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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망각의 동물인 인간에게 기억과의 커다란 간극을 만들어준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인간의 기억은 이와 정비례해서 점점 퇴색되어지고 그래서 언젠가는 결국 소멸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며 어느 추운 겨울날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누군가의 읊조림처럼 리는 기억할 수 있는 것들로부터 하루 하루 멀어질 수 밖에는 없다. 기억해야 할 것들과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들 사이에서 인간은 늘 시간과의 싸움에서 질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인 것이다.
이 무렵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올 한 해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해가며 한 해를 정리하곤 한다,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2013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 정치·시사 블로그를 운영중인 필자에게는 어떤 정치적 이슈들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까? 사회적 논란과 정치적 논쟁이 많았던 이슈들 중에서 올 한 해를 정리하며 필자가 꼽은 정치뉴스 TOP 10을 선정해 보았다. 필자가 선정한 10가지 정치뉴스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들을 함께 비교하며 이 글을 읽어나가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1. 국가기관의 2012년 대선불법개입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대선불법개입을 올해의 정치이슈 중 그 첫번째로 선정하는 데에 필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마 상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국정원뿐만 아니라 국가보훈처, 군 사이버사령부, 통일부, 안행부 등의 국가기관들이 전방위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지난 대선의 불법과 부정은 올 한해 대한민국의 모든 정치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은 엄청난 사안이었다. NLL 논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논란, 국정원의 대선개입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파행, 공안정국 조성 등 크고 작은 정치적 이슈들이 이 사안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정권의 정통성에 직결되는 사안이니만큼 1년을 넘게 끌어온 첨예한 정치공방 속에서도 일정한 거리두기와 물타기 전략을 고집하면서도 , 최근 종교계의 시국선언을 계기로 점점 거세지고 있는 정권퇴진론을 차단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국정원의 불법개선개입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던 시민들의 요구는 이제 특검의 도입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출구없는 외길전략을 고수하기만 했던 박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불통과 정치력 부재가 빚어낸 결과이다. 박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특검을 수용하고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2014년에도 이 문제는 정치 이슈의 맨 꼭대기를 차지할 공산이 아주 크다.
2. 공공기관에 대한 민영화 논란
결국 박근혜 정부는 철도, 의료, 공항, 전기, 수도 등의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를 실시할 것이라고 필자는 1년 전에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비단 필자 뿐만이 아니라 정치 시사에 관심이 있고,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꽤뚫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같은 예측을 해 왔다. 그리고 이같은 예측은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끝을 모르고 폭주하는 신자유주의의 탐욕이 마침내 '경제성과 효율성'이란 미혹적인 수사를 동반하며 국가의 공공재에까지 눈길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공공부분에 대한 민영화는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운영되는 국민 공동의 자산을 상위 몇% 에게 넘겨준다는 의미일 뿐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공공재는 경제성과 효율성만으로 그 존재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닌다. 만약 이를 무시한 채 일방적인 시장경제논리를 적용시켜 공공부문을 민영화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영국의 철도, 미국의 의료보험, 프랑스의 수도사업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의 폐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민들도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철도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격려는 민영화의 핵심이 결국 '경제성과 효율성'으로 가장한 미친 자본의 탐욕에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3. 박근혜 정부 인사 대참사
박근혜 대통령당선자는 자신의 첫 인사로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국민대통합을 부르짖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이율배반적으로 국민대분열을 일삼는 칼럼과 정치비평을 해왔던 극우인사를 대변인으로 선임했던 것이다. 이는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대통합이 결국 계층과 세대, 지역과 이념을 아우르는 포용과 화합의 개념이 아니라 특정집단과 지역,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지극히 편향된 개념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는 이후의 공직인사를 통해서도 여실히 입증되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들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지적된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일명 '밀봉인사'로 불리워졌다.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선임되는지 밀봉된 봉투가 열리기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밀봉인사'는 심지어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은 물론이고 시민사회 및 일반국민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이들이 한 목소리로 지적한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의 소통 부족과 독선적인 국정운영이었다. 당시 보수신문들 조차 비판했던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및 독선'은 그러나 이후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이는 급기야 역대 최악의 공직인사 참사를 초래하고야 만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난맥은 바로 이와 같은 대통령의 고집스런 국정운영스타일에 그 주된 원인이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 '밀봉인사', '깜깜이 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4.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파문
"그런 인물이었는지 저 자신도 굉장히 실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외교중 발생한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을 접하고 보인 공식반응이다. 대통령의 발언 그 어디에도 인사최고책임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찾아볼 수 없다. 각계각층에서 반대했던 부적격 인사를 고집스럽게 중용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 전대미문의 국제적 망신을 초래한 원인 제공자임에도 불구하고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공직에 몸담고 있던 한 개인의 '개인적 일탈'로 규정짓고 있다.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무책임함을 넘어 국민을 기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이남기 홍보수석과 윤창중 대변인의 진실게임, 박근혜 대통령의 성추행 인지 시점 논란 등 석연치 않은 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같은 의문점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윤창중 대변인의 방미외교 중 발생한 성추행 사건은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실추시킨 외교적 참사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 투명한 인사검증시스템이 배제된 독불장군식 인사운영은 언제든 이와 같은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나쁜 선례로 기억될 것이다.
