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버슨이 정규 시즌 전부를 결장할 거라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등부상이 그 이유였습니다. 농구 선수에게 등부상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모두가 잘 알고 계시리라 믿고, 16개의 부상을 달고 팀을 파이널로 이끌었던 아이버슨이 지금도 그와 같은 체력과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등부상은 20개의 다른 부위 부상보다 더 심각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더이상의 음모론은 그냥 음모론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물론, 아이버슨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필리 시절 자의반 타의반에 의해 부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팀과 격리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트레이드되기 전까지요. 그런 전례를 굳이 상기할 필요도 지금 상황에선 무의미한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 역시, 아이버슨으로 인해 NBA 라는 리그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중 하나입니다. 그 전에도 페니 하더웨이와 그랜트 힐같은 선수들을 보면서 가슴 두근거렸던 적이 한두번은 아니었으나, 2001년 아이버슨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당시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저는, 학생회관에 설치된 조그만 티비에 수십명이 모여서 환호성을 지르며 그의 플레이에 감탄했던 그 추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수업은 당연히 전부다 빠졌죠.
- NBA 의 인기가 예년만 못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이정도 수준까지 성장하고 또 그 인기를 유지하게끔 만든 중요한 contributor 중 하나가 알렌 아이버슨입니다. 빈스 카터가 농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예술적인 경지의 덩크를 선보이며 수준을 한단계 끌어 올렸다면, 알렌 아이버슨은 키가 작아도, 신체 조건이 평균 이하여도 농구를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장본인입니다. 불우한 과거를 가지고 있어도,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였어도 농구에 대한 '열정' 이 결국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을 깨우쳐준 선수이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한 참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플레이를 보고 공을 들고 코트로 뛰쳐 나갔죠. 어찌보면,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다케히코 이노우에의 <슬램덩크> 에서 창조된 송태섭이라는 캐릭터와 함께 키가 작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양대 산맥이 아닐까 생각해 봐요.
- 그래서 저는 빈스 카터, 코비 브라이언트, 알렌 아이버슨과 같은 2000년대 초반 NBA 의 turning point 를 제시한 수퍼 스타들에게 그에 합당한 respect 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NBA 는 MLB 와 같은 경쟁 메이져 스포츠에 비해 일가를 이룬 베테랑 선수에 대한 리스펙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지나친 리스펙은 스포츠의 진정성을 해칠 위험도 있겠지만, 적당한 수준의 존경의 표현은 하나의 메이져 스포츠의 역사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죠. 그 존경의 절반은 함께 뛰는 선수들과 사무국이, 나머지 절반은 팬들이 만들어 가는 겁니다. 팬들이 섣부르게 내뱉는 발언 하나하나가 결국 제살을 깎아 먹는다는 점을 모두가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 저는 디트로이트의 팬으로서, 또 아이버슨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한 개인으로서 지금 한국의 NBA 팬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이 참 가슴아프고 답답합니다. 아이버슨의 팬들이 내뱉는 말들과,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 양쪽 모두에게 상처를 받고 있는데요, 그의 불성실한 연습 태도와 자기 중심적인 "잘못된 열정" 이라고 표현되어지는 그의 태도가 왜 지금에 와서 다시 도마위에 올라야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네요. 그는 베테랑입니다. 한 선수의 기질을 커리어 중간에 바꾸려고 하는 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정도 수준의 수퍼스타의 기질을 바꾸겠다면 그건 한 스타가 리그에서 가지는 위치를 너무나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그의 성격을 모르고 영입했다면, 그래서 그들이 기대한 결과와는 다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건 그를 영입한 프런트진의 미숙함때문이지 선수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 "시대가 변하고 그도 늙어가니 이제 그의 플레이 스타일을 바꿔야 한다." 는 의견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 선수가 자신의 커리어를 늘리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고려해야할 사항이겠죠. 팬으로서도 한마디 해볼만한 충고이고요. 하지만, "그의 성격과 농구를 대하는 태도까지 바꿔야 한다." 라고 주장한다면,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스스로 결정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수퍼스타로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은퇴 가능성에 대한 발언이 나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그의 커리어 역사상 이처럼 처참하게 짖밟히는 시즌이 또 있었을까요? 그의 자존심은 충분히 그런 발언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디트로이트라는 팀으로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코멘트였습니다. 우리가 모두 간과하고 있는 것은, 디트로이트의 베테랑 선수들도 아이버슨에 뒤지지 않는 자긍심과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수 개개인이 리그에 끼치는 영향력은 아이버슨에 비해 뒤쳐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퍼스타 한명없이 우승을 차지한 90년대와 2000년대 최초이자 마지막 팀입니다. 그런 팀의 구성원중 하나인 그들입니다. 지금까지 디트로이트라는 팀을 그저 왠지 모르게 잘 이기는 팀정도로 생각하셨던 일부 엔써 팬분들에겐 평범해 보이는 팀이었겠지만, 피스톤즈는 팀 조직력과 캐미스트리 하나로 동부를 주름잡아 온 2000년대 (넓은 의미에서) dynasty team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버슨은,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되어올 때 과거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치열하게 팀의 캐미스트리에 대해 고려를 했어야 합니다. 자신이 디트로이트라는 팀 바스켓 위주의 조직에서 어떤 '조각' 을 맡게 될 것인가 그 역할에 대해 심사숙고했어야 합니다. 수퍼 스타의 커리어를 존중해 주어야 함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페러다임을 제시한 위대한 농구팀의 구성원들에 대한 존중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겠죠.
