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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무령왕 발받침
무령왕 발받침(武寧王 足座)은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장의용 나무 발 받침으로 왕의 발 받침대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왕의 발을 받치기 위한 장의용 나무 발 받침이다.
윗부분이 넓고 아랫부분이 좁은 사다리꼴 통나무의 중앙을 W자로 깊게 파서 양 발을 올려놓게 만들었다. 전면에 검은색 옻칠을 하고 폭 0.7㎝정도의 금판을 오려 거북등 무늬를 만들었으나 일부는 떨어져 없어졌다. 6잎의 금꽃을 거북등 무늬 모서리와 중앙에 장식하고, 꽃판 가운데에 옛날 부인의 머리장식 중 하나인 보요(步搖)를 매달아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국보 무령왕 금귀걸이
무령왕 금귀걸이(武寧王 金製耳飾)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금 귀고리 한 쌍으로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56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금 귀고리 한 쌍으로 길이는 8.3cm이다. 왕의 널(관)안 머리 부근에서 발견되었으며, 호화로운 장식이 달려있다.
굵은 고리를 중심으로 2가닥의 장식을 길게 늘어뜨렸다. 하나는 속이 빈 원통형의 중간 장식 끝에 금판으로 된 커다란 나뭇잎 모양의 장식을 달았다. 이 장식은 무늬가 없어 간소하지만 앞·뒷면에 타원형의 작은 잎을 하나씩 붙여 변화를 주었다. 옆으로 보면 안이 굽은 모습을 하고 있다. 원통형의 중간 장식에는 금선과 금구슬을 이용해 장식한 마개가 있고, 서로 마주보게 나뭇잎 모양의 장식을 둘렀다. 다른 한 가닥은 여러 개의 작은 고리로 이루어진 구슬 모양의 장식에 나뭇잎 모양의 장식을 연결하고, 끝에는 금모자를 씌운 푸른 곱은 옥을 매달아 금색과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이런 2줄의 귀고리는 경주 금령총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다.
국보 무령왕 금제 관식
무령왕 금제관식(武寧王 金製冠飾)은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의 금으로 만든 왕관(王冠) 꾸미개(장식) 한쌍이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의 금으로 만든 왕관(王冠) 꾸미개(장식) 한쌍이다.
높이는 각각 30.7cm, 29.2cm이고, 너비는 각각 14cm, 13.6cm이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조사되었을 때, 왕의 널(관) 안쪽 머리 부근에서 포개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금판을 뚫어서 덩굴 무늬를 장식했으며, 밑으로는 줄기가 있는데 아래위로 2~3개의 작은 구멍이 있어 무엇인가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좌우로 벌어진 줄기 중간에는 꽃 무늬를 배치하였으며, 줄기가 길게 연장되면서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두 가닥은 아래로 향하게 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앞면에는 전체에 걸쳐 구슬모양 꾸미개를 금실로 꼬아서 달았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무령왕(재위 501∼522)과 왕비의 무덤으로, 벽돌을 이용해서 만든 벽돌무덤(전축분)이다. 출토된 유물들은 6세기 전반 백제 문화의 수준과 묘제,사장 등의 일면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중 지석(誌石)은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최초로 무덤에 묻힌 주인과 만든 시기를 확실히 밝혀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국보 무령왕 금제 뒤꽂이
금제 뒤꽂이(武寧王 金製釵)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금으로 만든 뒤꽂이 일종의 머리 장신구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금으로 만든 뒤꽂이 일종의 머리 장신구이다. 무령왕릉 나무널(목관) 안 왕의 머리에서 발견되었으며, 길이는 18.4cm, 상단의 폭은 6.8cm이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역삼각형 모양이며, 밑은 세가닥의 핀 모양을 이루고 있어 머리에 꽂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삼각형의 윗부분은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고, 3가닥으로 갈라진 꽂이 부분은 긴 꼬리처럼 되어 있어 마치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 날개쪽 좌우에는 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찍었고, 그 아래는 서로 대칭으로 덩굴무늬를 빈틈없이 메꿔 놓았다. 새의 머리와 날개 부분의 테두리는 끌 끝으로 찍은 작은 점들이 열지어 있다. 여기서 사용된 문양은 모두 뒤에서 두들겨 솟아 나오게 한 타출법(打出法)을 사용하였고, 세부 표현에는 선으로 새기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왕의 머리부분에서 발견되었고, 끝이 3개로 갈라진 점으로 보아 의례 때 쓰인 머리 장식품으로 보인다.
