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카페
마음은 남이다. 머리가 결정한 일을 번복한다. 시킨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말린다고 듣지 않는다. 아침이면 일어나서 세수하고 정장을 차려입고 마음이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출퇴근하던 관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그렇다고 집에만 붙어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머리가 쭈뼛쭈뼛 솟는다. 하늘에 구름이 자유로이 흘러가듯 마음이 무작정 길을 나선다.
조붓한 오솔길이다. 산행길은 인생길을 닮았다. 누구나 산에 올라가면 다시 하산해야 하듯 인생길도 정상에 오르면 내려와야 한다. 등산하면서 하산까지 염두에 두는 이 그리 많지 않다. 마치 기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저 누가 먼저 정상에 올라가느냐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이다. 인생길도 매한가지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공부하던 모습이 그렇고 사회에서 일하던 모습이 그러하다. 매사 남보다 더 앞질러 가야 직성이 풀렸다.
어렵사리 산마루에 올라섰다. 갑년의 세월을 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수많은 이들과 숨 가쁘게 뛰어왔다. 그것도 지름길로 달려온 듯하다. 주변에 아름다운 풍광을 살피고, 동행하는 이들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아마, 베이비붐 세대의 모습이 대동소이할 거다. 짧은 가방과 헐거운 주머니 사정으로 고단했다. 어른을 봉양하고 아이를 보듬느라 질곡의 시간을 보냈다.
산마루에서 상념에 젖는다. 안개구름이 살포시 내 마음을 휘감는다. 그 사이에 꽃구름이 계곡 사이로 피어오른다. 구름이 바람을 따라서 왔는지, 바람이 구름을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가까이 머뭇거리는 뭉게구름과 높은 하늘에 양떼구름이 한 폭에 그림처럼 다가온다. 지난 질곡의 삶 속에서는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어쩌다가 하늘을 쳐다보면 비를 머금은 매지구름과 먹장구름뿐이었다. 아름다운 구름이 오가는 길목에 구름카페를 하나 짓고 살면 좋을듯하다.
궁상떠느라 하산이 늦었다. 하산길은 녹록하지 않다. 산에 오르는 일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육체적으로 힘은 적게 드나, 자칫 잘못하면 큰일 난다. 갈림길에서 헷갈리면 엉뚱한 곳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등산길에는 길을 잘못 들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산봉우리를 쳐다보면서 새로운 방향을 잡으면 된다. 그러나 하산길에서는 목표 지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길이 나뭇가지처럼 퍼져나간다. 한번 미로에 빠지면 속수무책이다.
갑년 마루에서 내려가는 길도 그러하다. 하산길은 언제 어디서나 낯설고 어색하다.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도 잘 그려진 지도도 찾을 수 없다. 곳곳에 세워진 안내문은 낡아서 잘 보이지 않고, 설사 잘 보인다고 해도 지형이 달라지거나, 쓸모없는 경우가 왕왕 있다.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먼 곳을 둘러보고 발아래를 살피면서 더듬더듬 내려가야 한다. 혹자 행인을 마주치면 길을 물어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역시 길을 헤매고 있거나, 길을 잘못 알고 엉뚱한 행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음이 복잡하다. 하산길에 지인들 모습을 눈여겨보니 마뜩잖다. 머지않아 산에 둥지를 틀 나이라고 두문불출하는 이. 가진 재산 톡 털어서 자식에게 바치고 원숭이처럼 지내는 이, 뭐 좀 배웠답시고 벌집 같은 오피스텔을 얻어놓고 들어앉아 있는 이 등 가지가지다. 내려오다가 길섶에서 일하는 농부를 만났다. 그는 마음이 평온해 보였다. 지나가는 구름을 벗 삼아 지내는 모습이 부러웠다. 시골이라도 있을 건 다 있다. 심지어 컴퓨터에 인터넷까지 연결하여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그에게 부탁하여 가까스로 조그만 농원을 마련하고 구름카페라고 이름을 지었다.
머릿속에서는 걱정이다. 지갑이 텅텅 비어서다.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간만 나면 구름카페로 향한다. 자유로이 소풍 가는 구름을 보고, 바이올린 선율보다 고운 새소리를 들으며 신이 났다.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통로 사이로 직박구리 새가 들어왔다. 자꾸 따라오며 시끄럽게 수다를 떤다. 블루베리가 유혹한 모양이다.
이제 머리가 없다. 농사를 지으며 구름카페 주인으로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