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경운기도 트랙터도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논밭을 갈고 짐을 실어 나르는 힘든 일은 모두 소(牛)의 몫이었다.
소 없이는 농사 일이 불가능했기에 소는 농가(農家) 재산 목록 1호였으며 가족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소는 천성적으로 온순하고 겁이 많은 동물이지만 일하는 소는 특히 소를 부리는 사람(대부분 가장인 아버지)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소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닮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 모양과 성격이 제각각이듯 소 역시 외양과 성질이 제각각이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먼 거리에서도 걷는 모양새나 울음소리만 들어도 누구네 집 소 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벼농사가 생업이었던 당시 우리 마을에는 30여 가구에 30여 마리의 소가 살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10살 쯤 된 암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외양은 동네 다른 소들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성질만큼은 참으로 유별난 소였다. 까다롭고 도도한 성격에다 산꼭대기를 좋아하는 해괴한 버릇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우리소를 날망소라 불렀다.
날망의 성격이 유별난 것은 모두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동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새벽같이 일어나 어두워질 때까지 몸이 부서져라 성실하게 일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깐깐하고 고집스런 성격이 아버지와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농사일에도 단 한번도 반항하거나 꾀를 부리지 않는 성실함 뒤편으로 쇠죽이 조금이라도 덜 익었거나 또는 식었거나 하면 절대 입을 대지 않았으며 그녀의 침실이 조금만 지저분해도 외양간 벽에다가 마구 뒷발질을 해대었다.
아버지는 그런 날망의 행패를 꾸짖기보다 오히려 더욱 감싸 안으며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셨다.
소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한여름 모내기철이었다. 논을 갈고 쓰레질을 하고 수레를 끌어야 하는 중노동이 한달 여 동안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소들은 더위와 힘든 노동에 지쳐 야윌 대로 야위고 때로는 중노동에 반항하여 논바닥에 아예 주저앉거나 또는 주인을 팽개치고 짐수레를 매단 채 미친 듯이 동네 마을을 가로질러 방둑으로 달려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항에 대한 댓가는 참으로 혹독하여 논바닥에 주저앉은 소는 논 가장자리에서, 방둑으로 도망간 소들은 방둑 아래로 끌려 내려와 가죽이 터질만큼 참혹한 매질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힘겨운 모내기철이 끝나면 소들에게는 가을 추수 때까지 긴 휴가가 주어졌다. 일거리가 없는 겨울과 함께 이 기간이 바로 소들에게 가장 행복한 때이며 또한 가을 농번기 때를 대비해 부지런히 살을 찌워야 하는 임무가 우리들에게 주어졌다.
가장 손쉽게 살을 찌우는 방법은 산에 소들을 방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시기 우리들에게는 더위가 한 풀 꺾인 오후3시쯤 소를 몰고 산으로 향하는 것이 하루의 주요 일과였다
매일 같은 시간 동네 한가운데 너른 공터에 각자 자기 소를 몰고 나오면 그중 나이 많은 형들이 서로 의논하여 오늘의 방목장소를 정하고 모두들 그곳으로 이동하였다.
때론 감나무골과 같은 먼 방목지로 이동할 경우 모두들 자기소를 타고 가지만 오직 나만 걸어서 가야 했다
날망은 까다로운 성질에 걸맞게 누군가 자기 등에 앉으려고 하면 자기가 야생마 인 냥 길길이 날뛰었다.
언젠가 우리들 중 가장 나이 많은 성구 형이 날망을 길들이겠다고 올랐다가 한순간에 내동댕이쳐져 다리가 부러진 후 아무도 날망을 건드리지 않았다.
방목지에 도착하면 소들은 뿔뿔이 흩어져 날이 어두워 질 때까지 마음껏 풀을 뜯고 우리들은 자유롭게 뛰어놀았다.
