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일일드라마나 미니 시리즈 같은 것을 즐겨 본다. 제목이나 등장 인물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 선택한다. 일일드라마는 주로 저녁 먹을 때에 방송하기에 빼먹지 않고 볼 수 있지만 미니 시리즈는 대부분 밤중에 한다. 그래서 아직도 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 형인 나로서는 밤에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케이블 TV의 드라마 채널에서 챙겨 본다.
즐겨 보았던 월화 드라마인 ‘쌈마이웨이’가 벌써 마지막 회라고 한다. 세상에서 조연으로 살기를 종용받은 남녀가 쳇바퀴를 박차고 나와서 인생의 주연으로 우뚝 서는 판타스틱하면서도 극적인 성공기를 그린 드라마다. 드라마의 주된 줄거리는 이러하다.
화려하고 멋진 발차기의 태권 소년 동만(박서준)과 아나운서가 꿈인 애라(김지원)는 팍팍한 서울살이를 하는 그냥 ‘평범한 어른’이 되어간다. 주만(안재홍)은 6년째 열애 중인 설희(송하윤)가 결혼하고 싶다고 말을 하자 난처해한다. 동만과 애라, 주만과 설희의 연애 과정이 싱그러워 재미를 더한다.
나는 그렇다 할 연애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꽃띠 시절을 지나쳐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아주 짧게 ‘연애란 건 이런 거다’고 입맛만 다신 때는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을 준비할 때 학교 도서관에서 만나 두 달 여 입을 못 다물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와는 인연이 아니었는지 그가다른 데로 발령 받아 이별의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그때 나는 ‘좋은 만남 뒤에는 아름다운 이별도 있다’는 세상의 이치 하나를 얻었다.
몸이 불편한 내가 어색하지 않게 마음 써 준 그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어머니와 같이 학교에 다녀야 했기에 말만 ‘성인’이지, 순진한 어린 애나 다름없었다. 그런 나에게 세상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인간 관계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눈뜨게 해주었다.
그와 나의 첫 만남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한창 더울 여름 방학 때, 책가방에 책과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 도서관에 매일 가서 열공했다.
어느 날 내게 커피 한 잔 하자고 해서 밖에 벤취에 나가 자동 판매기에서 나는 우유를, 그는 커피를 뽑아 처음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앞서 만난 적도 없는 내가 척하니 그의 나이를 맞힌 거였다. 맞힌 나도, 거저 몸이 좀 불편한 대학생 동생 쯤으로만 여겼던 그도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나의 장난기가 가만 있을 리 만무했다.
“사실은 제가 계룡산에서 2개월, 팔공산에서 일주일 도를 닦았더니 오늘 제 도가 표가 좀 나 버렸네요. 본디 제가 도사는 그림자도 못 따르고 사람이 워낙 모자라고 덜 되어 그래라도 해보자고 한 거라요. 진짜 도사는 아니니 겁 묵지 마요. 앞으론 제가 제자로 받아줄게요.”
뒤에 그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학교에 공부하러 오는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 보였다나.
그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발령을 기다리던 중에 도서관에 온 거라며 몸이 불편한데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살짝이 감동했다며…….
날마다 밥을 같이 먹고 그는 커피, 나는 우유로 후식까지 같이 먹으며 연애 같은 걸 생전 처음으로 두 달 여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그를 위해 뭘 해주나?’하고 행복한 고민을 하며 지낸 즐거운 날들이었다. 그와 나의 사랑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우리의 달짝지근한 사이를 질투하던 하늘이 ‘이별’을 통보하고 말았다. 그가 시외로 발령받은 거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연애’, ‘사랑’이라는 낯설지만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준 그에게 감사하며 쿨하게 보내주었다.
‘사랑합니다’ , 이 말은 아직도 항상 나를 설레게 살아 숨쉬게 하는 말이다. 언제 들어도 내 가슴은 쿵쾅거리고 내 핏줄은 힘차게 뛴다. 이팔청춘은 지났지만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눈이 사르르 감기고 들뜨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팔팔한 청춘이다.
친구나 연예인들의 결혼, 임신 소식을 심심치 않게 자주 듣는 요즘이다. 누구는 연애도 연애답게 뜨겁게 해 보지도 못했건만…….
나에게는 지금 생(生)에서는 ‘뜨거운 사랑’은 배부른 소리일 테고, ‘결혼’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내 불편함과 아픔을 나와 어머니가 겪는 걸로 끝내고 싶다. 굳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같이 짊어지자 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 그렇게 뜨거운 사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딴지를 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요 다음 생(生)에서는 사고도 당하지 않고 몸도 마음도 모두 온전하여 참으로 ‘내 짝’을 ‘딱’ 만나 핫(hot)한 사랑도 한 번 해보고 싶다.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화이팅하세요 ㅎㅎ
졸작에 격려해주심 감사뿅뿅^^
이른아침부터 별도 보고 향기도 맡는 저는 복이많은 소녀?
사랑해도될까나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