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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dfather of Soul By Scoop Jackson (SLAM Magazine)
SLAM 지 1997년 4월호에 실린 줄리어스 어빙의 인터뷰 번역 2부가 되겠습니다.
1부에 이어서....
SLAM: 어빙 씨께 감사하다는 말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제 말의 의미는... 그러니까 어빙 씨께서 "키운" 어린이들이 정말 많지 않습니까? 특히 흑인 어린이들 말입니다. 매직 존슨을 필두로 클라이드 드렉슬러나 그랜트 힐 까지 모두 한결같이 말하길, 어빙 씨를 자신들의 롤 모델로 삼고 자랐다고 고백들을 했는데요. 이쯤 되면 그들의 아버지 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제 인생에서도 저의 아버지 역할을 하신 분들이 세 분 계십니다. 제 부친과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어빙, 당신입니다. 저는 이 세 분의 롤 모델로부터 남자란 무엇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빙 씨께 다가와 고맙다는 인사를 한 사람이 있었느냐는 것이죠.
ERVING: 물론 있습니다. 상당히 많았죠. "당신이 제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아마 모르실 겁니다", 뭐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죠. 타인의 롤 모델이 된다는 것... 이런 쪽으로 어렸을 때부터 많이 생각하고 고뇌하면서 자랐습니다. 잭슨 씨도 아시다시피, 제 부친께서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세 살일 때 부모님이 별거를 시작했고, 제가 아홉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13살일 때 어머니께서 재혼을 하셨고요. 저의 양아버지께서 저를 기르셨습니다. 그 분도 제가 34세일 때 돌아가셨지만요. 제가 자라면서 저의 삶에 미친 양아버지의 영향이 상당히 컸습니다. 양아버지의 사랑과 교육 덕분에 멘토를 받아야만 했던 저의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멘토가 되는 입장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겁니다. 그분의 영향으로,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 특히 흑인 어린이들의 롤 모델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힐 수 있었던 거고요.
SLAM: 그러니까 선수 시절에도 본인이 롤 모델이란 책임감을 갖고 뛰셨다는 말씀이시군요.
ERVING: 어린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인이라면, 당연히 행동거지를 조심하며 그들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가져야겠지요. 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용기를 내어야 할 때도 있고, 어떤 도전에 직면해야 할 때도 생기게 되는 거죠. 이 책임감을 무시한다면, 그야말로 막 살 수도 있게 됩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원치 않지만,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강사로 초청될 때마다 이 부분을 강조해서 가르쳐 왔습니다. YMCA를 비롯해 청소년 체육클럽이나 유소년 교육단체 같은 곳에도 수시로 가고 있고요. 그들이 저를 왜 강사로 초청할까요? 제가 그들 인생에 뭔가 허전한 부분을 메꿔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이 됐기에 그러겠지요?
저는 이 롤 모델로서의 책임감을 상당히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좋은 교훈의 내용이 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저는 강사로의 초청도 거절합니다. 저는 농구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싫거든요. 그래서 그런 경우는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SLAM: 운동선수 어빙과 일반인 어빙을 어떻게 구별하지요?
ERVING: 코트에선 Dr. J 지만, 코트 밖에선 언제나 줄리어스 입니다. Dr. J의 이미지로 살지 않고 평범한 남자 "줄리어스"로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또 노력을 기울이니까 그렇게 되기도 하더군요. 코트 밖에선 그냥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는 한 남자이고 싶었습니다. 그러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죠. 인생과 삶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한 진지한 흑인 아저씨이고 싶었어요. 그런 삶의 태도와 책임감이 전혀 부담이 되질 않았습니다.
SLAM: 본인이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RVING: 물론입니다. 그리고 제 느낌엔 이런 인생의 축복이란 것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어디서 뚝 떨어지는게 아니고요. 그런 인생을 간절히 원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랄까요? 분명히 프로 운동선수이지만, 일반인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사람들이 자신을 운동선수로만 보지 않게 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운동선수로만 비춰진다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자기 계발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죠. 선수들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SLAM: 길거리 농구의 전설인 조 해먼드(Joe Hammond)가 럭커 파크에서 어빙 씨를 상대로 50득점을 했다는 풍문 말입니다. 진실은 무엇입니까?
