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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건물 전경. ⓒ미 국무부 홈페이지
미국 국무부에서 올해 3월 20일 장애인, 아동, 이주민 등의 차별·학대 등을 다룬 2022년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했다. 1961년과 1974년에 각각 제정된 대외원조법과 무역법에 근거해, 원조를 제공받는 모든 국가들과 UN 회원국에 대한 이 인권보고서를 미국 의회에 제출한단다. 미국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각국과의 경제 및 외교정책·전략을 수립하기도 한다.
인권보고서 가운데, 대한민국 장애인 인권 현실에 대한 보고는 약 1페이지 정도였다, 접근권과 코로나 19 때의 인권 이슈, 장애인 비하·혐오, 거주시설 인권침해, 교육권 등이 주로 다뤄졌다.
먼저 접근권의 경우 ▲건축물의 편의시설 의무설치 시행령에서 바닥면적 300제곱미터 이상의 경우에만 적용되어 장애인이 일부 건물에 접근할 수 없고, ▲접근성 있는 대중교통의 부족으로 인해 특히 저상버스의 보편화를 위한 장기 시위로 이어졌다는 점을 보고했다.
코로나 19 때의 인권 이슈와 관련해선 지역 기관들이 공공보건정보에 대한 접근성 있는 정보 플랫폼이나 강제 자가격리 기간 동안 장애인에 대한 특수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적과 이들의 정책을 비하하고자 차별적 언어를 사용하면서 차별을 부추기고 영속화시킨 점은 장애인 비하·혐오와 관련한 현실로 소개했다.
거주시설 인권침해의 경우엔 작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 장애인 시설에서의 인권침해로 추정되는 사건에 대해 검찰의 강력 조사를 촉구한 내용이 들어갔다. 거주시설 거주인이 화장실 변기에 묶이고, 화장실과 창고시설 등을 청소하는 등의 강제노동을 당했기에 검찰의 강력조치를 인권위에서 권고했던 점이 보고서에 기록됐다. 거주인이 배변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고, 인력 부족으로 인해 시설의 청결 유지를 위해 거주인을 변기에 묶었다는 시설 측의 해명 내용도 있었다.
교육권과 관련해선 장애아동이 일반 공립학교 및 분리된 특수교육 학교 시스템에 대해 아동의 필요에 따라 접근성이 있었으며, 모든 정기 아동돌봄 및 교육시설에선 장애아동에게 합리적 조정을 제공해야만 했다고 기록됐다. 이외에도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고용률이 낮다는 통계가 있고, 고용 이후엔 비정규직 업무를 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보고도 있었다.
보고서를 읽으며, 미수정되거나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내용이 있었다. 먼저 접근권과 관련해 건축물의 편의시설 의무설치 대상은 바닥면적이 50제곱미터 이상부터로 바뀐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작년 5월 2일부터 시행했다는 내용을 적시하지 않았기에 수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수정되진 않았어도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안 이전이든 이후든 건축 일자, 바닥면적, 수용규모 등에 따라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설치대상을 규정해 장애인의 시설·건물 접근권 차별을 공고화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에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생활편의시설 장애인 접근 및 이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11일 광화문 광장에서 장애인의 생활편의시설 접근과 이용을 위해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연 모습. ⓒ에이블뉴스DB
또한, 장애아동이 일반 공립학교 및 분리된 특수교육 학교 시스템에 대해 아동의 필요에 따라 접근성이 있었다고 했는데, 사실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 쉬운 교수적 수정 등의 합리적 조정을 통해 실질적인 통합교육을 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그리고 아동의 필요보단 장애 진단에 따라 교육이 이뤄짐을 생각하면, 이런 보고는 거짓에 가깝기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우리나라 장애인단체에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요구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미 국무부의 대한민국 인권보고서 장애인 관련 내용엔 부족함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장애인과 장애인계 등은 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이 보고서를 활용할 가능성을 생각해볼 만하다. 예를 들어, 현재 장애인계는 탈시설과 관련해 선택 또는 권리란 점을 갖고 논란 중이다. 한 장애인단체에선 탈시설은 권리라고 얘기했지만, 서울시에선 시설은 선택이라며, 시설 거주인과 시설수용 생존자를 포함한 장애인과 장애계 염원을 무시하며 생까고 있다.
그런데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선 탈시설은 선택이 아닌 권리요, 시설수용은 복지서비스가 아닌 감금임을 분명히 하고 있고 그 이유는 이전 칼럼들에서 설명했기에 더 이상 언급하진 않겠다. 인권보고서 내용에 실제로 들어가진 않았지만, 만약 장애인의 권리인 탈시설이 지지부진하다는 내용이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에 들어갔다고 상상해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윤석열 정권 비롯해 역대 정권들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라는 명목과 이유로 미국의 눈치를 봤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 정부가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를 적어도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거고, 보고서에 탈시설이 지지부진하단 내용이 있다면, 미국 눈치를 봐야 하니, 서울시 등의 지자체와 정부에서 탈시설 논란 그만하고 어떻게 하면 탈시설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작은 계기라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작은 시늉이라도 하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다.
다만 이런 걸 통해 미국이 내정간섭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도록 하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가 탈시설 같은 이슈들을 진정으로 이행한다면 그런 걸로 미국이 내정간섭을 할 일은 더는 생기지 않겠지.
이번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를 통해, 교육권 보장된다는 거짓 정보에, 접근권에 대한 사실 일부 누락 등 아쉬움이 느껴지지만, 인권적 관점으로 사실에 기반해 정확한 정보만 보고서에 잘 기재되면 정부·지자체를 효과적으로 압박하게 돼 장애인 권리증진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겠단 기대감은 든다. 물론 인권보고서에 장애인권리협약 내용이 많이 나오도록 미국도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장애계 단체와 시민단체, 장애인 당사자들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이란 목적을 현실화하기 위해 투쟁도 하고 장애인권리위원회에 보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 국무부와 같은 해외의 유력 정부 기관들에서 발간하는 인권보고서에도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 장애인 인권 현실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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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