- 다음으로, 아이버슨의 덴버에서의 커리어를 억지로 낮게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쩌면 덴버는 아이버슨에게 참 잘 맞는 팀이었습니다. 자유분방한 팀 분위기와 꽉 짜여지지 않은 게임 플랜은 개인기를 바탕으로 하는 그에게 더 잘맞는 옷이었겠죠. 당시 덴버의 공격 플랜에 대해 불만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은데, 결론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봅니다. 엔써와 멜로라는 리그 득점 랭킹 2,3위를 동시에 가진 팀이 할 수 있는 공격 옵션이 몇개나 있었겠습니다. 코트를 양분하고 번갈아가며 공격하는 게 덴버의 공격력을 최적화시키는 방법중 하나였을 겁니다. 문제는 공격이 아니라 수비와 리딩이었죠. 하지만 그 어느 감독도 아이버슨은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리딩을 더 높은 수준으로 가져가기 위해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 트레이드 이후 덴버와 디트로이트의 성적 비교또한 아이버슨과 천시라는 개인의 비교로 이끌어가는 것에 반대합니다. 수많은 설명 변수들중 단 하나만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는양 비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이죠. 개인적으로 디트로이트는 엔써를 전혀 활용하지 않았고, ('못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엔써를 위한 공격 루트를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천시는 덴버에서 중요한 롤을 맡고 있습니다. 애초에 동등한 비교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 많은 디트로이트팬분들이 아이버슨의 식스맨 롤을 굉장히 기대했습니다. 오늘 필리 경기에서도 보여졌듯이, 디트로이트는 4쿼터에 무척 약한 팀으로 변모했습니다. 팀 조직력이 급격히 흔들리는 상황에서 4쿼터를 좋게 메조지하려면 확실한 득점 옵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더이상 수비로 4쿼터를 끝내지 못하는 현재 피스톤즈의 팀 레벨에 맞춰 보면 그렇다는 거죠. 예전에는 다섯명의 에이스를 가지고 플레이했던 4쿼터에서 이젠 그 아무도 게임을 끝내지 못하는 다섯명이 4쿼터에 올라옵니다. 듀마스도 천시가 타 경쟁팀들의 에이스에 비해 4쿼터 결정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그게 그를 트레이드한 여러 이유들중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버슨에게 그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어중간한 롤플레이어들만 잔뜩 모아놓은 현재 디트 벤치 멤버들을 이끌고, 혹은 주전들과 함께 게임의 템포를 끊기지 않게 하고 중요한 고비때 결정적인 한방을 터뜨려 줄 수 있는 옵션, 우리가 기대한 아이버슨의 모습은 그것이었습니다.
