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야사(靜夜思)
님 그리는 밤
차천로(車天輅, 1556~1615)
만날 길 없는 사랑이 무슨 사랑인가요
달콤한 사랑도 잠깐뿐이었어요
외로운 꿈길은 변방이 얼마나 먼 줄 몰라
달빛 따라 해매다 하늘 끝에 닿지요
相思無路莫相思(상사무로막상사)
暮雨遙雲只暫時(모우요운지잠시)
孤夢不知關邊遠(고몽부지관변원)
夜隨明月到天涯(야수명월도천애)
변방의 전쟁터로 나간 남편을 그리는 여인의 외로움을 표현한 애틋한 서정
시다. 남편이 있는 국경 지역은 너무 멀어 꿈에서만 갈 수 있다. 그리운 마음에
매일 밤 꿈속에서 달빛 따라 하늘 끝을 헤맨다. 이 시대에도 부부가 생이별하여
떨어져 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해외 근무나 자녀의 조기유학 등으로 부부가
따로 사는 것에 비하면 주말부부는 오히려 애교스럽다. 1년에 한두 차례 만나는
기러기아빠, 경제적으로 시간상으로 여건이 안 되어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하
는 펭귄아빠도 있다. 본인들이 어렵게 선택한 결단이겠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
들은 안타까울 뿐이다.
[작가소개]
차천로[ 車天輅 ]
시대 : 조선 중기
출생-사망 : 1556 ~ 1615
분야 : 서예
직업 : 문신, 서예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복원(復元), 호는 오산(五山) · 난우(蘭嵎) · 귤실(橘室) · 청묘거사(淸妙居士),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고려시대 간의대부 차원부(車原頫)의 6대손이며, 부친은 평해군수를 지낸 차식(車軾)이다. 1577년에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개성교수를 지내고, 1583년 문과중시(重試)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86년 정자로서 고향 사람 여계선(呂繼先)이 과거를 볼 때 표문(表文)을 대신 지어주어 장원급제시킨 일이 발각되어 명천(明川)에 유배되었다가 1588년 문재(文才)가 있어 용서되어 이듬해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그때 얼마 되지 아니한 기간이었으나 4,000~5,000수의 시를 지어 일본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명나라에 보내는 대부분의 외교문서를 담당하여 문명이 명나라까지 떨쳐 동방문사(東方文士)라는 칭호를 받았다. 당시에 한호 · 권필 · 김현성과 더불어 서격사한(書檄詞翰)이라 하였다. 이여송이 돌아가게 되어 그 일행을 환송하게 되었을 때 차천로가 하룻밤에 한시 600운(韻)을 지어 수응(酬應)하여 이름을 더욱 떨쳤다. 이에 당시 명의 사신 주지번(朱之蕃)은 동방의 문사를 논할 때 차천로를 으뜸으로 치게 되었다. 한시에 뛰어나 한호의 글씨, 최립의 문장과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리었다. 봉상시 판관을 거쳐 1601년 교리가 되었고 교정청의 관직을 겸하였으며, 광해군 때 봉상시 첨정을 지냈다.
글씨도 잘 써서 『동국문헌』의 「필원편」에 선서(善書)라고 하였다. 한 때 사헌청(詞翰廳)에 근무하여 한호 등과 함께 국가의 중요문서를 수서(手書)할 정도로 뛰어났지만 세상에는 글씨보다 시로 더 알려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차천로 [車天輅]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2011.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