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본당에서 우연히 마주한 작은 소개가 조용히 삶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도는 점점 말에서 침묵으로 옮겨가고, 익숙하던 사도직의 결도 서서히 달라졌다.
카르멜 재속회와의 여정은 활동의 끝이 아니라, 기도에서 다시 시작되는 길의 입구였다.
그날 본당에는 맨발의 가르멜 재속회 회원들이 찾아왔다.
주일 미사 후 짧은 소개가 이어졌고,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교육관으로 들어섰다.
익숙한 점심과 대화 대신 낯선 설명들이 그날의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돌아보면, 그날은 조용히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하느님께서 마음을 안으로 불러들이시는 첫 움직임이 아주 미세하게 시작된 자리였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자니스, 젠, 마크, 다이애나였다.
그들의 말은 낯설지 않았다.
“이런 길도 있구나.”
그 문장이 오래 머물렀다.
기도가 삶의 중심이 되는 길, 활동이 아니라 관상에서 흘러나오는 사도직이라는 길.
이후 탐색기(Inquiry) 그룹에 참여했고, 매달 마지막 토요일마다 모임이 이어졌다.
지난해 여름, 미국 본당의 공동체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원기(Aspirancy)가 시작되었다.
기도는 서서히 다른 형태가 되었다.
말보다 침묵이 길어졌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것처럼,
영혼이 먼저 자기 안의 어둠을 마주하는 은총이 아주 조용히 시작되었다.
지난주, 1년간의 지원기를 마치는 마지막 인터뷰가 있었다.
문을 열자 첫 말이 들렸다.
“Have a seat.”
평가라기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관상 공동체의 문 앞에 선 영혼이 조용히 맞아들여지는 자리였다.
잠시 후 우리는 선종한 크루즈를 떠올렸다.
마크는 그녀의 사진을 AI로 복원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흐릿했던 얼굴이 다시 선명해졌고, 그는 “눈빛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 말 이후 방 안에는 오래 머무는 침묵이 생겼다.
사람은 떠나도 관계는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카르멜이 말하는 성인들의 친교가 그렇게 드러났다.
질문이 이어졌다.
“왜 카르멜에 오고 싶습니까?”
나는 말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평생 찾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봉사해 왔지만 제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더 깊은 기도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특히 침묵 안에 머무는 기도를요.”
요즘의 아침은 다르다.
일어나도 바로 움직이지 않는다. 잠시 머문다.
침묵기도 15분, 아침기도, 저녁기도, 묵주기도, 그리고 Divine Intimacy를 조금씩 읽는다.
기도는 이제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다가오시는 움직임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상태에 가깝다.
다시 질문이 이어졌다.
“처음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나는 말했다.
“처음에는 침묵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짧게나마 압니다. 침묵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요.”
테레사가 말한 것처럼, 영혼이 중심의 방을 향해 초대받았으나
아직 은총의 빛을 완전히 견디지 못하는 자리라는 것을.
한 사람이 조용히 말했다.
“카르멜은 활동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기도에서 시작해 사도직으로 흐릅니다.”
그 문장은 오래 남았다.
관상에서 흘러나오는 활동, 은총에서 흘러나오는 봉사.
나는 반대로 살아왔다.
사도직이 먼저였고 기도는 뒤따랐다.
유치부에서 시작된 봉사는 청년부로 이어졌고 공동체도 함께 자랐다.
최근에는 대학을 떠나는 청년들과 새로운 레지오를 시작했다.
신앙이 흩어지는 순간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기도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싶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질문이 이어졌다.
“한국의 가톨릭 신자는 어느 정도입니까?”
나는 간단히 답했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가 공존하는 구조 속에서 103위 순교 성인을 떠올렸다.
대화는 성무일도와 성모님, 갈멜의 역사로 이어졌다.
“기도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교회의 것입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내 기도는 혼자가 아니라 교회 전체와 함께 서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인터뷰는 예상보다 따뜻하게 끝났다.
이미 방향은 조용히 정해져 있었다.
침묵 피정 이후, 10월부터 Formation 1이 시작된다.
역사와 갈멜영성, 그리고 완덕의 길.
“같은 책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책이 됩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은총이 시간을 통과하며 텍스트를 새롭게 여는 방식.
올해 나는 예순한 살이 되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감각이 분명했다.
돌아오는 길에, 망설이며 교육관으로 들어가던 지난해의 내가 떠올랐다.
그 작은 선택 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안다.
카르멜은 무엇을 시작하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마음을 다시 빚어 가시는 자리,
조용히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곳이라는 것을.
첫댓글 무교다 보니, 내용은 알지 못해도, 아뭏튼 근래에 마음이 좋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모쪼록 뜻하는 길로 순조롭게 가시길 바라며, 그 와중에도 건강을 꼭 챙기시길 바래용~ ^^
박곰님, 따뜻한 응원의 말씀 잘 새겨 듣고 건강을 살살 잘 달래가며 살아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모든 일이 순리대로 되어가겠지요. 늘 행복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 순조롭게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박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