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꾼의 이전투구
진흙탕 속에서의 개들 싸움을 고상하게 표현해서 이전투구(泥田鬪狗)라 한다.
그러면 개펄 속에서 뱀장어와 사람이 싸운다면 고상하게 표현해서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이전투만대인(泥田鬪鰻對人) 정도가 되리라.
그리고 그 뱀장어와 사람 싸움의 승부는 어떻게 될까?
확률은 반반, 즉 50%는 되리라.
사람이 이기면 뱀장어는 석쇠위에 오를 것이고,
뱀장어가 이긴다면 살아 돌아 가리라.
그런데 뱀장어가 살아 돌아간 뒤의 사람 모습은 어떨까?
개펄에서 나뒹군 사람의 몰골을 상상해 보시라.
역마살이 낀 탓일까?
유난히 지방 근무가 많아서 본의 아니게 조선8도 안간곳이 없을 정도인데 그 중에도, 특히 경주에서의 장어 잡던 일은 가끔 혼자 웃게 만드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까 78년도로 기억된다.
땅 설고 물 선 경주 땅에 보험회사 소장으로 발령받아 친구를 사귀어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으나,
대한민국에서 몇 번째로 보수성이 강한 경주 땅에서 마음을 터놓아 주는 친구를 얻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해서 자연히 낚시에 의지하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
경주 시가지를 기준해서 서쪽으로 흐른다 해서 서천내라고 부르는 곳에는 대낚시가 가능한 지점이 몇 군데 있었다.(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중 한군데 장소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는 출근 전에 아침 운동 겸해서 낚시를 하곤 했던 적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8월의 새벽을 가르며 5분쯤 달리면 백로가 안개 속에 고개 짓을 하는 서천내가 꿈속의 한 장면같이 거기 잠을 깨고 있었으니, 그중에도 늘 정해진 자리는 철교 밑 하수구(204)가 만나는 곳이다.
경주는 국내에서 일급 관광지로 이름나 있지만 필자의 기억에 남은 경주라는 도시는 그렇게 화려하지도 번잡하지도 사치스럽지도 않은, 포근하고 은근한 그런 도시로 오래 오래 기억되어진다.
아침 이슬을 자전거 바퀴로 흩날리며 도착하는 서천 내 철교 근처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들려오는 멋진 화음이 있었으니,
연세가 이순(耳順)은 되었음직한 노부부가 때로는 젊은 연인같이 손을 살짝 잡고, 아니면 살짜기 팔장을 끼고 사뿐히 걸으며 우리의 가곡을 부르곤 했다.
“닭 소 보듯 소 닭 보듯” 이란 말과 같이 우린 서로가 서로를 굳이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내게 다가온 적이 없었고 설사 먼 발치에서 스치더라도 “좀 잡혀여?” 하는 의례적인 관심표시도 없이 그들은 그들대로의 세계에 침잠했고, 내 또한 그들의 합창이 역겹다거나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아 내 낚시에만 몰입하곤 했다.
결국 낚시꾼과 음악인과 새벽 냇가의 아침이 어우러지곤 하는 그런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8월의 토요일 오후에 이글의 제목이 시사 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수심청무어 인심찰무도(水深淸無魚 人甚察無徒), 즉 물은 적당히 더러워야 고기가 꼬이는 법,
아닌게 아니라 철교 밑 하수구(204) 옆에 자리를 고정시킬 때까지 여러 곳을 탐색해 보았지만 하수구에서 나오는 음식찌꺼기, 지렁이 등등이 그중 나은 조과(釣果)를 안겨 주기에 그 자리를 계속 앉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 일을 끝내고 대여섯 시쯤 되었을 시간에 낚싯대 딱 두 대에 지렁이 몇 마리(501) 그리고 의자와 살림망을 챙겨 논둑길을 비비 배틀 돌아 별로 향기롭지 못한 하수도와 냇물의 합류지점, 그중에도 삼각주에 자릴 잡았다.
