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불성역 답사기 (1)
/ 송광섭
만불성역(The City of Ten Thousand Buddhas) 설립의 서원
일주문
만불성역은 중국 위앙종의 19대 조사인 선화선사께서 1976년에 미국의 캘리포니아 북부 유키아 시 외곽 약 60만평의 대지에 건립한, 대소법당, 행자수련원, 법계대학, 고등학교, 초등학교와 일반인을 위한 수련센터를 포함한 70여채의 건물과 2,000여명이 수련할 수 있는 종합 불교성지이다. 선화선사(宣化上人,선화상인)는 이미 1950년대 말 미국의 국력성장과 미래의 세계 최강 국가로서의 영향력을 예견하고서 모든 세계 인류의 불성회복을 위한 중심지로서 미국에 불사를 일으켜 인재를 양성하고 불법을 전파할 선사의 일생의 대원력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이러한 선화 선사의 원력이 인연의 도래함에 계합되여 미국 최초이며 최대인 불교 교단으로 오늘도 여여한 불법의 진면목을 서방에 나투고 있는 현장이다.
19세기 이래로 미국의 대륙횡단 철도건설과 금광의 개발로 다수의 중국인이 미 대륙에 유입되었으며 이들과 함께 도교, 불교와 토속 중국 신앙이 미국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말 까지 서부 도시의 차이나타운에서 신비적인 동양 문화의 일부로서 미국인들에게 알려져 왔으나 진정한 의미의 동양문화나 불교의 대의를 전파하지는 못하였다. 1962년 선화 선사의 방미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미 서부의 중국인들의 불심을 함께 모아서 응집시키고, 신흥 강대국인 미국의 자유와 진취적인 정신적 사조에 힘입어 중국 대승불교의 전통을 미국과 중국인 모두에게 새로운 인상을 부각시켰다. 그 결과 결집된 역량을 바탕으로, 1976년 불법을 미국에 전하고 서양에서 불교의 중흥을 이루기 위한 인재 양성불사와 역경사업을 위한 만불성역이 탄생하게 되었다. 미 서부에 최초로 승가계단인 만불성역의 출현은 선화 상인의 회고대로 법륜의 운행과 다겁생의 인에 이미 점지된 숙세의 연이 마침내 부합되어 실현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불선원은 미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101번 고속도로로 2시간 거리에 있으며, 주위의 풍광이 중국대륙을 연상하듯 웅장한 산세가 동서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남북에는 끝없이 펼쳐진 평원으로 포도 과수원과 무공해의 대기와 맑고 따뜻한 캘리포니아의 햇빛이 속세의 닫힌 마음을 시원하게 펼쳐지게 하는 풍광이 수려한 성지이다.
경내에는 여래사를 비롯하여 많은 중국 전통의 대소 법당이 있고 스님과 수련행자, 단기 수련객과 방문객들의 기도와 독경이 계속해서 울려나오며 경내의 고요함과 더불어 경건한 마음을 저절로 일으키게 한다. 만불성역내의 모든 거주자는 선화 상인의 유지에 따라 싸우지 않으며, 탐욕심을 버리며,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기의 사욕을 버리며, 이기적이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의 여섯 가지의 계율을 수지 봉행하며, 하루에 한 끼의 식사를 원칙으로 수행을 한다.
선사는 이곳 만불선원을 인종이나 종교에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방문 및 수련을 하며 나아가 출가사문의 원력이 있는 자는 누구나 참여케 함으로써, 만불성역의 비젼인 전 인류에게 부처님의 참 불성을 이곳을 기반으로 회복시키는 대원을 실현하기를 희망하였다. 현재의 만불성역의 운영과 수련과정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선사의 유훈을 계승 수지하고 실행하고있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만불성역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으며 방문이나 단기 체류하며 수련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주거 공간이 허용하면 공평하게 신청한 순서에 따라 언제든지 본인의 계획에 따라 수련에 참여할 수 있다. 남녀의 주거환경이나 회합, 수련 및 예불활동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탄산음료, 커피등과, TV나 인터넷, 전화 등의 사용이 철저하게 제한된다. 방문이나 수련 등 불교 행사에는 일체의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다만 법계대학, 고등학교 및 초등학교는 소정의 수업료와 기숙사 비용을 부과하나 교육시설에 비해 학비와 기숙사비용은 타 기관에 비하여 30%정도로 저렴한 수준이다.
