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18편 여검사의꿈>
②금순엄마-5
양지숙의 엄마에 대한 열정은 천복을 감동케 하고 있었다.
조정자의 젊은 날의 단편적 편린을 들여다보고, 그 후 전쟁과 그녀의 행적을 들은 대로 잇대어보면, 양지숙은 심청과 같은 효녀이었다.
천복이 술잔을 비우자, 양지숙이 삼계탕 항아리 속에서 물씬 익은 굵직한 닭다리 한 짝을 건져내어 남자의 손에 쥐어주는 거였다.
“우리엄마가 신령님과 짝을 맞춰 앉으니까 더 예뻐 보여요. 원앙이 하룻밤 자고새면, 아기가 설 것도 같아요. 오호호.”
양지숙이 진정으로 하는 말 같았다.
“내가 오늘밤 새 남잘 옆에 앉혀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조정자가 이렇듯, 무슨 이야기인지 말머리를 꺼내려고, 입을 여는데, 양지숙이 선뜻 반기면서 말하였다.
“어머, 우리엄마 입에서 숨겨졌던 비밀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이제껏 말하지 않은 러브스토리 같아!”
조정자가 입을 여는데, 양지숙이 건너뛰면서 러브스토리 같다고, 호들갑을 떠는 거였다.
그것은 적중하였다. 말하면, 오늘밤 새 남자를 맞은 자리에서 과거사를 한 토막이나마 털어놓겠다는 뜻일 거였다. 그리하여 남자가 가지는 그름을 걷어내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돕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이었다.
“용훈은 금호동에서 내가 기타 맨 남편에게 매를 맞는 것에 대해 기타 맨에게 혐오감을 가질게 틀림없겠지만, 실은 그 남자는 날 사랑했기에 분노하여 포악한 짓을 했던 거야.”
그녀가 여기까지 이야기할 때 천복은 금순아빠를 미워하였던 감정이 반전되었던 건데, 아내를 너무 사랑하였기에, 매질할 수도 있겠다싶은 거였다.
“...그 남잔 평양 사람인데, 난, 황해도 사리원 살았거든 근데, 그는 전쟁이 터지기 십년 전 남하하다, 해질녘 길손으로 우리 집을 찾아들었댔어.”
“어머, 그렇게 차 씨와 만나셨구나!”
양지숙이 그녀의 말에 건너짚고, 토를 달았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예술가타입이었는데. 게다가 기타를 어깨에 메고 와서 우리 집 마룻장에 걸터앉아 나의 살던 고향, 고향에 봄, 그리운 나의 집, 아리랑, 목동의 노래 같은 곡을 뜯으면서 노래까지 부르잖겠어? 나는 그때 가슴이 울렁거려 견딜 수가 없어서리, 그의 옆에 마냥 앉았던 거야!”
“기타 연주에 노래까지... 그 남자가 엄마의 애간장을 녹였구나!”
양지숙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듯이 또 거들고 있었다.
“밤에는 그를 따라 시냇가로 나가 기타 연주곡에 맞춰 함께 노래도 부르고, 그러는 동안 서로 포옹하고 입도 맞추고, 밤을 지새우는 동안 나는 처녀성도 날려 보낸 뒤, 이튿날은 남자와 무작정 동행했던 거야.”
“어머나, 엄마도 멋쟁이셨네?”
“내가 멋쟁이 아니라, 그가 멋쟁이였지! ...그는 서울에 와서 이내 서울중앙방송국 관현악단 멤버로 들어간 거야. 난, 그를 더욱 사랑했어!”
“어머, 정말 차 씨가 멋쟁이였네!”
양지숙은 그가 소질대로 방송국에 취직하고, 잘 만났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월급은 없고, 행사에 출현할 때에만 수당조로 받았으니, 감질나잖아? 그러나 우린 서로 사랑했어! 대개 일찍 집에 돌아오면, 날, 품에 안고, 기타연주를 했더랬어. 그래서 세월 가는 줄 모르다가, 어느덧 세 해가 지나는데, 아기가 없었던 거야.”
“아기가 없으면, 낭만도 소용없잖아요?”
양지숙은 파탄의 시초가 아기 때문이었음을 건너짚을 수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가만히 앉았다간 먹고살기도 어렵고, 화장품 행상을 시작한 거야. 그런지 두 달 만에 마포 양 사장을 만난 거잖아! 그때부터 난, 행상은 거짓이고, 그와 만나 하루해를 보내곤 저물녘 집에 돌아오곤 했더랬어!”
“운명이었군요!”
천복은 운명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었다.
“나는 남편 차 씨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금순을 그의 딸로 호적에 올렸지만, 장차 지숙이도 그의 딸로 올리려 했지만, 그 전에 죽었잖아?”
“....!”
양지숙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조정자는 삼계탕 항아리에서 또 하나의 닭다리를 건져내더니, 천복에게 쥐어주는 거였다. 그는 삼계탕도 항아리를 비우고, 소고기회와 생선회를 거의 다 먹어치웠다.
시골에 경산과 정읍댁이 목에 걸려 이따금 목이 메었지만, 거리가 워낙 멀어서 가지고 간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뻔하지, 행상을 나가면서 금순을 낳았으니, 가죽허리띠로 후려도, 나는 나의 혈육 딸이 있다는 보람으로 살았는데, 그가 코쟁이 총에 맞아 화물차지붕에서 하얗게 핀 찔레꽃덩굴에 추락한 주검을 수습하지 못하고... 으-흑!”
첫댓글 희로애락으로 흠뻑 젖은 한 여인의 사연입니다 ~
지나간 한 여인의 인생역정인데 딸과 소꿉동무하면서 부부를
가장했던 남자를 애인 삼는다는 게 꺼림하죠. 아마도 그녀의
러브스토리는 이 거북한 일을 감추기라도 하듯이 입을열었던
게 아닌가생각 드네요. 남자야 그렇든저렇든 하물이없었는데
여자는 허물이 되는 것도 남녀평등이란 영원히 불가능한것이
아닌가도 의문이네요. 더욱 현재상황을 보더라도 맺을수없는
처지인데 이렇게 되었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