무령왕릉 청동거울(청동제수대경, 靑銅製獸帶鏡, 왕비)
무령왕릉 청동거울(청동제의자손수대경, 靑銅製宜子孫獸帶鏡, 왕)
무령왕릉 청동거울(청동제방격규구신수문경, 靑銅製方格規矩神獸文鏡, 왕)
국보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武寧王陵 銅鏡一括)은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로 청동신수경, 손명수대경, 수대경 3점이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무령왕릉의 청동거울은 널방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왕쪽에서는 방격규구신수문경과 의자손수대경이, 왕비쪽에서는 수문경이 나왔다. 같은 틀에서 만들어져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거울들이 우리나라와 일본 고분에서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거울이 국가간의 교류를 통해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개요
신수문경
방격규구신수문경은 뒷면의 거울걸이를 중심으로 4각의 구획이 있고 그 주위에 신수를 표현하였다. 거울에 묘사된 사람은 신선을 표현하듯, 머리에는 상투를 틀고 반나체에 삼각하의만 입은 모습이며 손에는 창을 들고 4마리의 큼직한 짐승들을 사냥하는 모습이다. 손잡이 주위에는 4각형의 윤곽을 만들고 작은 돌기들을 배열한 다음 그 사이에 12간지의 글씨를 새겨 놓았다. 청동신수경은 ‘방격규구문경’이라는 중국 후한의 거울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거울 내부에는 반나체 인물상과 글은 한나라의 거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손수대경
의자손수대경은 가죽끈이 끼워져 있는 거울걸이 아래에 의자손이라는 글씨와 짐승모양이 새겨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거울 중앙의 꼭지를 중심으로 9개의 돌기가 있고, 안에는 크고 작은 원과 7개의 돌기가 솟아있다. 내부 주위의 테두리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나 선명하지 못하여 알아볼 수 없다. 중국 한대의 수대경을 본떠 만든 복제품이다.
수대문경
수대문경은 거울 중앙의 꼭지를 중심으로 9개의 작은 돌기가 있다. 안쪽에는 크고 작은 원이 있고 그 사이에 7개의 둥근 돌기와 네 명의 신선, 세 마리의 상서로운 동물무늬가 가는 선으로 새겨져있다. 수대경 역시 한나라 때 동물 문양을 새겨 넣은 수대경을 본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 거울에 비해 선이 굵고 무늬가 정교하지 못하다.
세부 목록
번호 명칭 소재지 관리자
161-1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 신수문경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국립공주박물관
(武寧王陵 銅鏡一括 - 神獸文鏡)
1974년 7월 9일 국보 지정
161-2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 의자손명 수대문경
(武寧王陵 銅鏡一括 - 宜子孫銘 獸帶文鏡)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국립공주박물관
1974년 7월 9일 국보 지정
161-3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 수대문경
(武寧王陵 銅鏡一括 - 獸帶文鏡)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국립공주박물관
1974년 7월 9일 국보 지정
무령왕비 금목걸이
(무령왕비 금제구절경식, 武寧王妃 金製九節頸飾, 금제아홉마디목걸이)
무령왕비 금제일곱마디목걸이
(금제칠절경식, 金製七節頸飾, 王妃)
국보 무령왕비 금목걸이
무령왕비 금목걸이(武寧王妃 金製頸飾)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무령왕비의 목걸이로, 길이는 각각 14cm, 16cm이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무령왕비의 목걸이로, 길이는 각각 14cm, 16cm이다. 9마디로 된 것과 7마디로 된 것 2종류가 있는데, 발굴 당시 7마디 목걸이가 9마디 목걸이 밑에 겹쳐져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활 모양으로 약간 휘어진 육각의 금막대를 끝으로 갈수록 가늘게 하여 고리를 만들고 다른 것과 연결시켰다. 고리를 만들고 남은 부분을 짧은 목걸이의 경우 10∼11회, 긴 목걸이는 6∼8회 감아서 풀리지 않게 하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연결된 금막대마다 고리를 만들고 마무리를 한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2개의 목걸이 모두 한쪽 끝에 몸에 걸기 위한 작은 고리가 끼워져 있을 뿐 다른 장식은 하지 않은 간단한 구조를 하고있다. 현대적 감각과 함께 매우 세련되어 보이는 작품이다.
