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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대받는 세대 원문보기 글쓴이: 地坪
◆스마트폰 소외.
먼저 스마트폰과 소외에 대해 정확한 내용적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 우리들이 어떤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념은 포괄적일수는 있어도 그 정확도 에서는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말-언어-단어는 사유-생각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개념이 정확해야 학습효과를 높일수 있다.
지금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거의 완전하게 장악하고있는 IT기기는 스마트폰이다.
전국민의 절반정도가 그것을 가지고있을 정도다. 스마트 폰-smart phone-은, 휴대폰과 개인휴대단말기(PDA)의 장점을 결합한 것으로
휴대폰기능에 일정관리, 팩스의 송,수신및 인터넷 접속등의 데이터 통신을 결합시킨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완제품으로 출시되어 주어진 기능만 사용하던 기존의 휴대폰과는 달리
수백가지의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설치 하고 추가, 또는 삭제할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과 LG가 개발한 스마트폰은 CDMA(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에 의한 것이며 휴대폰에 초소형컴퓨터를 결합한 것이라고 할수있다.
한편 소외(疎外)는, 특히 현대인들 사이에 크게 회자되는 단어이며
인간의 인간성, 인간관계, 생활방식의 변화에서 그 심각성을 더해가는 대표적인 현대언어 이기도 하다.
이 단어의 일차적이고 상식적인 의미는, 남에게 따돌림을 당한것 같은 느낌이지만, 철학적 측면에서의 해석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른것이다.
스마트폰 소외의 경우 후자의 뜻이 더 크다.
인간-사람은 사회공동체 안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활동과 수많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직장에 나가 생산적인 일-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이 돈을 생활비로 쓰기도하고, 적금이나 개인연금, 또는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수도 있다.
또 인간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의 여러 가지 관계를 가지게 된다. 이때 그 돈의 주인은 사람-인간이며,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주체도 사람이다. 이게 정상적이다.
반대로, 돈이 사람을 부리고, 관계가 사람을 속박, 종속 시킨다면 그게 바로 소외다.
특히 그 외적(外的)인 것들이 강제적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경우 심각한 소외현상 이라고 부르게된다.
점심시간의 중국음식점, 이집은 음식을 맛있게 하기 때문에 비교적 손님이 많은편이다. 따라서 식탁의 배치가 조밀하다.
옆 테이블의 웬만한 대화도 잘 들리는 편이다. 내가 앉은 식탁을 중심으로할 때, 오른쪽에는 나이지긋한 부부가 몇가지 요리를 시켜놓고 식사중 이었다.
그들은 나직한 소리로 계속 얘기를 나누고 있었으며 부인은 요리를 잘게잘라 남편의 접시에 옮기기도했다.
정말 백년해로하는, 금실이 좋은 부부로 보였다.
그들은 교양이 있는분들 이었으며 옆테이블에 방해가 될까봐 작은 음성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전화의 벨 소리가 들렸다.
부인은 핸드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통화했다. 얼핏 듣기로는 딸과 통화하는것 같았다.
부인이 말했다. ‘지금 네 아버지와 식사중이니 나중에 내가 전화하마.’ 그리고 스마트폰을 핸드백에 넣고 식사를 계속했다.
그 부부의 경우 스마트폰은 적절하게 사용하는 문명의 이기이며 사용주체는 그 부인이다.
왼쪽 테이블에는 젊은부부와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매가 앉아있었다.
식탁에 반찬이 놓여있는것을 보니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한 가족인 네사람은 서로 쳐다보는법도 없고, 어떤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
사실, 한 가족의 외식시간은 가장 즐거운 때 이며 서로가 많은 얘기를 나누어야 하는 중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네 사람은 각자 자기의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열심히 조작하고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온후에도, 한손으로는 음식을 먹으면서 다른손 으로는 계속 스마트폰을 조작하고 있었다. 네사람 모두가 그랬다.
그건 정말 생소하고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후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니 뜻밖에 그런가족은 많았다.)
생각이 있는 부모라면 가족의 단란한 외식시간에 스마트폰을 쓰지않도록 배려 해야된다. 특히 부모가 먼저 솔선해야 한다.
그들은 식사를 끝내고 나갈때까지 서로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고 눈길을 마주친 일도 없었다.
스마트폰이 한 가정을 완전하게 지배하는, ‘소외현상’ 이 그러했다.
가장 가까워야할 ‘가족의 관계’ 가 파괴되는 살아있는 현장이기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지난해 하반기 스마트폰 이용실태’ 를 발표했다. 19세에서 59세 사이의 스마트폰 이용자 400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을 통해 얻어진 자료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이용실태에서, 12-18세의 청소년들은 음악듣기와 게임, 오락이 85,7%로 가장 높았다.
19-59세의 성인들은, 알람, 시계가 89.3%로 가장 높았고, 달력, 일정관리가 79.6%로 나타났다.
최근 1개월 이내에 모바일앱을 내리받았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77.4%를 차지했으며 내려받은 모바일앱의 종류는 게임과 오락이 78.6%로 가장 많았다.
고가의 스마트폰과 비싼 통신료를 감안할 때,
음악듣기, 게임과 오락 그리고 알람과 시계, 달력과 일정관리가 가장높은 비율로 사용되고 있다면 스마트폰은 ‘창의,생산성’ 과는 무관한 IT기기가 된다.
본래 인터넷사업 전반이 고용창출에 기여하는바는 미미하다. 구조가 그러하다.
스마트폰 역시 ‘창의,생산성’ 과는 무관한것이 확인되는바 그것에의 쏠림현상자체가 비용대 효율면에서 충분히 문제가 될수있다.
