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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의 유래
처음으로 한글날을 기념한 것은 일제시대인 1926년이다. 한글이 반포(1446년)된 지 8회갑(480돌)이 되는 1926년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와 신민회가 공동으로 식도원(食道園)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 최초다.
이때 기념식을 치른 날짜는 11월 4일이었다.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을 책자로 완성했다는 실록의 기록에 근거해 음력 9월 29일을 한글 반포 일로 보고 이날 기념식을 거행했다. 기념식 명칭은 ‘가갸날’로 정했다. 당시 ‘가갸거겨’ 하면서 한글을 익혔기 때문이다. 몇 해 뒤부터는 ‘한글날’이란 이름이 사용됐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는 일제의 탄압으로 기념식을 거행하기 어려웠다.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한글학자들이 투옥됨에 따라 더욱 기념식을 치를 수 없었다. 1945년 나라를 되찾음으로써 다시 기념식을 거행하게 됐다.
1945년부터는 지금처럼 10월 9일에 한글을 기념하게 된다. 1940년 7월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기록을 근거로 날짜를 다시 계산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에 ‘9월 상한(上澣)’이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해 나온 것이 10월 9일이다.
1970년부터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해 행사를 치러 왔으나 1990년에는 국경일이 아닌 단순 기념일로 바뀌었다. 각계의 노력으로 지난해부터 다시 국경일로 지정돼 행사를 치르고 있으나 공휴일에서는 제외됐다.
한글은 우리 민족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인터넷 시대에 그 독창성과 과학성이 더욱 빛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은 아쉽다. 한글학회 등 한글단체와 문화관광부가 한글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해 놓고 있으나 평일이라 참여율이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출처: 한국어-읽기로 배우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 한글의 유래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했다는 것은 물론이고, 한글이 전세계의 어떤 문자와 비교해 보아도 대단히 우수한 문자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토록 위대한 문자를 만들어낸 우리 한민족의 언어와 문자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도 ‘비공식적인 이야기’정도로 남겨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혼자 만들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역사적 배경을 보여준 KBS역사스페셜 「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지 않았다」(1999.10.9 방영)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의 4대 임금이었던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학자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남몰래 자식들과 더불어 한글을 연구한 지 10여 년 만에 마침내 28자의 정음을 창제하였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한글창제는 세종대왕 혼자만의 비밀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재위25년(1443년)에 전격적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당시 집현전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던 최만리 등 일곱 명의 노장학자들은 반대 상소를 올린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의 소장학자들과 더불어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과 동국정운(1447년) 등 한글관련 서적의 편찬사업을 계속 추진하였다. 모든 백성들이 아무 불편없이 언어와 문자를 활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군주로서의 의지가 확고하였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글의 우수성
세종대왕의 이러한 신념이 반영된 훈민정음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세계적인 과학잡지 《디스커버》는 지난 1994년 7월호 특집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한글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학적 사치!”
한마디로 말해서 한글은, “세계 문자역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라는 것이다.
한편 언어학자들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한글이 어떻게 한 개인의 연구에 의해 단기간에 창제될 수 있단 말인가?’
세계 문자 역사상 그런 경우는 단 한건도 없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원본의 말문에 적힌 ‘정통 11년 9월 상한 세종 28년 9월’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0월 9일이 되어, 이 날을 한글날로 정하였답니다
1926년 11월 4일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 전신)가 주축이 되어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여 행사를 거행하였고,1928년 명칭을 ‘한글날’로 바꾸었어요
1932년과 1933년에는 음력을 율리우스역서로 환산하여 양력 10월 29일에 행사를 하였으며,
1934년부터 1945년까지는 그레고리오역서에 의하여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28일에 행사를 거행하였답니다
1940년에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의 말문에 해당하는 날을 추정한 결과,
늦어도 세종 28년 음력 9월 10일까지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것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에,
세종 28년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하고 1946년부터 이 날에 행사를 거행하여 오고 있어요
기념식을 가지고 세종문화상을 시상하며,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의 능인 영릉을 참배하고
또한, 전국학술연구발표회 및 각종 백일장 등이 열린답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사전, 한글날 기념식 544돌 때의 사진)
한글날 노래 * ( 최현배 작사 / 박태현 작곡 )
한글날 노래
최현배 작사 박태현 작곡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새 세상 밝혀 주는 해가 돋았네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 넉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한 겨레 한 맘으로 한데 뭉치어
힘차게 일어나는 건설의 일꾼
바른 길 환한 길로 달려나가자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
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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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노래가사, 악보
'한글날'은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념하는 날, 우리 글자 한글을 기리기 위하여 법으로 정한 날이다.
한글날을 제정한 때는,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있던 1926년이다. 조선어 연구회(지금의 한글 학회)가
1926년 음력 9월 29일 (양력 11월 4일) 처음으로 '가갸날'이라 이름해서 기념하기 시작했다.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정한 것은 한글이 반포된 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글은 조선 세종 28년 '음력 9월 상한'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표되었다.
