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양
백석
거리는 장날이다
장날 거리에 영감들이 지나간다
영감들은
말상을 하였다
범상을 하였다
족제비상을 하였다
개발코를 하였다
안장코를 하였다
질병코를 하였다
그 코에 모두 학실을 썼다
돌체 돋보기다
대모체 돋보기다
로이도 돋보기다
영감들은 유리창 같은 눈을 번득거리며
투박한 북관(北關)말을 떠들어 대며
쇠리쇠리한 저녁해 속에
사나운 짐승같이들 사라졌다.
-<삼천리 문학>(1938)-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해학적, 향토적, 회화적, 묘사적, 남성적
◆ 표현 : 장날 풍경을 감정이입 없이 인상적으로 표현함.
인물에 대한 묘사를 비유적이고 해학적으로 함.
북관 노인들이 왁자지껄하게 사투리를 지껄이는 모습을 통해 현장의
생동감(활기)을 잘 표현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말상을 하였다 / 범상을 하였다 / 족제비상을 하였다 → 얼굴 모습(동물에 비유)
* 개발코를 하였다 / 안장코를 하였다 / 질병코를 하였다 → 코의 모습(개발, 안장)
* 학실 → 다리 가운데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안경
* 돌체 돋보기다 / 대모체 돋보기다 / 로이도 돋보기다 → 안경의 모습(다양한 모습)
* 돌체 돋보기 → 석영 유리로 안경테를 만든 돋보기
* 대모체 돋보기 → 바다거북의 등껍데기로 안경테를 만든 돋보기
* 로이도 → 미국의 희극 배우 헤롤드 로이드
* 북관 → 함경도 지방을 두루 이르는 말
* 쇠리쇠리한 → 부시다. 빛이나 색채가 강렬하여 마주 보기가 어려운 상태에 있다.
◆ 주제 : 장날 저녁 무렵의 풍경과 사람들의 재미난 모습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백석은 민중들의 즐거움과 따뜻함을 잘 그린 작가로 이 시에서도 장날에 거니는 영감들의 안경 쓴 모습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해학적으로 잘 그리고 있다. 얼굴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 안경 쓴 모습을 묘사한 부분, 돋보기를 쓴 모습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하나하나의 얼굴 모습이 우리의 시각에 포착되며 즉각적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이러한 묘사야말로 백석 시의 진미인 것이다. 그야말로 일제 강점기, 웃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우리 시사에 획을 그은 놀라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향토적이며 회화적이고 희극적인 시이다. 장날 저녁 무렵의 풍경과 정취를 표현한 것으로, 장날에 만날 수 있는 노인들의 수수하고 친숙한 삶이 잘 나타나 있다. 저녁 때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생의 석양이라는 의미까지 중첩되어 있다. 이들의 인상이 하나같이 기묘한데도 두렵거나 무섭게 느껴지지 않고, 우리 장터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낯익은 모습들이다. 그런데 북관 태생 노인들의 생김새는 원시적이고 우락부락한데다 투박한 말을 쓰는 것이 마치 사나운 짐승같이 느껴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 야성의 사나운 짐승의 모습을 한 노인들의 안경 낀 모습과 석양에 반사되는 건물 유리창의 모습에서 현대와 야성의 흔적이 동시에 느껴진다. 얼마전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이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정글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야성을 표출하며 관객들을 사로잡던 킹콩이 뉴욕에 온 순간, 그 야성은 억압당하고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사랑' 때문이다. 킹콩은 사랑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람보다 나은 동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세상의 비극이 아닐까. (-시인 신배섭-)
■ 더 읽을거리 - 국립국어원, 김옥순 -
♠ 시간 : 장날
♠ 장소 : 북관(함경도)의 거리
♠ 대상 : 영감들 > 영감들 얼굴 > 코 모양 > 코에 걸친 학실 모양
얼굴은 그 사람을 대표하는 제유로 잘 쓰인다. 그 사람을 비유하는 것으로 손이나 다리를 꼽지 않고 얼굴을 꼽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살아 있는 은유"를 쓴 조지 레이코프의 말처럼 그 이유는 얼굴이 가진 대표성이다. 부분이라고 해서 다 제유의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시에서는 북관(함경도의 다른 이름)의 거리를 활보하는 영감들의 대표적 특징을 얼굴에서 잡아내고 있다. 말상(말처럼 긴 얼굴), 범상(호랑이처럼 몹시 사납고 무서운 얼굴), 족제비상(족제비처럼 다소 품격이 떨어지는 얼굴)으로 나누어 본다.
그 얼굴 가운데서도 코 모양을 개발코(개발처럼 뭉툭하게 생긴 코 내지는 넙죽한 코), 안장코(말의 안장처럼 콧등이 잘룩하게 생긴 코), 질병코(거칠고 투박한 오지병처럼 생긴 코)로 구분한다. 이렇게 북관의 영감들은 다른 얼굴형과 다른 코 모양을 하고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즉 학실(돋보기의 평북 방언, 특히 다리 가운데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든 안경)을 썼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학실의 디자인도 각각 다르다. 돌체 돋보기(석영 유리로 안경테를 만든 돋보기), 대모체 돋보기(바다거북의 등껍데기로 안경테를 만든 돋보기), 로이도 돋보기(미국의 희극배우 헤롤드 로이드가 끼었던 안경) 등을 각각 꼈다. 이런 묘사와 관찰은 시 속의 말하는 이 나름대로 진지한 관찰이지만 한편으로 웃음과 장난끼마저도 느낄 수 있는 표현들이다.
