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번동 주공 아파트 5단지를 자주 갑니다.
아니 5단지를 간다기 보다는 그 단지의 입구를 간다고 보아야겠지만요...
왜 그 단지의 입구를 가냐구요?
그 입구를 가보면 알지만요... 입구에 양 옆으로 늘어선 수십그루의 가로수 때문입니다.
가마솥 같던 여름
그 입구에만 들어서면 등줄기의 땀이 저절로 수그러 들고 말기 때문이죠.
에어컨 보다도 더 시원한 자연의 바람과 함께 그늘에 서면
나는 저절로 주공 5단지! 하며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 된답니다.
더운 삼복날
폭포수 옆에 선 것 처럼... 시원한 5단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이맘때 쯤이면
그 더웠던 81년 여름
멸공봉을 메고 오리걸음으로, 멸공봉 체조로 죽고 싶었던 남한 산성의 그 뜨거웠던 지글거리던 태양이 생각납니다.
님한산성하면 군 생활 안하신 분들도 다 아시는 곳이죠...
군 계엄 시절에는 일부 정치인들도 오시고... 군인들은 물론이고요...
원래는 육군 교도소지만
남한산성으로도 부르는 이도 있고
육각으로도 부릅니다.
육각은 육각형으로 동이 중앙을 향해 모여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죠. 독일인 여자가 설계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중앙 통제실을 중심으로 여섯개의 독립된 동이 모여서 육각형을 이루고 있고 그 통제실에서는 각 동을 쉽게 관찰할 수 있죠.
그리고 그 육각형을 붉은 담장이 원을 그리며 담을 이루고 있죠. 대부분 안가보신 분들이라 간단히 설명해봅니다.
그 통제실 중앙에는 김재규씨의 이름이 새겨진 향로가 있고
그 옆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약성서가, 그 옆에는 김영삼님의 신약성경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면회실을 오갈 때
벙커의 특별 면회실을 오갈 때마다 마주치던 남한 산성 동기생 김대중 전 대통령... 그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광주에서부터 남한 산성까지 그리고 청와대까지 이어졌었습니다.
동기생이라고 하여 한자리 달라 부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청와대를 향해 욕설을 적은 편지를 보낸 적은 있지만요... ㅎ
민간인을 상대로 삼청 교육대가 만들어지고 가혹행위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남한산성에도 역시 삼청 교육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현역시절 190킬로그램짜리 멸공봉을 전우와 함게 힘자랑 하느라 메고 뛰어본적은 있지만...
새끼줄을 감은 멸공봉을 어깨에 메고 오리걸음으로 육각의 마당을 빙빙 돌 때면 다람쥐 챗바퀴 같아서 미치는 것 같죠. 거기가 거기 같고... 새끼줄과 어깨가 닿고 6월의 태양 아래 화상을 입으면 수포가 부풀어 올라 볼만한 상황 까지 갑니다.
당시 삼청 교육대 교관은 송 중사라는 자였는데 앞니가 두대가 없어서 정나미 떨어지는 인상이었죠~ 교육이 시작되면 한 팔에 군용 손수건을 묶고 팬티바람으로 나갑니다. 피티체조를 시작으로 멸공봉 체조... 멸공봉 오리걸음... 미칩니다.
교육중 인상을 쓰면
송중사는 계속 더 힘들게 가혹행위를 했고 웃으면 훈련을 중지시키고 열외를 시켰죠... ㅎ오랜 시간이 흘러 그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기는 했지만... 그는 그래도 쫌은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육각전사...
이 말은 뭔고 하면
훈련 받다가 교관이 전사를 외치면 모두 바닥에 누워 눈부신 태양 아래 일광욕을 합니다. 눈을 감고 전사하는 거죠....
그러다가 한 5분 쉬고 나면 부활을 외칩니다. 그러면 수감자들은 부활을 외치며 부처님,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며 일어섭니다.
오늘은
육각
육각 전사에 대해 배웠습니다. ㅎ
특수부대원들이 낙하를 하다가 잘못 바람에 쓸려와 남한산성으로 날아들어오면 나무에 걸려 오줌을 질금거리게 만들었던
그 무서운 남한 산성 이야기 였습니다.
다음에 2부가 이어집니다.
- 피안의 새
첫댓글 도봉구는 도봉산이 있어 아주 친숙한 곳이라 반갑게 글을 읽으러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넘 소름이 끼침다...
이런 이야기를 책이나 잡지에서만 보다가... 피안 형이 직접 겪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서울에서 첨 뵜을 때도 눈빛이 다르시다나... ㅜㅠ
그런 인고의 세월을 보내시면서 우찌 참고 사셨을꼬... 나 같으면 속 터져 죽겠구먼... _()_
그 육각 전사 동기들도 하나씩 세상을 떠나는 군요... 잔인했던 그 세월을 뒤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