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다리를 아시나요(영성생활 2022 가을호)
무상법현 - 열린선원 선원장
사는 일이 참 쉽지 않습니다. 겨울에 추우면 추워서 어렵고 여름에는 더워서 힘듭니다. 시집가고 장가들면 옆으로 신경 쓰고 위로 비위 맞추고 아래로 살피자니 만만치 않습니다. 다 벗어던지고 나와서 확 (머리털을) 깎아버리면 후련하고 걸릴 데 없는 줄 알겠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뭐 턱도 없는 희망 사항입니다. 이웃 종교인이나 도사 같은 이들도 살펴보면 우울함이 비슷합니다.
핸드폰이 처음 나왔을 때 텔레비전 선전에 나왔던 말 기억하시나요? ‘귀한 분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어도 좋습니다.’라고 선전했습니다. 당시에는 참 그럴듯한 표현으로 느꼈습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지하철이나 버스나 공원에서나 심지어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누워 있는 침실에서도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며 전화기를 보고 있는 시절입니다. 산속 절에 있는 승려들도 틈만 나면, 아니 틈을 만들어 핸드폰 쳐다보느라 정신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 모두 부처보다, 신神보다 높아 보이는 그것에 푹 빠져있습니다. '세상에 가장 높은 신이 폰phone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음식이 나와도 사진부터 찍어야 숟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지요? 왜 그런지 알아야 그들을 지도하고 교화할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수준 높은 고민을 하기가 쉽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게다가 설법이나 강의를 듣는 제자, 신도들이 설법이나 강의가 끝나자마자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맞는지 틀렸는지 찾아냅니다. 아니 설법강의 동안에도 참지 않고 시비를 가려내곤 합니다. 마음이 즐겁겠습니까? 우울하겠습니까? 설법이나 강의 준비하면서, 대웅전이나 강의장에서 제자불자들을 만나면서 어느 부분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태클을 걸어올지 내심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템플스테이라는 말을 제가 만들었습니다. 열린선원이라는 개척포교원을 개원한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 크렘린궁으로 날아갔습니다. 세계종교평화회의에 참여하고 주최 측인 ‘아시아기자작가재단’ 초청으로 터키 이스탄불에 가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공항에 잠시 내렸을 때였습니다. 나를 쳐다본 서양 아가씨가 두 손을 모으고 인사하기에 어떤 인연이냐 물으니 템플스테이에 참석했는데 너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제가 최초 기획자라고 말했더니 그녀는 기뻐서 펄쩍 뛰었지요. 그런데 최초기획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지금은 국가 또는 세계가 인정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종교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돈벌이와 너무 가까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차가운 시선이 있음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사찰에 대한 인식이 옛날과 너무 달라져버린 느낌이 커서 기획자로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옛날에 사찰이 어떤 곳입니까? 이웃종교인들이 부러워하는 품 넓은 사람들이 살면서 누구라도 찾아가면 보듬어주고, 사찰에 있는 객실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풍경소리, 바람소리, 목탁소리 요령소리를 듣는 가운데 차도 마시면서 잠시라도 소나무 아래 또는 선방 좌선 방석 위에 앉아보는 행복감이 컸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런 곳이 전설 따라 삼천리에나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준비된 고민, 우울증만이 아닌 느닷없이 떠오른 괴로움도 있게 마련인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그 절 불자가 아니라 같은 종단 스님이라도 사찰에 머물 수 없게 된 현실이 저를 매우 우울하게 합니다.
욕심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을 본 이들은 스님들이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시겠지요?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진리를 다루는 사람들은 마음이 넓고 느슨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지요. 무슨 말이냐면 상담을 요청하면 매우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웃종교인의 지나치고 좋지 않은 표현이 뜻밖에 많이 있어서 사회의 눈을 찌푸리게 하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내가 가는 길과 달라 보이는 길을 가는 사람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넓은 가슴을 가졌으리라 여겨지고 또 그렇게 주장하는 각 종교 간의 다툼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자그마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절에서는 매년 12월 둘째 일요일에 신부님, 목사님, 신학자를 초청해서 예수님과 그리스도교에 관한 설교를 듣고 저는 축사를 한 뒤 불자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왔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행사라고 생각해주시니 참 고맙지요. 그런데 이 행사에서 설교하신 목사 교수님이 그 때문에 교직에서 배제되었고 몇 년에 걸쳐 대법원까지 가서야 올바름을 인정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안 모든 사람이 저와 저희 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저도 피해가 돌아갈까봐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시원하게 해결이 되어서 물어봅니다. 우울한 일입니까? 화나는 일입니까?
