남하를 원치 않는 로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공격하였습니다. 안티오커스는 마케도니아의 빌립과 애굽 분할통치를 약속하며 그와 연합하여 공격하여 스코파스 장군이 이끄는 애굽군을 격파하고, 팔레스틴 지역까지 완전히 정복하였습니다(주전 198년). 안티오커스 3세는 마케도니아의 협공과 시리아파 유대인들의 협조로 쉽게 애굽군을 물리치고 유대 땅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에서 파괴와 살육과 박해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안티오커스 3세는 유대 땅을 점령한 후 애굽 본토를 무력으로 침공하는 대신 거짓 화친 조약을 맺고 자기 딸 클레오파트라를 애굽 왕 프톨레미 5세와 결혼시키고 애굽을 자기 수중에 넣으려는 계략을 짰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었던 그의 딸 클레오파트라가 아버지를 배신하고 오히려 자기 남편 프톨레미 5세로 하여금 로마와 동맹을 맺도록 함으로써 이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안티오커스 3세는 반란군에 의해서 살해되었습니다.
적용: 탐심과 약한 자들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포악성과 자신의 이기심에 근거한 행동은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사람이 세상의 일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지옥의 고통보다는 당장 눈앞의 고통을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가질 것인가에만 관심을 두고 살기 때문에 세상의 조그만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 설 교 >
빛나는 보석과 같은 인생
다니엘 11:10-19
[본문 분해]
1) 안티오쿠스 대제의 남방 정복 실패(11-12)
2) 안티오쿠스 대제의 남방 정복 성공(13-16)
3) 안티오쿠스 대제의 몰락(17-19)
[본문 강해]
다니엘 11장에 나오는 메시지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던 다니엘에게 가브리엘을 통해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읽어보시면 다니엘의 염려와 기도에 대한 실제적인 응답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멀리 있는 이스라엘의 장래와 주변 열강들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다니엘의 기도에 현실적으로 응답하지 않으시고 먼 역사를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현실적인 기도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소원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현실적인 문제에 국한될 때에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소원을 알기 위해 엎드린다면, 우리는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먼저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있는 다른 소원들도 모두 이뤄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읽을 때 우리의 기도 수준이 좀 더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단지 내가 가진 현실적인 급박한 기도제목에 매달리지 않고 정말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붙잡는 인생이 보석과 같이 빛나는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 안티오쿠스 대제의 남방 정복 실패(11-12)
본문 1절에 그 아들들이란 북방 왕 셀류쿠스 카리니쿠스의 두 아들 셀류쿠스 3세 소테르와 안티오쿠스 3세 마그누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처음에 왕위를 물려받은 자는 셀류쿠스 3세 소테르였지만 2년 만에 전쟁 중에 암살당하고 맙니다. 결국 안티오쿠스 3세 마그누스가 왕위를 이어받아 37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며 안티오쿠스 대제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즉위한 즉시 남방 정챙을 펴서 당시 애굽의 톨레미 왕조가 지배하고 있던 팔레스틴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더 나아가 애굽 본토까지 침공하였습니다. 본문에 “그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의 넘침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당시의 전력에 대해 북방 왕은 6만 2천의 보병과 6천의 기병 그리고 102마리의 코끼리로 구성된 군대를 모아 쳐들어왔다고 합니다. 정말 성경의 예언대로 그는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 물의 넘침같이 나아와 팔레스틴을 점령하고, 애굽 본토까지 침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11절에 이때 남방 왕이 크게 분노하여 북방 왕과 더불어 싸워 그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당시 북방 왕이 물의 넘침같이 큰 군대를 이끌고 왔지만 남방 왕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당시 남방 왕의 전력은 7만의 보병과 5천의 기병 그리고 73마리의 코끼리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전력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남방 왕이 크게 승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12절 말씀처럼 남방 왕이 승리한 후에 남방 왕 톨레미 4세의 마음이 극도로 교만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전쟁에서 이겨 다시 팔레스틴 땅을 점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단지 성전을 구경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는 1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 교만하게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려 갑자기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역사가들은 그가 전쟁이 끝나자 본국으로 돌아와서 사치와 안일에 빠져버려 더 무능한 통치자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아 갑자기 죽어버린 것입니다.
