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3. 주일 큐티
에스라 2:1 ~ 35
하나님의 오른손과 왼손들
관찰 :
1) 1차 포로귀환으로 돌아온 자들에 대한 설명
- 1절.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 70년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잡혀오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잡혀 온 자들이 바벨론에서 정착하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바벨론에서 살아야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유대 땅을 고집하지 말고, 또 애굽이나 다른 곳으로 도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나라를 잃어버린 채로 그렇게 살 것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유다를 없애고자 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나라를 잃고 포로의 신분으로 살던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유다로 돌아오게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바벨론에서, 그리고 페르시아에서 정착하여 살고 있던 이들이 하나님의 감동하게 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고레스의 칙령과 페르시아 거민들의 환송으로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그들이 원래 조상들이 거주하던 성읍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을 잊지 않았고, 그들의 분깃을 따라서 다시 재정착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2절.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 고레스가 성전 기물을 맡기고, 예루살렘 총독으로 세운 세스바살의 존재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스룹바벨이 세스바살과 동일인물이고 이름만 다를 뿐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아는 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정약용과 다산이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인물인 것과 같습니다. 에스라는 1차 포로귀환을 이끈 지도자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그 대표적인 지도자들입니다.
- “스룹바벨”의 이름의 뜻은 `바벨론의 자손', ‘바벨론에서 태어났다’입니다.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이며(스 3:2; 학 1:1), 여호야긴 왕의 손자(마 1:12; 눅3:27)입니다. 역대상 3:19에서는 그가 `스알디엘'의 형제인 `브다야'의 아들로 언급되고 있는데, `스알디엘'이 아들이 없이 죽어서 그의 동생인 `브다야'가 계대결혼법에 의해 형의 아내와 결혼하여 `스룹바벨'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서 `스룹바벨'은 실제적으로는 역대상 3:19의 언급처럼 `브다야'의 아들이지만, 법적으로는 `스알디엘'의 아들인 것입니다.
- “예수아”는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뜻과 동일한 의미인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를 가지는 이름입니다. 예수아는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건축을 완료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의 증조부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살해당한 대제사장 스라야이고, 부친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사닥'입니다.
- “느헤미야”의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이 사람은 약 100년 뒤에 포로귀환과 부흥을 이끄는 ‘느헤미야’와는 별개의 인물입니다.
- “스라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주관자가 되셨다’입니다. 느 7:7 에서는 ‘아사랴’로 기술되었습니다.
- “르엘라야”의 이름의 뜻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느 7:7 에서는 ‘여호와께서 천둥을 치셨다’라는 의미를 갖는 ‘라아먀’로 기술됩니다.
- “모르드개”는 바벨론의 주신 `말둑'에서 기원한 바벨론식 이름이다. 에스더에서 등장하는 “모르드개”와는 동명이인(同名異人)입니다.
- “비그왜”는 페르시아식 이름입니다. ‘행복스럽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한 가족의 족장인 그는 바벨론에서 귀환하면서 약 2천 명의 자손을 데리고 왔습니다.
- “빌산”, “미스발”, “르훔”, “바아나”에 대해서는 특별한 내용이 없습니다.
2) 1차 포로귀환으로 돌아온 자들의 명단
- 3절 ~ 35절.
- 이들에 대한 기록을 에스라는 꼼꼼하게 남기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열 두 지파에 속하는 이들도 있고, 그 기록이 나오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타국의 포로로 끌려가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던 이도 있고, 그곳에서 인정을 받아 잘 정착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던 이도 있었습니다.
- 이들이 돌아오게 된 것은 페르시아에서의 현실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감동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백성이라는 자기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가르침 :
1) 역대기를 기록한 제2의 모세라 불리우는 에스라는 특별히 족보에 능합니다. 귀환자들에 대해 이리도 정확하게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특징은 족장들 위주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 사람, 느도바 사람, 아나돗 사람, 믹마스 사람, 벧엘과 아이 사람. 이 사람들은 족보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상들의 기거하던 땅을 기억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들을 가르친 조상과 이렇게 돌아온 후손들의 신앙에 경의를 표합니다.
2) 예루살렘으로만 간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다도로 돌아와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전에 삶의 터전이었던 곳으로, 조상들의 분깃이 남아 있는 곳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반드시 예배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다시 말하면 예배 + a의 요소가 있을 수 있었지만, 이들의 결단을 에스라는 소중히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3) 64절에 의하면 포로에서 이 때 돌아온 사람들이 42,360명입니다. 그렇다면 이 외에 바벨론 땅에 남은 자들은 그렇다면 신앙을 배도하고 하나님을 떠난 악한 자들이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돌아온 자들은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역사의 전면에서, 성경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돌아오지 못하고 남은 자들 중에 하나님의 왼손으로 역사에 전면에 나오지 못하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산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유대 디아스포라들입니다. 바벨론 포로 귀환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게 된 유대 디아스포라의 엄밀한 시작이 바로 이 사람들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남아서 회당으로 모이며, 지배민족들과 섞여 살며 메시야(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복음의 터를 닦는 작업을 500여년 동안 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들이 70인경을 만들었고, 이들을 기점으로 초대교회 복음 전파의 초석이 놓여졌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늘의 하나님의 실로 높고 헤아릴 수 없는 일하심입니다.
적용 :
1)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를 섬겼던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모략을 찬양합니다. 오늘날도 흩어지고 핍박이 있어도 주님을 예배하는 자들을 주님이 보호하시고 이끄심을 믿습니다.
2) 부족한 유대 디아스포라를 궁극적으로 사용하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연약해 보이는 자들을 통하여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백성은 힘과 능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그렇기에 중요합니다. 나를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 그 소명이 있기에 나 역시 주님의 일을 하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다시금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심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