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243〉
■ 얼은 강을 건너며 (정희성, 1945~)
얼음을 깬다.
강에는 얼은 물
깰수록 청정한
소리가 난다.
강이여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물은 남몰래 소리를 이루었나.
이 강을 이루는 물소리가
겨울에 죽은 땅의 목청을 트고
이 나라의 어린 아희들아
물은 또한 이 땅의 풀잎에도 운다.
얼음을 깬다.
얼음을 깨서 물을 마신다.
우리가 스스로 흐르는 강을 이루고
물이 제 소리를 이룰 때까지
아희들아.
- 1974년 시집 <답청 踏靑> (창작과 비평사)
*오늘도 한낮에도 영하를 벗어나지 못하는 강추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혹한(酷寒)으로 인해 물의 도시 충주는, 도시를 관통하는 큰 강인 달천강, 남한강이 가장자리에서부터 얼어붙기 시작하며 겨울왕국으로 변해가는 중입니다.
그러나 강이나 호수에 얼음이 아무리 두껍게 얼어붙어도 인적 하나 없는 썰렁한 모습을 보며, 겨울에도 밖에 나가서 연날리기를 하며 놀거나 얼음이 꽝꽝 언 작은 둠벙이나 얕은 호수에서 썰매를 타던 유년시절이 잠시 떠오르는군요.
이 詩는 겨울날 얼은 강을 건너며 강물마저 꽁꽁 얼어붙은 상황이 그 당시 암울했던 정치 현실, 즉 유신독재 시절과 같다고 인식하며 에둘러서 표현한 작품입니다.
시인은 독재정권 하의 부정적인 현실을 ‘얼은 강’으로 나타내고, 그런 현실을 극복하여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얼음을 깨는 행위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얼음이 깨져 생기는 물소리는 올바른 사회로 나아가는 노력으로, 그 소리가 결국 이 땅의 민중인 풀잎에까지 미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얼음을 깨는 행위의 주체가 되는 역할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고교 교사인 시인은, 특히 미래의 주역인 제자들과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유를 맘껏 향유하고 있는 요즘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詩를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던 7/80년대의 얼어붙은 상황을 쉽게 이해될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Choi.
첫댓글 얼음을 깬다.
강에는 얼은 물
깰수록 청정한
소리가 난다.
강이여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물은 남몰래 소리를 이루었나.
이 강을 이루는 물소리가
겨울에 죽은 땅의 목청을 트고
이 나라의 어린 아희들아
물은 또한 이 땅의 풀잎에도 운다.
얼음을 깬다.
얼음을 깨서 물을 마신다.
우리가 스스로 흐르는 강을 이루고
물이 제 소리를 이룰 때까지
아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