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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백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오늘날의 튀르키에 지역 님루드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에 있는 기원전 883~859년 까지의 아시리아 부조 조각
고베클리 테페에 있는 기둥43은 꼭대기를 따라 세 개의 핸드백 조각이 있다
남미 마야문명의 전단계인 올맥 유적지인 타바스코 라 벤타에 손에 핸드백을 든 남자가 있다
핸드백의 형태는 아시리아, 수메르,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남미의 올맥족등의 유적지의 조각상에 분명히 남아있다. 핸드백의 기원은 최소 3000년전의 조상들이 사용하여 온것을 근대에 와서 재해석한것이 분명하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핸드백이 아니라 우주를 상징한다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비록 남자가 들고 있는 형태지만 제사장이 신성한 물건을 넣은 손가방으로 볼수 있지 않을까?
기원전 1450~1200년경의 그리스 미노아문명 유적에서 발견된 손가방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유사 경덕왕조에
왕이 항상 비단 주머니 차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신라시대에도 주머니(손가방)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주머니를 사용한 모습은
이렇게 다양한데 우리나라에도 조각상이 남아있다
왼손에 주머니를 들고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를 부귀를 추구하는 모습이라 한다.
주머니는 지갑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을테고
숄더백
씨망태기 ㅡ 핸드백
숄더백 보관방법
가끔 소꼴해올때도 사용하고
산삼캘때 꼭 필요한 약초 망태기는 삼국시대 이전에도 있었다
약초 망태기ㅡ 백팩
어롱
허리에 차는 백
우리나라에 근대화이후 서구에서 핸드백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민족은 핸드백을 망태기라고도 불렀고 다래끼라고도 불렀다. 짚이나 칡 또는 싸리나무로도 만들었고 이를 이동시 필수품을 넣어 다니기도 하였고 가끔 산나물 채취할때도 소꼴 마련할때도 물고기 잡아 넣을때도 사용하였다.
방랑시인 김삿갓도 등에 매는 망태기를 매고 다녔다
씨망태기와 허리에 차는 종다래끼는 디자인과 실용적인 면에서 가성비가 높아보인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