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겠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3:4)
니고데모의 질문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구약에 대한 중요함을 가장 잘 표현한 대화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성경의 정점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중대한 사실 앞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성경에 박식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거듭남을 몰랐을까?"
사실 니고데모만 모른 것이 아닙니다.
그와 함께 했던 자들 역시 몰랐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도 구약성도들이 어떻게 거듭났는지 생각조차 못하는 것은
성경에서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바람'과 같이 일어나기에 확신은 있으나 설명이 어렵습니다.
*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요3:11)
*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요3:12)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함께 책망했던 <너희>는 누구일까요?
대표적으로 세상과 구별되고 경건함과 하나님 나라를 꿈꾸었던 종교지도자들로
사두개파와 바리새인들입니다.
니고데모 역시 바리새인으로 추측됩니다(요7:45-52).
반대로 거듭남을 확신있게 말하는 <우리>는 누구일까요?
바람처럼 인간이 알 수 있지만 증거하기 어려운 반면 <우리>는 듣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듭남을 일으킨 삼위 하나님입니다.
이들이 거듭남을 몰랐던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거듭남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따라 어머니의 태중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비록 죄인으로 잉태되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태중에서 거듭나게 하는 신비입니다(사46:3).
*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71:6)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의 목표점은 거듭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가느냐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갑니다(요3:3,5).
니고데모와 바리새인들의 지향점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그 나라의 성취를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그 성취는
주의 재림 이후에 이루어집니다(계11:15).
이들이 크게 잘못된 것은 현재 임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함으로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거듭난 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통치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비록 겨자씨 한 알과 또 누룩처럼 미미하지만 생명력이 있어 뚜렷한 실체가 됩니다(마13장 참고).
주님이 오시는 그 때가지 거듭난 자들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나라가
곧 현재 임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주의 재림으로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도 도래합니다(계11:15).
*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스라엘 가운데 있을까요?
<현재형>을 사용하여 이미 사람들 가운데 있음을 알려줍니다.
*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NIV,YLT,ASV)
* ...the kingdom of God is in your midst(NASB,DARBY)
현재적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을 통해 통치됩니다.
하늘 보좌에 계신 성부와 성자께서 성령님을 보내, 성도들 가운데 내주하여 통치합니다.
성령의 내주가 없는 하나님 나라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이미 이스라엘과 바리새인들은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원리를 몰랐고, 엉뚱한 도구로 성취하려 했던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거듭남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 바울처럼 구약을 제대로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되며, 또한 완성이 됩니다.
구약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으로(한 몸됨) 구원을
받았고, 거룩한 성령이 내주하는 거듭난 의인이 되었습니다.
첫댓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는 것은 올바로 아는 것을 전제합니다.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 약속의 댓가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히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첫 언약)을 폐하심은 둘째 것(새 언약)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인 새 언약을 세우려 오셨습니다.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약을 다 이루신 것이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구 약속과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구약은 약속이고 신약은 구약의 이루심입니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체입니다.
구약은 첫 언약이고, 신약은 새 언약입니다.
구약은 십계명, 모세율법이고, 신약은 새 계명, 그리스도의 율법, 복음, 성령의 법입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가 있습니다.
니가 스스로 성경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니는 여기 니고데모보다 더 형편 없음
답을 조금이라도
아세요
모를것 같은데 ...ㅎㅎ
니고데모는 형편 없고 웃기긴 해도
옳은 말은 했음
살짝 못미치긴 햏어도
마선생?
정답이 뭐요?
히 9:9-10.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는 첫 언약을 새 언약으로 개혁하신 것입니다.
변개 시킨 것입니다.
히 7: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이 말씀은 구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로 새 언약,
신약으로 개혁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히 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그러하기 때문에 새 언약만 유효하다는 말씀입니다.
구약 학자들은 신약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효력 있다고 말하여야 함에도
신약의 그림자인 구약을 실체로 세우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하는 가짜이고,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
구약은 신약,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새 언약, 신약만, 유효합니다.
오은환, 님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자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요!
완전 사이비 목회자입니다!
님은 구약에서
거듭남을 보았나요.
니고데모와 같은 부류인가요?
@오은환
구약의 구원은 하나님은 구원하신다는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아가페의
그래요,
구약에 거듭남이 없다는 것이
님의 결론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