5. 대선공약 파기 축소 논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후 채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대한민국 보수신문들은 일제히 대선공약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논지의 사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선승리를 위해 내놓은 과도한 좌클릭 공약들이 향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판단에서 이들이 먼저 작업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대선 공약들을 수정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이후 거듭된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며 '노인기초연금공약', '4대중증질환 국가지원 공약', '경제 민주화 공약', '반값등록금 공약', '무상 보육, 고교 무상교육 공약', '상설 특검제 및 특별 감찰관제 공약', '군복무 18개월 단축 공약', '책임 총리제 및 책임 장관제 공약' 등이 수정 축소 되거나 파기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늘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언급해 왔다. 지난해 12월 17일 대선 이틀 전 충북 천안유세의 발언을 살펴보자. 이날 박근혜 당시 후보는 "지금 여러분께서 바라고 기다리는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입니까? 약속 지키고 민생을 보듬고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대통령을 기다리지 않습니까?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오로지 시민만 위하는 민생 대통령,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통합 대통령,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약속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며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에 그토록 강조했던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그 약속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평소에 강조했던 원칙과 신뢰 역시 찾아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사회공동체의 보편적 상식과 기준에 부합하는 엄격하고 명확한 '공의' 위에 세워져야만 하는 원칙, 약속의 이행이 전제되어야 하는 신뢰가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 속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6. 일베 논란, 표현의 자유냐? 공공질서의 위협이냐?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약자인 '일베'는 유머 중심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지칭한다. 실시간 접속자 수가 2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베는 성인들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게시물들이 공공연하게 게시되는 곳으로 특히 지역감정, 인종차별, 여성비하, 정치논리가 개입된 특정 정치인 비하 등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폭력적인 글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불과한 일베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이 과정에서 희생당한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일베의 비상식적 왜곡과 허위사실 유포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킨 것이 그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종편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북한군 개입설과 이와 연계해 시민들의 폭동이 일어났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과 유족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이런 종편의 무개념 막장 방송도 일베에 비하면 양반이다. 일베는 오래전부터 살인마 전두환을 영웅시했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북한군 개입설 및 폭동주장이 일반화되어 있던 곳이었다. 종편이 내보냈던 문제의 방송도 사실 일베에 거의 도배되다 시피한 내용들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처럼 일베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역사적 진실까지도 왜곡하는 대표적인 극우 인터넷 사이트로 자리잡으며 사회적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원초적인 감정이 거침없이 배설되는 통로이자 이 과정에서 집단적 광기와 야만적 폭력이 용인되어 나타나는 곳,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사회적 불만과 억제되어 있는 개인적 충동들이 아무런 꺼리낌없이 배출될 수 있는 곳인 일베를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 걸까? 일각에서는 일베에서 게시되는 글들이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및 모욕의 정도가 지나치고, 민주사회에 부합하는 공공질서를 위협하고 해치는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사이트의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며 이에 반대하는 주장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적·집단적 병리현상에 정치논리가 결합한 변종인 일베논란은 정치·사회·교육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개선하고 치유하는 노력들 속에서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져 있다.