새벽의 백로도 안개속의 노부부도 없는, 퀴퀴한 하수도 냄새와 풀 익는 저녁 냄새가 여전히 땡땡 쬐는 햇볕과 공동작전으로 어우러지는 중이었다.
참고로 그때 필자의 복장을 설명하자면 흰색 반바지(테니스복)에 역시 흰색의 반팔 티셔츠를 입고 흰색 테니스화를 신고 있었으니, 애당초 하수구 끝에 앉는 복장(103)으로는 불합격이었다고 할까? (글쎄 대청댐이나 파로호 쯤 이었다면 몰라도...)
어느 하수구 끝이 다 그러하듯, 죽은 쥐와 빈 깡통, 찌그러진 신발짝 등이 널려 있는가 하면, 바닥은 인천 앞바다의 개펄을 닮아 시꺼멓고 푹푹 빠지며 미끄럽기까지 한 그런 하수구 끝의 삼각주 한가운데 앉은 한심한 낚시꾼.
수심청 무어(水深淸無魚)의 반대면 수심탁 유어(水甚濁 有魚)라, 예외 없이 뻔질나게 깔닥 거리던 찌가 한번은 쑤~욱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심호흡,
아니 숨을 탁 죽이며 챔질을 했는데, 어렵쇼~ 돌에 걸린듯 강렬 버팅김이 느껴졌다.
월척?
대어?
지렁이에 잉어는 아닐테고?
당기는 힘이 센 경우엔 고기하고 놀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다(나만 그런지 몰라도)
무우 뽑듯이, 뻗대는 개 끌 듯이 낚싯대를 곧추 세우고 보니(602) 어렵쇼 뱀장어(603) 아닌가?
아무튼 포로를 잡았으면 포로 수용소에 가두어야 내 것이 되는 법,
발 앞까지는 멋지게 스키를 태우며 끌어냈는데, 그런데 이 뱀장어 좀 보소!
여간 미끄러워야 잡지.
어물거리는 사이에 놈이 몸을 여러 차례 꼬아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가 싶더니 바늘에서 제 스스로 빠져 나가고 말았다.
또 하필이면 이놈이 바늘에서 탈출을 했으면 곧바로 서천내로 향할 것이지 제 놈도 정신이 없어서인지 하수도 쪽으로 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경우 부처님 마음으로 그냥 돌려 보내줄 낚시꾼이 있을까?
처음에는 흰색 운동화가 뻘 속에 빠지는 것이 신경 쓰였으나 한번, 두 번 잡았다가 놓치고, 놓치면 도망가고, 도망가면 쫓아가 움켜쥐고... 계속 이런다.
움켜쥐면 고기만 움켜쥐나?
하수돗 물, 뻘탕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로 싸잡아 쥐었다.
아마 누군가가 뒤에서 그런 꼴을 보았다면 배를 움켜쥐고 웃었으리라.
남은 한 참 혼쭐이 나는 중인데 말이다.
얼마를 그러고 나니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온통 얼굴. 셔츠, 바지, 정강이, 운동화 할 것 없이 시꺼멓다 못해 갯뻘 판이지 뭐.
뱀장어는 어찌 되었느냐고요?
아, 글쎄 그 마져 놓쳤지 뭐유?!
낚시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비 맞은 중 모양으로 투덜대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누라한테 그 긴 얘기를 설명하자니 복잡할 것 같아 한마디로 끝냈지요.
“진흙탕에 넘어졌어!”
뱀장어에 지고 만 어느 한심한 낚시꾼 이야기. 끝.
낚시 춘추 ‘88. 8월호 게재
204. 하수구 끝에 물고기 있다.
하수구 끝에는 대개 깊은 웅덩이가 생겨서 물고기가 숨기 좋고, 더러 먹을 만한 음식 찌꺼기도 흘러 나오므로 각종 물고기가 잘 잡힌다.