국보 무령왕비 은팔찌
무령왕비 은팔찌(武寧王妃 銀製釧) 혹은 무령왕대부인 은팔찌(武寧王大夫人 銀製釧)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 왕비의 나무널(목관)내 왼쪽 팔 부근에서 발견된 한 쌍의 은제 팔찌로 바깥지름 8cm, 고리지름 1.1cm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전시하고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0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 왕비의 나무널(목관)내 왼쪽 팔 부근에서 발견된 한 쌍의 은제 팔찌로, 바깥지름 8cm, 고리지름 1.1cm이다. 팔찌 안쪽에는 왕후나 왕비가 아닌 대부인(大夫人)이라 기록되어 있어, 팔찌 주인이 생전에 무령왕의 정식 왕비가 아닌 것으로 추정되며, 왕비나 왕후로 책봉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520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나, 대부인이라는 칭호를 보아 성왕 즉위 이후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팔목이 닿는 안쪽에는 톱니 모양을 촘촘히 새겼고, 둥근 바깥면에는 발이 셋 달린 2마리의 용을 새겼다. 용의 조각은 세밀하지는 않으나 힘에 넘친 모습이며 팔찌의 외관을 감싸고 조각되었다.
한 개의 팔찌 안쪽에 새긴 명문에 의하면 왕비가 죽기 6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나 이견의 여지가 있다. 그밖에 팔찌에는 주인의 칭호 외에 만든 사람의 이름과 무게 등이 기록되어 있다.
대부인의 묘지석에는 백제국 왕태비(百濟國 王太妃)라 기록되었으나, 생전 착용했을 은팔찌에는 대부인이라는 칭호가 새겨졌다. 생전 팔찌의 주인은 왕비, 왕후, 왕태후의 신분이 아니었으나 사후 왕태비로 추존된 것이다. 용의 조각이 웅건하면서 만든시기와 작가, 중량까지 기록된 삼국시대의 유일한 팔찌로서 고대 금속공예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무령왕비 금귀걸이(전체길이 8.8cm, 지름 2.2cm)
무령왕비 금귀걸이(전체길이 11.8cm, 지름 2.1cm)
국보 무령왕비 금귀걸이
무령왕비 금귀걸이 (武寧王妃 金製耳飾)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때 귀고리 2쌍으로 길이는 각각 11.8cm, 8.8cm이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57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때 귀고리 2쌍으로 길이는 11.8cm, 8.8cm이다. 왕비의 귀고리로, 굵은 고리를 중심으로 작은 장식들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한 쌍은 복잡한 형식으로 길고 짧은 2줄의 장식이 달려 있고, 다른 한 쌍은 1줄로만 되어있다. 앞의 귀고리 중 긴 가닥은 금 철사를 꼬아서 만든 사슬에 둥근 장식을 많이 연결하였으며, 맨 밑에는 작은 고리를 연결하여 8개의 둥근 장식을 달고 그 아래 탄환 모양의 장식을 달았다.
짧은 줄의 수식은 다른 한 쌍의 것과 거의 같은 수법이나 탄환 장식은 달지 않고, 잎사귀 모양의 장식과 담록색의 둥근 옥을 달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에 각 1쌍씩 보관되어 있다.
국보 무령왕비 베개
무령왕비 베개(武寧王妃 頭枕) 혹은 무령왕대부인 베개(武寧王大夫人 頭枕)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장의용 나무 머리 받침으로 왕비의 머리 받침대이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4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왕비의 머리를 받치기 위한 장의용 나무 베개로, 위가 넓은 사다리꼴의 나무토막 가운데를 U자형으로 파내어 머리를 받치도록 하였다. 표면에는 붉은색 칠(朱述)을 하고 금박을 붙여 거북등 무늬를 만든 다음, 그 무늬 내부마다 흑색·백색·적색 금선을 사용하여 비천상이나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봉황, 어룡(魚龍), 연꽃, 덩굴무늬 등을 그려 넣었다.
베개의 양 옆 윗면에는 암수 한 쌍으로 만들어진 목제 봉황머리가 놓여 있는데, 발굴 당시에는 두침 앞에 떨어져 있었던 것을 부착하였다.
왕의 머리 받침은 거의 부식되어 두 토막만이 남아 있어 형체를 알 수 없다.