ERVING: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사실 많이 기뻤습니다. 조 해먼드나 얼 매니걸트 같은 길거리 농구의 레전드들이 길거리 농구문화에 미친 영향이 상당히 크거든요. 저를 통해서라도 그들의 명성이 알려질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그건 그거고, 지금까지 와전된 이야기는... 그 조 해먼드가 하프타임 때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저를 상대로 50득점하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인데... (큰 웃음).
제가 보는 관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조 해먼드가 어찌어찌해서 제 팀에 관한 풍문을 전해들은 것 같았습니다. 해먼드의 팀 이름이 Rucker Pros였을 겁니다. 해먼드, 피 위 커크랜드,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빅맨, 이렇게 셋이 한 팀이었습니다. 해먼드가 가드였고, 그래서 해먼드는 제 팀의 가드인 찰리 스캇과 주로 일대일을 했습니다. 찰리는 아주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역주: 찰리 스캇은 ABA와 NBA에서 뛰며 올스타에 5회 선정됐고, 76년 셀틱스 우승 당시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였던 수퍼스타입니다). 해먼드와 스캇 둘이서 거의 쇼다운을 펼치더군요. 두 선수 모두 30~40점 가량 득점을 했습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이죠.
저는 저대로 제 게임을 했고요. 저도 30점 가량 득점했고, 리바운드는 20개 정도 잡았던 것 같습니다. 경기는 우리가 무난하게 이겼고요. 해먼드는 경기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뛰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확실하게 패배한 이후론 우리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건대, 그 때가 그를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러니까요.... 만약, 그 경기가 전설화되려면 해먼드와 스캇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제가 스캇보다 유명하다보니, 해먼드와 저의 대결로 풍문의 내용이 변색된 듯 합니다.
SLAM: 누군가가 어빙씨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려 했나 봅니다.
ERVING: 전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잘 압니다. 자기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로 스스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면 그걸로 된 겁니다. 그런다고 제 실력이 폄하되는 것도 아니고요. 제 이름까지 사람들 입에 함께 오르내리니까 저같이 잊혀져가는 선수들에게는 오히려 득이 아닌가요? 여름 캠프에서 마이클 조던을 상대로 덩크를 성공시켰던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 같은... 뭐 그런 것들이죠. 그 학생에게는 그게 평생 이야깃거리가 될 것 아닙니까?
세상엔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들이 있는 것이고, 그냥 웃고 넘겨버릴 것들도 있는 것입니다.
SLAM: 어빙 씨로 하여금 그냥 웃고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ERVING: 음.... 이것도 그 러커 파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경기 중에 굉장히 큰 선수가 제가 공중에 떠있는 상태에서 저를 코트 바닥에 내팽개친 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거기 바닥이 아스팔트 아닙니까? 제가 큰 부상을 당할 뻔 했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넘어진 저를 보고 욕을 하고 웃으며 가더군요. 6-10에 250파운드 정도 되는 거한이었습니다. 덩치와 상관없이 본 때를 한 번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죠.
그 다음 공격 시에 제가 윙에서 공을 받아 림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바로 그 친구가 저의 덩크를 막으려고 제 앞에서 팔을 뻗으며 뜨더군요. 그의 손이 림 앞에 보이는 순간, 그냥 파워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먹였습니다. 그런데...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가락 두 개가 그 자리에서 부러져 버렸습니다. 제 슛을 블락하려던 그 친구의 손가락이 제가 성공시킨 덩크 볼과 림 사이에 끼여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한심한 저 자신을 얼마나 질책했는지 모릅니다. 저 자신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결심했습니다. 이제 어떠한 스타일의 농구선수가 되어야 할 것인지를요. 저 스스로를 깊이 성찰하게 만들어준 사건이었습니다. 코트 위에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선수가 되면 절대 안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사실 자업자득이긴 했죠 (작은 웃음).
SLAM: OK. 이 부분도 해명을 부탁합니다. 76년에 있었던 ABA 슬램덩크 컨테스트에서요... 연습할 때 어빙 씨가 자유투라인에 선 자세에서 점프를 해 덩크를 성공시킨 적이 있다고 하던데요...
ERVING: 얘가 지금 뭐래?!?