악취나 혼탁한 물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한강의 방화대교 남단이나 북쪽 6관구 근처 하수구에서는 사시사철 온갖 종류의 팔뚝만한 물고기가 모조 미끼에 잘 잡히고 있다.
열대 수족관에 사용되는 빨간색 실지렁이가 다량 번식하므로 이를 먹기 위해 온갖 물고기가
다투어 모이는 것이다.
필자는 몇 번 가 보기는 했으나 그 악취가 장난이 아니어서 별로라 생각한다.
tip
103. 낚시복장은 보온과 햇볕에 끄슬리지 않는, 눈이 부시지 않게
보온 : 낚시터는 온도 차이가 극심해서 한여름이더라도 밤에는 춥다.
일단 따뜻한 옷을 여러벌 준비하되 입고 벗기 편하게 지퍼로 된것이 좋고, 여름이더라도 햇볕에 타는것을 방지하기위해 긴팔, 긴바지를 착용
물가는 햇빛이 강하고 물에 반사되는것 역시 만만치 않으므로 챙이 큰 모자와 썬글래스는 필수임.
602.큰놈이면 대를 세워라
대물 붕어나 잉어 혹은 뱀장어 같이 힘이 장사인 어종을 걸었을 때 대를 세우지 못하면 어딘가 약한 부분이 터져서 아쉬운 탄성을 자아낸다.
40센티 넘는 붕어(일명 4짜)는 대를 부러뜨릴 기세로 땡기면서 좌우로 이동하므로 자칫 옆의 낚시와 엉킬 수도 있다.
잉어 입질은 약간의 미동 후 순간적인 큰 힘으로 순식간에 도망가기 때문에 빠른 챔질후 대를 세우지 못하면 낚시대가 부러지거나 채비 일부가 터지거나 낚시대를 잃고 만다.
대를 세우는데 성공을 하면 만세 자세로 팔을 곧게 펴 머리위로 올리고 일정한 힘으로 땡겨 줘야한다.
조금이라도 줄을 늦춰주면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꿔 낭패를 본다.
나는 시원한 입질과 지속적인 댕길 힘을 가진 붕어를 선호하므로 잉어 출몰 포인트는 아예 앉지를 않는데 다른 이들이 잉어 걸어서 낚시대 부러뜨리고 황망해 하는 것은 많이 보았다.
또한 잉어는 순간적인 힘이 대단하여 낚싯대를 통째로 잃는 수가 많으므로 잉어가 잘 나오는 곳에서는 이에 대비해야 한다.
즉, 대길이보다 본줄을 많이 길게 하고 뒷 브레이크를 장치 해야 한다.
603. 뱀장어 잡은후에 처리법
뱀장어는 나무 덤불이나 바위틈 등에 은신하여 주둥이만 내 놓은 상태에서 먹이를 먹으므로 챔질을 하면 마치 바위에 걸린 듯한 느낌으로 꼼짝을 않는다.
또한 힘도 장사인데다가 앙탈 또한 심하여 다 걸어 놓고도 놓치기 쉽다.
육지에 랜딩했다고 안심하면 안된다.
맹열한 기세로 도망치므로 사정없이 밟거나 땅에 패대기를 쳐야 한다.
또한 미끄러워서 잡은 손에서 쉽게 빠져 나가므로 손에 모래를 묻히거나 목장갑을 끼는게 좋고,아가미 부분을 중지로 자물통 채우듯 쎄게 움켜 쥐어야 놓치지 않는다.
손가락 굵기 이하로 가는 뱀장어는 낚시줄을 배배 꼬고 점액을 묻혀 놓아 채비를 다시 쓸 수 없게 되므로 나오는 즉시 발로 밟거나 태기질을 쳐서 줄을 감지 못하게 해야 한다.
보관법은 일반 살림망에 넣으면 거의 빠져 나가므로 양파망이나 아예 아이스 박스 등에 가두어야 안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