그리고 서서히 해가 지고 땅거미가 계곡 아래로 내려올 때 쯤 대부분의 소들은 스스로 주인들이 놀고 있는 장소로 모여들어 우리의 놀이가 끝날 때까지 드러누워 기분좋은 되새김질을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 소 날망은 유별나게도 해가 지면 산꼭대기(날망)로 올라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아무리 길이 험해도 기어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이 특이한 습성 때문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소를 찾아 내려갈 준비를 하려고 할 때 난 땀을 뻘뻘 흘리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야만했다. 땀이 범벅이 되어 간신히 꼭대기에 도착하면 날망은 산 정상 풀밭에 드러누워 내가 올라오는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며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정말 미운 소였다
그러나 더 얄미운 것은 내려 올 때는 거의 전속력으로 거침없이 내리달려 내 발걸음으로는 도저히 따라 갈수 없게 나를 따돌렸다.
그때 쯤이면 이미주변은 어둑해져 산길을 혼자 내려올 때는 무서움으로 인해 심장이
날망이처럼 미쳐 날뛰고 산짐승들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머리칼이 치솟곤했다
여기저기 덤불에 긁히고 두려움과 더위에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간신히 산 아래에 도착하면 모두들 한참을 기다렸다고 투덜거리며 날망이 버릇 좀 고쳐 보라고 한마디씩 했다.
그해 여름 어느 날 처음으로 성구형이 황소를 몰고 나타났다
보통 황소는 어른 힘으로도 다루기가 힘들어 산에 몰고 나오지 않았다.
갑자스런 황소의 등장으로 암소들이 술렁거렸다. 그런데 그날 날망의 행동이 평소와는 너무도 달라 보였다. 다른 암소들을 날카로운 뿔로 쫓아낸 뒤 황소 앞에서 너무나 다소곳하고 다정하게 굴었으며 황소 또한 그런 날망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날망이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 다녔다. 결국 둘은 방목지에서 꼭 붙어다니며 풀을 뜯고 서로 머리를 비비벼 혀로 얼굴을 핣아주는 연인사이로 발전하였다
그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두 마리 소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성구형 황소와 우리소 날망이었다. 성구형은 우리소 때문에 황소가 꼭대기로 갔을거라 투덜거리며 앞장서서 올라갔다. 아니다 다를까 꼭대기에 도착해보니 두 마리소가 사이좋게 나란히 엎드려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꼭대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나무가 쓰러져있고 잡목은 뿌리채 뽑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야. 너그 소 오늘 돈벌었데이”
난 성구형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아무튼 성구형이 있어 그날은 내려가는 길이 덜 무서웠다.
아홉 달이 지난 어느 초여름 날 날망은 자기를 닮은 건강한 암송아지를 낳았다
자세히 보니 성구형네 황소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어머니는 떡 한보따리를 싸서 성구형네 집에 다녀 오셨다.
날망은 지금까지 여러 번 출산을 했지만 이번 만큼은 유별나게 자신의 새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아버지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새끼 근처에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머니마저 새끼 근처에 다가가면 뿔을 세워 적개심을 드러내곤 했다
새끼가 젖을 빨고 있을 때 날망의 표정을 보면 세상 그 무엇보다 평화롭고 행복해 보여 나도 어머니의 가슴으로 뛰어들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곤 했다.
송아지는 배가 부르면 제 어미 주변을 깡충거리며 마당 곳곳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호랑나비나 대잠자리를 쫓아 대문을 나서기도 하며 초여름의 세상을 마음껏 즐기는 듯했다.
보름 뒤 날망은 산후조리를 끝내고 일을 시작했다. 새끼를 돌보면서 일하느라 날망의 하루하루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지만 단 한순간도 일과 새끼보살핌에 소홀함이 없었다. 좀더 많은 양의 수유를 위해 날망은 입맛까지 바꿔가며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으며 심지어 텃밭에 뛰어들어 호박과 옥수수까지 욕심을 냈다
여름 땡볕에 벼가 쑥쑥 자라듯 송아지도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무사히 모내기철을 보내고 다시 방목의 계절이 왔을 때 이미 새끼는 어미의 젖을 떼고 부드럽고 맛좋은 뽕잎이나 칡잎에 입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끼를 가졌다고 해서 산꼭대기를 올라가는 날망의 버릇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벌써부터 날망을 따라 산꼭대기를 오르내리는 새끼의 버릇이 어미소가 된 뒤에도 계속될거라 생각하니 누군지도 모를 새끼소의 주인이 몹시 불쌍하고도 안타깝게 여겨졌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새끼는 몰라보게 자라 외양간이 비좁게 되었다.