그런데 말하는 이의 관찰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쇠리쇠리한(눈부신)' 저녁 해에 그들의 안경이 반사되면서 영감들의 눈은 (도시 건물의) 유리창으로 비유된다. 건물의 유리창이 석양에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모습과 안경의 유리가 번득거리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다시 말상, 범상, 족제비상의 모습을 한 영감들이 투박한 함경도 말로 떠들어대며 위협적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한판 싸움을 끝낸 한 무리의 맹수들이 원시림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것처럼 '사나운 짐승같이'라고 비유한다.
여기서 약간 비유의 불균형이 느껴지는데, 북관 태생 영감님들의 생김새는 원시적이고 우락부락한데다 투박한 북관 말을 쓰는 것이 마치 사나운 짐승 같다고 했다. 그 영감님들의 코 위에는 한결같이 근 · 현대적인 갖가지 형태의 안경들이 걸쳐 있다는 점에서 그 불균형은 흥미롭기도 하다. 이렇게 야성의 사나운 짐승의 모습을 한 함경도 영감님들의 안경 낀 모습과 석양에 반사되는 건물 유리창의 모습이 동시에 느껴진다는 점에서 현대와 야성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상한 결합을 비유를 통해 적확하게 꼬집어내고 있다. 어떤 진화된 민족도 다 야성에 뿌리를 두고 있듯이 1930년대의 근 · 현대적인 북관 영감님들이 시장 나들이를 하는 모습에서 말 타고 맹수를 쫓던 사이베리아, 요동 반도를 장악했던 사냥꾼 조상의 모습, 우리 민족의 원시적이고 야성적인 뿌리가 현대에 이어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작가소개]
백석 : 기행시인
출생 : 1912. 7. 1. 평안북도 정주
사망 : 1996. 1.
학력 :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 영어사범과
데뷔 :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
경력 :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조선일보사 출판부
작품 : 도서, 오디오북, 기타
<백석의 생애>
백석(白石 ; 1912∼1996)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본명은 백기행이지만 아호였던 백석을 필명으로 사용하였다. 1929년 정주에 있는 오산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아오야마학원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했다. 그 후 해방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사, 영생 여자 고등 보통학교, 여성사, 왕문사 등에 근무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이후 조선일보 후원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의 아오야마 학원에서 공부하게 된다. 조선일보사와 계열사인 〈여성〉지에서 근무하는 동안 단편 소설 〈마을의 유화〉와 〈닭을 채인 이야기〉, 수필 〈이설 귀고리〉를 발표하였다. 이 밖에 〈임종 체흡의 6월〉이라는 서간문을 번역 소개하거나, 〈죠이스와 애란문학〉이라는 티 에스 마르키스의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 후 1935년 첫 시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작(詩作)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6년 1월 33편의 시로 이루어진 시집 〈사슴〉을 출간하였다. 이때부터 1940년까지의 기간 동안 활발히 활동하며 집중적으로 시를 지었다. 시집을 낸 직후 함흥의 영생 여자 고등 보통학교에 부임했다가, 곧 만주의 신경으로 떠났다.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에서 일하기도 하고, 북만주 산간 오지를 여행하며 측량보조원, 소작인, 세관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해방 후에 신의주를 거쳐 고향 정주로 돌아왔다. 그 후 계속 북한에 남아있었으나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백석의 작품 세계>
백석은 당대의 어떤 문단이나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언뜻 보기에는 매우 편안하고 일상적인 언어와 평북 지방의 방언을 사용하는 백석의 시는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체험을 조직하는 데 있어 매우 탁월하고 모더니즘적인 느낌을 풍기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은 초기 백석의 시에서 두드러지는데 고향의 풍물과 민속, 인물들을 다루고 있지만 이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묘사를 통해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지 않고 매우 객관적으로 절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시집 〈사슴〉을 발표한 이후에는 묘사 이외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담담하게 직접 표현하는 방식으로 시가 변화하게 된다. 백석은 38년 이후의 시에서는 이러한 낭만주의적 시작 태도를 보이면서, 공간성보다도 시간성과 역사성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이 땅의 역사에서도, 시인 개인으로서도 힘들었던 이 시기에 백석의 시는 원초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역사성과 깊은 인식을 보여준다.
백석은 앞서 말했듯이 고향의 자연과 풍속,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를 썼다. 이 소재들은 단순히 하나의 풍물을 제시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고향의 삶과 역사에 깊이 관련을 맺는 것들이었다. 백석의 시에서 고향은 〈모닥불〉에서 보이듯이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이 정겹게 하나 되는 곳으로, 〈여우난곬족〉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과 자연, 귀신과 사람까지도 화해롭게 공존하는 제의적이고 풍요로운 공동체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백석의 시에서 주인공은 고향과 공동체의 품에 안겨 있지만, 현실의 자신은 공동체적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 속에서 따뜻한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마음과 이와 상반되는 현실의 상황이 백석 시에 의미와 생명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석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한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