본문에 “그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4살 먹은 그의 아들 톨레미 에피파네스가 왕이 됩니다. 결국 이런 사건은 남방 왕의 세력을 약화시켰고, 북방 왕이 애굽을 치러 오기에 가장 적절한 환경을 만들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을 때 우리는 단 11:1의 관점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바로 역사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돕고 누구를 강하게 하셨는가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남방 왕 톨레미 4세는 자기가 승리한 원인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강하게 하심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교만했고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 안에 과감하게 들어가는 교만함을 과시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성공한 인생이 이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성공했기 때문에 교만하고,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망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면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과 강하게 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고 날마다 겸손하게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성공은 우리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성공 때문에 교만한 인간이 된다면 그 성공은 도리어 저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늘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를 바라며 기도해야 되지만, 그것보다 그 성공적인 인생을 겸손히 감당할 수 있는 영성과 겸손이 있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남편과 자녀를 축복할 때에도 축복 그 자체만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축복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겐 축복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성입니다. 교만은 이 관계성을 무너뜨리는 가장 악한 대적입니다. 겸손은 이 관계성을 지속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참된 겸손으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과 성공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안티오쿠스 대제의 남방 정복 성공(13-16)
13절에 결국 북방 왕 안티오쿠스 대제는 전보다 더 많은 대군을 준비해서 애굽을 침공하였습니다. 14절에 그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났다고 했는데 당시 북방 왕은 혼자 애굽을 침공한 것이 아니라 마케도니아의 필립 5세와 동맹을 맺어 침공한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때에 유대인들도 가세를 했는데 “네 백성 중에서도 강포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이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라는 말씀이 그런 의미입니다. 강포한 자라는 말은 오랫동안 애굽의 지배를 받아왔던 유대인들이 시리아와 친 동맹을 맺어서 독립을 도모했던 혁명 도모자들을 의미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친 애굽 주의자들과 친 시리아 주의자들이 서로 경쟁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렇게 함으로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지만 의도한 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본문에 “그들이 도리어 넘어지리라.” 이들의 전략으로 애굽의 지배로부터는 벗어났지만, 그보다 훨씬 더 악날한 지배자인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지배에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대한 이야기는 본문 20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절에 북방 왕은 이제 본격적으로 남방 왕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학자들은 본문에 기록된 견고한 성읍은 “시돈”이었다고 해석합니다. 당시 남방 군대에는 스코파스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안티오쿠스 대제가 이 장군을 이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돈에서의 승리를 통해 완전히 스코파스의 군대를 몰아냅니다.
그 후에 남방 군대는 다른 장군들을 파견하여 공격하였지만 결국 북방 왕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그 후로부터 계속 팔레스틴 지역의 주도권을 북방의 시리아가 장악하게 됩니다. 이걸 통해 16절 말씀처럼 안티오쿠스 대제의 권세는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는 무소불휘의 권세가 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역사를 이처럼 상세하게 미리 예언하셨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오늘 이 다니엘서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이 다니엘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 가운데 모든 것이 정확하게 성취되고 있음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계획들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4절 말씀처럼 그들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고 결국 말씀대로 모든 것이 성취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당시 유대인들은 역사의 드라마 속에서 진정한 주인공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본과 각본을 다 들고 있었으면서도 엑스트라 역할만 하고 끝나버렸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역사의 드라마 속에서 어떤 인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신뢰하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만이 빛나는 보석임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신뢰하며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할 때 우리는 빛나는 보석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철저하게 신뢰할 때 삶에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역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으로 쓰임 받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안티오쿠스 대제의 몰락(17-19)
17절에 “그가 결심하고”라고 시작합니다. 안티오쿠스 대제는 애굽을 점령하려고 하지 않고 남방 왕과 화친을 맺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그는 조만간 로마와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남쪽 나라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자의 딸”을 남방 왕에게 주어 협정을 맺으려 했습니다.
여기 여자의 딸이란 안티오쿠스 대제의 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를 의미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여자의 딸이라고 한 것은 여자들 중에 최고라는 찬사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결혼은 당장 실현되지는 않았는데 당시 남방 왕 톨레미의 나이가 겨우 10살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이렇게 여자의 딸 클레오파트라를 톨레미에게 준 목적은 “그 나라를 패망케 하려 할 것이나”로 나와 있습니다. 그는 그의 딸이 시리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그의 딸을 통한 그의 목적은 본문대로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남편에게 충실한 아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클레오파트라의 배신으로 안티오쿠스 대제는 로마와 전쟁을 할 때 중립을 지켜야 할 애굽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안티오쿠스 대제의 전략은 완전히 실패하게 됩니다.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18절에 그 후에 그가 얼굴을 섬들로 돌이켜 많이 취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안티오쿠스 대제가 에게해의 수많은 섬들과 소아시아 지역을 점령한 사건을 의미합니다. 당시 그에게는 카르타고 출신의 한니발이라는 유명한 장군과 연합하여 헬라 본토까지 침입하였습니다. 이걸 통해 로마는 안티오쿠스 대제를 제지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루시우스 스키피오라는 장군을 보내어 안티오쿠스 대제를 공격합니다. 본문 18절에 “한 대장이 있어서 그의 보이는 수욕을 씻고 그 수욕을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스키피오 장군이 안티오쿠스를 완전히 재패하고 소아시아 전체를 로마가 차지하게 된 사건을 말합니다.
