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말 궁둥이에 붙은 파리’를 꿈꾸는 사람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영채신이 말했다. “당신은 세상에 나쁜 평판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나는 남의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오. 일단 발을 한번 잘못 디디면 그야말로 몸을 망치고 창피를 사게 될 뿐이오.” 처녀가 말했다. “한밤중이라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걸요.” 영채신은 다시 꾸짖었다. 처녀가 그래도 머뭇거리자 영채신은 호통을 쳤다. “냉큼 돌아가지 못할까! 그러지 않으면 남쪽 방의 서생을 불러서 알릴 테다!” 처녀는 겁을 내면서 그제야 물러났다.
천녀유혼의 원작 소설
주한 중국 대사는 야당 대표를 만찬에 초청하고, ‘한국의 대단한 정치인’이라고 띄워주며 많이 가르쳐달라고 했다. 대표가 한중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양국의 신뢰와 존중을 이야기하는 동안 생중계 중이던 민주당의 유튜브 댓글 창에는 ‘대통령 포스, 진짜 대통령, 실질적 대통령’이라는 지지자들의 감탄사가 올라왔다.
외교관은 공식적 스파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국 정치인과 밥 먹고 농담하는 것도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중국 대사는 ‘한중 문제의 책임은 중국에 없다, 미국에 베팅하는 건 잘못이다, 후회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200자 원고지 16장 분량을 14분 동안 읽었다. 어른이 아이를 혼내듯, 양복 깃에 태극기 배지를 단 야당 대표를 옆에 앉혀놓고 대한민국의 외교 현안을 조목조목 비난했다.
홍콩 배우 왕조현과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 ‘천녀유혼’은 청나라 작가 포송령의 소설이 원작이다. 영채신은 우연히 묵게 된 곳에서 만난 천하절색 섭소천의 유혹을 단호히 내친다. 그녀가 내민 황금도 ‘도리에 어긋난 재물은 주머니만 더럽힌다’며 내던진다. 젊은 남자들을 홀려 죽이던 처녀 귀신 섭소천은 올곧은 마음을 지킨 영채신에게 감동, 그를 살리고 성공과 행복도 선물한다
부적절한 제안과 불의한 재물을 물리치지 못하면 신세를 망치지만, 정치 세계에는 수치심도 없고 책임도 없다. ‘대단한 정치인, 진짜 대통령’이란 찬사를 들었지만 당대표는 한중 외교의 골만 깊이 팠다. 그 와중에 야당 의원들은 중국 초청으로 공짜 여행을 했다. 일본 대사관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중국이라는 말 궁둥이에 붙어 만 리를 가는 파리’가 되자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바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中 초청 받아
'인권탄압' 티베트 방문… 당 서기에 고개 숙인 민주당 정치인 7명
도종환·박정·김철민·유동수·김병주·민병덕·신현영… 싱하이밍 논란에도 中 방문
네팔·몽골·시리아·보츠와나 정치인들과 나란히 축사… "中 '체제 선전' 이용돼" 지적
티베트 인권탄압 지금도 문제인데… 도종환·민병덕 "그건 70년 전 상황" 엉뚱한 주장
▲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과 티벳을 방문한 민주당 도종환(가운데)·박정(오른쪽)·신현영 의원 등이 지난 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내정간섭' 발언으로 촉발된 한중관계의 경색 국면에 방중 일정을 마친 더불어민주당이 방중 시기와 취지 등이 부적절하다는 비판 여론에 "매우 적절하고 용감한 행동"이었다고 자찬했다.
또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가 제기되는 티베트지역을 방문한 것과 관련해서는 "그것은 1959년에 있었던 일" "70년 전 일" 등이라며 일축했지만, 여권은 '관광외교'로 규정하고 민주당의 방중을 비판했다.
野, 中 초청 티베트 행사 참석… 서방국가는 불참
도종환·박정·김철민·유동수·김병주·민병덕·신현영 등 민주당 의원 7명으로 구성된 방중단은 지난 15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정부의 초청을 받아 문화교류를 명목으로 중국 베이징과 티베트를 방문한 뒤 18일 오후 귀국했다.
이들은 방중 첫날 베이징에서 뤄수강(雒樹剛)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격 기관) 교육과학문화위 위원장과 회담에 이어, 눙룽(農榮)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
민주당 방중단은 이 자리에서 한한령(限韓令, 한국 문화 콘텐츠 금지령) 해제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민주당 의원들은 중국정부가 주최한 티베트 여행·문화 국제박람회의 '기노트 포럼'에 참석해 축사까지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해외 주요 인사는 네팔·몽골·시리아·보츠와나 정치인 등이었다. 주요 서방국가들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티베트는 신장지역과 함께 소수민족 탄압, 강제노역 등 인권문제가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지역인 데다 G7 등 국제사회도 우려를 표하는 곳으로 꼽힌다.