7. 종편의 반란, JTBC 뉴스의 대약진
지상파와 종편 가릴 것 없이 이명박 정권 이후로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대한민국 방송의 현주소는 참담하기만 하다. 방송이 철저히 권력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이에 따라 방송의 독립성과 공익성은 고사하고 지극히 공정하지 못한 편파적인 방송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제작 방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로 인해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없게 되었고, 이는 곧 방송 본연의 역할과 사회적 기능에 본질적인 문제가 생겨버린 것을 의미한다.
지난 여름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언론인 중 하나였던 손석희 전 성신여대 교수가 JTBC 보도부문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손석희 교수의 종편행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 9월 모습을 드러낸 'JTBC 뉴스 9'는 세간의 우려를 기우로 만들며 시청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사람들이 'JTBC 뉴스 9'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JTBC 뉴스 9'은 '힘없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힘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뉴스'를 만들 것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출발했다. 첫 뉴스를 진행하기에 앞서 손석희 아나운서는 프랑스의 유명 언론인인 위베르 뵈브메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다루겠다'며 시청자들에게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이후 그들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들을 방송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모든 뉴스를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더 알아야 할 뉴스는 있다'는 철학으로 시청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뉴스를, 다른 방송사들이 전하지 않는 뉴스들을 시청자에게 제공해 주고 있는 JTBC 뉴스의 진지한 고민이 호평과 함께 뉴스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원동력인 것이다. 방송의 역할과 공익적 기능을 외면한 대한민국 방송 현실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JTBC 뉴스는 그래서 더 빛이 나고 향기가 난다.
8.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죄 구속과 통진당 해산 심판 청구
현역 국회의원이 국정원과 검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했고 급기야 구속까지 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그 대상이다. 그에게 적용된 죄명은 이름도 무시무시한 '내란음모죄'다.
국정원이 3 년 전부터 내사를 해왔다는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는 지난 5월 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통합진보당 관계자 130명을 모아놓고 이석기 의원이 전쟁 발발 시 경찰서, 지구대, 무기저장소, 통신시설, 유류저장고 등을 타격해서 무장폭동을 일으키자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국정원은 이를 증명할 녹취록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26차 공판이 진행중인 이 사건은 지리한 법정공방으로 그 실체적 진실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정원은 왜 3년 전부터 내사해 왔다는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를 이제서야 공개한 것일까? 어쩌면 바로 이 질문에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있을 지도 모른다. 당시 국정원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져 있었다. 국정원 대선개입의 여파로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지탄을 받으며 코너에 몰려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국회에서는 국정원 개혁방안이 논의될 예정이어서 국정원의 존립기반에 심각한 위기감이 대두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합리적 의심은 이제 '이석기 의원이 주도한 무장폭동이 과연 실현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정원이 이번 사건을 용공사건으로 조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구체적 의문으로 발전하게 된다. 군사적 훈련을 받지 않은 민간인 130여 명의 인원으로 국가주요거점시설을 타격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그 실현 가능성을 논하기 전에 보다 눈여겨 보야야 할 것은 이 부분을 물고 늘어지는 언론방송의 대대적인 물량공세였다. 종편에서는 이 사태를 거의 모든 방송에서 대서특필했고, KBS·MBC·SBS 등의 지상파에서도 오랜 시간을 들여 비중있게 다루었다. 박근혜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지난 11월 5일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 청구안을 국무회의를 통해 통과시킨 것이다. 정부가 특정 정당의 해산심판 청구권을 행사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국정원에 의해 밝혀진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사건과 정부의 해산심판 청구권을 행사로 인해 국정원의 대선개입 실체규명과 국정원 개혁요구가 슬그머니 언론과 방송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는 사면초가에 빠져있던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던 국정원과 정부가 발등의 불을 슬그머니 통합진보당에게 옮겨 붙인 것과 같은 모양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직 재판이 진행중이므로 이 사건에 대한 그 실체적 진실은 여전히 표류중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터뜨린 이 작품이 대단히 정략적인 기획작품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 하다.