19절 말씀에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이켜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그가 본국으로 귀환했을 때 그가 주피터 신전을 약탈한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는 유럽에서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강요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바닥난 재정을 메꾸기 위해 사원을 약탈하고자 했지만 여기에 격분한 그의 부하들이 그를 넘어뜨려 죽여 버렸다고 합니다. “그가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결국 그는 본국으로 귀환한 뒤 1년도 채 못 되어 생애를 마감하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어린이들이 많이 보는 톰과 제리라는 만화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만화를 보면 단지 톰과 제리만의 싸움이 아니란 걸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톰이 강하고 충분히 제리를 압도할 수 있는 것 같은데, 그 옆에 보면 가끔씩 불독이 나타나서 톰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말씀 “그가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우리에게 아무리 강한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고, 물질이 있더라도 우리의 인생이 이처럼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않는 인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버리실 수 있는 분의 역사가 오늘도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로 다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강하게 하시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역사의 주인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톰이 강해도 불독이 제리를 도우면 톰은 꼼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계획을 좌절시키고 엉망으로 만드시는 걸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 삶을 도우시고 강하게 하시는 삶을 경험하시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무엇이 거쳐 넘어지지 않고 영원히 빛나는 보석과 같은 인생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단 12:3 말씀을 보시면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히 빛나는 보석과 같은 삶을 위해 우리에겐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와 둘째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보이지 않을 것에 연연하게 아등바등 거리며 살겠습니까? 아니면 영원토록 빛나는 보석을 붙잡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를 달라고,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의 환상 2부(단 11장)
이승선
이제 우리 함께 다니엘서 11장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분발하여 큰 군대의 무리를 모을 것이요, 하나가 반드시 와서 흘러넘치며 지나가리라. 그때에 그가 되돌아와서 분발하여 그의 요새에까지 이를 것이요,
이 말씀의 예언처럼 몇 년 뒤에 북쪽 왕국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칼리니쿠스의 두 아들들이 분발하여 큰 군대의 무리를 모았습니다. 그 두 아들은 스크린에 보시는 것처럼 첫째 셀레우코스 케라우노스였고, 둘째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였습니다. 첫째 케라우노스는 소심하고 유약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큰 군대를 잘 지휘하지 못하였고, 장군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반역으로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에 둘째인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가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는데, 다니엘서 11장 10절에서 “하나가 반드시 와서”라고 기록한 것처럼, 처음에는 두 아들들이 분발하여 큰 군대의 무리를 모았지만, 두 아들 중 하나인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가 남쪽 왕국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의 요새까지, 즉 가자 지역에 이르기까지 치고 들어왔습니다. 여기에서 메가스라는 말은 다른 말로 마그누스라고도 하는데, 위대한 대왕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처럼 그는 시리아 왕국을 강력하게 일으켰습니다.
이제 프린트를 한 장 뒤로 넘겨주시고, 우리 함께 다니엘서 11장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남쪽 왕은 성을 내며 흥분하여 앞으로 나아와서 그 곧 북쪽 왕과 싸우리라. 그가 큰 무리를 배치할 터이나 그 무리가 그의 손에 넘어가리라.
남쪽 이집트의 왕, 파라오였던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는 방탕한 왕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가자까지 치고 들어온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를 보고 흥분하며 나와서 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11절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북쪽 왕 메가스가 큰 무리를 배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쪽 왕 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가 예상외의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제 함께 다니엘서 11장 12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그가 그 무리를 제거한 뒤에 그의 마음이 높아져서 그가 수만 명을 넘어뜨릴 터이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강하게 되지는 못하리니
의외의 승리를 거둔 이집트의 필로파토르 왕은 그 승리를 발판으로 더 북쪽으로 치고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방탕하던 성격 탓에, 또 그의 마음이 높아진 탓에 그 정도의 승리로 만족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처럼 그것으로 말미암아 더 강하게 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다음 13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이는 북쪽 왕이 돌아와서 이전보다 더 큰 무리를 배치하고 몇 년 뒤에 반드시 큰 군대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올 것이기 때문이라.
이 예언처럼 북쪽 왕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는 13년의 평화 후에 더 큰 무리를 배치하고 큰 군대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쳐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때 남쪽 왕은 방탕하였던 필로파토르의 아들이자, 로제타석으로 유명한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였습니다. 그는 5살에 왕이 되었고, 아직 왕으로서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습니다. 이 때의 전쟁을 역사기록에서는 제5차 시리아 전쟁이라고 하는데, 많은 준비를 하고 왔던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 왕이 승리하였습니다. 이렇게 북쪽과 남쪽이 치고받는 모든 전쟁의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땅이 계속해서 통로 역할을 하면서 황폐화되었습니다.
