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덕이라는 것은
人德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쓰이는 말은
"남의 도움을 받는 복이없다"라는 말이다.
정확히는 '人福'이라는 말로 썼어야 되지만,
'人福'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 글에서 논하는 '人德'이란 말은
정확히는 '人福'이라고 쓰여야 되는 말이지만
'人德'이라고 쓰여지는 것을 밝히고 시작하려한다.
나도 내 위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어서인지 모르지만
나라는 사람이 참 인덕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다보면 스스로가 인덕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나도 남들의 눈으로 보면 인덕이 있어 보이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인덕 타령은 "잘 되는 것은 내 탓, 못되는 것은 조상 탓"이라는 인간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세상과 주변을 원망하는 마음의 독백이고.
그래서 옛 성현들이 "남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하셨는 지 모른다.
그렇다 내가 남을 열심히 공경하고 내 것을 열심히 주다 보면
내게 어느 정도 대우가 돌아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내가 노력한 댓가를 받는 것이지
인덕이 있어서 받는 대우는 아닐 것이다.
나는 지긋지긋하도록 그 인덕이라는 것에 외면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다보니
인덕이라는 것에 나름대로의 정리된 생각을 가지고 산다.
내가 베풀어 준 일이 없는데도
남들이 도와주고 인정을 해주는 것이 바로 '인덕'이라는 것이다.
처음 만나서 전혀 베풀어 준 것이 없는 상대가
내 머릿속에는 그만한 지식이 없는데도,
인텔리로 대우를 해주며,
나는 전혀 그만한 것을 할 수 없는 능력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것쯤은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해고 주는 것.
그것이 인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반대로 나는 처음 보는 저 사람에게
아무런 해로운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이 내가 하는 일마다 방해를 하며,
내 머릿속엔 그런 것쯤은 기본일 정도로 가지고 있는 지식인데도
나를 무식한 사람의 범주에 줄을 세우며,
아무나 할 수 없는 능력을 보여 주어도
"그런 것쯤은 나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하면서 인정해 주지 않을뿐더러
기껏해야 '그것 하나만은 잘하더라."고 폄하는 대우를 해온다면,
인덕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국 베푼 것 없이도 받는 대우와 이익을 누리는 사람을
인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고,
'인덕'이란 것은 사람 관계에서 공짜로 얻어지는 '대우와 이익'이란 것이
그 괴물스러운 말에 대한 내 정립된 견해이다.
'인간관계에서 공짜로 얻는 이익과 대우' 그것 중에
다른 것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은 '부모와의 만남'일 수밖에 없다.
누구든 부자 부모에게서 미남미녀로 태어 날것을 원하는 것이니,
내 의지와는 관계 없는 손익 중에서 그것 보다 더 큰 '인덕'은 없을 테지만
그것은 부모의 의지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인덕이 아닌 '천덕'의 범위에 속하는 것이라고 간주하고,
'인덕'으로 논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대우는 '인덕'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면 거의 같은 조건을 갖춘 것이니
인덕을 논할 대상으로 더 없이 적당하다.
지금처럼 자식을 하나만 낳는 시대가 아니고,
딸은 시집보내면 그만이라는 고정적인 사고가 보편적인 지난 시대에서,
둘 이상의 아들에 대한 부모의 생각은
순전히 그 부모에게 태어난 사람의 인덕일 수밖에 없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그 말보다 더 한 말 장난은 없다.
알 두개를 낳는 어떤 종류의 펭귄들은 둘 중의 하나만 기르려고 작정하고
다른 하나는 보험정도로 간주하며 먹이를 주는 것부터 다르게 준다고 하듯이
인간의 부모도 아들 중의 하나는 집안을 이어 갈 자식으로 점찍고
나머지는 그저 보험으로 길렀던 것이다.
거기서 부모에게 점을 찍하고 안 찍히는 것은 순전히 인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거기서 선택되는 자식은 부모의 북돋음을 받으며 자라며,
그렇지 않은 자식과 의 차이는 곡식을 기를 때,
풀을 뽑아주고 비료를 주면서 가꾸어 주는 곡식과 그렇지 않은 곡식의 차이를 보인다.
옛날이야기 중에 어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찾으면서
동네사람에게 "그년 어디 갔어?'하고 물었더니
동네사람이 "그년 저기로 가던데"하고 대답을 하더라는 것처럼
부모가 대우하는 자식은 그 대우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대우를 받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고 학교에 가면 본격적인 인덕이 시작된다.
선생님에게 막걸리라도 한잔 사주는 부모를 가진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선생님으로부터 엄청나게 다른 처우를 받게 되는데,
거기서의 인덕은 막걸리 한잔에 아랑곳하지 않는 선생님을 만나느냐 못만나느냐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전교에서 유일한 100점짜리 시험을 받았어도 칭찬해주는 선생님이 없었고,
그런 시험지를 집에 가져가서도 보아주지 않는 아버지에 의해 화장실의 휴지가 되었을뿐이다.
자꾸만 그 때 일들을 되뇌게 되는 것은,
햑연이 없어 일생을 쉽게 풀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담임선생 중에 한분이라도 아버지에게
'가르쳐 볼만한 녀석'이라고
한마디라도 충고해주었다면
인생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떨칠 수 없는 미련이 되고 말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면
자기의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되는 시기라
부모의 그늘에서 거의 벗어났다고 해야 될 때로,
자신의 처세와 요령,
그리고 직장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이 직장에서의 대우를 좌우한다.