SLAM: 저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덩크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어빙 씨가 파울라인에 선 자세에서 움츠렸다가 점프하면 덩크가 가능했었다고 들어서....
ERVING: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이건 명확하게 짚고 넘어갈 사항이군요, 하하하. 이봐요. 자유투라인 덩크는 달려들어오면서 해도 쉬운 덩크가 결코 아닙니다. 마이크 포웰이나 칼 루이스도 선 자세에선 자유투라인 덩크 못 합니다. 아, 제가 백보드 뒤의 베이스라인 밖에서 스탠딩 점프로 리버스 덩크를 한 적은 있습니다. 아마도 그 덩크가 이렇게 와전된 것 같네요.
SLAM: 그 덩크는 가능했단 말씀이십니까?
ERVING: 예,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제리 스택하우스에게 해보라고 했더니 할 엄두도 못 내더군요.
SLAM: 혹자는 말하기를, 어빙 씨의 모든 점프력의 원천은 아프로 머리라고... 하하하. 조지 거빈이나 스티브 존스 씨도 어빙 씨의 아프로 헤어스타일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말씀해 주시던데요. 솔직히 어빙 씨의 아프로가 뭐 제일 컸거나 한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줄리어스 어빙 하면 아프로 머리가 연상이 됩니다. 이것도 사람들이 너무 과장해서 만들어 놓은 얘기 같습니다.
ERVING: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과장되곤 하지요. 낚시꾼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6파운드 짜리 하나 잡고서, 나중엔 18파운드 짜리 잡았다가 놔줬다고 하는... 하하하.
제게 있어 아프로는 하나의 '프라이드'였습니다. 70년대 초반은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문화가 번성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으니까요. 저는 제 아프로 머리를 드라이어로 말리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빗을 사용해서 빗긴 했지만요. 대학 시절부터 하기 시작했고, 스타일 자체에 그리 신경쓰진 않았습니다. 빨리 달리거나 하면 그 큰 머리가 다 뒤로 젖혀져서, 보기에 좀 웃기기까지 했습니다.
SLAM: 제가 지금까지도 놀라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요... 70년대 초중반엔 텔레비젼도 많지 않았고, 마케팅 같은 것도 없었으며, ESPN 같은 스포츠 채널도 전무했는데, 어빙 씨께서 NBA에 입성할 때 모든 농구팬들이 다 어빙 씨를 이미 잘 알고 있었거든요. NBA에 입성하기 전부터 줄리어스 어빙은 이미 레전드 중 레전드였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나 모르겠습니다. 만약, 어빙 씨께서 당시에 현재의 선수들처럼 미디어의 관심을 많이 받았었더라면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ERVING: 제 성격이나 인품 쪽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인기도의 폭발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SLAM: 아, 인기도에 있어서의 폭발력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ERVING: 인기는 훨씬 더 좋았겠지요. 지금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는 중인데, 다른 나라들에서도 저를 다 알고 계시던데요. 다시 말해서, 7~80년대에도 제가 세상에 알려지고 있었다는 얘기죠. 지금처럼 매스 미디어와 인터넷에 의한 대대적인 홍보는 없었지만요. 당시에도 글로벌 마케팅은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작았었던 것 뿐이죠. 사실, 구전으로 전해진 것들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괜찮은 편입니다. 오스카 로벗슨을 보십시오. 제리 웨스트도요. 지금과 같은 글로벌 마케팅이 있었더라면, 이들이 얼마나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요?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했을 겁니다.
SLAM: 제 사촌이 9살 먹은 아들아이를 하나 데리고 제 사무실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제 사무실엔 어빙 씨의 대형 포스터가 한 장 붙어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포스터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냐고 물어 봤습니다. "Dr. J요" 라고 자신있게 대답하더군요. 그러면서 "우리 아빠가 어빙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였다고 그랬어요" 라고 덧붙이더군요. 제 아버지는 엘진 베일러가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줄리어스 어빙이 최고라고 했고요. 그 문제 가지고 아버지와 제가 논쟁도 많이 벌이곤 했답니다. 마침내 제가 아버지를 설득시켰고, 제 아버지도 줄리어스 어빙이 최고라고 인정하셨습니다. 만약에요. 제 조카 아이가 커서 자기 아버지에게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마이클 조던입니다 하고 따지기 시작하면 어떡하죠? 어빙 씨의 위대한 유산을 지켜줘야 하는 것도 저희 팬들의 몫인가요?