이제 14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이 일어나 남쪽 왕을 칠 것이요, 또 네 백성을 강탈한 자들이 자신들을 높여 그 환상을 확증하려 할 터이나 그들이 쓰러지리라.
그때에 이 말씀처럼 많은 사람이 일어나 남쪽 왕을 치고 이집트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또 여기에서 우리는 “네 백성을 강탈한 자들”이라는 표현을 볼 수가 있는데, 이들은 유대인들, 이스라엘을 강탈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표현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가 있는데, 첫 번째는 이 당시 이스라엘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던 남쪽 왕의 세력이 시리아의 의해 쓰러진 것을 의미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자기 민족을 팔아서 시리아 편에 붙으려고 했던 유대인 매국노들이 남쪽 왕을 치고 시리아 왕에게 붙으려했지만 거절당하고 쓰러진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 의미로 해석이 되든지 이 두 가지 일이 모두 역사상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으로 다니엘서 11장 15,1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5 이처럼 북쪽 왕이 와서 작은 산을 만들고 가장 많이 성벽을 두른 도시들을 취하리니 남쪽의 군사들과 그가 택한 백성은 견디지 못하며 그들에게는 견딜 수 있는 어떤 기력도 없으리라.
16 그러나 그를 치려고 오는 자가 자기 뜻대로 행하리니 아무도 그 앞에 서지 못하리라. 또 그가 영화로운 땅에 서리니 그 땅이 그의 손으로 말미암아 소멸되리라.
이 말씀처럼 북쪽 왕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특별히 15절에서는 작은 산을 만들 것이라고 하였는데, 메가스 대왕은 이 말씀처럼 이집트의 스코파스 장군이 지키는 시돈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흙무더기로 산을 쌓았습니다.
또한 16절 말씀처럼 그는 영화로운 땅, 즉 예루살렘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영화로운 땅, 예루살렘을 소멸시키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살짝 겹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다니엘서 11장 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또한 자기 얼굴을 세우고 자기의 온 왕국의 힘을 다하여 들어가며 그와 함께한 곧바른 자들도 들어가리라. 그가 이같이 행하리니 곧 여자들의 딸을 더럽게 하고 그에게 그녀를 주리라. 그러나 그녀가 그의 편에 서지 아니하고 그를 위하지도 아니하리라.
계속해서 밀리던 이집트는 로마에 원군을 요청하였고, 북쪽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도 로마의 중재와 개입으로 인해 주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17절 말씀처럼 행하였는데, 그것은 여자들의 딸이라 표현되고 있는, 자기의 딸 클레오파트라 시라를 남쪽 왕 에피파네스에게 아내로 주고 평화조약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5세 에피파네스는 처음 5살에 왕이 되었고, 시돈이 함락되던 파니움 전투가 있었던 당시에도 여전히 어린 편에 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 클레오파트라 시라 역시 7살로 아주 어렸습니다. 그래서 이 제안은 5년 뒤에 성사되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때에 에피파네스는 대략 15세, 클레오파트라는 12세 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에서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는 17절 말씀처럼, 여자들의 딸을 더럽게 하고 그에게 그녀를 주리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더럽게 하였다는 표현은 남편이 될 에피파네스 편을 들지 말고, 아버지인 자기편을 들도록 배신자가 되도록 정신교육을 하였다, 라는 표현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17절 말씀의 뒷부분을 보시면, 그러나, 라고 시작하면서 그녀가 곧 클레오파트라가 아버지인 메가스 편에 서지 않고 그를 위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티오쿠스는 자기 딸이 이집트로 들어가서 시리아와 이집트가 힘을 합쳐 로마를 칠 것이라고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클레오파트라는 철저히 이집트의 여왕이 되었고, 친 로마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자기 아버지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였을 때에는 남편인 에피파네스와 함께 로마를 직접 방문하여 승리를 경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모든 역사가 성경의 예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다니엘서 11장 1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일 뒤에 그가 자기 얼굴을 돌이켜 섬들을 향하게 하고 많이 취할 터이나 한 통치자가 자기를 위하여 그가 주는 모욕을 그치게 할 것이요, 자기는 모욕을 받지 아니하고 그 모욕을 그에게 돌리리라.