만물은 위치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깨닫는 슬기(智慧)라는 가치가 있습니다. 종교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에서 쓰면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이 자신의 위치를 낮추어 슬기롭게 가꾸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과 또는 참회라고 합니다. 물론, 그 전에 나 자신의 슬기가 한참 모자라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알려야 합니다. 그것을 ‘제 부끄럼, 남 부끄럼’이라 합니다. 제 부끄러움은 하늘에 통하는 부끄러움이고 남부끄러움은 남들에게 느끼는 부끄러움이니 집단지성이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우리가 아는 제 부끄럼의 최고는 한국에서는 어머니, 불교에서는 지장보살地藏菩薩입니다.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서는 영계의 변호사로 출연하지요. 지장보살은 죄업을 지은 중생들이 들어있는 지옥문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있으니 중생들이 눈물의 교화를 받는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잘못이 슬기롭지 못한 자신에게 그 까닭이 있다고 자신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듭니다. 이 경우 고쳐지지 않은 아들딸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바람직하고 좋은 것도 스스로 깨우쳐서 알지 못하면 이 또한 자연스럽게 지나지 못하는 괴로움이며 우울의 구렁으로 이끄는 마귀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소양과 머리가 달라서 쓰임새 또한 다른데 표준화해서 생각해 학의 다리는 자르고 참새 다리는 이어 붙이려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이때 잘리고 붙여지는 처지에 있게 되면 괴로움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출가한 스님 가운데 ‘바보 판다까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마하판다까, 동생은 쭐라판다까라고 불렀습니다. 마하는 크다, 쭐라는 작다는 뜻입니다. 특징이 잘 드러나는 사람으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바보 판다까 형제’라고 불렸습니다. 동생이 이해력뿐 아니라 기억력이 남들보다 현저하게 떨어져서 붙은 별명이었습니다. 형을 따라 천재 형제라고 불렀으면 좋았을 텐데 미련한 동생 따라 바보 형제라고 부르니 형은 기분이 나빠서 우울하고, 동생은 미안해서 우울한 일상이었습니다. 이를 참지 못한 형은 화를 내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쳤습니다.
동생은 피해라도 끼치지 말자고 떠나는데 슬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눈가를 훔치며 도량을 나서는데 마침 지나가던 부처님이 보시고 까닭을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상황을 파악하고 ‘마당 쓸기’라는 대안을 제시했답니다. 한 달 가까이 마당을 쓰는 어느 날 ‘왜 부처님이 마당을 쓸라고 하셨을까? 쓰레기를 쓸어버리듯 마음속 쓰레기를 쓸어버리라는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부처님께 여쭸더니 그렇다하셨고 이에 자신감을 얻어 열심히 수행해서 번뇌를 다 없애버린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혹시 당신이 겪고 있는 괴로움, 우울함은 바로 동생 판다까의 어리석음에서 오는 괴로운 상태였을 뿐 나중에는 기쁨의 소재가 되지 않을까요? 슬픔이 깊을수록 벗어나면 그 기쁨은 더더욱 크다고 하는데 당신의 아픔도 그렇게 큰 기쁨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제가 사는 곳은 새절(新寺)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 ‘서울 은평구 신사동’입니다. 옆에 교회도 있고 건너편에는 성당도 있습니다. 조금 걸어가면 ‘불광천’이라는 생태하천과 산책로가 있어서 참 좋습니다. 주변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활용해 각종 운동도 하고 사람들뿐만 아니라 비둘기, 참새와 청둥오리, 두루미, 왜가리, 황새, 가마우지 등 자연의 벗님들이 많아서 좋습니다.
어느 날, 재미있는 그림들이 불광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벽에 그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흥겹게 뛰노는 듯한 그림입니다. 그림 끝에는 ‘마술 다리’라고 씌어있었습니다. 그림과 다리 이름을 보고 걸음을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무슨 마술 다리가 있을 리 없으나 저렇게 손잡고 뛰어 건너다보면 짜증나고 힘든 이곳에서 즐겁고 행복한 저곳으로 간다는 뜻이 아닐까.
내가 한 일이 누군가의 조증과 ,누군가가 한 일이 나의 울증에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 부족한 생각이 남에게 어려움을 주기도 하고 남이 부족하지 않음이 오히려 나에게 조증과 울증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모두 잘 받아들이고 이겨내면 보다 큰 기쁨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마술 다리 그림처럼 소박한 것이 나를 이겨내고 기쁘게 하는 힘이 될지도 모릅니다. 커다란 나무가 부러져서 길에 박혀 있기에 잘라서 집으로 가져오니 몇 달을 아궁이에서 가족을 따스하게 하는 불이 되었다고 합니다. 곧 다가올 겨울에도 따스한 방안에서 오순도순 즐거운 이야기 나누는 상상을 하며 특히 우울해하는 당신이 기쁨을 찾기를 기도 정진하는 가운데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