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자 인간의 실존을 끊임없이 고민해온 ‘시대의 지성’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의 대표작 《만엔 원년의 풋볼》. 시코쿠 산골 마을로 귀향한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내밀한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평화 헌법 수호에 앞장서며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오에 겐자부로의 역작답게, 《만엔 원년의 풋볼》에는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한데 담겨 있다. 인간의 상처와 치유의 문제를 한 개인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차원에서 조명하며, 진정한 자기 구원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광기의 전쟁이 패배로 막을 내린 후, ‘안보 투쟁’이 일어나 또 다른 혼돈 속에 놓인 1960년 일본. 추한 외모에 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은 주인공 미쓰사부로는 친구의 엽기적인 자살을 접하고는 깊은 충격에 빠진다. 그에게도 가족은 있다. 안보 투쟁에도 참여했던 전향한 학생운동가 동생 다카시, 견디기 힘든 현실을 위스키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아내 나쓰코 그리고 머리에 혹이 달린 채 태어나 보호시설에 맡겨진 아이…….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미쓰사부로는 ‘새 생활을 시작하자’는 다카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내와 동생과 함께 시코쿠의 고향으로 떠난다. 그곳은 만엔 원년(1860년)에 농민 봉기가 일어났던 골짜기 마을이다. 100년 전 증조부 형제가 연관된 농민 봉기의 역사와 패전 직후 조선인 부락 습격으로 S 형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두 형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스스로를 증조부의 동생과 동일시하던 다카시는 마을의 경제권을 장악한 조선인 ‘슈퍼마켓 천황’에 대항하기 위해 풋볼 팀을 만들고, 형제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장대한 스케일과 굵직한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인 만큼,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는 크게 세 종류의 시대가 등장한다. 시코쿠의 산골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난 1860년(만엔 원년), 태평양전쟁이 패배로 막을 내린 1945년 그리고 일미안보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안보 투쟁’이 있었던 1960년의 상황이 커다란 맥을 이루며 교차된다.
저자는 약 100년의 시대에 걸쳐 메이지유신을 앞두고 빗발쳤던 농민 항쟁과 전 세계를 비극으로 몰고 간 전쟁, 패전 후 일어난 혁명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소리 없는 비명과 고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로 이어지는 한 가문의 갈등의 역사뿐 아니라 폭력으로 얼룩진 근대 일본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만엔 원년의 풋볼》은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 문학으로 일찍이 자리매김했다.
저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1935년 일본 에히메현(愛媛縣)에서 출생했고, 도쿄 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사르트르, 카뮈 등의 영향을 받아 대학 재학 중에 소설을 발표했고,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1950년대 후반에서부터 이시하라 신타로와 함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급부상했다. 1960년에는 일본의 젊은 작가를 대표하여 마오쩌둥을 만났고 그것은 오에가 정치적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차츰 신좌익 사상에 경사되었다.
지적 장애아 아들이 태어난 충격으로 그는 '개인적인 체험'을 발표했으며, 여기에서 기형아 출산을 주제로 삼아 인권을 유린당한 전후세대의 문제를 파헤쳤다. 한편,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는 오래된 공동체를 역사적, 민속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취했다. 1970년대에는 '핀치런너 조서', '동시대 게임'을 발표했다. 그리고 '히로시마 노트', '핵시대의 상상력'등을 통해 반전과 장애아 보호를 주장했다. 1980년에 '레인 트리를 듣는 여자들', '어떻게 나무를 죽일까?', 'M/T와 숲의 이상한 이야기', '새로운 사람아, 눈을 떠라', '치료탑'등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