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閨情)
여인의 마음
이옥봉(李玉峰, ? ~? )
온다던 님은 어이해 이리 늦을까
뜨락에 핀 매화는 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들리는 나무 위의 까치 소리에
공연히 거울 보며 눈썹만 그린다오.
有約郞何晩(유약랑하만)
庭梅欲謝時(정매욕사시)
忽聞枝上鵲(홀문지상작)
虛畵鏡中眉(허화경중미)
봄이 오면 돌아오겠다는 낭군의 약속이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님은 봄이 다 가
더럭 오질 않는다. 애초부터 약속이나 말 것이지. 오늘은 오시려나 매화나무
에 꽃이 맺힐 때부터 기다린 지 몇 날인가. 꽃이 지려는 데도 님은 여전히 안 오
신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고 해서 기대를 했건만 몇 번이나 속았는
가. 오늘도 꽃이 시들어가는 매화나무 가지 위에서 까치가 운다. 또 한 번의 속으
려니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화장을 고치고 있다. 이옥봉은 서얼 출신이기에 정
실부인이 못되고 첩이 되었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부질없이 화장을 고쳐
보는 애처로운 기다림의 몸짓이 태어날 때부터 씌워진 고통이 멍에를 거부할
줄 모르는 순종의 비극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작가소개]
이옥봉[ 李玉峰 ]
<요약>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으로 중국에도 이름이 알려졌으며 맑고 씩씩함이 느껴지는 시를 남겼다. 중국과 조선에서 출간된 시집에 허난설헌의 시와 함께 실려있다.
출생-사망 : ? ~ ?
호 : 옥봉
활동분야 : 시인
주요작품 : 《영월도중》 《만흥증랑》 《추사》 《자적》 등
조선중기 16세기 후반인 선조 때 옥천(沃川) 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의 서녀(庶女:소실의 딸)로 이후 조원(趙瑗)의 소실이 되었다. 어려서 부터 부친에게 글과 시를 배웠으며 영특하고 명민하여 그녀가 지은 시는 부친을 놀라게 하였다. 서녀의 신분이었기에 정식 중매를 넣을 수 없었으며 학식과 인품이 곧은 사람인 조원(趙瑗)의 소실(小室)로 들어가기를 결심하였다. 이에 부친 이봉은 친히 조원을 찾아가 딸을 소실로 받아줄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조원의 장인인 판서대감 이준민(李俊民)을 찾아가 담판하고 비로소 받아들여졌다.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선조 때 승지에 오른 조원(趙瑗)의 첩으로 들어간 옥봉은 이후 다른 소실들과 서신으로 예술적 교류를 나누는가 하면 조원의 친구 윤국형(尹國馨) 또한 지사의 기개가 엿보이는 그녀의 시에 감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녀가 써준 시 한편이 관가의 사법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필화사건'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조원의 화를 사게되어 결국 친정으로 내쳐지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전란 중에 사망하였다. 옥봉은 중국 명나라에까지 시명이 알려진 여류시인으로서 그녀의 시는 맑고 씩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중국과 조선에서 펴낸 시선집에는 허난설헌의 시와 나란히 실려 있다. 조원의 고손자인 조정만(趙正萬)이 남긴《이옥봉행적》에 그녀에 대한 행적이 일부 남아 있으며《명시종(明詩綜)》, 《열조시집(列朝詩集)》, 《명원시귀(名媛詩歸)》등에 작품이 전하고 있다. 한 권의 시집(詩集)이 있었다고 하나 시 32편이 수록된 《옥봉집(玉峰集)》 1권 만이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으로 전한다. 작품으로는 대표작《영월가는 길:영월도중(寧越途中)》, 《만흥증랑(謾興贈郞)》, 《추사(秋思)》, 《자적(自適)》, 《증운강(贈雲江)》, 《규정(閨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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