법계대학 현판
오늘도 만불성역에는 한가하고 평화로운 적멸의 시간이 흐르고 있으며 미래의 미국을 불국토로 건설할 인재들인 120여명의 출가승려, 100여명의 고교 기숙학생과 50여명의 교사진과 수행자들이 정성으로 불법탐구와 구도 수행을 하고 있으며, 각자의 근기에 맞추어 공부와 수련을 계속하고 있다. 성역의 방문이나 관광이 수행의 한 방편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오늘도 미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과 관광객이 끊임없이 도착하고 있다.
선화 선사의 행장
선화선사는 1918년 4월16일 중국 북공부의 길림성에서 출생하였다. 선사의 모친은 불심이 깊어 일생동안 육식을 금하였으며 유년시절 부터 선사가 불가에 귀의하기를 소원하였다. 이러한 모친의 영향으로 선사는 평소에 효심이 깊었으며, 채식을 행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암송하고 다녔다고 한다. 성품이 조용하고 말을 절제하며 곧고 강직한 성품을 가졌으며, 15세 때 삼보에 귀의하였다. 학교에 입학하여 다양한 중국의 고전철학을 이해하고 신학, 의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섭렵하는 한편, 빈민 자선단체에 참여하여서 문명퇴치와 야학에서 활동하였다.

여래사
19세때 출가하여 수계승려가 되었으며, 모친 사후에 모친의 산소에 초막을 짓고 장좌불와와 하루에 한 끼의 식사를 하며 3년 동안 모친의 극락왕생을 기도하였다. 기도 중 어느 날 6조 혜능선사가 현신하여 미래에 서방으로 가서 많은 중생을 제도하라는 계시를 내려주었다. 어머니 묘소의 봉양을 마친 후 만주지역에서 고행을 통하여 견성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수도승의 본분을 완성하였다. 1946년에 3000여 마일을 여행하여 광조우에서 위앙종의 18대 조사인 수윤대사를 친견하였다. 선화선사의 수련과 법기를 거량하신 수윤대사로 부터 다음해 위앙종 19대 조사의 전법계를 받고 선화(宣化,밝히고 전한다)라는 법호를 수지하고 스승의 교단에서 시봉을 하였다. 그러나 2년후 중국 공산당정부의 출현으로 승려들의 탄압이 심해지자 선화 선사는 홍콩으로 피신하여 불교의 수행인 참선, 경전, 계율, 염불, 고행, 정토신앙 등의 모든 분야를 차별하지 않는 평등한 수행을 강조하고 봉행하였으며, 사원을 재건축 하고, 간경과 불상조성등 10년동안 포교활동에 집중하였다.
1959년에 혜능선사의 계시대로 미국으로 불법을 전하기 위하여, 그의 제자를 미국으로 파견하여 샌프란시스코에 불교 강원을 설립한 후 1968년 까지 운영하였으며, 후에 법계 불교총회(Dharma realm Buddhist Association)의 전신인 중미 불교총회(Sino-American Buddhist association)를 설립하였다. 총회의 설립으로 미국 서부에서의 수련과 포교활동이 효율적으로 이루어 졌으며, 다음해 5명의 제자들이 대만으로 귀국하여 수계를 받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금산(Gold Mountain)사를 창건하여 선화 선사 미국방문의 환경을 조성하였다.
선화도사 1961년 도미
1961년에 선화선사가 제자들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 샌프란시스코 불교강원에서 매일 저녁 한 시간 동안 관심을 갖는 미국인 신자들에게 참선 수련을 지도하며 경전 강의를 계속하였다. 큐바 미사일 위기 때에는 위기 해결과 세계평화를 위한 35일 동안 금식기도를 봉행하였으며, 1967년 강원을 차이나타운으로 이전하여 본격적인 대중 활동을 시작하였다. 점차로 선사의 명성이 미 서부에 알려지게 되어, 다음해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생 30여명을 대상으로 경전 강의와 참선을 위주로 여름 수련회를 가지게 되었다. 수련생 중 5명이 대사를 사부로 삼아 출가 수도를 원하므로, 대사는 미국에서 최초로 미국인에게 출가사문의 법호를 수여하여, 미국 최초의 미국인 승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선사는 미국 승가를 창립하여서 진실된 불법의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미국에 전하기 위하여 불사를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는 전인교육을 실시하는 대학이나 각종 교육기관을 설립하며, 불경을 영어나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시설을 설립한다는 서원을 세우게 되었고, 이를 미국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한평생 수련과 고행을 실천하게 된다.