아버지는 날망의 새끼를 읍내 우시장에 팔기로 했다.
샛강에서 흘러온 아침안개가 발목까지 잠기던 어느 새벽 아버지는 날망을 앞세우고 이십리나 떨어진 읍내 우시장으로 향하셨다
새끼는 오늘이 지 어미와 헤어지는 것을 꿈에도 모른체 안개가 자욱한 둑방길을 이리저리 뛰며 지 어미를 따라갔다.
나는 가끔씩 날망을 다그치는 아버지의 고함소리와 둥그렁 둥그렁 울리는 날망의 방울소리가 안개 속으로 완전히 묻힐 때까지 둑방 길을 바라보았다.
그날 저녁 아버지의 귀가는 아궁이속을 서 너 번 들락거린 된장뚝배기가 다 졸아들 때 쯤 이루어지셨다
방둑길 너머로부터 날망의 방울소리와 울부짖음이 어둠을 뚫고 점점 가까워 지더니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날망과 흙투성이가 된 아버지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이노무 소가 우시장을 앞에두고 눈치를 챘는지 꼼짝을 안하나는기라. 아무리 때려도 안되길래 우시장 사람들을 불렀지. 날망을 묶어놓고 송아지를 끌고 갈라고 하는데 새끼가 버팅기는기라. 할 수 없어 어른 넷이서 새끼를 업다시피해서 끌고 가긴했는데 지 새끼가 울 때마다 어미소가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에 내가 밟혀 죽을 뻔 했다아이가. 하루 종일 기운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매질을 해서 집으로 끌고 오느라 늦었다아이가.”
아버지는 졸아든 된장둑배기를 다 비우신후 아직도 날망이가 서럽게 울고 있는 외양간을 바라 보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셨다.
그날 밤 날망은 밤새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새끼를 잃은 어미소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듣고 온 산의 소쩍새가 마을로 내려와 함께 울어주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날도 날망은 목이 완전히 쉴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먹이를 먹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난뒤에 날망은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하루 종일 먼 산만 바라보다가 저녁무렵에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본래의 모습대로 돌아온것처럼 보였다.
열흘뒤 아버지께서는 날망의 먹이통이 완전히 빈 것을 확인하고 날망을 산으로 몰고 가도 좋다고 하셨다.
열흘만에 비쩍마른 날망은 다른 소들과 함께 감나무골로 향했다. 가을기운은 벌써 산전체로 퍼져 우리는 그날 밤을 따고 혀가 얼얼할 만큼 새콤달콤한 산복숭아를 따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둠이 내려올 즈음 다른 소들은 모두 주인에게 찾아오고 난 늘 그렇듯이 산꼭대기로 날망을 찾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산꼭대기에 날망이 보이지 않았다. 산 꼭대기 주변을 샅샅이 찾아보고 날망의 방울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워 보았지만 날망은 보이지가 않았다. 벌써 어둠이 골짜기에 짙게 드리우고 산 아래에서는 형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는 수 없이 산을 내려가 형들에게 날망이가 없다고 알렸다. 형들은 잠시 서로 의견을 나누다가 나이 많은 다섯명의 형과 나만 남기고 다른 소들과 사람들은 모두 마을로 내려 보냈다. 그리고 우리들은 어두워진 산으로 날망을 찾아 나섰다. 몇 개의 산을 넘고 골짜기를 건널 때까지 날망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산은 이미 완전한 어둠에 잠겨 우리를 에워싸고 우리는 오로지 희미한 달빛에 의지하여 날망을 찾아다녔다. 텃골 아지매가 목을 맨 소나무를 지나 한달 전 죽은 용구할배 무덤까지 갔지만 날망은 보이지 않았다. 청솔모가 나무위에서 도토리를 던지고 놀란 노루들이 풀숲에서 뛰쳐 나올 때마다 오줌이 찔끔 거렸다. 목이 마르고 온몸은 가시덤불에 생채기가 가득할 때쯤 성구형이 그만 마을로 내려가자고 했다. 나는 소를 잃어버린 걱정보다 아버지의 노여움이 무서워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우리가 날망을 찾지 못하고 산을 내려왔을 때 이미 소식을 듣고 어른들이 횃불을 들고 2차 수색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제일 앞장을 서 산으로 들어가셨다. 