딸에게 배신을 당한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는 홀로 로마의 섬들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사이프러스, 시칠리아, 말타 등 로마의 영토였던 지중해 연안의 섬들을 공략했고 많이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통치자가 자기를 위하여 그가 주는 모욕을 그치게 할 것이라고 예언된 것처럼, 로마의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장군이 등장하였고, 결국 시리아의 메가스 대왕은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로마에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시리아의 군대를 지휘했던 사람은 로마군의 천적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한니발 바르카 장군이었고, 그가 통솔했던 시리아의 군대는 약 7만 명 정도였습니다. 이에 맞섰던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고작 3만의 군사를 가지고 있어서 병력 차이가 2배 이상 되었습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한니발 장군에게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던 장군이었고, 여기 마그네시아 전투에서는 그의 동생인 스키피오 아시아타쿠스 장군이 출전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이 전투에서 로마의 한 통치자, 바로 스키피오 아시아타쿠스 장군이 시리아 군, 한니발 바르카 장군을 격파하면서, 로마는 세계의 정복자로 급부상하게 되었고, 시리아는 몰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패배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잘나가던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는 패배의 결과로 굴욕적인 아파메아 조약을 맺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소아시아 영토를 로마에게 넘기고, 약 450톤에 달하는 은 15,000달란트를 배상금으로 지불하며, 앞으로 12년간 매년 1,000달란트씩을 로마에 조공으로 바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그의 셋째 아들인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인질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다니엘서 11장 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그가 자기 얼굴을 돌이켜 자기 땅의 요새로 향할 터이나 걸려 넘어지고 쓰러져서 보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안티오쿠스 3세 메가스의 최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쟁 패배로 세력이 많이 약해졌고, 또 로마에 보내는 조공으로 계속해서 백성들에게 짐을 지워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반란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메가스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자기 땅의 요새로 향하였지만, 그곳에서 폭도들을 만나게 되었고, 또 한 암살자에 의해 넘어지고 쓰러져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역사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다음으로 다니엘서 11장 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그 왕국의 영화 속에서 조세를 징수하는 자가 그의 영토에서 일어날 터이나 그는 몇 날이 못 되어 분노나 전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멸망하리라.
이 말씀처럼 메가스 대왕 다음으로는 그의 아들 셀레우코스 필로파토르가 왕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로마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조세를 징수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이 때 로마에서는 인질을 교환하였는데, 전에 잡고 있었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를 해방하고, 새로운 왕인 필로파토르의 아들 데메트리오스를 잡아갔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조세를 징수하는 자 필로파토르는 얼마 통치하지 못하고, 몇 날이 못 되어 신하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다니엘서 11장 20절까지, 예언의 말씀에 기록된 그리스 분열 왕조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너무나 놀랍게도 성경의 예언 속에 지중해 역사가 미리 들어가 있고, 또 그것이 정확히 성취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 속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고 있고,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고 있고, 많은 시리아, 이집트, 로마의 장군들, 왕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살펴볼 인물은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라고 하는 자인데, 로마의 인질로 사로잡혔다가 풀려난 사람이고, 그 다음 시리아 왕국을 차지하는 왕이 된 사람입니다. 21절 말씀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비천한 사람이라고 묘사되고 있고, 평화로이 들어와서 아첨하는 말로, 즉 거짓말로 그 왕국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적그리스도의 가장 강력한 예표가 되는 사람이고, 다니엘서 11장 21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면, 성경 말씀 자체에서도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에 대한 예언과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겹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본격적으로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과 끝이 임하는 때에 대하여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정리
이제 프린트의 마지막 5번 박스를 보시면서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어떤 사람의 환상”은 다니엘서 10장에서 도입부를, 11장에서는 해설을, 12장에서는 마무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번 항목처럼 성경의 예언은 미리 기록된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합니다. 역사를 영어로 “History”라고 하는데, 이것을 나누면 “그분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분은 바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며,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나 주가 그것을 말하였으니 그것을 행하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3)번 항목처럼, 우리가 다니엘서 11장의 예언과 성취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똑같은 예언의 말씀과 똑같은 역사적 성취를 보는 가운데, 어떤 사람은 믿음이 더 강하여지고, 또 어떤 사람은 불신이 더 강하여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살리셨던 나사로를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던 동시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나사로까지도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믿음은 외적 증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속 결단과 선택의 문제라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4)번 항목처럼, 다니엘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의 환상”과 계시의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즉 초림 때까지 성취될 예언만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끝이 임하는 때인, 마지막 종말의 때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속히 오시고, 곧 끝이 임할 것입니다.
처음에 읽었던 다니엘서 11장 2절 말씀에서 “이제 내가 진리를 네게 보여 주리라.”라고 기록하고 있는 말씀처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진리를 보여주시고, 참으로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놀랍게 살아있으며, 역사하시는지, 우리에게 더 많이 보여주시기를 원합니다.
