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conte)>
『어느 폭주족의 변신』
靑山 손병흥
새로운 21세기가 펼쳐진 이른바 밀레니엄시대가 도래했던, 지나간 2천 년도에 서울 소재의 어느 실업계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말썽꾼이었던 P군이, 그처럼 별 망설임도 없이 소위 비행청소년으로도 불리어지던 오토바이 폭주족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배경에는, 아마 잘 모르긴 해도 그 당시 혈기왕성한 젊은 청소년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두말할 것도 없이 본격적으로 폭주족들을 대량으로 양산하게 만든 한 배경이 된, 이른바 배우 정우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멋있게 폭주를 하며 열연을 했던 영화인, “비트” 의 영향이 컸었다고 했다.
통상적으로 날씨가 차고 매서운 겨울철이 지나, 점차 따뜻해지는 봄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던 그들 사이에선, 언젠가 부터 서로 마구 일종의 경쟁이 일어날 정도로, 특별하게 오토바이를 개조하여 음악의 소리를 아주 시끄럽게끔 해 타고 다니면서, 아예 교통신호나 체계를 무시한다거나, 리더를 자처하는 선두자의 지시에 따라 행렬을 지은 채 마구 재빠르게 곡예운전을 하며 달리는 폭주를 함으로써, 나름대로 그들은 남들의 관심을 끈다거나, 그동안 차곡차곡 쌓였던 마음 속 스트레스를 단번에 해소하고자 하였다.
하기야 관점에 따라 남들이 보기엔 꼴사납고 역겨울 정도로 비 호감으로 생긴 것들이 모여서, 별 짓거리를 다한다고 하는 남들의 싸늘한 눈길을 의식하거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단지 함께 모여 그처럼 무질서하게 달리는 것이 마냥 좋았던 철이 없는 시기였던지라, 주말이나 공휴일과 방학시즌의 밤이면 밤마다 주구장창 오로지 과속만을 쾌감으로 즐기는 동안에, 불행스럽게도 크고 작은 사고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당연히 부상을 당하는 이가 부지기수였음도 물론이다.
그 당시 국내에선 H사와 D사의 시티시리즈들이 주로 폭주용 오토바이의 한 축을 차지하였는데, 이를테면 양옆으로 휘황찬란한 LED를 박아주고,‘윈드쉴드’에는 더듬이를 단다거나 V자로 LED를 박은 채로, 배기통(일명‘마후라)에도 일부러 구멍을 뚫어‘경광봉’을 휘두르며 S자로 묘기를 부리면서 선두로 달려주면, 이내 지체 없이 행렬을 뒤따르는 오리새끼들처럼 줄지어 따라가는 형태의, 그러한 광경을 다들 꽤 심심찮게 보아왔을 것이다.
아마도‘아콘’의 공격하는 형상을 본 딴 외양과, 하늘높이 치켜든 기세로‘VF’나‘엑시브’의 뒷‘쇼버’를 올려놓거나, 시트의 방석을 거미줄로 단단히 고정시키듯이 줄이나 노끈으로 칭칭 동여매고서,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이 보여 지는 포즈로, 뒷좌석에는 동성이나 이성의 친구를 한명씩 태우고는, 일부러 부질없는 만용으로 필수적인 안전모도 쓰지 않은 채 매우 위험스럽게 폭주를 즐기는 경우도 허다했다.
더군다나 기마자세로 당시 잘 알려진 코요테 리믹스 등의 신나는 음악도 틀어가며, 이른바 난폭과 곡예운전을 한꺼번에 취하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주로 알바삼아서 배달을 하는 라이더들 몇 사람이 모여서, 밤늦은 시간에 단순히 친목도모의 차원으로 쏘다니는 정도이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그렇게 단속도 심하지가 않았던 데다, 점차 소위 말해‘3·1절 폭주’나‘광복절 폭주’등으로 인해 사회적인 이슈인 문제점으로 널리 인식이 되고, 교통안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요소로까지 언론매체에 자주 보도가 되면서부터, 부득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들의 폭주족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과 처벌강화 등으로 인해, 지금은 아주 급격하게 줄어들고야 말았다.
아무튼 그렇고 그랬던 그가 해병대를 자원입대하여 다녀온 뒤로는, 아예 개과천선하는 새사람이 되어 오토바이정비기술을 배우고 익혀 근 십 년 간이나 성실하게 수리 센터의 종업원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자기의 업체를 차려서 정말 열심히 일한 결과, 지금은 수리점 외에도 별도의 오토바이 판매 대리점까지도 운영을 하는, 어엿한 사장님으로 불러질 만큼 마침내 성공한 소상공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개인 소유의 승용차가 없다. 물론 가정용으로 요긴하게 쓰고 있는 고급승용차가 한대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상생활을 불편해하는 아내와 자녀를 위한 배려차원에서, 그가 구입하여 명의와 운행까지도 아예 아내에게 넘겨준 차일뿐이었다.
그렇지만 승용차 대신에 나름대로의 멋을 부린 채 얼굴에 맞닿는 바람을 가르고 마음껏 낭만을 즐기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만, 소위 말해서 라이더들의 로망인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명품으로 알려진 H자로 시작이 되는 엔진소리마저도 요란스런, 최고급 오토바이의 소유주이자 라이더로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와는 너무나 다르게 시리, 지금은 관내 경찰서의 지구대와 힘을 합쳐 지역일대의 교통질서 지키기 캠페인과, 지역 내 불우이웃돕기와 청소년 선도나, 거리청소와 환경개선 등의 봉사활동에도 아주 적극적으로 동참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매년마다 열리는 코리아 내셔널 호그 랠리의 백미인‘그랜드 투어’에도 몸소 활기차게 참가를 하는 라이더이기도 할 정도로, 아직 그의 오토바이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이나 열정은 식지가 않았다고들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