1976년 만불성역 창건
중국에서 널리 퍼져있는 중국인들의 각종 미신과 종교에 대한 오해를 떠나며, 소승과 대승의 논쟁과 불교의 계파별 교리다툼 등을 지양하며, 오직 정법에 기초한 부처님의 불법의 진리를 전하는 참다운 불법의 수호자를 미국 땅에서 양성 배출하기 위하여, 1976년 유키아 시에 만불성역을 창건하였다. 이후 미국 최대의 불교 교육과 수련의 성지로 육성한 후 1995년 입적할 때 까지 만불성역에서 교화와 수련에 전력을 경주하여 헌신하였다. 만불성역내에 초등학교, 고등학교 및 법계대학을 설립하여 시설과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미전역과 해외에 산하 계열 사찰을 22개소 설립하였다. 버클리 대학이나 스탠포드대학 등에 불교 학술연구를 지원하며 학자나 학술교류를 위하여 대학 근교에 경전 번역 연구소, 세계 종교 재단, 세계 윤리 연구소 등을 설립하여서 불교 인재 양성과 사상의 발원지가 될 수 있도록 기초를 확립시켰다.
만불성역의 운영이 본 궤도에 오르고 부속 학술연구가 활성화됨에 따라, 미국내와 외국에 본격적인 불법의 홍보와 불교 포교를 통한 세계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세계 종교대회, 행자수련 및 수계, 소승 대승간의 이해 증진과 통합운동, 타 종교 특히 기톨릭과 제휴하여 세계 종교 연구소를 설립하여 종교간 대화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불교 포교의 방편으로 관음기도 도량으로서의 대표적인 기도처를 성역 내에 다수 만들었으며, 하계 수련대회, 버클리, 스탠포드등 유수한 미국대학에 재정지원, 강의 및 세미나를 교환 실시하며, 지역사회와 유대강화를 위하여 병원과 유아교육시설을 개방하는 등 이상적인 불교성지의 모범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이후 해외에도 만불성역의 종지와 부합되는 사찰이 생겨나고, 미국인과 유럽인들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불교신자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바탕이 되었다.
선사는 자신을 무덤속의 승려(Monk in the Grave)라고 생각하여 일체의 이익이나 명에를 구하지 않았으며 또한 자신을 하나의 미물로 생각해서 불법의 대의를 구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봉사하는 구도의 초석이 되기를 서원하였다. 만불성역을 운영하는 기본 불교 사상으로 참선, 경전, 계율, 염불, 고행과 정토신앙의 여섯 가지 중국불교의 전통을 굳건하게 유지하며, 하루 한끼의 식사를 권장하며, 하루 일과를 정확하게 일과표에 다라 오전 4시부터 밤 10시 30분 까지 엄격하게 진행하고 있다.

방문객 법당 내부
1995년 6월 7일 선화 선사는 LA에서 입적하시었으며 입적시까지 예불과 설법을 계속하시었다. 선사는 유언으로 화장을 하며 부도나 사리탑을 조성하지 말고 장례식을 간소히 할 것과 자신의 자취를 세상에 남기지 말것을 당부하시어 현재는 대사의 부도는 없고 유골은 만불성역에 뿌려졌다. 4,000에서 10,000여과의 사리가 나왔으나 특히 교화와 역경의 공덕으로 치사리가 특이하게 영롱하였다고 전한다. 선사의 사리를 제자들이 성역내와 계열사찰에 보존하고 있는 것이 선사의 사진과 더불어 유일한 선화선사의 자취이다. 장례식은 6월8일부터 7월29일까지 롱비치와 만불성역에서 거행되었으며 세계 각국에서 2,000여명의 신도와 조문객이 참배하였으며 당시의 부시 대통령과 수많은 남방불교, 대승불교의 고승 대덕승려가 조문과 조전을 보내왔다.

