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이나 추석연휴를 맞으면
TV채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김두한 시리즈 등
해묵은 메뉴들을 울거먹습니다.
그러면 속도 없는 시청자들,
재탕 3탕으로 보기 마련이지요.
시어머니 흉보며 늙은 며느리,
결국 닮아가듯
저도 묵은 메뉴를 올립니다.
뭐, 지난번에는 1/3쯤 올리다 접었으니
완전 재탕은 아니라는 민망한 변명을 꿍얼대면서.....
서 序
2018년 6월, 서울 S병원.
바퀴침대 앞뒤를 조심스레 밀며 응급실로 들어오는 119 대원.
손짓해 세운 수간호사,
환자 가슴의 차트를 낚아챈다.
“유병호. 73세,
교통사고 골절에 시각장애...?”
“네, 여기까지 37분.”
“두 분, 수고하셨세요.”
119 대원들에게 살짝 숙이는 수간호사,
이내 시선을 돌리며
“ 스트로크 체크 ”
“ MRI 긴급 ”
소독 냄새와 바늘, 메스가 번득이는 은색 공간에서
건조한 단어들이 난무한다.
까마득한 웅성거림. 끊어진 장면들이 떠올랐다.
몸을 날려 트럭 앞 아이를 밀쳐내는 순간...
쿵! 울리는 충격!
아이는...? 무사하겠지 아니, 무사해야지...!
횡 하니 어지럽지만 소리는 들렸다.
그럭저럭 제 정신인가 보다.
허리가 끊어질 듯. 여기저기가 저리고 쑤신다.
이렇게 가는 건가...
다행이었다. 그나마 평소 그려보았던 그림이라....
그래서 편했다. 마음이 편했다.
어디론가 내 침대를 밀고 간다.
나도 덩달아 실려 갔다.
음, 다 바쁜데 홀로 한가하구나.
느긋했다.
근데 아프다.
다 잊고 도망가 버릴까, 소설 속으로....
아이구 병호야, 병호야,
이 꼬라지가 되어서도 아직 공상空想 놀음이냐?
『베링해를 건너는 대륙철도.
미주 ~유라시아 ~아프리카 철도로 맥동하는 세계.
성에 안주하는 자 망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 살아남는다.
대륙 철도의 시대....』
침대가 슬그머니 멈추더니 빙그르르 돌았다.
어딘가로 밀어 넣는 듯.
위이잉, 전자음..., 검사인가?
그런데...! 어찔하다. 갑자기 팽 돈다.
“러쉬! 어전트 “
외침과 함께 와락 흔들렸다.
“차지..., Now,”
파박!! 엄청난 충격. 푸르륵 떨며 몸통이 튀어 올랐다.
“차지 게인"
........!
소음이 사라졌다. 갑자기 적막강산...
아무 느낌도 없이 까무룩 하다.
무음실에 들어온 듯...
이윽고 사위가 고요해졌다.
평양 전투
1894년 8월 1일,
일본이 청나라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에 맞선 청나라 역시 선전포고를 했다.
일본은 일청전쟁,
청은 중일 갑오전쟁이라 부르는 전쟁의 시작이었다.
1894년 8월 27일, 평양
느닷없는 봉변을 당한 경석은 벌써 사흘째 자리보전 중이었다.
의원 말로는 괜찮다지만 헛소리까지 하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에
식구들은 애가 탔다.
다투듯 떠들기에 들여다보면 혼자였고
이따금씩 듯 모를 잠꼬대도 했다.
이윽고 나흘 만에 털고 일어난 경석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전과는 달랐다.
개성을 다녀오던 경석은
성환 전투에 참가했다는 청군 병사 둘을 만났었다.
꾀죄죄한 몰골로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그들은 적군을 피해 산길로
북상 중이라 했다.
그들의 적은 오오시마 소장이 인솔하는 5천명의 제 9혼성여단.
일본군은 청군 주력이 있는 평양성으로 진격 중이라 했다.
그렇다면...?
바로 평양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는 말 아닌가!
가슴이 철렁했다.
2년 전, 17세의 나이로 청국어 취재에 든 역학 훈도(정 9품) 신경석은
이제 19살이다.
감영 역관을 대물림해온 집안이라 어릴 때부터 익힌 덕분에
소년 등과한 경우였다.
미관말직이나마 녹을 먹는 관리의 몸, 국난에 무심할 수는 없었다.
다가오는 재앙에 대비해 무어라도 해야.... 경석은 피가 끓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먼 나라를 오가는 역관에게 호신술은 필수.
석전石戰의 고장, 평양에서 자란 경석은 어릴 때부터 익힌 팔매로
토끼와 참새도 제법 잡는 수준이었다.
