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미술품 도난 사건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
렘브란트의 <갈릴리 호수의 폭풍 >페르메이르의<콘서트 >마네의<토르토니 카페에서 >의 공통점은
무었일까? 유명한 그림? 비싼 그림? 마네가 속해 있의니 네덜란드 화가의 작품들도 아니고 제작된 시
기도 차이가 난다 사실 미술사적으로 공통점도 없지만 굳이 꼽자면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에 함께 전시되었던 작품들이다.
동시에 1990년 미국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미술품 도난사건에서 함께 사라진 작품들이기도 하다
FBI의 끈질긴 수사가 이어젔지만 2015년 용의자가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이 밝혀젔고 2017년에는 작
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112억 원을 제공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세점
을 포함해 도난된 그림열세 점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미술품 도난 사건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무었일까?
처음부터 슈퍼스타는 아니었다
2018년 루브르 박물관은 관람객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단일 박물관 최고 관람객 수를 기록해 세계
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박물관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분당 50명씩 입장하는 1,000만
관람객 중 70%는 '그녀 '를 만나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다 여름휴가 때는 그녀를 만나기 까지
짧게는 15-40분의 시간이 걸리지만 그녀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분이 최대다 그녀는 바로 세
상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 <모나리자 >다 <모나리자 >가 경매에 나올 일은 없지만 혹시 나온다면
40조원의 가치를 가질 것으로 예상한다
1503-1506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는 <모나리자 >는 원래부터 유명했을까?
그렇지 않다 1849년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의 가격 추정 기록에 의하면 라파엘로의 아틀리에서<성 가
정 >이 60만 프랑의로 가장 고가의 작품이다 반면<모나리자 >는 9만 프랑으로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
만 지금의 위상에비해 적은금액인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모나리자 >는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비싼 그림이 되었을까?
행방을 감춘<모나리자 >
1911년 8월 22일 화가 루이 베루는 정기 휴무가 끝난 후 문을 연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다 그는 다음
작품을 그리기 위해 <모나리자 >를 모사 중이었다 전시 장소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비원에게
문의하자 사진 촬영을 위해 <모나리자 >가 작업장에 가 있을 거라는 답을 듣는다.
어찌 된 일인지<모나리자 >는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베루는 다시 한번 작품의 행방을 물었고
그제야 박물관 어디에도 <모나리자 >가 없다는 것이 알려진다. 파리 경찰청은 급하게 박물관을 폐쇄하
고 조사에 착수했지만 작품의 액자만 발견했을 뿐 그림은 이미 행방을 감춘 뒤였다.
20세기 유럽 문화의 핵심 국가 프랑스에서도 수도 파리 또 거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프랑스 언론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미국 신문의 해드라인까지 장식한다
경찰은 박물관의 모든 관계자를 조사하지만 용의자를 찾지 못했고 연일 관리 소홀을 비판하는 기사가
쏟아저 나왔다 <모나리자 >를 모르던 이들도 이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모나리자 >는 원하지도 않
은 노이즈 마케팅의 주인공이 된다 파리 시민들은 그림이 걸려 있던 장소를 보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러던
중 2 명의 유력한 용의자가 체포되면서 사건은 급물살을 탄다
의외의 용의자 두 명
갑자기 등장한 의외의 용의자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피카소였다 아폴리네르의 친구인 제리 피에레
가 한 신문사 인터뷰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조각을 훔친 경력을 자랑하듯 말하고는 사라저버리자 함께
으심을 받게 된 것이다아폴리네르는 평소 박물관이 예술가의 상상력을 마비시킨다며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폴리네르의 친구 피카소도 훔친 조각 중 하나를 구매 했는지 여부를 조사받는다.
하지만 별다른 혐의점과 증거가 나오지 않자 석방되면서 단순 해픈닝으로 마무리된다.