선화선사 유묵
선화선사의 대원과 신심에 기반한 행적과 미국에서의 만불성지 조성과 위법망구하신 정법포교의 행장은 수많은 제자들과 신도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특히 대오를 바탕으로 한 거침없는 불법의 사자후와 중국 불교의 미국으로의 전승과 미국승가의 탄생 등은 마치 보리달마 대사가 서쪽에서 와서 중국에 불법을 전한 것으로 비교되기도 한다. 한사람의 수도자로서 사심 없이 한없이 높은 불법대의를 일생동안 미국에 포교실행 한 선화선사의 깨달음과 일생의 행장에 존경과 감사를 보내며 다시 한번 불법의 밝고 넓은 적적 대의를 생각해 본다.
만불 성역의 가람 배치
사찰의 위치는 샌프란시스코 북방 110마일에 위치한 유키아(Ukiah)시 동쪽 4마일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는 장엄한 중국식의 산문(일주문)이 조성되어 첫 인상으로 중국 사원임을 알게하며. 만불성역, 법계대학과 여래사의 현판이 붙어있다. 사원은 1976년에 완성되었으며, 총대지는 500 에이커로 약 60만평의 광활한 대지에 70여동의 각종 불당과 건물이 조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만불성역과 본말사와 부속기관의 행정은 남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법계 불교총회(DRBA)에서 총괄하며 경전 번역센터는 Burlingame 시, 세계 종교재단은 버클리시에 있다.
만불 성역안으로 운전하여 들어가면 내부가 넓고 너무나 고요하기 때문에 잠시 마음을 추스려야할 시간을 가져야 하며, 이때 오른쪽으로 주차장과 성역 안내소(Visitor Center)의 표지판이 보인다. 안내소가 있는 건물은 종무소가 있으며, 안내원이 근무를 하며 기념품점과 화장실이 있으며 작은 회의상담실과 종무실등이 있다. 안내실에서 방문목적과 용무를 이야기하면 성역 안내지도와 주의사항을 말해 주며, 사람을 만나려고 하면 안내원이 연락을 해 준다. 관광 안내원이 있어 단체로 인솔하여 안내도 한다.
종무소의 맞은편에 방문자들을 위한 작은 법당이 있으며 관음보살 입상과 선화선사의 영정과 유묵이 전시되어 있으며, 내부는 중국식의 예불용 방석이 있으며, 100여명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는 법당이다. 성역내의 모든 법당에는 남자와 여자의 출입문이 분리되어 있다.
법당을 지나면 바로 2층의 법계대학 건물이 있으며 법계대학은 학사과정과 대학원 석사과정이 있으며, 학생의 기숙사가 붙어 있다. 법계대학 다음에는 여래사 건물이 있으며 출가 승려와 수련 행자의 생활공간이며 방문객의 출입이 제한된다. 여래사에서 오른쪽에 오관대 (Five Contemplation Dining Hall)식당의 큰 건물이 있으며 2,000여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으며 성역내의 모든 인원이 점심식사를 하는 곳이며 큰 행사나 불사의 용도로 쓰일 때도 있다. 오관대 뒤쪽에는 남자 고등학교 건물이 있고 건물 뒷쪽으로 남학생 기숙사가 붙어 있다. 이곳이 성역의 끝이며, 건물왼쪽으로 작은 운동장을 지나면 만불성역의 중심 법당인 만불보전(The Jeweled Hall of 10,000 Buddhas)이 위치하고 있다.
법당의 내부는 1982년에 완공되었으며, 선화선사가 설계한 10,000개의 불상이 벽에 장엄되어 있으며 주불은 6m에 이르는 관음보살 입상이 연등, 만장과 장식으로 장엄하게 조성되어 있다. 주 법당 옆면에 독립적으로 작은 기도 공간 두곳이 있으며, 한방에는 선화상인의 좌상과 다른 방에는 관음보살의 좌상이 모셔져 있으며, 내부에 법회를 진행할 수 있는 설법전이 있다. 법당의 입구는 중국의 해태가 좌우에 배치되어 있고 정면에는 큰 구리 종탑이 조성되어 있고, 지붕에는 대불이 모셔져 있다.
