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옛날 기사 하나 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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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해롭지만은 않다
해롭기만 하고 조금도 이롭지 않음을 일컬어 백해무익이라고 한다. 백해무익의 대명사는 담배.
기생충은 어떨까?
얼마 전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됐을 때 아연실색하던 사람들의 반응을 떠올리면 혐오감에서는 담배가 기생충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듯 하다. 그런데 기생충이 무익하지 않다는 영국 에딘버러대 메이젤(Rick M. Maizels) 교수팀의 연구결과가 지난 11월 실험의학저널(The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에 발표됐다.
기생충은 약 20억 명의 사람에게 감염돼 있다. 목숨을 앗아가거나 설사나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영양결핍을 초래하는 등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종류도 있지만 대개는 특별한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위생상태가 좋은 선진국에서는 흙을 매개로 하는 기생충이 전염되기 어려워 기생충 감염률이 매우 낮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초 80%를 웃돌던 감염률이 현재 4%로 감소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기생충 질환이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천식이나 아토피성 피부염, 알레르기성 비염 등의 알레르기성 질환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좋은 위생환경과 알레르기성 질환이 어떻게 관련이 되는 지를 추적한 끝에 기생충의 감소가 알레르기성 질환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혀냈다.
기생충 감염률이 낮을수록 알레르기성 질환이 증가한다는 통계자료부터 기생충 감염이 알레르기성 질환을 막는다는 실험 증거까지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어떤 메커니즘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지는 알지 못했다.
알레르기는 부적절한 면역 반응 때문에 일어난다. 외부의 물질이 유입되면 면역계는 이를 인지하고 필요에 따라 염증 반응을 일으켜 이를 제거한다. 이때 면역반응이 적절히 조절되지 못하고 과도하게 일어나 자신의 조직을 손상시키는 것을 알레르기라고 한다. 집먼지진드기나 꽃가루 등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의 면역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환경에서도 어떤 사람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최근에 면역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세포들 중에 조절T세포라고 불리는 세포들이 알레르기를 억제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조절T세포는 면역반응을 억제시키고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세포로 한 예로 장 속에서 우리가 먹은 음식물에 대해서 불필요한 염증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억제하는 기능을 조절T세포가 맡고 있다.
기생충에 감염되면 조절T세포가 늘어난다. 에딘버러대 연구팀은 기생충이 조절T세포를 통해서 알레르기를 억제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생쥐로 실험했다. 장에서 기생하는 선충을 실험용 생쥐에게 감염시키고 그 생쥐의 몸에서 조절T세포가 늘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이 조절T세포를 천식을 앓고 있는 생쥐에 주입시키자 증상이 호전됐다. 기생충이 조절T세포를 증가시키고, 늘어난 조절T세포가 알레르기를 억제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연구결과가 배 속에 기생충을 기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기생충이 어떤 물질을 통해서 조절T세포를 증가시켰는지를 밝혀내면 그 물질을 이용해 알레르기성 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 등 면역 조절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기생충은 면역력을 억제하는 걸까. 과학자들은 기생충이 단지 숙주의 면역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숙주의 면역력을 억제시키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반대로 숙주는 기생충이 면역력을 억제시킬 것을 대비해 적정수준보다 과도한 면역반응을 일으키도록 진화해 면역을 억제하던 기생충이 없어지면 면역반응이 지나치게 돼 알레르기성 질환을 일으킨다고 추론한다. 마치 한쪽에서 문을 열려고 미는 것을 반대쪽에서 막으려고 밀고 있다가 한쪽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남은 한쪽이 넘어지는 것과 같이 우리의 유전자가 적응해 진화한 환경이 갑자기 새로운 환경으로 바뀌면서 몸의 균형이 깨지면서 병이 생긴 것이다.
있어도 탈, 없어도 탈이라고 할 수 있는 기생충과 알레르기성 질환의 관계는 무조건 청결만을 외쳐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우리의 몸은 애초에 완벽한 상태에서 외부 요인으로 인해서만 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때그때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여 진화된 존재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스스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기생충과 알레르기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질병에도 다윈의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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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나라 국민은 기생충이 분비한 면역억제 물질이 몸에 없기 때문에 알러지 반응이 잦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인데요.
일단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 위생상태가 처지는 국가의 국민보다는 선진국의 국민에게 알러지가 많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기생충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요?
알러젠(알러지를 일으키는 물질이나 원인)의 종류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후진국 국민에 비해 선진국에서는 "색소나 방부제 덩어리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과자나 즉석요리를 많이 먹고 있는 점도 알러지가 많은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시골에 알러지 환자가 많은 것을 보면요...
또한, 토담이나, 석벽, 아예 나뭇가지나 잎으로 지은 집에서 사는 후진국 국민에 비해 선진국 국민은 친환경적이지 않은 자재로 지은 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알러지 환자 비율과 묘하게 일치합니다.
어떤 증거나 통계가 어떤 가정과 일치한다 하여 그것을 객관화하는 것은 귀납법의 함정입니다. 귀납법에 의한 결론내리기는 반대되는 증거가 나오는 즉시 폐기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은 "알러젠이 다양하다"라는 결론 뿐입니다.
* 위에 인용한 기사를 가지고 개독들이 "러셀의 비아냥을 하나님이 몸소 보여주셨다"고 주장합니다.
러셀의 비아냥이란 "목적론이 맞다면, 촌충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위 기사는 개독들에게, 지적설계론(목적론)자들에게 좋은 무기가 되는데요...
과학적 방법, 귀납법, 이성적 사고, 유추의 자제와 결론의 유보 등등 과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다른 가능성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하나의 증거에 일희일비하는 태도는 역사적으로 많은 비극을 낳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