- 제목과는 다르게 말이 길어졌는데요, 결론은 간단합니다. 현재 아이버슨이 처한 상황이 비관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확실한 팩트만을 가지고 토론을 해야지, 팬 개인의 사심이나 가정이 들어가버리면 토론은 진흙탕이 되어 버립니다. 수퍼스타에 대한 정상적인 토론을 기대합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b(이렇게 좋은글에 댓글이 없다늬~~ㅎ) 아이버슨에 대한 존경과, 팀디트로이트에 대한 고뇌가 ..동시에 느껴지네요.. 디트팸에서나 게시판에서나 가끔식 님 글 올라오면 꼭 읽는데,, 정말 디트팀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신거 같아요~// 이미 그의 08-09시즌은 처참하게 짓밟혀졌지만..I LOVE NBA내에서 논쟁으로인해 아이버슨이 또한번 짓밟혀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러기에는 진심으로 아이버슨을 아끼는 팬들이 너무 많죠 ㅠ.ㅠ
저도 밑의글에서 NYC님이라던가 몇몇분들의 근거없는댓글에 굉장히 불쾌해서 글을 써보려했는데... 고3이라 시간적 여유가없네요... 한가지만 말하고싶네요... 아이버슨이 걸핏하면 연습에 불참하는 불성실한 선수가 아니라는점... 근거없이 비판을 하는건 비난이라고 말하고싶네요...
저 역시 2001년 아이버슨을 시작으로 NBA에 빠져버린 팬으로써, 요즘 일어나고 있는 발언과 논쟁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저에게 있어 한때 가장 위대한 플레이어에 대해 옳고 그르다를 논하기엔 그에 대한 respect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버슨의 발언과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건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옹호하고 싶지도 비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너무나도 위대한 퍼포먼스를 수많은 NBA팬들의 가슴에 남긴 슈퍼스타에 대해 조금 기다려 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든지,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선보이든지, 아니면 행여 은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든지.
최소한 그 모든걸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가치와 커리어를 지닌 선수라고 생각하기에, 2000년대 모든 NBA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아이버슨의 선택을 기다려주는 것이 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열정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선수 거론할때 거의 모든 분들이 앤써를 껴주셨는데 이런일이 생기니 "전 앤써에게 왜 영정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지 모르겠어요" 이런분들이 급속히 늘었네요. 아이버슨 초창기때부터 호빗이네 난사네 하고 한결같이 까는 분들이 훨 낫습니다. 전성기땐 간지니 열정이니 하고 추켜세우다 말년에 초라해지니까 예전 연습 불참한것까지 거론하면서 열렬히 까는 모습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두상 이라고 쓰신줄 알았습니다. 아이버슨 두상 예쁘죠.
제가 아이버슨을 위해 변론해주고 싶은 말을 다 해놓아주셨네요... 앤써가 이런말을 듣다니.. 참 어색하네요.
정말 멋진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워낙의 팬이기때문에 가슴아픈 지금의 상황이지만 다시 분명 일어서서 이런 논란을 잠재워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있기지만 만약 그가 부상으로 사라진다고 해도 01년도에 보여주었던 그 추억은 제 곁에서 영원하기 때문에 언제나 저에게 가장좋아하는 Basket Player를 묻는다면 당연히 아이버슨이라고 답할 것 입니다.
감사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NBA게시판에서 옮겨왔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족을 좀 달자면, 조 듀마스가 앤서에게 특정한 롤을 기대했다고 느끼진 않습니다. 개인 의견으로는, 듀마스가 앤서를 바라보는 시각은 잘되면 한 시즌 잘 보내는거고, 못되면 샐러리 더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론 프린스와 스터키를 기본으로 새로운 배드보이스를 꾸리려는 시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2000년대 초반의 배드 보이스는 이제 막을 내리는 것 같네요. 물론 디트와의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이버슨의 농구 커리어가 끝나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님다. 다만 나이와 기타 등등의 문제로 앤서에게 예전만큼 공격에서 프리한 롤을 주려는 감독은 없겠지요.
정말 진지하게 잘 쓰신 글이네요..^^
정말 동감 입니다.. 리그의 한 아이콘으로 이렇게 허망 할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너무 드렀었는데.. 내년에 부활하는 앤써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리그의 3대 아이콘이라는 표현이 참 맘에 드네요. 포스트 MJ이후에 킹제임스 전, 앤써는 분명 그 시기를 대표했습니다. 충분히 그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도 되구요.
합당한 리스펙트를 보여야한다....지극히 동감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아이버슨의 전성기 때에도 그의 현란한 모습에 감탄하면서 내심 오래가긴 힘들지 않을까 생각을 하긴 했엇습니다만, 이렇게 안타까운 모습으로 흘러가는 건 정말 아쉽네요..
이런 글을 만나니 너무 반갑네요... 답사마님의 팬으로서 참 공감 가는길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