이후 도난 사건은 국제적인 사건으로 발전해 영국 미국에서까지 수사가 이어지지만 <모나리자 >는 흔적
도 없이 사라진 전설의 작품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1913년 12월 피렌체의 미술 거래상 알프레도 제리가 한 통의 편지를 받는
다 편지 발신인은 레오나르도 편지의 주요 내용은 자신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갖고 있고 이탈리
아 화가가 이탈리아 여인을 그린 작품이니 당연히 이탈리아에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이 작품을 50만 리라
에 팔아 이탈리아에 돌려주는 것이 꿈이라는 내용이었다 제리는 우피치 미술관 디렉터와 함께 여관을 방
문해 그림을 확인고 감정을 의뢰한 후 경찰에 신고한다.
1913년 12월 10일 피렌체 허름한 여관에서 2년 4개월 만에 <모나리자 >가 발견되고 범인 빈센초 페루자
가 검거된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리를 교체하는 일을 했기에 휴일에 박물관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
고 의심받지 않고 작품을 떼어내 자신의 파리 아파트에 그림을 숨겼다고 진술한다.
법정에 선 그는 <모나리자 >를 고국에 돌려주기 위해 훔쳤다고 무죄를 항변했지만 1년 14일 형을 받았고
7개월 9일 만에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모나리자 >는 피렌체 로마에서 고별 전시회를 마친
후 일등칸을 타고 파리로 향해 1914년 1월 4일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아간다
끝없는 음모론이 증명하는 인기
시간이 흘러 1932년 <뉴욕 저널 >에 <모나리자 > 분실에 관한 색다른 기사가 나온다 발피에르노라는 인
물이 도난 사건의 배후이며 그가 빈센초 페루자를 기용해 그림을 훔치게 한 후 백만장자에게 위조품을 진
품으로 속여 팔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페루자는 사망할 때까지 배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뉴욕 저널 >에서도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는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모나리자 >진품 논란에 자주 인용되는 에피소드가 되
었다<모나리자 >는 인기가 높아지면서 끊임없이 유명세를 격는다 1956년 그림의 아랫부분에 한 관람객
이 염산을 뿌리기도 했고 같은 해 말 볼리비아 청년이 해고당한 분풀이로<모나리자 >에 돌을 던지기도 했
다. 1962년 미국 전시회에서는 근위병의 보호 아래 케네디 대통령을 비롯한 170만 명이 관람한다 1974년
일본에서는 1인당 관람 시간이 10초를 넘지 못하고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휠체어와 목발을 사용하는
이는 관람할 수 없다고 하자 화가난 여성이 <모나리자 >를 향해 붉은 페인트를 뿌리는 소동이 벌어진다.
이후 <모나리자 >는 다시는 해외에서 전시되지 않았다 2003년 댄 브라운의 추리 소설 <다빈치 코드 >에
등장하년서 더 많은 의심과 인기를 얻은 <모나리자 >는 2005년 3중 방탄유리가 설치된 살 데 제타에서 특
별 대우를 받고 있다
40조 원 가치를 지닌 위대한 걸작
<모나리자 >가 도난 사건과 테러 등 여러 해픈닝으로 더욱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가치가 없었다면 인
기는 금방 사라졌을 것이다 다빈치는 동시대의 어떤 화가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모나리자 >에 적용했
다 그는 자연에는 선이 없다고 생각해 인물의 윤곽선을 뭉개는 방식으로 색과 색 사이의 경계선 구분을 부
드럽게 표현한다 다빈치가 최초로 도입한 이 기법을 스푸마토 (연기 안개 등이 사라진다는 뜻의 이탈리아
어인 스푸마레 [sfumare]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라고 부르고<모나리자 >의 미소가 모호하고 신비롭게 느
껴지는 것도 이 기법 때문이다
또 선을 이용하여 깊이와 회화 공간을 표현하는 선 원근법이 아니라 인간의 눈이 먼 풍경을 볼 때 푸르스름
하게 보는 것과 비슷하게 표현하기 위해 대기 원근법을 이용한다.마지막으로 당시 대부분의 초상화에서 측
면이나 정면을 그리던 정형을 벗어나 몸은 약간 측면 시선은 정면을 향하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그린다
편안하게 자세를 취한 그녀는 그림을 보는 이를 마주 보며 웃는다 <모나리자 >가 그려지기 전에는 어떠한
초상화도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 지어주지 않았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