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창작과 비평>(1992)-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낭만적, 주정적, 상징적, 애상적
◆ 표현 : 이별의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독백체의 목소리
이별한 임을 잊지 못하는 애틋한 목소리
동일한 시어의 반복을 통해 화자의 정서를 부각시킴.
( ~ 이더군 : 현실 인식과 깨달음, ~ 그대여 : 이별한 이에 대한 애절한 심정 )
시간의 대비( 잠깐, 순간 ↔ 영영, 한참 )
자연 현상(꽃이 피고 지는 것)을 인간사(만남과 이별의 상황)에 비유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꽃 → 선운사 동백꽃, 자연물이자 '님'의 상징물
* 피는 건 힘들어도 → 만남의 상황
* 지는 건 잠깐이더군 → 이별의 상황
* 님 한 번 생각할 틈도 없이 → 꽃과 님이 동일시되는 부분
* 내 속에서 피어날 때 → 그대를 만나서 사랑이 시작될 때
* 그렇게 → 꽃이 지는 것처럼
* 순간이면 좋겠네 → 쉽게 잊기 어렵다.
* 3연 → 공간적 거리감을 통해 이별의 상황을 암시함.
* 멀리서 웃는 → 사랑의 감정
* 산 넘어 가는 → 이별의 암시
* 영영 한참이더군 → 잊기 어려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함.
◆ 제재 : 꽃
◆ 주제 :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하는 마음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낙화의 순간성
◆ 2연 : 잊혀지지 않는 사랑
◆ 3연 :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 4연 : 잊혀지지 않는 사랑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잊는 과정으로 대비시켜, 이별한 사람을 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표현한 시이다
이 시에서 중심이 되는 시상의 흐름은 '꽃이 피는 것이 힘들다', '꽃이 지는 것이 잠깐이다', '꽃을 잊는 것은 한참이다'로 연결된다. 이것을 임과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잊혀짐으로 대비시켜 보면 '임과의 만남은 길다', '임과의 이별은 잠깐이다', '임을 잊는 과정은 길다' 와 같이 된다. 이와 같이 이 시는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보편적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이 선운사에서 활짝 핀 동백꽃을 보고, 임과 이별한 자신의 처지와 대비시켜 표현한 시로 볼 수 있다.
꽃이 피고 지는 자연 현상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이라는 인간사를 병치시켜 이별의 슬픔과 임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선운사에서 '꽃'이 지는 모습을 보고 헤어진 사람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아주 잠깐' 사이에 지는 '꽃'과 달리 '영영 한참' 동안 지속되던 이별의 고통을 독백의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이별로 인한 마음의 쓰라림을 다스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작가소개]
최영미 : 시인
출생 : 1961. 9. 25.
학력 :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미술사 석사
데뷔 : 1992년 창작과 비평
수상 : 2006년 제13회 이수문학상 시부문
경력 : 2011.02 국회도서관 홍보대사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으로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서지현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투 운동을 연 결정적인 인물들 중 하나이다.
군인인 아버지[1]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대학 2학년이던 198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내시위에 가담하여 관악서에서 구류 10일을 살고 1년간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대학졸업 후에 반독재투쟁을 위해 만들어진 비합법조직 '제헌의회그룹'의 사회주의 원전 번역팀에 들어가 칼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물을 공동번역하기도 했으며, 칼 마르크스의 저작 《자본론》을 《자본 1》(이론과 실천사)로 번역 출간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소비에트 정권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최영미는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되는 심각한 변화를 글로 표현하려 노력하였다.
1992년『창작과비평』겨울호에「속초에서」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94년 문단 및 대중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내고, 그 이후 시인과 소설가 및 미술 평론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2017년 시 [괴물]로 문단의 거목 고은의 성폭력을 고발하며 시인에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했다.
1994년 간행된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언어, 일상의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정확한 비유, 자본과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문단을 넘어 한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시집은 출간되자마자 세대를 초월해 폭넓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1994년 한 해 동안 50만 부 이상의 판매기록을 세우는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이후에 계속 시집을 발간하여 현재까지 6권의 시집을 냈다. 최영미의 시들은 남녀의 사랑, 가족의 사랑, 스포츠 그리고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풍자를 하면서 독자적인 시 영역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너무나도 성공적인 첫 시집 때문에 이후의 시들이 좋은 작품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받는 경향도 있지만, 2006년 이수 문학상 수상(<돼지들에게>)과 2013년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반기 우수문학도서 선정(<이미 뜨거운 것들>)으로 미루어볼 때 최영미 시의 작품성이 지속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80~1990년대 민주화 세대의 빛과 그림자를 노래한 이 시집은 현재까지 무려 52쇄를 찍어 시집으로는 보기 드문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2] 2015년 11월 21년 만에 개정판을 내기도 했다. 이 시집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대의 반성적 성찰이라는 내용 외에도 대단히 직설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언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 출신에 학생운동 전력이 있으며, 상당한 미모를 갖췄다는 점까지 더해지면서 그녀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당시 최고의 유행어가 되었다. 일부 평론가와 독자들은 그 시집에 대해 '운동권 추억담의 상업적인 재생산'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지만, 그 시집이 제기한 80년대 삶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간과할 수 없는 문학적 성취임이 분명하다.
2005년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변신했다. 그 뒤로 '청동정원' 등의 장편소설을 썼고, 산문집 '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일기',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등을 썼다. 또한 미술과 축구에 관한 여러 권의 산문집도 발표하는 등 폭 넓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