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걷는 세상/시와 함께 걷는 마음
이 글은 문학평론가가 쓴 글이 아니라우리나라이 대표적인 최고경영자가 쓴 시학詩學
(글 이방주 제이알투자운용 회장)
장진주사 將進酒辭
정철 시인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이어 메고 가거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萬人이 울며 따른다 해도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白楊 숲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파람 불 제야 뉘우친들 어찌하리
유소보장: 화려하게 꾸민 상여 소소리바람: 이른 봄 살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차고 매서운 바람 |
송강 정철(1536~1593)은 ‘사미인곡’, ‘관동별곡’ 등을 저술한 조선시대 가사歌辭 문학의 대가이다. 또한, 벼슬도 높이 하여 좌의정까지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 선조를 가까이서 보좌하였고, 명나라에 사은사(謝恩使: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외국에 보내는 사신)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장진주사’를 학생 때 국어 시간에 배운 것 같기도 하나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이 가사歌辭를 만나게 된 것은 회사 생활에 한창 바쁘던 시절 심연섭(1923~1977) 선생의 저서 ‘건배’를 통해서였다. 심연섭 선생은 자칭 우리나라의 최초 칼럼니스트였으며 60~70년대 애주가로 장안에 널리 알려진 멋쟁이 언론인이시다. 칼럼에 실린 사진 속의 검은 뿔테 안경과 나비넥타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연말 파티에서 어떤 여성 국악인이 ‘장진주사’를 읊는 소리를 듣고 매우 감동하여 그의 저서 ‘건배’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필자 역시 심연섭 선생과 같은 생각이다. 약 400여 년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그 운율이나 리듬이 현대시와 크게 다를 것이 없고, 또 권주가로서 술좌석에서 분위기를 만드는데 제격이다. 실제로 어느 연말 모임에서 건배사를 부탁받고 통상의 건배사 대신 ‘장진주사’를 암송한 적이 있는데, 파티 분위기를 해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감정이나 사고思考는 400년 정도의 세월로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파람 불 제야 뉘우친들 어찌하리 |
이 작품은 술을 권하는 권주가이기도 해서 그러하겠지만 ‘카르페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기라)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미래를 위해 참고, 자제도 해야겠지만 사실 어떤 미래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지금 내가 참석하고 있는 파티를 마음껏 즐기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가르침이다. 만고의 진리지요. 그럼에도 대부분 잊고 살고 있다.
생활인으로서 소소하게 받고 있는 소소한 스트레스나 부담이 사고思考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도 꽃상여 타고 가면, 누구든 한 잔 마시자 할 리 없고, 또 마실 수도 없다.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가 휘파람 불 때서야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맞는 이야기다. 그러니 때로는 ‘장진주사’를 암송하면서 현실을 잠시 떠나 새로운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고,
권주가勸酒歌로서 술맛도 나게 할 것이다. 400여년 전에 지어진 작품이나 앞으로 400년 후에도 그 느낌은 같을 것 같다.
참고자료
이방주 회장 지음
명시산책-시와 함께 걷는 세상, 시와 함께 걷는 마음
북레시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 부회장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
제이알투자운용 대표이사 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