그러나 방중단 단장인 도종환 민주당 의원은 3분40초가량의 인사말을 한 뒤 단상에서 내려와 티베트 당서기 등을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이번 방중이 티베트지역 인권탄압 논란을 희석하고 중국 체제 선전 도구로 이용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지난 17일 중국 티베트 라싸에서 열린 제5회 티베트 관광문화국제박람회에서 인사말을 한 뒤 티베트 당 서기 등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野 "티베트 인권탄압? 70년 전 일"
민주당은 이러한 우려와 지적에도 방중을 두고 "싸우는 사람도 있지만 말리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도 의원은 19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갈등을 어떻게 풀고 어떻게 해결하고 수습할 것인가 하는 것이 정치가 해야 될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인권탄압이 심각한 곳을 갔다'는 지적에는 "그것은 1959년에 있었던 일"이라며 지금은 관광과 문화를 통해서 엑스포를 하는 곳에 초청 받아서 간 것이다. 별개의 문제로 봐주면 좋겠다"고 거리를 뒀다.
방중단원이었던 민병덕 민주당 의원도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티베트 인권탄압 문제와 관련 "1959년 티베트에서 중국에 대해서 무장봉기를 했을 때 자료에 보니까 12만 명이 죽었다 뭐 이야기가 있던데 이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다"며 "그런데 70년 전에 있었던 그 내용을 우리가 부각하면서 이것을 계속해서 외교가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반박했다.
방중 시기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에 민 의원은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희도 동의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저는 더 가야 된다는 입장"이라며 "저희가 갔던 것은 매우 적절하고 죄송스럽지만 용감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지난 17일 중국 티베트 라싸에서 열린 제5회 티베트 관광문화국제박람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與 "70년 전의 일 아냐… 인권문제 여전히 제기"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방중을 '관광외교'로 규정하고 "지도부를 만났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 전화인터뷰에서 "(민주당 방중단의 ) 티베트 일정에 대해 저는 조금 비판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의원은 "원래 목적은 집단관광, 경제인 비자 문제를 (방중 이유로) 열거했지만 관광외교를 했다"며 "티베트를 갔다 하더라도 결정 권한이 있는 중앙 지도부, 중국 지도부 사람들을 만나고 왔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 의원은 "지금 중국에서 한한령이 있어 집단관광 등 관광이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다"며 "또 게임업체들이 중국시장에 진출할 때 반하오라는 일종의 라이선스를 받는데 2017년 봄부터 안 해줬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그러면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러 간다고 했는데, 그러면 티베트가 아니라 중국 지도부 같은 이런 문제들을 풀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민주당 측이 티베트를 대상으로 한 인권탄압이 '70년 전의 일'이라며 거리를 두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지금도 인권문제는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런 것에 대해서 미국이나 서방세계가 계속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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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티베트와 5·18…도종환의 선택적 추모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티베트 라싸에서 열린 제5회 티베트관광문화국제박람회 연단에 섰다. ‘도종환 선생, 한국 의원 대표단 단장’이라는 배경 자막이 중국어·티베트어·영어로 떴다. 도 의원은 두 번째 외빈으로 단상에 올라 스스로를 “한중 문화 교류를 위해 방문한 단장 대한민국 국회의원 도종환”이라고 소개했다. 티베트 공산당 당서기 등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기도 했다.
도 의원 축사는 3분 40초 동안 이어졌다. “라싸는 시짱 자치구의 심장, 티베트인들에게는 종교적·민족적 성지” “티베트의 역사적 노력과 독특한 예술적 매력을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을 것”…. 중국 정부가 티베트 독립운동을 감추고 ‘사회주의 새 시대 티베트’로 포장하기 위한 관제(官製) 행사에서 도 의원은 대한민국 국회 대표 자격으로 이렇게 말했다. 서방 인사들은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도 도 의원은 행사 후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관광 문화 박람회인데 지금 국내에서 무슨 안 좋은 여론이 있는지 잘 모른다”고 했다. 취재진에게 “부정 여론을 만들려는 것이냐”고도 했다. 중국의 티베트 인권 탄압 논란을 희석할 우려가 있다는 데 대해선 “티베트 관광·신재생에너지·기후변화 등에 관해 얘기했지 지금 말한 것(인권 탄압)을 주제로 박람회를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도 의원 발언에 중국 정부는 흡족했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도 의원을 비롯, 박정·김철민·유동수·김병주·민병덕·신현영 민주당 의원의 여행 경비를 댔다. 1950년 중국 공산당 침략으로 주권을 잃고 70여 년간 타지에서 독립운동 중인 티베트에 대해 한국 국회의원 대표가 보인 태도가 “잘 모른다”였으니 중국으로선 ‘가성비’가 뛰어난 투자였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로 유명해진 도 의원은 1993년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에 5·18 추모시를 수록한 적이 있다. ‘해마다 오월은 푸른 아침과 함께 오건만/ 아직도 목숨을 건 싸움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되찾아야 할 것들을 목놓아 부르며/ 하늘 한 중턱에 목숨을 꽂는 사람들과/ 이미 던질 것을 다 던진 마음으로/ 아직 살아서 싸우는 사람들의/ 끝나지 않는 오월의 아침을 걸어갑니다.’(오월 아침)
70여 년간 중국 공산화에 저항하다가 학살당한 티베트인은 1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는 대부분 민주화 유공자로 신원(伸寃)됐고, 현직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한다. 그러나 중국 정권은 티베트 인권 탄압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한국 국회의원들을 자기네 돈으로 불러 독재를 정당화한다. 도 의원이 그 연단에서 티베트를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비의 땅”이라고 할 때는 ‘접시꽃 당신’의 시심(詩心)이었을까. ‘아직 살아서 싸우는 사람들’을 생각했는지도 묻고 싶다.
원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