ERVING: 농구는 그냥 스포츠이고 게임일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죠. 제게 있어서는요... 마빈 게이가 역사상 최고의 가수였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루터나 다른 많은 위대한 가수들이 있지만, 마빈 게이의 노래를 들으면요, 저의 모든 말초신경이 멈춰 버립니다. 제 영혼을 움직이는 가수였거든요. 누군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들의 엑기스만 모아서 CD를 하나 제작했다고 칩시다. 제겐 그다지 와닿지 못할 겁니다. 왜냐고요? 마빈 게이가 아니니까요. 제게 있어선, 마빈 게이가 음악의 표준이었습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기가 이 세상에 행복이나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고요. 안 그렇습니까? 스포츠가 인생의 길흉화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생사가 걸린 문제도 아니고 말이죠. 스포츠는 그냥 호불호의 문제입니다. 선택과 맛의 묘미랄까요? 물론, 역대 위대한 선수들이 남겨놓은 유산이나 업적은 기억하고 기려져야 하겠지요. 그러나 서로의 위대함을 비교하며 아웅다웅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 선수들이 팬들 각자의 마음에 어떻게 다가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엘진 베일러, 커니 호킨스, 줄리어스 어빙, 마이클 조던 등등... 팬들이 보고 아는 어떤 선수의 멋진 플레이가 정말 특별하게 예술의 경지로까지 다가왔다면, 그 선수가 그 팬에겐 최고인 겁니다. 편안하게 앉아서 경기를 감상하고 있는 중에 어느 특정 선수가 여러분의 영혼을 움직였다면, 그것으로 된 겁니다. 다른 선수를 깎아내리면서까지 자기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선수를 높일 필요는 없거든요. 그냥 그 위대한 선수들을 즐기십시오. 그런 손꼽을 만한 위대한 선수들은 정말 몇 명 안 되니까요.
긴 번역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 Doctor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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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프라이드 아프로 멋지네용
인터뷰에서 인격의 향기가 느껴지네요. 겸손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역시 갖춘 진짜 남자인것 같습니다. 어빙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롤모델로 삼을만한 스포츠 선수중 하나인것 같아요. 여타 슈퍼스타들은 현역시절이나 은퇴하고 나서나 농구실력으로는 최고지만 사생활에서 조금씩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어빙은 제가 아는한에는 그런게 별로 없는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백보드 뒤 베이스라인 밖에서 스탠딩 점프로 리버스 덩크가 가능한거군요 ㄷㄷㄷ;; 중간에 움짤에서 어빙이 아프로 머리를 매만지는 움짤은 남성적 섹시함이 넘치네요 ㅎㅎ. 무슨 헤어제품 광고같습니다. ㅎㅎ 역시 사람은 잘생기고 봐야;;
어빙이 바람을 핀 적은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요. 옥에 티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프로 선수들이 흔히들 하는 도박이나 술, 클럽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고, 선수 시절에도 심판들이나 상대팀 선수들, 감독들 모두에게서 존경을 받은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인터뷰에 있어선 모든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역대 최고라고 일컬어집니다. 항상 정성스럽게 인터뷰에 응했으며, 지혜로운 말들만 했었고, 남을 올려주는 인격이 생활화되어 있던 선수였습니다.
아. 어빙이 바람핀적이 있군요 호..완벽한 인생에서 유일한 오점이군요; 부인과는 원만하게 해결이 되었나요? 부인이 용서해준건가?;; 어빙도 타이거우즈처럼 깨끗한 이미지였는데 지금의 타이거우즈가 바람핀것 때문에 이미지가 급추락 한것처럼 어빙의 인기를 생각하면 당시엔 상당히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을것 같은데 큰 이슈가 되진 않았나요?
