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가 있는 검멀레에서 바닷가를 끼고 돌아 비양도를 거쳐
밭길따라 돌담길 따라, 파란리본길 따라, 풀섶을 헤치며 걷다가
우리 남자들, 또 가만히 못걷는다.
남편이 풀잎을 따서 풀피리를 부니
작은놈도 따라서 삐리릭~~ 꼬끼오~~
난 이런 모습이 좋다.
그 어떤 진솔한 대화보다도
가장 긴밀한 소통의 모습이 아닐까..
부자지간에 나누는 무언의 사랑.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격려하고 인정하는 것.
서로에 대한 믿음보다 더 강한 소통이 있을까..
올레길을 걷다보면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을 자주 만나게 된다.
말도 올레꾼들을 만나는 것에 아주 익숙해 있다.
언제든지 모델이 되어줄 준비가 되어있고
올레꾼들을 귀찮아 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내가 말인지, 말이 나인지..
그저 우도의 그 시간과 공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연 앞에, 하느님 앞에 모두 같은 생명일 뿐이라는 것.
사진 속에 늘 내 모습은 거의 없기 마련이다.
모처럼 가족과의 여행이니 인증샷 삼아 나도 한 컷.
먼훗날 이 사진은 귀한 사진이 될 것이다.
제주의 조랑말을 상징하는 '간세'.
느릿느릿한 게으름뱅이라는 뜻인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딱 우리 가족을 표현한 것 같은 간세..
아래 사진 ↓을 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하우목동항을 지나 홍조단괴해변을 거쳐 한참을 걷다 보니 근처에 팔각정이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모두 곧바로 팔각정 누각에 가 몸을 맡겼다.
아비나 아들이나 같은 모습으로 바닥에 누워 핸폰을 두드리는 모습이
올레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간세의 형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평소 부지런하고는 거리가 먼 가족들이
아침 11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날아와
점심도 햄버거로 때우고, 성산항에서 2시 배로 우도에 건너와
우도를 한 바퀴 돈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린 걷는 그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이라
남들보다 서너 시간은 더 걸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정자에 누운채 숙소에 SOS를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제주에서의 첫날 걷기여행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우린 우도봉에 올랐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코스다.
우도봉에 오르는 산행길이 그림같다.
우도봉을 뒤덮은 띠풀이 바람결에 흩날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우도봉에 오르니 이미 해가 떠올라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저 아래 바닷가 근처 햇살이 비춘 제일 큰 건물이
우리가 묵은 숙소 '동굴리조트'이다.
국가대표 여자 축구단 김진영 선수의 집이다.
제주의 자랑, 우도의 자랑이 된 축구선수의 집이라서 그런지
다시 찾고 싶을 정도로 식구들이 모두 친절했다.
숙소 창문에서 바라본 우도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세찬 바람과 검은 흙과
아름다운 돌담과 띠풀이
가장 기억에 남는 우도이다.
언젠가 또 우도가 그리워질 날이 올테지..
이렇게 우도여행을 마치고
아침 9시 배를 타고 다음 코스인 1코스를 걷기 위해 성산항으로 출발했다.
세찬 바람에 출렁거리는 뱃머리에 나와보니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였다.
일출봉아, 기다려라. 네게도 곧 올라 가리라..
보리피리 - 詩 : 한하운, 곡 : 백창우, 노래 : 정태춘
첫댓글 가족과 멋지고 행복한 여행 이였군요..
저도 7월에 작은 아이와 1, 2, 1-1코스 갔다 왔어요. 우도봉, 검멀레해변의 모습이 선합니다. 저 팔각정에서 우리도 누워 있었죠. 땅콩밭 사이로 걷는 조용한 분위기가 매력적이었어요. 인기 있는 1코스는 역시 좋고, 인적은 드물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2코스도 좋았어요. 방학 때마다 올레를 찾아 걷습니다. 그냥 그곳에 가면 살아있음을 느껴서 좋아요. 뭐 어느 곳이든 걷는 곳은 다 좋지만. 제가 '올레'꾼이 된 후론 아이들도 엄마는 노후에 제주도에서 살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이 이루어질까요? 우연히 들렀다 올레 사진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