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바이러스인 나라고 늘 활기 차고 기쁘란 법은 없다. 기분이 좀 별로인 때도 ‘아자아자, 힘내자, 좋은 하루지’ 등의 말을 해대며 삶을 긍정적으로 즐겁게 만드는 나였다. 어차피 하늘에서 왔고 결국에는 하늘로 돌아가야 할 잠시잠깐의 목숨이라면 소풍 나온 듯 나들이 나온 듯 마음껏 즐기고 돌아갈 수는 없을까? 쪽빛 하늘처럼 맑게 개여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오늘은 눈을 뜨고 걸어도 내가 내가 아닌 듯 영 활기가 없고 행복 에너지가 나오지를 않는다. 속된 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도 이렇게 나의 아까운 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 마음을 고쳐 먹고 피트니스 센터로 가볍지 못한 발걸음을 떼었다.
나의 첫 순서는 러닝 머신이지만 오늘은 자전거부터 했다. 사실 러닝 머신을 하면 옆 사람들과 인사도, 말도 한 마디 주고받기 힘들다. 그러나 자전거는 앉아서 발만 돌리면 되니, 옆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쬐금 여유롭다.
오늘은 눈인사만 했을 뿐, 말은 건네본 적이 없었던 L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었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건만, 수그러들 줄 모르는 나의 ‘수수께끼 내기’는 오늘도 제대로 ‘임자 만났다’다. 내가 오늘 낸 수수께끼는 난센스 아닌 난센스이다. ‘돼지가 방귀를 뀌면 나오는 음식이 뭘까요?’이다. 예상대로 묵묵부답(黙黙不答)이었다. 내가 예의 없게 생각할 틈도 주지 아니하고 큰 소리로 ‘돈(豚)까스(gas)’라고 하니 ‘아하, 맞네 맞아’하며 매우 즐거워 하셨다.
나는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만남을 그리워하며 책갈피에 끼워 놓은 예쁜 얘기들을 꼭꼭 수첩에 정리해 두고 내 숨소리에, 때때로 살아 있으니 느낄 수 있는 아픔에도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 껌딱지인 어머니는 어디서나 사람 잘 사귀고 두런두런 얘기 나누는 나를 탐탁지 않아 한다. 왜냐하면 나는 한 쪽 눈이 없는데다 갖고 있는 한 쪽 눈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매일 보지 않으면 훗날 만나도 모르고 지나친다. 그래서 그 뒷처리는 모두 어머니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죽 했으면 내가 대학교 다닐 때 과 친구가 아니고 다른 과 선후배나 친구를 만나면 헤어지기 앞서 내 눈이 시원찮아 뒤에 만나면 먼저 아는 체를 해달라고 밥과 커피도 그리 많이 쐈을까?
늘 어머니가 나에게 지청구 하신다.
“지가 사귀었으면 팬 관리도 끝까지 지가 책임지고 할 줄 알아야지 니처럼 그카다가는 팬(fan)들 다 내뺀데이!”
“치! 그면 어쩝네까? 내 눈이 안 보여 그러는데, 또 아시다시피 내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고 얘기 나누는 걸 죽도록 좋아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내 할 말은 꼬박꼬박 다 하고야 마는 참 못된 딸이다.
내가 ‘수수께끼 소녀’가 되어 웃음과 즐거움도 주지만 때때로 퀴즈를 받은 사람에게는 머리를 써야 하는 고통 아닌 고통을 주기도 한다. 내 삶에서 본다면 그 역사가 사뭇 길다.
어릴 때부터 흥이 많고 춤과 무용, 노래에 소질이 조금 있었다. 물론 어릴 때에는 나뿐 아니라, 누구나 다 별반 다름없었다.
글자를 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학교, TV, 책에서 보고 주워 들은 재미난 수수께끼나 이야기가 나오면 오래 기억하려고 아니, 더 큰 이유는 어디 가서 써 먹으려고 나만의 수첩에 적어두었다. 그랬다가 주로 가족 여행이나 외식할 때 분위기가 처져 있다면 내 얘기와 수수께끼는 제 자리를 만난 듯 빛을 발했다. 대외적으로는 내가 다니던 학원 등에서 서너 번은 잘 써먹었다. 수수께끼를 내는 내가 즐거운 건 말할 것도 없고 듣는 사람들도 모두 “하하호호, 헤헤헤” 하며 달아난 배꼽을 찾느라고 난리를 떨었던 일들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가까운 친척 가운데에도 코미디적이고 희극적인 품새를 지닌 이는 눈 뜯어놓고 찾아봐도 없는데, 내가 그 흔하지 않은 별종(別種)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을 울게 하는 것도 아니고, 즐겁게 웃겨 주는 건데 이대로 쭉 ‘수수께끼 소녀’로 남는 것도 보람찬 일 아닐는지?
이제는 꿈 하나를 더 얹으련다. 웃음에 감동까지 얹어 남기고자 한다.