초췌한 두 병사는 경석이 내놓은 길양식을 아구아구 쳐먹으며
말도 많았다. 우마차가 다니기 힘든 도로사정 때문에 적의 보급 상태는
극악한 수준이라고 했다.
사람 외에 바퀴달린 것들은 거의 다닐 수 없는 조잡한 길.
조금 넓어졌다 이내 마차도 못 지날 정도로 좁아진다.
비만 오면 무너지고 패여 버린다.
논밭 사이를 지나다 돌연 잡목 우거진 산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가파른 산자락을 굽이굽이 감돌다 구름도 쉬어갈 드높은 재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 길로 행군하는 병사들은 개인장비는 물론 포탄까지 날라야 했다.
패인 도로에 바퀴가 빠진 대포를 끌고 마차를 막는 나무를 베고
바위도 치우는 사역에 수시로 동원되었다.
강을 만나면 배를 징발하는데 크기, 모양이 각각이라
부교 가설 또한 만만찮았다.
게다가 사공은 걸핏하면 도망가고...
도무지 쉬운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결국 치중대는 오로지 지게에만 의존하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한성에서 같이 출발한 전투부대와 치중대의 간격은
갈수록 벌어져
이제는 대엿새 거리만큼은 멀어졌을 거라 했다.
게다가 짐꾼들은 눈만 돌리면 사라지기 일쑤.
물자를 탐내서라는 투였지만
침략군에 대한 적개심이 보다 큰 이유이리라.
그렇다면...?
이들의 물자는 각자의 휴대품이 전부일 것이다.
배낭 속 건량과 30발의 탄약.
보급대 도착 전까지는 그것만으로 버텨야 한다는 얘기.
이건 중요정보였다.
‘빨리 알려야겠다!’
마음이 급해 일어서려는데 청군 병사가 보퉁이를 힐끔거린다.
보아하니 그냥 가려다가는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를 눈치다.
여기서 평양까지는 하룻길,
꾹 참고 그냥 한 끼만 굶으면 된다.
에라, 먹고 떨어져라.
보퉁이 채 던져주고 지름길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하룻길을 반나절 만에 주파한 나는
대동교가 지척인 평양성 근처까지 왔다.
비로소 안도하며 산길을 벗어나는 순간,
등짝에 느닷없는 충격...!
개머리판으로 경석을 때려눕힌 병사는 등을 밟으며 제압했고
또 한 명은 총을 겨누었다.
단발 후장식 무라타 소총.
어느새 평양성 턱밑까지 진출한 일본 척후병들이었다.
뭐라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선말로 대꾸하니 난감한 표정.
혹시나 해서 청국말을 해보니 반색했다.
“니, 듕구어 런? (너, 청국인이냐.)”
“아니다. 조선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말 하는가?”
신분이 탄로 날까 두려워 얼른 둘러댔다.
“평양은 청국과 가깝다. 그래서 청국 말 하는 사람 많다.”
“무엇하는 자인가?”
“장사꾼이다. 장사 일로 개성 다녀온다.”
병사는 길가에 부려놓은 가마니를 가리켰다.
“지고 따라와라.”
묵직한 게 아마도 곡식 같았다.
근데... 척후병이 식량을...?
보급이 나쁘단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벗어나기는 어려울 터, 순순히 가마니를 어깨에 둘러메었다.
한양에서 징발된 장위영 병력은 일본군에,
평양 위수병은 청군에 각각 배속되었다.
침략군을 따라 같은 조선군들끼리 총구를 맞댄 기막힌 꼬락서니에
백성들은 설레설레 머리를 저어며 탄식했다.
청군 측, 조선 지휘관은 평양감사 민병석閔丙奭.
병사들은 성곽을 중심으로 구축되는 20여 곳의
진지작업에 투입되었다.
평양성의 17-50세 남자들 또한 작업에 동원되었다.
13천 명의 청군은 다양한 구성의 혼성 부대였다.
성군 盛軍 (위여귀) 6천명
봉군 奉軍 (좌보귀) 3천 5백명
의군 毅軍 (마옥곤) 2천명
단련군 (풍신아) 1천 5백명
신임 총사령은 성환 전투의 패장 섭지초.
패전 사실을 숨긴 허위보고에 속은 북양군 총수
이홍장의 지시였다.
하지만 진상을 아는 부대장들은 뱁새눈의 신임 총사령을 비웃었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지휘부는 도무지 영이 서지 않아 우왕좌왕 했다.
대동강 측 남쪽 성벽을 지키는 봉군은 둥베이(만주) 부대.
그래서 생계형 비적출신이 많았다.
부대장 좌보귀는 전투로 잔뼈가 굵은 야전군.
경계의 중요성을 아는 그는 매일 두 차례씩의
성벽 외곽순찰을 어김없이 실시했다.