武寧王陵 誌石, 묘지석(왕), 墓誌石(王)
武寧王陵 誌石, 묘지석(왕비), 墓誌石(王妃)
국보 무령왕릉 지석(武寧王陵 誌石)
무령왕릉 지석(武寧王陵 誌石)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지석으로 2매로,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3호 지석(誌石)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개요
이 지석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지석으로 2매이다. 이 2매의 지석은 왕과 왕비의 장례를 지낼 때 땅의 신에게 묘소로 쓸 땅을 사들인다는 문서를 작성하여 그것을 돌에 새겨넣은 매지권으로,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될 때 함께 출토되었다.
왕의 지석은 가로 41.5cm, 세로 35cm이며, 표면에 5∼6cm의 선을 만들고 그 안에 6행에 걸쳐 새겼다. 왕의 기록은『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뒷면에는 주위에 네모나게 구획선을 긋고 그 선을 따라 12방위를 표시하였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쪽 부분은 표시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왕비의 지석인데 가로 41.5cm, 세로 35cm이며, 2.5∼2.8cm 폭으로 선을 긋고 4행에 걸쳐 새겼다. 선을 그은 부분은 13행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공백으로 그대로 남겨 두었다. 뒷면에는 매지문(買地文:땅을 샀다는 문서)을 새겼다. 원래 매지권은 무령왕을 장사지낼 때 만들어진 것인데 그 후 왕비를 합장하였을 때 이 매지권의 뒷면을 이용하여 왕비에 관한 묘지문을 새겼던 것이다.
이 지석은 삼국시대의 능에서 발견된 유일한 매지권으로서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있게 한 것으로, 여기에는 당시 백제인들의 매장풍습이 담겨져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다른 유물들과 함께 6세기 초 백제와 중국 남조와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백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武寧王陵 石獸,
진묘수, 鎭墓獸, 무덤을 지키는 동물
국보 무령왕릉 석수(武寧王陵 石獸)
무령왕릉 석수(武寧王陵 石獸)는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만들어진 석수로,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로 짐작되며,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발굴보고서에 재료가 응회암이라고 나오나, 확인이 필요하다.
개요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만들어진 석수이다.
석수(石獸)란 좁게는 궁전이나 무덤 앞에 세워두거나 무덤 안에 놓아두는 돌로 된 동물상을 말한다.
무령왕릉 석수는 높이 30.8cm, 길이 49cm, 너비 22cm로 통로 중앙에서 밖을 향하여 놓여 있었다. 입은 뭉뚝하며 입술에 붉게 칠한 흔적이 있고, 콧구멍 없는 큰 코에 눈과 귀가 있다. 머리 위엔 나뭇가지 형태의 철제 뿔이 붙어있다. 몸통 좌우, 앞·뒤 다리에는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날개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꼬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배설 구멍이 달려 있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무덤 수호의 관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이다.
국보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公州 儀堂 金銅菩薩立像)은 1974년 공주시 의당면 송정리 절터에서 출토된 보살상이다. 1989년 4월 10일 대한민국 국보 제247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1974년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송정리의 한 절터에서 출토된 보살상으로, 높이는 25cm이며,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머리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는데, 가운데에 작은 부처가 표현되어 있어 관음보살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마는 머리카락이 반쯤 내려와 덮고 있으며, 양 옆으로 땋은 머리는 귀를 덮고 어깨까지 길게 내려왔다. 4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눈·코·입을 큼직하고 시원스럽게 표현했으며,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있다. 목에는 긴 목걸이를 하고 있는데, 그 목걸이에 연결된 구슬띠가 가슴 아래로 내려오다가 두 갈래로 갈라져 양쪽 무릎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체에 밀착된 얇은 옷은 넓은 양 어깨로부터 내려와 배 아래부근에서 X자로 교차되었다. 팔에 걸친 옷자락은 양 옆으로 내려와 대좌(臺座)를 덮으면서 돌출되었다. 옷자락에 표현된 주름은 조각이 깊고 힘차게 되어있어 평온한 얼굴 표정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양 손에는 팔찌를 끼고 있는데, 오른손은 가슴부분까지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연꽃봉오리를 잡고 있으며, 아래로 내린 왼손에는 보병(寶甁)을 쥐고 있다. 보살이 서 있는 대좌는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표면에는 엎어놓은 8장의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튀어나온 부분의 도금이 일부 벗겨졌을 뿐 금색이 우수하고 출토된 곳이 확실한 보살상으로 안정된 표현기법과 배꼽부분에서 교차된 구슬장식, 둥근 연꽃무늬 대좌 양식 등에서 7세기 백제 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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