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은 그곳까지
나는 휴대폰 없이도 살아도 되는데 가족이나 주변에서 불편하다는 등쌀 때문 어쩔 수 없이 갖게 되었다. 예전 구형 폴더 폰을 오래도록 고집하다가 뒤늦게 스마트 폰으로 바꾸게 되었다. 나는 소유물을 잘 관리하는지라 휴대폰을 한 번도 분실한 적 없다. 폴더 폰은 수명이 다해 고쳐 쓰기도 하고 액정이 절로 일그러질 때까지 쓰다가 시대에 한참 뒤쳐져 스마트 폰 대열에 합류했다.
작년 초 그간 쓰던 휴대폰이 오래 되어 충전지가 빨리 닳아 사용에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대리점을 찾아 휴대폰을 교체하게 되었다. 내가 쓰는 휴대폰은 껍데기는 멀쩡한데 구닥다리로 취급 받았다. 나는 국내 가전제품으로 나온 좋은 휴대폰을 두고 공짜 폰이라는 미끼에 낚여 중국제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 기기 사용법이 서툴러 익숙해지기까지 한동안 많이 더듬거렸다.
‘싼 게 비지떡’ 이라고 중국제 공짜 폰은 나에게 영 맞지 않았다. 그걸 중도에 해지하고 집에 보관 중인 예전 사용했던 국산 폰으로 되돌려 볼까 싶었으나, 그러면 중도 해지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고 해 단념했다. 그 폰을 쓴 지 일 년이 조금 더 된 올 봄이다. 어느 날 통화가 되질 않았다. 내가 걸어도 상대방에게 신호가 가질 않고 상대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도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통화는 되지 않아도 출근길 아침이면 배터리를 충전시킨 휴대폰을 한동안 갖고 다녔다. 문자와 카카오 톡은 교신이 되고 인터넷 접속도 가능했다. 그새 몇 건 문자가 오가고 인터넷으로 뉴스나 날씨 정도 검색해 볼 수 있었다. 일상에서 접하는 봄날 풍경 사진도 남길 수 있었다. 그런데 통화가 되질 않으니 가족이 불편하게 여겨 어쩔 수 없이 집 근처 통신회사 대리점을 찾아갔다.
대리점 젊은이는 휴대폰 상태를 점검해 보더니 기기 어딘가에 고장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에이에스센터 맡겨 수리하는 비용보다 약정 기한을 채우지 못한 위약금을 물고라도 새 휴대폰을 갖는 게 득이라 했다. 그러면서 대리점 젊은이가 기기의 작은 칩을 분리 점검한 이후는 인터넷도 되질 않았다. 인터넷이 안 되니 문자와 카카오톡도 되지 않은 먹통 휴대폰이 되고 말았다.
이튿날 할 수 없이 통신회사 대리점을 다시 찾았다. 매장에서 가장 싼 폰을 새로 장만하기로 했다. 휴대폰 가격이야 그리 부담 되질 않았다. 문제는 여태 쓰던 폰이 약정 기간 2년을 다 채우지 못했다고 물어야 하는 위약금이었다. 휴대폰 기기 이상에 생겨도 사용한지 1년이 경과했기에 위약금은 고스란히 물어야 한다고 했다. 거기다가 3개월은 고가의 무제한 요금제를 써야 된단다.
‘울며 겨자 먹기’로 휴대폰을 새 것으로 바꾸게 되었다. 대리점 총각은 정한 절차 따라 계약서를 작성해 나에게 보이면서 자필 서명을 하라고 했다. 이어 시간이 제법 걸려 새 휴대폰에 그간 등록된 전화번호와 찍어둔 사진을 옮겨 주었다. 이전 교신된 문자와 카카오톡 내용은 옮기기가 어려운지 건너오질 않았다. 메모 창에 몇 가지 입력시켜 둔 내용들도 새 폰으로 옮겨지질 않았다.
새 휴대폰을 사용한지 며칠이 지난다. 통화야 할 곳이 많지 않고 걸려온 데도 적다. 문자와 카카오톡은 몇 통 오고갔다. 그러면서 예전 카카오톡 창과 비교해 어딘지 허전한 구석이 있음을 발견했다. 내 프로필에 실린 사진과 메시지가 지워진 빈칸이었다. 나는 그 자리 여름 운문산 숲과 겨울 낙동강 강물 사진을 올려두었더랬다. 그리고 ‘산처럼, 물처럼’이라는 글귀를 남겨 놓았다.
예전 내 프로필에 실은 사진은 날아가 찾을 길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지난겨울 서북산 임도 걷다가 남긴 사진이 있었다. 남녘에 보기 드문 눈이 내려 아무도 지나지 않은 숫눈이었다. 그 길을 내가 걷고는 뒤돌아 서 남긴 설경이었다. 그리고 메시지로는 ‘걸어온 길, 걸어갈 길’로 새겼다. 이제 나이 예순이 넘었다. 분명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을 것이다. 아직 남은 그곳까지… 18.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