계속 되는 남방과 북방의 전쟁
다니엘 11:10-19 / 한양훈 목사
하나님께서 다니엘 선지자에게 가나안 땅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의 나라가 서로 전쟁을 하고 또 밀고 밀리는, 계속 주인이 바뀌는 그런 내용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10장부터 그 내용을 읽고 있지만 사실 무슨 내용인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서양사를 전공하신 분들은 잘 아실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힘듭니다. 이 내용을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다니엘이 환상을 볼 때가 대략 BC 538년 정도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300년 뒤의 일을 누가 어떤 일을 벌이는지, 전쟁에서 몇 만 명이 움직일 것인지 세세하게 알려주시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는 온 역사를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는 것이고 미래에 어떻게 될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네 집 딸을 누구에게 시집보낸다는 것까지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개인사뿐 아니라 교회, 나라 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미래의 일까지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면 모든 고난을 돌파할 수 있고 우리를 평탄한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미래와 장래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알고 계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배우고 믿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니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는 애굽 왕 프톨레미 Ⅲ세인 유에르게테스에게 철저히 패한 시리아 왕 셀류쿠스 Ⅱ세 칼리니쿠스로,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셀류쿠스 Ⅲ세(BC 225-223)이고 동생은 안티오쿠스 Ⅲ세(BC 233-187)입니다. 형 셀류쿠스 Ⅲ세는 소아시아 전쟁을 치루는 도중 동료에게 살해당했습니다(BC 223). 대신 왕위에 오른 동생 안티오쿠스 Ⅲ세는 즉위한 즉시 남방정책을 펼쳐서 애굽의 프톨레미 Ⅳ세 필로파토르의 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틴을 공격하여 점령하였으며(BC 219), 더 나아가 애굽 본토를 공격하였습니다. 안티오쿠스 Ⅲ는 전쟁을 잘 준비해서 애굽으로 쳐들어갔는데 가나안 땅과 애굽의 본토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11절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갑자기 안티오쿠스 Ⅲ가 쳐들어왔으니 애굽의 프톨레미 Ⅳ세(BC 222-203)는 화가 나서 전열을 가다듬고 역공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군대가 만난 곳은 가사 근방이었는데 가사는 이스라엘 역사에도 등장하지만 블레셋사람이 나중에 살았던 곳으로 블레셋의 5대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당시 가사에 살던 사람들은 애굽의 편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가 라피아 전투인데 여기서 애굽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BC 217). 그리고 가나안 땅을 포함하여 빼앗겼던 땅을 되찾았습니다. 당시 가나안 땅은 큰 나라가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 나라가 완전히 망하고 난 뒤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블레셋도 그때에는 힘이 없었고 가사가 도시국가로서 존재하였는데 애굽의 편이었던 것입니다.
12절 “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이제 애굽의 프톨레미 Ⅳ는 큰 무리를 사로잡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북방의 군대도 물리치고 군인들도 사로잡고 가사도 점령했으며 아마도 예루살렘도 점령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북방 왕과 남방 왕의 전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예언을 주시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두 나라 사이의 전쟁으로 인해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이 어떤 때는 북방에 속하여지고 어떤 때는 남방에 속하여지며 주인이 바꿔지는 모습을 알려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나라가 이렇게 세상 나라들의 손에 붙들려 흔들리는 모습이 정말 비참합니다. 하나님이 그 나라에서 떠나시니 몇 십 년 주기로 북방 왕, 남방 왕 등 힘이 센 나라들이 주인 노릇을 하며 그들의 손에 유린당하며 비참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이 가르쳐주시기 위해 예언을 주신 것입니다.
남방 왕이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스스로 높아져서” 즉 단순히 자랑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을 신격화한 것을 가리킵니다. 엄청난 군대를 물리치고 가사라는 큰 도시의 사람들도 숭배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마음이 높아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항상 두려워하면서 조심하면서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 프톨레미 Ⅳ는 함부로 행동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보다 자신이 높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성전을 더럽혔습니다(polybius).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탈취한 악행입니다. 지금도 이기는 사람이 큰소리치는 것이고 진 사람은 말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2300년 전 고대사회에서 승자는 패자의 목숨과 재산을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프톨레미 Ⅳ가 성전에서 함부로 한 것은 자신을 신과 같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성전을 지키지 못했고 자신이 이긴 것은 이스라엘을 지키는 신보다 자신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긴 사람이 더 강한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시리아편을 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다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믿음이 약해지고 하나님이 교회에서 떠나시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권력이 교회에 들어와 망가지게 하더라도 어쩔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보호하시고 주장하시는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중학교 3학년 때 평창동에서 살았는데 집 앞에 있던 교회가 망하고 그 자리에 호텔이 들어섰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며 그 일을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면 어떻게 교회가 망하고 호텔이 될 수 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통해 이 일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성전이든 교회이든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라고, 성전이라고 다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귀한 성전이라도 버리시고 떠나실 수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을 잃어버리고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떠나시고 아무리 오래되고 훌륭하게 건축한 교회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고 성도들이 믿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가 예루살렘 성전 단 하나 뿐이었는데도 버리셨는데 지금은 우리나라에만 5만개의 교회가 있는데 하나님이 모든 교회를 다 귀하게 여기시며 지키시겠습니까. 단 하나뿐이라도 버리시니 5만개의 반이라도 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구해야 합니다.