9. 살아있는 양심 권은희 과장
국정원의 대선개입의혹을 풀어야 할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는 결국 누더기로 끝이 났다. 새누리당의 마음이 시작부터 딴 곳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불법으로 대선에 개입한 국정원과 이를 수사한 경찰의 부실·축소 수사 의혹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과정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는 새누리당과 관련된 의혹들도 반드시 밝혀져야만 했다. 그러나 조사를 받아야 할 새누리당이 조사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한 이 국정조사는 시작부터 파국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국정조사는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국정조사가 아무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정조사를 통해 국민들은 거대한 권력 앞에서도 꿋꿋히 시대의 정의와 개인의 양심을 지킨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권은희 과장이었다.
이날 국정조사 청문회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증인석에 앉아 있던 국정원 직원과 경찰 분석관 등은 하나같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실을 부인하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마치 앵무새처럼, 마치 녹음기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기만 했다. 그들이 일관되게 되풀이했던 것은 '모른다', '기억할 수 없다', '대답할 수 없다' 따위의 참으로 기계적인 답변들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날 권은희 과장은 홀로 빛이 났다. 모두가 앵무새처럼, 녹음기처럼 기계적인 답변을 하고 있을 때 오직 그녀만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담담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모두가 작정하고 한 목소리로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실을 부정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녀는 홀로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실을 그리고 경찰 수뇌부의 외압사실을 인정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두 대상을 구분짓는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개인의 양심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않는 원칙과 소신에 바로 그 답이 있었다. 모든 것을 잃게 될 지도 모르는 무섭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과 소신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 바로 그 마음이 권은희 과장을 홀로 돋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온 양심과 원칙, 그리고 소신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리고 그녀의 빛나는 행동은 이 썩어빠진 시대와 타락한 세대를 비추는 작은 등불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각인이 되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줄기 빛이었다.
10.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최첨단 테크놀러지의 시대에 웬 대자보? 처음에는 그저 옛날 생각이 나서 좋았다. 그러나 오래되고 낡은 방식의 이 익숙한 소통방식이 무척 반가왔던 것은 비단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글 속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무엇이 담겨 있었고, 그 무엇에 결국 이 시대와 사회의 고민과 아픔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답이 숨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반가왔다.
그 무엇은 바로 진정성, 곧 진심이다. 이 글이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그의 글 속에 사심이 아닌, 진심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고된 철도노동자를 걱정하고, 송전탑 문제로 자살한 사람과 마을 사람들을 걱정하고, 비정규직과 88만원 세대로 내몰린 젋은 세대를 걱정하고, 정치적 무관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한 젊은이의 진심어린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거세게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안녕하지 못한 시대'에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건드리고 있는 이 글에는 이 시대의 아픔과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그 아픔과 상처를 지닌 시대와 사람들에게 '안녕들 하십니까?'라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그래, 나는 과연 안녕한 것인가? 만약 안녕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한 것인가? 또 안녕하지 못하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의 안부인사는 이렇듯 사실은 굉장히 형이상학적이며 철학적인 질문으로 까지 나아간다. '안녕하든, 안녕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온전히 개인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행위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는 한 그 어떤 것도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 대자보 열풍은 그런 면에서 정치인들이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사회적 현상으로 기억해야 할 듯 싶다.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 국민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정치가 실종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는 실마리가 바로 이 안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올 한해 동안 우리사회를 관통하며 국민들의 삶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정치뉴스들을 함께 살펴보았다. 위에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밖에도 안철수 교수의 국회진출과 신당 창당 가시화,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 이어도를 둘러싼 방공식별구역 논란, 진주의료원 폐업 논란 등도 빠질 수 없는정치적 이슈들이었다.
정치 시사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국민들이 정치의 속성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정치는 국민 각자의 삶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다. 아마도 이와 같은 정치의 본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 자신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꿔가며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 정치를 바꾸기 위해선 무엇보다 국민 스스로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수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정치인들 스스로의 자정능력과 의지로 정치환경이 바뀌기에는 이미 그들 스스로 너무 멀리 가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만 기억하자.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사회 공동체의 환경과 토대를 바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자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정치라는 사실을. 2014년은 갑오년, 말의 해이다. 말은 역동성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삶과 사회공동체의 삶이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질주하는 그들의 모습처럼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이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