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리 다니엘스 감독의 호러 영화 '딜리버런스'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것이다. 실제로 함께 이 영화 감상에 나선 집친구는 시작 20분 만에 "다른 거 보자"고 닥달을 했다. 결국 집친구가 외출한 틈을 타 나 혼자 완주했다.
영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와 '빌리 홀리데이'를 연출하고 '프레셔스'로 제82회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지명된 다니엘스 감독의 신작으로 꽤나 기대를 모은 이 작품은 글렌 클로스를 비롯해 안드라 데이, 앤서니 젠킨스, 캘럽 맥러플린, 오운자누 엘리스테일러, 등 흡인력 있는 배우진으로 관객들을 끌어 앉히지만 '귀신들림'을 퍽 진부하게 보여줌으로써 좋은 소리 듣기 힘들다.
이 영화의 가장 흡인력 있는 요소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2011년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라토야 아몬스 가족이 겪었던 일을 모티브로 삼았다. 라토야와 세 자녀가 겪은 일은 경찰과 아동보호국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가톨릭 교단에서 엑소시즘을 승인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라토야 가족이 살던 집은 한동안 폐가처럼 남았다가 불도저로 밀어버렸다는 자막이 영화 끝난 뒤에 나온다. 실제로 그 뒤로도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이상한 일들이 잇따랐다고 전해진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제작자 명단에 라토야 아몬스 이름도 올라온다.
실제와 다르게 영화에서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교외의 새 집으로 이사 온 싱글맘 에보니 잭슨(안드라 데이)와 세 자녀에게 이상한 일이 잇따르는 것으로 그려진다. 남편은 이라크 전쟁에 파병됐고, 혼자서 어렵사리 양육권을 찾아와 세 자녀를 기르는데 양어머니 앨버타(글렌 클로스)와 툭하면 투닥거린다. 어린 시절 학대를 경험한 에보니는 마약과 알코올 이력이 있고 경제적 궁핍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앨버타의 항암 치료비를 전부 부담한다. 백인 양할머니와 성격 고약한 흑인 싱글맘, 2남1녀 가정이 평탄할 리 없다. 미국의 흑인 빈곤층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새 집에 이사 오자마자 지하실에서 시신 썩는 냄새가 난다든가 한겨울인데 시커먼 파리떼가 득시글거린다든가, 막내아들 녀석이 이상하게 소름끼치는 행동을 한다든가 전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 이쯤에서 많은 국내 관객들이 스트리밍을 포기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장으로 떠난 전 남편과 양육권 소송을 힘겹게 이겨 데려온 세 자녀를 키우면서 겪는 갈등과 신산한 어려움,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가족간, 세대간 불신과 분열로 확대되는 틈을 비집고 악령이 들어온다는 설정에 억지스러움이 있지만 나름 감독이 이 픽션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가톨릭 교회의 구마 의식(엑소시즘)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스스로 터득한 신앙에 대한 깨달음과 믿음으로 에보니가 악령을 물리친다는 결말도 억지스럽긴 매한가지만 그렇다고 아주 고리타분한 기독교적 각성과는 결이 다른 구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해서 영화 제목 'Deliverance'는 한글 자막이 옮긴 대로 '구원'보다 '액막이', '악령 쫓기'에 더욱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중간에 성경 구절 가운데 '우리 형제와 자매 중에 가장 미천한 자에게 베푼 것이 곧 너희가 내게 베푼 것'을 어이없게도 '내가 베푼 것'이라고 옮긴 잘못을 바로잡았으면 한다.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아류를 탄생시킨 '엑소시스트'(윌리엄 프리드킨, 1973)가 떠오르는데 이 영화의 오싹한 장면에 계속 등장하는 선병질적인 장식음 말고 서정적인 선율의 루카스 비달의 주제 음악이 상당히 인상 깊었고, 이 작품을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가난과 불평등이 불러온 가족 구성원의 불신과 반목이 초자연적인 현상, 악령의 출몰보다 더 두려운 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