그게 가계의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수시로 이메일을 확인해야 하거나, 최신정보를 접하지 못하면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이른바 ‘정보중독’ 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첨단 정보기기인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정보중독은 급속하게 진행되어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 유해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폰을 쥐고있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계속 열어보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이미 심각한 중독현상으로 봐야한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의학과의 김어수 교수는, ‘마약과 술, 도박처럼 계속 이메일을 확인하고,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있어야 위로가 되고, 안도감을 느낀다면 이미 중독된 것으로 볼수있다.‘ 고 진단한다.
더 큰 문제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는 현상이 일상화 되었다는 점이다.
의식의 일시적인 맹목(盲目) 현상이 손바닥만한 모니터속에 고정되어 이에 협착,매몰되면서 그 놀라운 집중으로 주변을 보지 못하고,
모니터속의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영상과 자극적인 언사만이 진실이라고 속단, 사실을 오해할수 있게된다.
진지하게, 깊이 생각해야하는 패러다임이 설 자리를 잃고있는 이런 현상은 토론문화의 부족과 함께 자기의 편협한 생각을 폭력적으로 표현하는 부작용을 낳게된다.
SNS의 폐해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우리의 옛격언에 ‘지나침은 모자라는것만 못하다.’ 는게 있다. 모든 것은 적당할때가 가장 좋다는 의미다.
연세대의 김어수 교수는, ‘정보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디지털 단식이 필요하다.
정보중독에 빠지지 않으려면 일의 몰입시간과 휴식시간을 확실하게 구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휴대폰을 일정시간 꺼 놓고 명상하는등 두뇌에 휴식을 줘야한다.
무엇보다 중독은 더 좋은 다른것에서 행복을 느낄때 비로서 극복할수있다.‘ 고 충고한다.
독일언론인 크리스토프 코흐는 2010년 안터넷과 스마트폰을 40일동안 끊고 살아봤다. 처음엔 불안과 조바심에 시달리다 우울증과 홧병까지 앓았다.
스마트폰이 없는데도 허벅지부분이 부르르 떨리는 ‘유령진동’ 도 느꼈다.
그러나 40일의 디지털 단식이 끝났을때 ‘안정과 집중’ 의 시간을 되 찾았으며 그 체험기를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란 책으로 펴 내기까지 했다.
중독은 그게 어떤것이든 인간, 인간성자체를 좀 먹는 무서운 현상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이야기를 다시 중국음식점으로 돌려보자.
그 노부부는 스마트폰을 적절히 사용하는 주체적인 분들이다. 가장 바람직스러운 경우라고 할수있다.
아무리 첨단의 IT기기라 해도 그것이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된다. 또 지배하게 해서도 안된다.
젊은부부의 네 식구는 '소외된 가족' 이다. 스마트폰이 가족사이의 '인간적인 관계' 를 단절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집 애들은 집에서도 자기방에서 부모에게 문자를 보낼것이다. 같은 지붕 아래서 딴 나라처럼 멀리 사는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징적인 양쪽 테이블 사이에 끼어있는 나는 휴대폰이 없다.
이 메일은 물론, 블로그를 운용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계정도 가지고 있고, 인터넷뱅킹까지 하는 수준이지만 지금의 내 생활방식에서 스마트폰은 쓸일이 없기 때문이다. 유선전화만 으로도 충분하다.
내 노후생활이 지향하는 일차적인 목표가 '자유' 이기에 그렇다.
그게 없으면 죽는줄 아는 사람들에겐 도무지 이해가 안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스마트폰도 사실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 없이도 충분히 풍요롭게 살수있다.
지난5월20일, 미국의 보스톤대학 졸업식에 참석했던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축사를 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끄기 버튼을 찾으라, 하루 한시간씩 이 기계들을 꺼놓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들여다 보고 진짜 대화를 하라,
휴대폰이나 컴퓨터의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직접 느끼고 맛보고 냄새맡으며 맞부딪힐 기회를 많이 만들라.
기술은 수단일뿐 그 자체로는 아무일도 할수없다.
여러분이 기술을 지배해 세상에 기여해야지 그 기술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기술을 지배하는것은 휴머니즘과 기업가 정신이다.
인생은 반짝이는 모니터속에서 살아지는게 아니며 소셜미디어의 업그레이드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로 등록된 사람들의 숫자에 있는것도 아니다.
인생은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와 여행하는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첨단기업 구글의 진정한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해주는 대목이다.
그게 어디든,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모니터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있다. 소외된 인간들이 왜소(矮小)해 지는 현장이다.
인간은 그 근본에서 아날로그적인 존재다. 결코 디지털화 하지않는다.
그래서 디지털은 아무리 발전해도 아날로그의 인간이 사용하는 수단일 뿐이다.
지금, 온갖 중독현상앞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것은 균형감각이다.
어느 한쪽으로 쏠림현상은 개인의 생활에도 유익하지 못하며 사회공동체도 치우치지 않는 안정된 상태가 요구되는 것이다.
지금같은 한쪽으로의 건전하고 정상적인 발전을 할 수가 없다. 삶의 질에서 균형이 깨지고있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인터넷' 도 앞으로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스마트폰 역시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일시적인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인간이 그것에 매몰되어 소외된다면 그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스마트폰이 쏟아내는 빠르고 많은 정보는 모두가 아직은 날것들이다.
선택하고, 분별하고, 익혀서 활용하는 것은 인간의 넓고깊은 지식이다.
그리고 그 지식은 '읽기'를 통해서만 얻을수 있다.
가장 높은 빈도로 쓰이고 있는 낱말은 '나' 와 '너' 라고한다.-yor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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