둘째 누나는 얼마전 서당골에서 호랑이 발자국을 봤는데 날망이가 호랑이 밥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셋째 누나는 만약 날망이를 못 찾으면 올해 첫째 누나 시집가기는 틀렸다고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지쳐서 그냥 쓰러져 잠이 들었다가 마당이 소란하기에 눈을떠 보니 동네 어른들이 꺼져 가는 횃불을 들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날망을 찾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괘종시계는 밤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버지의 한숨과 긴 담배 연기꼬리를 보며 나는 날망을 잃어버린 죄책감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이장님이 달려오셨다. 읍내 우시장에서 이장님 댁으로 혹시 소를 잃어버린 사람이 없냐는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20리길을 바람처럼 달려가셨다. 아버지가 우시장에 도착해 보니 날망이 거기 서성이고 있더라고 하셨다. 누군가 주인 없는 소가 우시장을 어슬렁거리길래 파출소에 신고를 했던 것이었다. 그곳은 열흘 전 날망이 자기새끼와 헤어졌던 자리였다.
소를 몰고 오는 동안 날망은 다시 서럽게 울었고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셨다.
온 동네 사람들이 날망을 구경하러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날망이 어떻게 감나무골에서 산을 넘어 우시장까지 찾아갔는지 의아해했다.
진돗개처럼 뛰어난 후각을 가진 것도 아니고 기러기처럼 발달된 방향감각을 가진 것도 아닌, 가진 것이라고 힘밖에 없는 미련한 일소가 산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 강을 건너고 들판을 지나 읍내까지 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했을 것이며 그 모든 것은 단하나 헤어진 새끼를 찾아야 한다는 어미의 본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 아버지는 말하셨다.
그날 밤 아버지는 날망의 쇠죽 통에 막걸리를 가득 채우셨다. 날망은 한말이 넘는 쇠죽통의 막걸리를 다비우고서야 비로소 잠이 들었다.
한밤중 오줌이 마려워 일어 나보니 외양간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다가가보니 아버지가 날망을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을 건네고 날망은 낮은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날망의 울음에는 동네 우물보다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버지로 대표되는 인간에 대한 원망과 일소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새끼를 낳아 인간에게 빼앗기고 마지막에는 살과 꼬리뼈까지 인간에게 바치고 가죽마저 북의 막면(膜面)이 되어 고수(鼓手)의 북채에 맞아 둥 둥 울어야하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서러운 하소연이었다. 나는 오줌이 마려운 것도 잊은 채 오랫동안 날망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서있었다.
바람 한점 없는 밤에 달은 높이 솟아올랐고 뜸북이 소리가 어둠 저 멀리 둑방에서 들려오고있었다.
그 뒤 날망은 이상하게도 더 이상 새끼를 낳지 못했다.
송아지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커다란 손실이었지만 아버지는 날망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렇게 날망은 7년을 더 우리와 함께 산 뒤 결국 어느 해 봄 경운기에게 자신의 외양간을 내주고 우시장으로 팔려갔다. 소문에는 어느 농가의 일소로 팔려갔지만 주인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어디론가 팔려갔다고 하는데 농가의 일소로 팔려갔는지 아니면 도살장으로 팔려갔는 알 수 없지만 결국에는 날망 역시 소팔자에 따라 자신의 모든 살과 뼈를 인간에게 바치고 지금쯤 어느 고수의 북채를 맞고 둥 둥 울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