만불보전 앞 도로 건너편에 춘강 채식 식당(Chun Kang Vegetarian Restaurant)이 있어 학생들에게 아침,저녁을 건강 채식으로 제공하며 방문객은 사용이 가능하다. 식당의 앞쪽에 초등학교 건물이 있고 식당의 뒤쪽에는 여자 고등학교와 기숙사 건물이 있으며 다음에는 비구니 스님과 스님들 전용 구간인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근처에 종각, 축원탑과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선화선사의 숙소, 설법당인 묵언당 등이 있다. 또한 방문자를 위한 기숙사 건물도 마련되어 있다. 만불성역은 60여만평의 광대한 대지이나 현재 10여만평(80에이커)만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과수원과 숲, 산책로 및 동물 방사용으로 전원의 한적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오관대 대 식당
만불성역의 수행 가풍
만물성역에서의 수행가풍은 기존의 중국 사찰과는 많은 점이 다르다, 중요한 점은 선화선사의 수행가풍을 이어 받아 승려는 승복위에 항상 가사를 수하여야 하며 하루 중 정오가 되기 전에 한끼의 식사만 허용한다. 저녁에는 모두가 쉬거나 좌선을 하고 누워서 잠을 자지 않으며, 남자와 여자가 모이지도 않으며 어떠한 친분 관계도 갖지 않는다. 출가 승려는 장례나 혼인 예식을 주관하지 않으며, 오직 묵언으로 일체 말을 삼가는 생활을 수지하여야 한다.

기숙사
선화선사는 부쟁(不爭), 불탐(不貪), 불구(不求), 부자사(不自), 부자리(不自利), 불망어(不亡語)의 여섯 가지 계율을 지시하고, 추가로 법당에서 향을 사르지 말고, 염불시에는 자기의 왼손위에 오른손을 겹쳐서 가슴에 대고 눈을 아래로 봐 다른 사람과 대면하지 못하게 하며, 스님이 식사를 하기 전에 식사를 시작하지 않으며, 떠들거나 자기 자랑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못하게 하는 규율을 지키게 하고 있다.
만불성역의 하루 일과는 새벽 4시부터 시작 되며 한 시간 동안 독경을 하며, 5시부터 한 시간 동안 절을 하는 참배시간, 6시부터 한 시간은 참선을 하고 아미타경 독송을 마치고 나서 수업, 일과와 개인 공부를 10시 30분까지 진행한다. 이후는 성역의 모든 대중이 12시 정오까지 오관대에서 점심공양을 한다. 오후 일과는 12시 30분에 관음 정근을 하고 6시 30분 까지 일과와 참선을 하며 이후 정근이나 강의를 하고 10시 30분에 전체가 소등을 하고 취침하게 된다.
세상의 공사다망함과 분리되어 한가로운 대자연과 일체가 되어 오로지 불법의 깊은 적적 대의를 정성을 다해서 매일 매일 참구하고 수련하는 만불성역 스님들의 모습에서 몸과 마음의 경안함을 이심전심의 기운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어쩌면 지금도 법계에 대자비와 원력으로 존재하시는 선화선사의 감화의 덕분이라 느껴진다.
City of Ten Thousand Buddhas
2001 Talmage Road, Ukiah, CA 95482.
Tel: (707) 462-0939 / Fax: (707) 462-0949
www.drba.org
<계속>
송광섭 조계종 국제포교사는 1952년 생으로 1975년 해군사관학교,1978년 서울공대 전기과, 1981년 서울공대 대학원, 1989년 미시간대 대학원, 2001년 웨인주립대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78년 부터 해군사관학교 교수부에서 전기공학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해군사관생도 법우회 지도교수를 당당하면서 불교포교를 하였다. 2003년 해군을 전역하였으며, 현재 한국해군사관학교 명예교수 겸 미해대원 방문교수, 카멜삼보사 참선 지도법사로 있다.
[2006년 10월 196호]
첫댓글 중국 불교가 미국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라도 짬지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한 원력입니다,세계 어디에서나 중국인 세명만 모이면 얼마안가 타운을 이룹니다,그런데 스리랑카에서는 그게 안됩니다,차이나타운을 이룰수없는 나라는 발전을 할수없다고 하는 말이있습니다만 정말인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