1979년 쯤에 스포츠 기자 사만다 스티븐슨과 혼외정사를 가졌고 거기서 태어난 딸이 한 때 윔블던 준결승까지 오른 적이 있는 테니스 선수 알렉산드라 스티븐슨입니다. 부인에겐 당시에 이 사실을 이미 밝혔고, 부인도 그 쪽으로는 크게 문제 삼지를 않았습니다. 은퇴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알렉산드라가 윔블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그의 친부에 대한 기사가 나왔죠. 어빙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큰 오점으로 남았지만, 본인 스스로 더 겸손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서 담담히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 들였습니다. 그 이후 어빙과 알렉산드라는 스스럼없이 지내게 되었고, 최근 어빙의 환갑잔치도 모두 알렉산드라가 주관을 했답니다.
어빙 참.... 말 잘하네요. 지난 자료에서도 이런 댓글을 달았는데.... 정말 말 잘합니다. 특히, 마지막 문단은 카페대문에 걸어두고 싶을 정도군요.
뭔가 저희 회원들한테 하시는 말씀같군요... 어빙 曰 서로의 위대함을 비교하며 아웅다웅 할 필요가 없다. 다른 선수를 깍아 내리면서 까지 자기가 생각하는 위대한 선수를 높일 필요는 없다.
222222222 가슴에 와 닿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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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우리 모두 가슴에 담아야 할 듯해요 게임 캐럭터 처럼 생각해서 내 캐릭터가 짱이야 라는건 정말 초딩 마인드 인듯...
한 분야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장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道라는 것이 느껴지는군요.
Doctor J님 정말 주옥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여담인데 진짜 잘생겻네요.. 어빙..
재밋게 잘 읽고 갑니다. 조던보다도 더 미남이시네요.
다른 선수를 깎아 내리면서까지 자기가 생각하는 위대한 선수를 높일 필요는 없지만 조던이 더 미남이세요. ^^
어빙 한표 ㅋ
둘다 훈남초코임 ㅠㅠ 아 저런 훈남들은 인격마져 뛰어나구나.. 인격이 뛰어나서 훈남인 것일까...
좋은 번역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잘 부탁드립니다~
p.s 저 역시 여담인데 어빙 참 미남이네요^^;
어빙 옹도 한때는 욱하던 시절이 있었군요. 파워 인유어페이스 후일담은 정말 상상하니 섬뜩합니다. 12부에 이어서 잘 읽고 갑니다!!
마지막 말씀이 정말 인상깊네요... 논쟁이 아니라 쓸데없는 '분쟁'을 만드는 몇몇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말이네요. Doctor J님의 번역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닥터 제이님 글과 번역문만 모아서 책을 내도 될 듯 싶습니다 ㅋㅋㅋ
진짜 진지하게 그래도 될듯 하네요...
경기 외적인부분에서도 배울부분이 많네요.
어빙이 부럽네요.. 농구선수로서 운동선수로서 타고난 축복받은 신체와 실력, 그리고 프로에 대한 마인드, 경기외적으로 성숙의 경지에 다다른 인품, 주변사람들에게 받는 찬사와 존경의 말들.. 실력과 인품의 경지가 MAX에 다다른 인간이 어빙이 아닐까 싶네요
이번에도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말하는 센스를 보면 분명 어빙옹은 달변가이기도 한데 인터뷰 자체를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이런 면면을 볼 수 있는 인터뷰는 정말 레어입니다... 너무 잘 봤습니다..
닥터 J님을 실제로 본적이 없지만 Dr.J 선수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글쎄요... 저도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격을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베이스라인 밖에서 스탠딩점프로 뭘 하셨다는건가요 ^^;;;; 아우 이거 이거 ........ 영상 올려주실 분 게십니까
이 덩크가 경기 중에 하거나 슬램덩크 컴퍼티션 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상으로 남아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 인터뷰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Like I said, validation (laughing). Man, that thing (자유투라인 덩크) is hard enough to do running. Mike Powell or Carl Lewis couldn't do that dunk (런닝점프가 아니고선 이들조차도 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The actual dunk was standing on the baseline (out-of-bounds, behind the basket), leaping out, and dunking backwards. That's a dunk."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인생의 롤모델로 삼고 싶습니다.^-^
품격이 느껴지는 인터뷰네요. 농구 실력 뿐만 아니라 인품에서도 존경받을 분인 것 같습니다.
마빈게이 이야기 ㅠㅠ
즐겁게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갠적으로 퍼가고 싶은데 제 블로그에 담아가도 괜찮을까요.. 출처와 카테고리는 닥터 J님으로 표기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