나 같은 사람은 악필의 소유자로 뜻을 펼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지만,
내 형같은 사람은 아주 잘 쓰는 글씨 덕분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상사의 총애를 독점하는 직장 생활을 했다.
형의 인덕이란 것은 아마 타고난 글씨 덕이었는지 모른다.
어디를 가나 모든 일에 능통한 사람으로 대우를 받았고,
주위 사람으로 부터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라는 말까지 들었었다.
나는 나를 닮아 글씨를 못 써도 직장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아들 녀석을 보면서
나도 지금 세상에 태어났다면
“남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하는 능력으로 컴퓨터의 아주 깊은 곳까지 터득해서 엄청난
대우를 받았을 것인데...."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애초에 그런 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단1원의 돈과,
반평의 땅도 물려받지 못한 복이 없는 인간이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몇 천배나
인덕이 없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며 살아 간다.
이글을 읽어 줄 몇분 안 되는 사람들조차 의아해 하겠지만
삼국지에 나오는 '등예'란 사람처럼
인덕이 없는 사람은 인류역사에 유례가 없을 것 같다.
촉나라의 수도였던 익주로 가는 길은 험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길 외에는 길이 없었고,
나머지는 깎아 지른 절벽으로 둘려 쌓여 있는데
그것을 촉벽이라고 했고, 그 절벽을 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 촉벽을 넘었다는 말은 '등예' 이야기 외에는 들은 일이 없고.
그 일은 나폴레옹과 하니발이 알프스를 넘은 것과
비견될 만한 엄청난 것이었지만.
아무도 넘은 일이 없는 촉벽을 넘어서
촉나라에게 항복 받은 등예는
나폴레옹이나 하니발처럼 찬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그것을 질투한 라이벌 '종회'의 모함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결과만을 얻었을뿐이다.
그리고 그 ‘종회’를 죽인 후, 삼국을 통일한 사마염으로 부터도
역적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은 것을 신원 받으며
위대한 장수로 추존을 입은 일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삼국지라는 소설 속에서 비겁하게 '강유'의 뒤통수를 친 사람으로
찬사는커녕 악한으로로 묘사되고 있다.
'응애'란 벌레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파리의 일종으로 두꺼운 소의 등가죽을 뚫고 피를 빨아 먹는 벌레이다.
잘못하여 이 벌레에 물리면
물릴 때의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지 않는 사람이 없고,
물리고 난 후에도 그 독이 오래 남아서 한참을 고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벌레의 이름이 등예 -> 등애 -> 응애 로 유래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로 등예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변변한 집에 태어나지 못해서 알려진 스승을 모시지도 못했고,
외모도 볼품이 없는데다 말까지 더듬어서
요즘의 왕따에 해당 됐던 모양이었지만
그 재주만은 뛰어나서 스승을 모시지 않고 배운 무술과 병법으로
제갈량의 제자라는 '강유'로 하여금 한발자국도 위나라에 진출하지 못하게 했고,
기회를 보다가 강인한 의지와 용기로 촉벽을 넘어서,
삼국을 통일한 사마염의 조부 ‘사마의’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촉나라를 멸망시킨 것이다.
아마 사마의가 하지 못한 것을 이룬 업적을 질투한 사마염의 자손들이
등예의 업적과 인물을 깎고 또 깎아서
역사상 최악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이 되게 한것 같다.
그렇게 인덕이 없는 '등예'란 사람도 있는데,
세상과 주변을 원망하는 것은 나 자신 부터 인간이 변변치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덕이 없다고
실망만 해야 될 것은 아닌 것 같다.
인덕이라는 것은 도와주어도
자신의 손해가 되지 않을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서
값싼 선심을 쓰고 있을 때까지만 존재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도 없이 쏟아지는 도움과 호의에 익숙하다보면
마음속에 오만함도 생기고, 마음속에 턱도 없는 낙관이 생겨나서
큰일을 그르치는 사람을 많이 보고 있다.
그 사람들 중 하나인 내 형은
직장생활 중 쏟아지던 인덕으로 세상을 쉽게 보는 마음으로 퇴직 했고,
그 쉬워 보이던 세상에게 만만치 않게 혼이 나고 있으며,
그 어려움에서 쉽게 벗어날 가능성도 없이 돼 버린 사람이다.
그 외에도 순조로운 직장생활로,
세상이 쉬운 것으로 생각하며 퇴직 한 후.
막연한 낙관으로 일을 벌렸다가 실패해서
엄청난 고생을 하며 사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인덕이란 것은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었던 나는
내 자신 외에는
도와 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 들여
실패는 없이 현재의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의 생활이란 것도 먹고 일만 할 줄 아는 시골사람들에게
'등예'를 깎아 내리던 ‘사마의’의 자손들과 같은 폄을 받는 생활이어서,
'인과응보'와 '윤회'라는 불교의 논리로
"내 탓이요. 전생의 잘못 때문이요."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며 살고 있는 생활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도 늘 부잣집의 잘생긴 아들로 태어나서
어려움 없이 학연을 만들고,
물려 받은 재산으로 호화롭게 살면서
학연을 바탕으로 이름을 날리는 인생을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전생의 업 때문에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태어나 인덕이 없이 살다보니
세상에 진 빚도 없어서
홀홀히 살 수 있게 됐으니 그것도 복이기는 하다.
그 복의 그늘로 생긴 외로움을 운명으로 받아드려야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인덕'이란 것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것이면서도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인덕이란 것은 대개 인생의 전반에 있는 것이고,
그것을 누리던 사람은 마음속에 생기는 턱없는 낙관을 피할 수가 없어서
인생의 성패를 따지는 말년에 실패해서 고생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