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대(利見臺)
1967년 사적로 지정되었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의 호국정신이 깃든 해중왕릉 대왕암(大王巖)이 보이는 감은사지(感恩寺址) 앞 바닷가에 있다.『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인용된 이 절 안에 있는 기록에는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처음 창건하였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었다. 아들 신문왕이 681년 7월 7일에 왕위에 올라 682년에 감은사 공사를 끝냈다. 신문왕은 감은사 금당(金堂) 뜰 아래에 동쪽을 향하여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는데, 용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뒤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 하였다고 한다. 682년 5월에는 신문왕이 이 곳에서 용으로부터 옥대(玉帶)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 대나무를 얻었다고 한다. 한편, 이와 관련된 「이견대가(利見臺歌)」라는 가요가 있었다고 하는데 작자는 어느 왕이라 하나 잘 알 수 없고 가사는 전하지 않지만,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에는 “전설에 의하면 신라 어느 왕의 부자가 오랫동안 헤어져 지내다가 대(臺)를 지어 서로 만나보게 되었는데 그 이름을 이견대라 하고, 그 부자의 즐거움이 비할 데 없어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견대(利見臺) 위치도