기록에 따라 9월 상순의 끝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서기 1446년 10월 9일'을 기리게 되었다.
- 1926년 음력 9월 29일(11월 4일) '가갸날' 선포(한글 반포 8회갑=480돌).
- 1928년 '가갸날'을 '한글날'로 이름을 고침.
- 1931년 음력으로 기념해 오던 '한글날'을 양력 10월 29일로 정하여 기념함.
- 1934년 음·양력의 환산 방법을 그레고리오력으로 고쳐 10월 28일로 정하여 기념함.
- 1940년 "훈민정음" 원본의 발견으로 정통 11년 9월 상한이란 한글 반포의 날이 대강 밝혀졌으나 나라 안팎의
- 사정으로 기념식을 갖지 못함.
- 1945년 훈민정음 원본에 따라 1446년 10월 9일이 한글 반포의 날임을 확정함.
- 1946년 한글 반포 500돌을 맞이하여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함.
- 1981년 '한글날' 기념식이 정부(서울시) 주관으로 바뀜(535돌).
- 1982년 '한글날' 기념식을 서울시에서 문화공보부 주관으로 함.
- 1990년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함.
▶ '가갸날' 선포: 조선어 연구회(지금의 한글 학회)는, 일제의 억압에 짓눌려 위축되어 있던 겨레얼을 되살리고 북돋우기
위하여, 한글(훈민정음) 반포의 날을 기념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왕조 실록》권113 세종 28년(병인) 9월 조의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란 기록을 근거로 삼아 서기 1926년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
곧 한글을 편 지 8회갑(480년)을 맞이하여, 한글 반포 8회갑의 잔치를 베풀고, 이 날을 '가갸날'로 선포하였다.
▶ '한글날'로 이름을 바꿈: 1928년에는 '가갸날'의 이름을 '한글날'로 고치고, 계속 음력 9월 29일에 기념식을 올렸다.
▶ '한글날'을 양력으로 고쳐 잡음: 1931년에 이르러 우리의 문화 생활이 모두 양력으로 표준하므로 이에 맞춰,
수학 전문가에게 양력(율리우스력) 환산을 의뢰한 바 10월 29일로 되었다.
그 해부터 이 날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식을 가졌다.
▶ 그레고리오력으로 고쳐 정함: 1934년에 이르러 음-양력 환산 방법에 의문이 생김에 따라, 관련 전문가와 전문 기관에
위촉하여 의견을 모은 바 '세종 28년 음력 9월 29일'은, '서기 1446년 10월 28일'로 일치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에서 쓰는 양력(서력 1582년에 개정된 그레고리오력)으로 환산한 이 날로 '한글날'을 고쳐서 기념하게 되었다.
▶《훈민정음》원본의 발견: 1940년 7월에《훈민정음》원본이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끝에 "정통 11년 9월 상한(正統十一年九月上澣)"이란 글이 있어서, 한글 반포의 날이 대강 밝혀졌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져서, 모든 것이 통제되고, 집회를 엄금하는 때이라, 한글날 기념도 하지 못하였다.
▶ 10월 9일로 확정된 한글날: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한글 학회는 새 살림을 차리고, 한글 반포 날인 '정통 11년 9월
상한'을, 상순의 끝 날(상한)인 9월 10일로 잡고, 양력으로 환산한 결과, '서기 1446년 10월 9일'이 되므로,
이 날을 한글날로 확정하였다.
▶ 공휴일로 된 한글날: 1946년 한글 반포 500돌을 맞이하여, 정부에서는 뜻깊은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내외 귀빈과 각계 유지 2만여 명이 덕수궁에 모이어, 기념식을 가졌다.
▶ 기념식이 정부 주관으로: 이제까지 한글 학회와 세종 대왕 기념 사업회가 주관해 오던 기념식을 1981년,
535돌 한글날부터는 서울시가 주관하였고, 그 다음 해(1982)부터는 문화공보부(지금은 문화관광부) 주관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공휴일에서 제외된 한글날: 그런데, 1990년 총무처(지금은 행정자치부)에서 법정 공휴일 축소 문제와 관련하여,
한글날도 공휴일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1990년 8월 24일 국무회의에서 한글날을 (국군의 날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시키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의결, 통과시켰다. 이후부터 '한글날'은 단순한 기념일로
축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국경일로 제정, 그 위상을 높여야 할 한글날: 그 동안 끌어내려졌던 한글날을 추켜 올려 국경일로 제정하여
온 나라의 잔칫날, 온 누리의 잔칫날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한글 학회를 비롯하여 관련 단체들에서는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기 위해 1999년 7월 9일에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공청회를 여는 등 지금까지 갖가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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