고된 진지구축 사역을 빠질 수 있고
잘하면 특식도 얻어걸리는 순찰조는 인기보직이었다.
5인 1조로 2리씩 맡아 성벽 바깥 십리를 순찰하는데
한꺼번에 10개조씩 움직이기 때문에 동원되는 병력은 매일 백 명도 넘었다.
오늘은 신병 장작림도 순찰조에 끼었다.
“조장님, 저기... “
키 높이로 빽빽이 우거진 옥수수 사이로 밭고랑을 따라
이동하던 작림이 손가락질했다.
드넓은 평원, 둥베이 출신들은 매처럼 멀리 본다.
순찰조의 막내 격인 작림은 그중에서도 눈이 좋은 편이었다.
“응, 일본군이군.”
조장은 손짓으로 대원을 모았다.
“둘은 밭을 질러 차단하고 나머진 따라와.“
포로에게 짐을 맡기고 느긋하게 걷던 일본 병사는
불쑥 나타난 청군에 화들짝 놀라 총을 잡았지만...
이미 늦었다.
총부리를 겨누며 조여드는 살기에 질려 멘 총은 풀지도 못하고
손부터 번쩍 들었다.
도망칠 기회만 노리던 경석은 둘러맨 가마니를 팽개치며 외쳤다.
“난 일본군이 아니오. 조선인 포로입니다.”
" ....... ?"
쓱 훑어본 순찰조 조장
“맞아, 차림새부터가 조선인이군. 어디서 잡혔나?”
“대동교 근처. 이들은 정탐하고 돌아가는 척후들입니다.”
“음, 팔은 내려도 좋다.”
끄덕인 조장은 작림을 지목했다.
“거기 막내, 이 자를 호송해라. 나머지는 포로들을 묶도록.”
노련한 고참 조장의 지휘에는 빈틈이 없었다.
경석은 호송을 맡은 어린 병사를 쓱 훑어보았다. 키는 작지만 야무진 인상.
“난 신가 경석이라고 하네.”
대범한 척 인사를 건네자 뜬금없다는 표정.
“헛, 이 마당에 무슨...”
쓴 웃음을 짓더니 이내 덧붙였다.
“난 장가, 작림이지만 보통은 위팅雨亭으로 통해.”
짝발로 서서 껄렁대는 태도가 정규군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이곳이 봉천 뒷골목이었다면 이건 주먹다짐 직전에 오가는
따끈따끈한 대사였으리라.
“반갑다. 위팅. 난 19살이고 역관이야.
평안감영의 역학 훈도지. 근데... 그쪽도 내 또래로 보인다?”
역학 훈도가 뭔지 알 턱이 없는 작림이다.
그냥 조선의 관원 나부랭이려니 하고는 잇몸을 드러내며 벌쭉 웃었다.
“타향에서 갑장甲長(동갑)을 만났군. 나도 19살이야.”
잠시 따라 걷던 경석이
“개성에 다녀오는 길이야. 오다 성환 전투 패잔병을 만났는데...”
귀를 기울이던 작림의 표정이 차츰 심각해졌다.
지금은 비록 봉군의 졸병주제이지만 비적들의 고장, 둥베이에서
잔뼈가 굵은 몸.
보급 끊긴 군대가 얼마나 한심한지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총탄 없는 총, 빈 대포는 몽둥이만도 못한 법.
반면에 이쪽은 최신장비(마우저 연발 소총, 75mm 야포 32문,
개틀링 기관포 6정)를 갖춘 북양군.
중요 정보였다.
그래서 고민이었다. 이걸 어떻게 지휘부에 알린다?
제대로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될 터인데.
원래 중요 정보는 지휘계통을 통하지 않는 법이었다.
왜곡되거나 빠지는 게 있을 수 있어 반드시 통수권자에게 직보해야 했다.
이는 정보관리의 기본이기에 비적들조차도 지키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배신과 술수가 판치는 비적세계를 보며 자란 작림은
그들의 비열한 습성 또한 안다.
치사하기로 따지면 관이나 비적이나 오십보백보다.
총사령 섭지초는 패전의 불명예를 만회할 수만 있다면
어떤 비열한 짓도 마다 않을 터.
전공에 눈먼 장령들은 공을 가로채기 위해 살인멸구 하러들지도....
게다가 섭지초 이하 장령들은 대부분이 한인,
모름지기 대장부라면 표리부동해야 한다는 희한한 생각을 가진 족속들이었다.
도무지 믿을 놈이 없다.
청군의 생리를 모르는 이 조선 역관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처지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창피한 집안사정을 까발릴 수도 없는 노릇.
답답했다.
여하튼 척후병을 생포했고 조선의 관원까지 구했으니 공로 아닌가?
어쩌면 부대장 좌보귀 장군이 직접 포상할 지도,
그때를 한번 노려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