행복바이러스인 나라고 늘 활기 차고 기쁘란 법은 없다. 기분이 좀 별로인 때도 ‘아자아자, 힘내자, 좋은 하루지’ 등의 말을 해대며 삶을 긍정적으로 즐겁게 만드는 나였다. 어차피 하늘에서 왔고 결국에는 하늘로 돌아가야 할 잠시잠깐의 목숨이라면 소풍 나온 듯 나들이 나온 듯 마음껏 즐기고 돌아갈 수는 없을까? 쪽빛 하늘처럼 맑게 개여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오늘은 눈을 뜨고 걸어도 내가 내가 아닌 듯 영 활기가 없고 행복 에너지가 나오지를 않는다. 속된 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도 이렇게 나의 아까운 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 마음을 고쳐 먹고 피트니스 센터로 가볍지 못한 발걸음을 떼었다.
나의 첫 순서는 러닝 머신이지만 오늘은 자전거부터 했다. 사실 러닝 머신을 하면 옆 사람들과 인사도, 말도 한 마디 주고받기 힘들다. 그러나 자전거는 앉아서 발만 돌리면 되니, 옆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쬐금 여유롭다.
오늘은 눈인사만 했을 뿐, 말은 건네본 적이 없었던 L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었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건만, 수그러들 줄 모르는 나의 ‘수수께끼 내기’는 오늘도 제대로 ‘임자 만났다’다. 내가 오늘 낸 수수께끼는 난센스 아닌 난센스이다. ‘돼지가 방귀를 뀌면 나오는 음식이 뭘까요?’이다. 예상대로 묵묵부답(黙黙不答)이었다. 내가 예의 없게 생각할 틈도 주지 아니하고 큰 소리로 ‘돈(豚)까스(gas)’라고 하니 ‘아하, 맞네 맞아’하며 매우 즐거워 하셨다.
나는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만남을 그리워하며 책갈피에 끼워 놓은 예쁜 얘기들을 꼭꼭 수첩에 정리해 두고 내 숨소리에, 때때로 살아 있으니 느낄 수 있는 아픔에도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 껌딱지인 어머니는 어디서나 사람 잘 사귀고 두런두런 얘기 나누는 나를 탐탁지 않아 한다. 왜냐하면 나는 한 쪽 눈이 없는데다 갖고 있는 한 쪽 눈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매일 보지 않으면 훗날 만나도 모르고 지나친다. 그래서 그 뒷처리는 모두 어머니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죽 했으면 내가 대학교 다닐 때 과 친구가 아니고 다른 과 선후배나 친구를 만나면 헤어지기 앞서 내 눈이 시원찮아 뒤에 만나면 먼저 아는 체를 해달라고 밥과 커피도 그리 많이 쐈을까?
늘 어머니가 나에게 지청구 하신다.
“지가 사귀었으면 팬 관리도 끝까지 지가 책임지고 할 줄 알아야지 니처럼 그카다가는 팬(fan)들 다 내뺀데이!”
“치! 그면 어쩝네까? 내 눈이 안 보여 그러는데, 또 아시다시피 내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고 얘기 나누는 걸 죽도록 좋아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내 할 말은 꼬박꼬박 다 하고야 마는 참 못된 딸이다.
내가 ‘수수께끼 소녀’가 되어 웃음과 즐거움도 주지만 때때로 퀴즈를 받은 사람에게는 머리를 써야 하는 고통 아닌 고통을 주기도 한다. 내 삶에서 본다면 그 역사가 사뭇 길다.
어릴 때부터 흥이 많고 춤과 무용, 노래에 소질이 조금 있었다. 물론 어릴 때에는 나뿐 아니라, 누구나 다 별반 다름없었다.
글자를 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학교, TV, 책에서 보고 주워 들은 재미난 수수께끼나 이야기가 나오면 오래 기억하려고 아니, 더 큰 이유는 어디 가서 써 먹으려고 나만의 수첩에 적어두었다. 그랬다가 주로 가족 여행이나 외식할 때 분위기가 처져 있다면 내 얘기와 수수께끼는 제 자리를 만난 듯 빛을 발했다. 대외적으로는 내가 다니던 학원 등에서 서너 번은 잘 써먹었다. 수수께끼를 내는 내가 즐거운 건 말할 것도 없고 듣는 사람들도 모두 “하하호호, 헤헤헤” 하며 달아난 배꼽을 찾느라고 난리를 떨었던 일들이 많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가까운 친척 가운데에도 코미디적이고 희극적인 품새를 지닌 이는 눈 뜯어놓고 찾아봐도 없는데, 내가 그 흔하지 않은 별종(別種)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을 울게 하는 것도 아니고, 즐겁게 웃겨 주는 건데 이대로 쭉 ‘수수께끼 소녀’로 남는 것도 보람찬 일 아닐는지?
이제는 꿈 하나를 더 얹으련다. 웃음에 감동까지 얹어 남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