13절 “북방 왕은 돌아가서……거느리고 오리라” 북방 왕이 가사에서 패배하였습니다. 패전 후 시리아로 돌아온 안티오쿠스 Ⅲ세는 망신을 당했는데 주변국을 정복하면서 권세를 회복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파르티아, 박트리아 등 주변국을 공격하여 명성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군대의 수가 늘어나고 훈련이 잘 되어 강해지니 잃었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시시탐탐 공격의 때를 노렸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나라가 약해지면 주변에서 공격이 들어왔습니다. 사람도 몸이 약해지면 병균이 공격을 합니다. 또 사람이 영적으로 약해지면 마귀가 공격하고 교회도 약해지면 마귀가 공격하므로 강해져야 합니다.
안티오쿠스 Ⅲ세는 준비를 잘하고 공격의 때를 노렸는데 프톨레미 Ⅳ세가 원인 모를 병으로 갑자기 죽고 아들 프톨레미 Ⅴ세(BC 205-180)가 7살의 나이로 왕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의 왕이 힘이 없으므로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Ⅲ세는 이 때라 생각하고 시리아의 남하를 원하지 않는 로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공격하였습니다. 안티오쿠스 Ⅲ세는 마케도니아의 필립과 애굽 분할의 동맹을 맺고 공격하여 스코파스 장군이 이끄는 애굽 군을 격파하고 BC 198년 팔레스틴 지역까지 완전히 정복하였습니다. 이때 유다를 잘 대해주었습니다. 애굽의 입장에서는 계속된 난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14절 “그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프톨레미 Ⅴ세 때에 나라가 약해지므로 주변 나라들에게 소문이 났습니다. 나이가 어린 왕이니 귀족들에게 휘둘려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하므로 주변 나라들은 애굽에게서 이익을 얻고자 쳐들어갔습니다.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여기서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합니다. 애굽의 프톨레미 Ⅴ세가 여러 나라들의 공격으로 어려운 중에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네 백성”은 다니엘에게 하신 말씀이니 유대 민족을 가리킵니다. 애굽이 유대민족을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포악한 자”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지 않고 세상 권력과 손잡고 세상 권력에게 기대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자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시리아의 세력을 빌어 유대의 독립을 꾀한 어리석은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이방이 하는 것처럼 각종 술수와 군사력으로 독립하려는 시도입니다.
당시 유대는 시리아와 애굽의 교차된 정복으로 양쪽으로 민심이 나뉘어있었습니다. 시리아와 애굽이 쳐들어오며 계속된 압제와 죽음, 재산의 수탈을 당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시리아가 우세할 때 시리아에 붙었던 사람들은 애굽이 쳐들어왔을 때 다 죽고 재산을 잃고, 또 애굽이 우세하니 애굽에게 붙었던 사람들은 시리아가 쳐들어왔을 때 다 죽고 재산을 잃는 일을 계속 반복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시리아파와 애굽파로 나뉘어서 계속 죽어나가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25 당시 북한군이 내려올 때 북한 편을 들었다가 남한 군인에게 죽고, 남한 군인에게 잡혀 정보를 알렸다가 또 북한 군인에게 죽는 비참한 일이 많이 벌어졌던 상황과 비슷합니다. 북한 군인들만 민간인들을 많이 죽인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미군들을 욕합니다. 미군은 북한에 융단폭격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마지막에 북한에서 도망 온 저희 어머님이 그 말을 해주셨습니다. 군인이 있는 초소가 아닌 민간인 동네에 많은 폭탄을 떨어뜨려 당시에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고 합니다. 결국 북한 군인들이 남한 내려와 많은 사람이 죽고 또 남한 군인과 미국 군인들이 북한의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전쟁은 이렇게 억울한 죽음을 낳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이 떠나신 후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포악한 사람이 일어나 독립을 꿈꾸었는데 아마도 시리아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시리아의 편을 들고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반대로 배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안티오쿠스 Ⅲ세가 승리하자 안티오커스 Ⅲ세의 후계자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살육정치, 종교박해를 경험하였습니다. “걸려 넘어지리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15절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여기의 북방 왕은 계속해서 안티오쿠스 Ⅲ세입니다. 그는 애굽과의 전쟁에서 패한 적도 있지만 결국 동맹국 마케도니아의 협공과 시리아파 유대인의 협조로 쉽게 애굽 군을 물리치고 애굽과 유대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16절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문제는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Ⅲ세가 가나안 땅에 와서 자기 마음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땅을 이방 나라의 왕이 통치한다는 것은 큰 수치입니다.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다니엘이 왜 이런 예언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화로운 땅”은 기쁨의 땅, 광채가 나는 땅, 아름다운 땅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곧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대 백성이 소유한 땅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악독한 전쟁광이 하나님의 성전 예루살렘에 오고 하나님의 땅인 이스라엘 땅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는 안티오쿠스 Ⅲ세가 BC 198년에 유대 땅을 점령한 사건을 300여 년 전 다니엘이 예언한 것입니다. “그 손에 멸망이 있으리라”한 것은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Keil). 결국 유다 사회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재물을 수탈당하고 난자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멸망은 아닙니다.
17절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그는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Ⅲ세입니다. 그는 여러 나라와 동맹을 맺어 세력을 넓히려고 하였습니다. “그와 화친할 것이요” 이는 애굽 왕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안티오쿠스 Ⅲ세는 애굽 왕 프톨레미 Ⅴ세와 화친하였습니다.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리고 자기 딸을 애굽의 7살에 왕이 된 프톨레미 Ⅴ세에게 주었는데 이 딸이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원조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순수 애굽 출신이 아닙니다. 시리아의 공주인데 애굽으로 시집보낸 것입니다. 안티오쿠스 Ⅲ가 그렇게 한 이유는 애굽을 수중에 넣으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자기 딸을 시집보냈으니 애굽의 왕이 사위가 되었으므로 마음대로 애굽 통치에 대해 간섭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남편 프톨레미 Ⅴ세가 로마와 동맹을 맺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안티오쿠스 3세의 계략은 완전히 빚나갔습니다.
18절 “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딸의 배반으로 애굽 정복에 실패한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Ⅲ세는 군사를 돌려 바닷가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여기 바닷가는 지중해 섬들과 서쪽 해안지대, 지금의 터키와 그리스 지역입니다. 이제 남방을 정복하는 것을 포기하고 터키와 그리스를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몇몇 섬과 마케도니아의 동북부의 트라키아를 비롯해 해안지방을 점령하였습니다.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이때 로마의 장군 루키우스 스키피오가 BC 190년 안티오쿠스 Ⅲ세와 막네시아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려 승리하므로 안티오쿠스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전쟁에서는 항상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9절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이제 서쪽 해안가를 노려서 승리도 하였지만 결국에는 전쟁에서 피하여 본국으로 돌아온 안티오쿠스 Ⅲ는 떨어진 명예를 되찾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토 주변을 장악하기 위해 영토 내의 여러 성읍에 재화를 모아서 군비를 재 확충하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전투들을 벌입니다. 그러나 아래 장수들이 전쟁을 좋아하고 죽어나가는 백성들을 돌보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결국 클레오파트라의 친정아버지인 안티오쿠스 Ⅲ는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므로 그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 모든 사건을 들은 다니엘은 너무나 놀랐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니엘이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기절을 할 정도로 놀랐던 것은 이런 수많은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앞으로 펼쳐질 것이고 유대 나라의 비참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관심은 유대 나라가 회복되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미래에는 시리아와 애굽 사이에 껴서 날마다 죽어나가고 재산을 빼앗기고 완전히 농락당하는 예언을 들었으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당할 힘이 없어 일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관심이 많고 예언을 들어보고 싶어 합니다. 또 미래에는 잘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미래에 이스라엘이 유린당할 것을 알고 충격을 받은 것처럼 그런 충격적인 예언을 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실을 알고도 잘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정말 좋은 미래를 보여주시는 예언을 주셨다면 좋겠지만 사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알려주셨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으시고 내 손을 붙잡아주신다면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에 힘쓰는 사람은 미래가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를 불안해할 필요 없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예언의 능력이 있어도 예언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은 성도들이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지에만 신경 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좋은 축복된 미래를 예언으로 받았다 할지라도 오늘 내가 주님께 충성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오늘 기도하고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하면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으로 살면 됩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과 관계가 좋지만 미래 이스라엘의 망하는 예언을 주셨습니다. 다니엘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해도 전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고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다니엘의 금식하며 기도한 모든 것과는 상관없이 모든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믿음대로 살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됩니다. 본문을 보면서 비참한 꼴을 당하는 이스라엘처럼 되지 않도록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힘써서 나와 우리 자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미래가 펼쳐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